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이 여근을 만났을 때 선돌은 대체적으로 청동기시대 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선돌이 청동기 유물로 대표적인 고인돌과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경북 영주로 떠나 봅시다. 시내 휴천동에서 고인돌 2기와 선돌 1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돌의 높이는 약 1.5m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고인돌에 사용된 덮개돌 두 점이 제 자리를 잃은 채 바닥에 엎어져 있습니다. 덮개돌엔 성혈(性穴)이 몇 점 보입니다. 성혈은 여근을 상징하며 선돌은 남근을 상징하니 음양의 조화가 완벽합니다. 이렇듯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지석묘가 선돌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는데, 순흥 땅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선돌은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마을 입구 소나무 숲에 위치해 있는데 오른쪽에 서 있는 선돌 앞에도 덮개돌이 보이고 그 표면에 역시 성혈이 보입니다. 마침 인근에 여근동(女根洞)이라는 마을이 있어 그 여근에 대해 남근을 상징하는 선돌을 세운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근과 관련해서 선돌이 세워진 것으로 해석하는 이러한 사례로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선돌을 들 수 있습니다. 선돌 관리를 맡고
이승원 | 인천대 강사 기차가 달려온다! ‘속도’가 우리의 일상을 삼켜버렸다. 단 몇 초 만에 부팅되지 않는 컴퓨터는 고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제 시속 300㎞로 질주하는 고속철도의 속도도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속도는 속도를 낳을 뿐만 아니라 속도는 인간을 훈육한다. 좀 더 편리하고 윤택한 세상을 꿈꿨던 인간은 새로운 사이보그의 출현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대뇌와 신경세포는 마치 CPU와 RAM의 기능으로 탈바꿈하여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지, 기계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인지하게 만드는지 모르는 모호한 경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계와 인간은 모두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 왔다. ‘IT 산업’이 각광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구닥다리 기계가 판을 치는 시대였을지는 몰라도, 백여 년 전 세계는 새로운 기계의 출현으로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기계란 바로 ‘증기기관’이었다. 5대양 6대주를 횡단했던 유길준은 1889년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은 ‘증기의 세계다!’ 산업혁명의 적자인 증기기관이야말로 신세계를 이끌어가고 구성해가는 최첨단 엔진이었다. 증기기관의 운동이 가열 차
최효찬 | 저자, 비교문학 박사 조선시대 최초의 사립학교 건립 진 리프먼 블루먼은 인재를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들고 있다.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돕는 데 보람을 찾는다. 여기에는 협력형, 헌신형 그리고 성원형 스타일이 있다. 협력형 스타일의 사람은 팀을 구성해 협력하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헌신형 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데서 진정한 만족을 얻는다. 성원형 스타일은 다른 사람들의 성취감을 북돋워 주거나 스승처럼 조언하고 자신이 동일시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업적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즉,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엄마형 리더십'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다름 아닌 가문의 기획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덕목이다. 명문가의 초석을 닦고 자녀교육에 앞장선 가문기획자들은 통상 가부장적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여성적인 엄마형 리더십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예컨대,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만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의 글공부와 어려움을 힘닿는 대로 보살폈다.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지만 퇴계는 먼저 일가의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오랜 방랑 생활 끝에 황제로 등극 몽골은 거란과 함께 동호계(東胡系)로 분류되어 중원의 한족과 반도의 사대주의자에게는 상종치 못할 오랑캐 나라였다. 그러나 원의 지배를 받는 동안 한족들은 민족차별에 불만을 느끼고 지하에서 골수중화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성리학을 완성시키는 한편, 정사 〈삼국지〉를 변조하여 유비의 촉한을 정통중화로 조작하는 공정을 진행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원나라의 통치가 느슨해지자 각지에서 들고일어났고 당시 중국 남방지역에서 백련교(白蓮敎)의 홍건군이 발흥하여 반원항쟁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였다. 당시 원나라는 몽골황실의 권력다툼이 치열하였다. 몽골제국의 제4대 황제인 몽케칸의 아우 쿠빌라이가 1279년 원나라를 건국하였으나 그가 황제로 즉위하자 막내 동생인 아리쿠부카와 오고타이 가문의 카이즈가 반란을 일으켰다. 쿠빌라이의 '유목과 농경의 조화를 통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에 정면 도전한 것인데, 결국 이러한 싸움은 원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어 제국의 단명을 재촉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일찍부터 제위 세습제가 정착된 한족과는 달리, 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제위를 꿈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