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 대를 이어오고 있는 집안은 스위스의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소쉬르 가문을 들 수 있다. 소쉬르 가문은 5대째 학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학문의 명가이다. 소쉬르의 조부 니콜라스 데오도르는 즈네브 대학의 지리학과 광물학 교수를 지냈고, 부친 앙리는 지질학자로 미국과 멕시코를 탐험하기도 했다. 소쉬르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산 윤선도 가문이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가풍을 대대로 이어왔다. 양반가문이지만 공재 윤두서(1668~1715)에서 시작해 그 아들 윤덕희 - 윤용에 이르는 3대 화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양반들은 책을 읽고 벼슬을 해야 성공하는 시대에 이와 거리가 먼 그림에 몰두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아들이 3대에 걸쳐 화가가 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진화론 처음 제기한 다윈의 祖父 할아버지가 연구했던 학문을 손자가 물려받아 연구하고 또 그 손자의 후손들이 그 연구를 완성했다면 그 가문은 세상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 집안이 인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규명한 ‘진화론’을 내놓은 찰스 다윈(1809~1882)의 가문이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진화론에 대해 처음으로
Q1. 해외유학으로 인한 유학휴직과 재외국민교육기관의 고용으로 인한 고용휴직의 사유가 중복될 때 어느 휴직을 적용해야 하는지요? A1. 「교육공무원법」 제44조 제1항 제5호 내지 제10호에 의한 휴직은 본인의 휴직신청에 의해 임용권자가 당해 기관의 업무형편 및 인력사정 등을 고려하여 휴직 여부를 결정하는 사항이므로 동 사안은 휴직하고자 하는 자가 먼저 휴직사유를 결정하여 신청하면 해당 호의 휴직사유에 대해 인사권자가 그 타당성 여부 등을 검토해 결정하게 됩니다. A2. 현재 해외유학을 사유로 유학휴직 중인데 휴직기간 만료 시 복직 후 곧바로 국제기구 또는 외국기관에 임시로 고용될 경우 고용휴직이 가능한지요? Q2. 해외유학휴직은 타 휴직과 달리 휴직 기간 중에도 보수의 50%를 지급하고 경력평정에서도 5할을 인정하는 등 공무원의 능력향상과 행정발전을 도모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국가가 직접 훈련계획을 수립·시행하는 특별훈련파견에 준하여 특별 관리하도록 한 「해외연수를위한휴직처리지침」에 따라 휴직기간 만료 후에는 즉시 직무에 복귀해 관련 훈련분야에서 근무해야 합니다. 해외유학 휴직 기간 만료 후 다시 국제기구나 외국기관에 고용된 것을 사유로 휴직하는 것은
교직에서의 방학은 타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어쨌든 가르치는 본업에서 잠시 놓여나는 시간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방학은 무수히 의욕적인 계획으로부터 시작하여, 안타까운 미수(未遂)의 허망함으로 끝나기 일쑤지만, 그래도 속아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번 방학도 이런저런 계획에 마음들을 설레곤 한다. 그러나 나를 질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연마와 단련을 위해서는 방학이 유용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고생 그 자체가 문제이라기보다는 ‘진정성’이 문제가 될 뿐이다. 진정성이 살아나는 것이라면 삼복염천의 고생이라도 달고 흔쾌할 수 있다. 대학 1학년 시절, 여름방학과 더불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며 따랐던 기숙사 선배들은 방학 동안에 읽을 책을 미리 정하여 독한 마음으로 반드시 독파하도록 하라고 했다. 막연하기는 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턱없는 지적 허영으로 무조건 고답한 책들을 잔뜩 챙겨 넣고 싶었다. 무언가 목마름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소해 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했다. 학문에 대한 낭만적 동경과 지적 소망을 품고 들어 온 대학
“길에 가는 강아지나 나만 휴대폰 없지, 세상 사람들 다 있는 것 같더라.” “그럼, 엄마도 휴대폰 사 드릴까요?” “그렇다는 말이지. 집에만 있는 나한테 무슨 필요가 있다고.” 언젠가 필자가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다. 엄마의 말씀이 조금은 과장된 면도 있고, 표현이 익살스럽지만 그다지 틀린 말씀도 아니다. 엄마와 달리 가입비가 아까워 휴대전화를 극구 마다하셨던 아버지조차도 1년 전 휴대전화를 원하셨던 것 보면 휴대전화가 사람을 끄는 힘은 상당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필수품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휴대전화. 어디를 가든 사람들 손에는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하루에 한 번도 울리지 않을 때가 많지만 장소를 이동할 때면 필자 역시 휴대전화를 챙기게 된다. 어느 때는 너무 휴대전화에 구속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휴대전화 없이도 살았고, 지금도 간혹 약속 시간 맞추기 힘들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 말고는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 다 갖고 있는데 혼자만 없는 것도 그렇고 해서 지금껏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있다. 15년 전쯤 만해도 휴대전화는 값이 비싸서 주변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걸로
안개 속에 숨은 신비한 고층습원 대암산은 해발 1304m의 높은 산으로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큰 바위산인 대암산은 산자락에서부터 정상까지 바위들로 이루어진 험한 산이다. 큰 바위가 품었던 지하수가 솟아나 넘쳐흘러 정상의 남서쪽 사면인 1180m의 구릉지대에 만든 것이 용늪이다. 높은 두 봉우리 사이에 여인의 가슴처럼 약 9200평 크기의 넓은 풀밭이 있는데, 이곳이 고층습원인 용늪이다. 용늪을 적시고 내린 산성의 젖줄은 인북천을 이룬 다음 소양강에 몸을 합친다. 일 년의 절반이 안개에 쌓인 용늪은 그 자체가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은 연중 온도차가 크고 안개일수가 많아 습도가 높고 표층수의 증발량이 낮아 자연스럽게 늪이 형성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예전부터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신령스런 곳으로 취급을 받아온 이곳은 가뭄이 들면 ‘용연기우제’를 하늘에 드렸다. 양구 지방 민요인 돌산령 타령에 따르면 용늪은 이곳 사람들의 삶의 장소였다. ‘문바위 용늪에 얼레지 돋거든 우리 나 삼동서 나물 가세….’ 대암산을 문바위로 표현하고, 용늪 주변에는 얼레지 같은 산나물이 많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대암산에는 많은 산나물들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