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국제공항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쳐왔다. 힘껏 심호흡을 했다. 공항을 나올 때마다 얼굴을 덮쳐오는 낯선 이국의 공기만큼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까. 카레와 치즈, 요구르트, 아랍인들의 땀 냄새와 모래 냄새 그리고 온갖 낯선 식물들과 곤충,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는 비로소 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준다.
요르단은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쪽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접하고 있다. 국토의 80%가 사막과 불모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많은 유적과 교황청에서 지정한 5개의 성지 덕분에 요르단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항에서 나와 페트라로 가는 길, 버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황량했다. 사막에는 드문드문 커다란 전신주가 서 있었고, 길은 무심한 듯 사막을 가로지르며 나 있었다. 가끔 지평선 가까이에서 모래바람이 일기도 했다. 문득 몇 년 전 이집트로 갈 때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카이로로 향하는 기내에서 본 영화가 <트랜스포머>였다. 그 영화에서 피라미드는 거대한 로봇들에게 박살이 나고 있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육중한 돌덩이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카이로에 도착해 피라미드 앞에 서자, 왜 감독이 그 장면을 피라미드에서 찍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신비한 외계문명과 거대한 로봇을 설명하기에 피라미드만 한 곳이 없었을 듯싶었다.
페트라 역시 <트랜스포머>에 등장한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는데, 이 신전이 바로 고대도시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알카즈네(Al Khazneh)’다. 알카즈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다.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예수의 성배를 찾아다니는 시퀀스에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가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달리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만나는 장밋빛 신전이 바로 알카즈네다.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 건축물을, 그곳이 페트라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정교한 세트 정도로 여겼다.
페트라 앞에 서자 왜 스티븐 스필버그가 성배를 숨겨놓은 장소로 이곳을 설정했는지, 외계인이 그들의 운명을 건 열쇠를 이곳에 숨겨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직접 눈으로 봐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투성이이다.
페트라는 ‘바위’라는 뜻을 지닌 고대도시다. 2,000여 년 전 세워졌다.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인(Nabataeans)이 도시를 세운 주인공이다. 도시는 번성했다. 예멘·메카·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나바테아인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장악하면서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했고,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도시가 발전하자 로마제국이 페트라를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106년 로마군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이후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었다. 이때 동로마는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웠던 시리아의 팔미라로 무역의 중심지를 옮겼고,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이동했다. 페트라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쇠락해가던 페트라에 결정타를 날린 건 지진이었다. 6~7세기에 발생한 대지진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전설 속 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도중 요르단 남서부 지방을 지나고 있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 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에게서 와디 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와디 무사. ‘모세의 건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4세기, 6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왕의 대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 페트라를 통과한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지팡이를 바위로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알카즈네까지는 ‘시크(Siq)’라고 불리는 협곡을 따라 약 3km를 가야 한다.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다 보면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드러난다. 바로 알카즈네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카즈네는 6개의 원형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건물로 너비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한다. 1·2층 정면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페트라에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들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들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들이다.
알카즈네를 지나 협곡을 따라 가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가 나타난다. 절벽을 파내서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 원형극장은 무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당시 종교의식과 다양한 회의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형극장을 지나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온다. 데이르 수도원인데 입구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신전·수도원·목욕탕 등이 남아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 페트라는 지금도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지는 700여 곳.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99%가 넘는다고 한다.
와디 럼, 붉은 사막을 달리다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영국 군인이던 그는 연고도 없는 아랍 지역의 독립을 위해 1917년 와디 럼(Wadi Rum)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랍의 적인 터키군의 요새가 있는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아카바(Aquaba)를 함락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의 영웅담을 다룬 영화다. 와디 럼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다. 면적이 720㎢ 달하는 광활한 사막이다. 언뜻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도 해발 1,000m인 고지대다. 달리다 보면 수백 미터씩 솟은 바위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와디 럼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달릴 뿐이다. 울퉁불퉁한 사막을 시속 80km로 달린다. 얼굴에는 모래가 날아와 박힌다. 바위산을 만나면 바위산을 감상하며 잠시 쉰다. 때로는 바위산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해 질 무렵이면 사막은 황금빛, 아니 붉은색으로 물들고 베두인들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모래사막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마침내 지평선에 닿고 어느 순간 사라질 때쯤이면 텐트로 돌아간다.
밤의 사막.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쌀알을 뿌려놓은 것 같다. 별빛 아래에서 베두인족이 만들어주는 아라빅커피를 마시며 화덕에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리고는 밤새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간다. 그렇게 하룻밤 있어 보았다. 해가 뜨는 아침 무렵, 사막이 점점 장밋빛으로 변해갈 때, 로렌스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로렌스는 와디 럼이 “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다. 그가 와디 럼을 가로질렀던 까닭은 아랍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 신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