바야흐로 ‘잔인한 4월’이다. 3월의 적응기와 탐색기를 거쳐, 중간고사까지 끝나면 교실분위기가 미세하게 달라져 있다. 몇 개의 그룹이 형성되고, 교실 주도권을 잡느라 신경전이 일어나며,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한다. 신학기 담임교사와의 첫 상담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기도 이즈음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담임교사와의 첫 상담을 기대하고, 설레며 기다린다. 겉으로는 싫은 척, ‘그딴 건 왜 해’라며 투덜거리지만, 속으로는 ‘내 차례는 언제 올까? 이런 말을 해야지’ 하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 첫 상담 후 오히려 신뢰가 깨졌다고 말한다. 왜일까? 간단하다. 기대만큼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기대가 너무 높았을까? 아니다. 교사의 초기상담 활동이 미흡했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상담에도 전략이 있다. 교사들의 흔한 오해 두 가지를 통해 신뢰관계를 쌓는 초기상담을 살펴보도록 하자.
초기상담, 교사와 학생의 신뢰관계를 결정짓는 첫걸음
상담도 타이밍이다. 특히 첫 번째 상담, 즉 초기상담은 학생뿐만 아니라 일 년 동안 담임교사의 ‘삶의 질’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초기상담 과정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신뢰’가 생기고, 교사는 학생을 ‘이해’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 즉 교사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학생에 대한 오해가 생기면서 일 년 동안 감정소모로 지쳐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깨닫는 순간은 맨 마지막 단춧구멍 하나가 텅 비었을 때이다. 하지만 괜찮다. 다시 풀고 처음부터 다시 끼우면 된다. 초기상담도 마찬가지이다. 첫 시작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해서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초기상담 성공전략’으로 시행착오를 줄여보고자 할 뿐이다.
흔한 오해 ❶ _ ‘초기상담이니까 가볍게, 친해지는 것’에 초점을 두자!
가장 흔한 오해가 바로 ‘초기상담이니까 가볍게, 친해지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초기상담을 통해서 학생과 친해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친하다’는 것이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친한 친구지만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친하지는 않지만 신뢰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교사와 학생 관계는 후자가 더 적절하다. 친구 같은 교사보다 존경할 수 있는 교사가 더 바람직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친하면서 신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초기상담 목적을 친해지기에 맞추면, 상담은 일상생활 혹은 농담 식의 가벼운 대화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또한 형식적인 절차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기 초, 담임교사와의 첫 상담을 기다리며, 어떤 말을 할지까지 생각해놓을 정도로 기대감이 크다. 따라서 일상적인 대화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 오늘 우리는 10~20분 정도 상담할 예정이야. 새로운 학년의 시작(혹은 중·고등학생 첫 시작)이라서 너도 많은 다짐과 계획, 생각을 해봤을 텐데, 오늘 상담이 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는 오늘 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니?
맨땅에 헤딩하기보다 ‘초기상담 면접지’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초기상담 면접지의 정해진 형식은 없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이나 ‘상담 때 이야기하고 싶은 것’ 등이 포함되어 있으면 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면접지에 솔직하게 답변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누군가 진지하게 듣고, 함께 고민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따라서 초기상담에서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묻고 듣는 것은 신뢰관계 형성의 첫걸음이다. 초기상담 면접지에 적힌 아이들의 고민을 첫 질문으로 던져보자.
“친구관계가 가장 고민이라고 적어놓았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니?”
“성격 때문에 고민이구나. ○○이는 성격이 어떻기에 고민까지 할 정도인 거야? 성격 때문에 오해받거나, 힘들었던 적이 있었니?”
“오, 성적이 고민이네. 이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힘들까? 열심히 노력해도 성적이 잘 안 오르니? 아니면 혹시 부모님의 기대가 커서 힘드니?”
물론 ‘딱히 고민 없음’이라고 적어 놓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표현 역시 유의미하다. 진짜 고민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고민이야’라는 비난을 듣기 싫어서일 수도 있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럴 때, “고민이 없다고? 그래도 뭔가 하나는 있을 거 아냐?”라며 답변을 강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좋다. 또한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주관식으로 된 물음에 답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개방형 질문이 폐쇄적 질문보다 좋지만, 아이들인 경우에는 대답하기 편한 선택형으로 제시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딱히 고민 없음’이라고 적어놨네. 지금 현재 고민이 없는 거야, 아니면 지금 말하기가 싫은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단다. 나중에라도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그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니까, 조금이라도 너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으면 하거든.
(만약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한다면) 친구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고, 친구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고, 소극적인 성격을 좀 고쳐보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고, 부모님과 갈등을 어떻게 하면 풀어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단다. 또 공부를 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된다는 친구들도 있고. ○○이는 어때?
