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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나무를 심는 마음과 교육하는 마음

일찍이 스피노자는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했다. 짐작컨데 나무 심기는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인 것 같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20년 전에 근무하던 학교를 들렀다. 식목일에 학교 울타리를 따라 걷다보니 나무를 심었던 곳에 다달았다. 당시 한 그루, 한 그루의 작은 묘목들이 제법 자라 이제는 필자의 키를 훌쩍 넘었다. 학생들과 함께 심었던 나무들이 무럭무럭 성장한 모습에 순간 감개무량했다.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가 말년에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다. 불과 4000여 단어로 이뤄진 짤막한 글이다. 앙드레 말로가 20세기 프랑스 대표 작가 3인 중 하나로 꼽았고, 헨리 밀러 역시 “장 지오노는 프랑스와도 바꿀 수 없는 작가”라며 그의 문학성과 평화주의, 인류애를 칭송했다. 이 책은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주인공의 고독하지만 위대한 삶을 다뤘다.

 

잠시 책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파고는 그 안에 도토리를 심고 다시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누구의 땅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3년 전부터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왔다. 그렇게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런 행위의 결과로 황폐했던 마을에는 희망이 다시 돌아왔다. 귀향한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해서 마을을 일구고, 채소밭에는 온갖 꽃과 채소들이 싹을 틔웠다. 나지막한 산기슭에는 보리와 호밀이 자랐다. 8년 뒤에는 이 고장 전체가 건강과 번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인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이처럼 다 자란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는 사랑스런 소년 친구가 있었다. 소년은 나무를 좋아했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자랐다. 어느 날 소년이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기의 과일을 팔아 쓰라고 했다. 소년은 그렇게 했다, 몇 해 후 소년은 다시 나무에게 집이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제 몸의 가지를 잘라 재목으로 쓰라고 했다. 소년은 집을 짓기 위해 가지를 베어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청년이 되어 다시 찾아온 소년은 먼 곳으로 떠날 배 한 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이번에는 제 몸통을 베어 만들라고 했다. 소년이 배를 타고 멀리 떠났다가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온 그를 위해 나무는 베어진 나무 밑동에 앉아서 피곤한 몸을 쉬게 해줬다. 그리고 잊지 않고 찾아온 그 소년을 맞이한 나무는 더없이 행복했다.”

 

교육하는 마음도 나무를 심는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무한 사랑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어디 쉬운 일일까. 하지만 사랑으로 심어 다 자란 나무는 만인에게 차별 없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듯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사랑이란 물을 준 교육은 그 결과가 어떨까? 물기가 스며들어 콩나물이 자라듯이 아이들은 교사의 사랑을 머금고 성장한다. 그 효과는 세상의 셈법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찍이 법정 스님도 “나무를 심고 보살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학교에서 사랑을 품고 자란 아이들이 스승을 능가하는 청출어람을 보여줄 때 그 가슴의 따뜻함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을 하기를 원한다. 학교의 교사는 무엇으로 가슴이 따뜻해질까? 요즘 교육을 말하면서 ‘학생은 많으나 진정한 제자는 없고, 교사는 많으나 진정한 스승은 없다’고 한다. 이는 분명 우리 교육의 비극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다시 순환하는 선순환의 원리 말이다. 나무를 심는 마음처럼 학생에게 아낌없이 주는 교사의 사랑은 효과가 크다. 그것은 학생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고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처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의미 있는 삶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이루어졌다. 교사는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랑의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지쳐있는 학생들에겐 ‘사랑의 배터리’가 되어 충전을 시켜주는 것도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제2의 젤제아르가 되어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교육의 위기, 사제지간의 소원(疏遠)함을 말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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