(만약 끝까지 할 말이 없다고 한다면)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꾸나. 대신 나중에라도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흔한 오해 ❷ _ 초기상담이니까, 최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자!
두 번째는 초기상담 목적을 정보수집에 두는 경우이다. 하지만 아직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취조하듯 이뤄지는 정보수집형 질문은 오히려 신뢰관계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이 ‘회사 동료들이랑은 친하냐, 돈은 좀 모아놨냐, 부모님은 뭐 하시냐,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등을 물어보면 기분이 좀 애매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생의 정보수집은 초기상담 면접지에 적힌 것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상담과정에서는 초기상담 면접지에서 궁금한 것들을 추가적으로 질문하면서 학생의 정서적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현재 이렇게 살고 있네. 이 중에서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하는 편이니?(정서적 지지자 찾기) 엄마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구나. 어때? 속상하고, 힘든 감정까지도 좀 전달하는 편이니?(사건 중심 대화형인지, 감정소통 대화형인지 탐색) 왜? 그런 것들은 말 안 해? 서운했던 기억이 있나 보구나?”
“공부를 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된다고 했잖아. 집중이 안 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 의지도 중요하지만, 환경적인 문제도 무시 못 하거든. ○○이가 생각해 본 원인은 어떤 것들이었니?”
초기상담 성공해서 꽃길만 걷기
결국 초기상담 성공전략 첫 번째는 아이들이 준비한 말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교사는 개방형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하도록 유도하고, 구체화된 연관질문과 선택형 질문으로 좀 더 명확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면 된다. 두 번째 전략은 아이들이 준비한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다 듣고 나서 한마디 거들면 된다. 아이들이 상담을 통해 기대하는 수준은 높지 않다. 그저 자기 계획을 확인받고, 자기 결심을 격려받고, 불안감을 위로받고, 의심되는 문제해결방법에 도움받기를 기대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첫째,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자
왜 이런 고민이 생겼는지, 자기 입장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하자.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의 힘듦에 꽤 인색하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뭐가 그렇게 힘드니? 너만 힘드니?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때는 말이야….” 하지만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고 해서, 부모님이 더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해서, 나의 힘듦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힘듦과 나의 힘듦은 별개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가장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일지라도 아이의 말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아, 그렇구나.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놀라워한다(물론 진심이어야 한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후속작업이 필요하다(이 부분은 앞으로 ‘꼰대수첩’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자).
“선생님, 학교 오는 게 너무 힘들고, 교실에 있는 건 더 힘들어요.”
- 일반적인 예) (표정으로 이미 때리고 있지만, 눌러 참으며) “뭐가 그렇게 힘든데?”
- 나쁜 예) “뭐? 학교 나오는 게 힘들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 좋은 예)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래? 친구랑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면 수업 따라가기가 힘드니?”
둘째,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은 너를 돕기 위한 거야
아이들은 생각보다 ‘사고체계’가 정교하지 못하다. 특히 말에 담긴 속뜻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아이들에게 ‘정신 차리라’며 내뱉은 ‘거친 말’은 그냥 상처로 남아 버린다. 예를 들어 담임선생님의 “그렇게 나약해서야, 어디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니?”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될까? 과연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보자’라는 선생님의 속뜻은 전달되었을까? 아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 짜증 나. 뭐야,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도 안 했는데, 지금 나한테 저주를 퍼붓는 거야, 뭐야!”
어쩌면 거친 말과 상처 주는 말로 아이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은 그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좋은 말로 정신 차리게 하는 일은 몹시 어렵다.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시간도 걸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느낀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과 행동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쌓는다. 진심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에고, 많이 힘들었겠다. 그렇다고 학교를 안 다닐 수도 없고….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봤을 거잖아. ○○이의 생각을 한번 들어볼까?”
“이런저런 방법을 다 해봤구나. 그런데 안 된 거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음, 선생님이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까, 아까 그 방법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 일반적으로 ~~ 할 수 있거든. 해 볼 수 있겠니?”
셋째, 연계상담을 부담스러워하지 말자
간혹 연계상담을 부담스러워하는 선생님들을 만난다. 연계상담은 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기술적인 보살핌을 위해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나는 곧잘 상담을 감기에 비유하곤 한다. 초기 감기는 그저 조금 쉬거나, 대충 집에 있는 약만 먹고도 견딜 만하다. 하지만 몸살감기나 독감에 걸렸을 때는 병원에 가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연계상담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힘듦이라면(한 반 25명 기준으로 20명 정도는 일반적 수준이다) 담임교사의 상담으로도 충분하지만,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은 연계상담으로 개입할 때, 보다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담임교사가 끌어안고 있는 것이 병을 더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초기상담이나 이후 이어지는 상담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면, 언제든지 교내 위클래스를 방문하거나 지역교육청의 위센터, 학교지원센터에 문의하자.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