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여름에는 머니 머니 해도 물놀이가 최고!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가면 온천과 수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워터파크가 있다. 이름하여 효명온천스파이스. 이곳 온천은 예로부터 수질이 좋기로 소문난 곳. 게다가 즐거운 물놀이를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더군다나 이곳에 가면 일명 친친어라 불리는 닥터피쉬가 있단다. 이 닥터피쉬가 있는 탕에 발을 담그면 발바닥을 간질이는 재마가 아주 그만! 평일인데도 물놀이장은 사람들로 한창이다. 물미끄럼도 타고 물폭포도 맞고 유치원생부터 어른까지 마음껏 놀 수 있는 즐거운 물놀이장의 풍경을 여러 컷으로 담아보았다.
- 소박하고 순진한 민초들의 생활터 “나에게 정병 4 만 명만 있다면 오랑캐를 무찌르고 압록강에서 칼을 씻고 올 터인데......”라며 울분을 토하던 한 장수가 있었다. 바로 조선 시대에 충절과 용맹으로 이름을 날렸던 임경업 장군이다. 정묘호란 당시 그는 낙안군수였다. 피울음을 삼키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던 임장군은 낙안으로 돌아와서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임장군은 1626년 5월에서 1628년 3월까지 바로 낙안군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전라남도 순천군 낙안면 동내리에 있는 낙안읍성에는 이렇듯 임경업 장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겉으로 보면 평화롭고 토속미가 물씬 풍기지만 그곳에 흐르는 역사는 결코 범상치 않은 것이다. 순천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30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 조선 시대 민속마을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는 현재 108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마을을 표주박처럼 빙 둘러싸고 있는 석성은 웅장하다기보다는 아담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모습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벙긋 웃고 있는 나무 장승들을 만날 수 있고, 그 장승들에게 반가운 수인사를 하고나면 바로 석성의 입
-세계 최대의 가마솥, 괴산군민가마솥 충청북도 괴산군은 ‘느티나무가 많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물 좋고 공기 좋은 충청도의 명당이다. 괴산군에는 그 이름대로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명산이 많기로 유명한데, 특히 괴산군 고추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갖고 있다. 흔히 괴산하면 고추를 떠올릴 정도이다. 그런데 이 괴산군에 요 근래에 만들어진 명물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괴산군민 가마솥이다. 가마솥이라 하면 선조들이 밥을 짓던 물건인데, 괴산군 가마솥은 자그마치 4만명 분의 밥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는 초대형이라고 한다. 괴산군민의 인구가 약 4만이니 이 가마솥 하나로 괴산군민 모두를 먹일 수 있는 밥을 지을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 규모에 그저 입이 떡 벌어진다. 가슴둘레 17.85m, 높이 2.2m, 몸무게 43.5톤의 초대형 가마솥은 지난 2005년 5월에 완성되었다. 주조과정에서 6개월에 걸쳐 만든 거푸집이 쇳물을 부으면서 터져나가 제작이 지연되는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특히 완성된 가마솥을 옮기는데 15톤짜리 지게차 2대와 트레일러 2대가 동원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가마솥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군민이 ‘한솥밥을
- 세계 최초의 정크아트 갤러리를 가다 기이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철덩어리로 어떻게 예술작품을 다 만들 발상을 했을까? 빈 LPG통, 내다 버린 숟가락, 망가진 자전거 바퀴, 경운기 부속품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되어 탄생된 금속조각품들. 가섭산 중턱의 고즈넉한 언덕 위 숲속에 자리 잡은 금속 동물들. 멀리서 보니 영락없는 생물이다. 가까이서 보니 온갖 잡동사니들의 결합체다. 정크아트라고 한다. 정크는 우리말로 쓰레기, 폐품, 버린 것 등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물건들이다. 이걸 수집해서 깍고, 조이고, 다듬어서 환경친화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 발상이 독특하고, 그 노력이 장하고, 그 열성이 고맙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소리의 가섭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크아트 갤러리. 이곳에 가면 아래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오대호 관장. 그는 우리나라 정크아트의 창시자로서 사비를 들여 가섭산 중턱에 정크아트 갤러리란 희한한 볼거리를 만들어 냈다. 원래 기계가 전공이라는 그.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가 고철을 활용한 아트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그는 전국 각지에 정크아트를 선보이고 있는 금속조각가이자
- 천년의 세월과 함께 한 민초의 다리 다리, 그것은 그리움이다. 또한 만남과 별리의 앙상블이다. 다리 위에선 희미한 옛 사랑의 추억이 묻어나고, 다리 위에선 희망과 애증이 되새김질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리를 찾아 넓은 바다나 강을 쳐다보며 그리움에 목말라한다. 강과 바다를 건너기 위한 문명의 이기로 시작된 다리이지만, 그 다리에 인간의 감정이 실려서 이제는 하나의 시가 되고 하나의 감동이 되었다. 우리에게 ‘올드 랭 사인’이란 곡과 함께 찾아 온 영화 ‘애수(원제 워털루 브리지)’를 기억하는가. 전쟁의 와중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두 연인의 애틋함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 순수의 시대를 기억하는가.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이 이루어진 곳은 바로 템즈강을 흐르던 다리 위였다. 또한 영화 ‘퐁네프의 다리’를 기억하는가. 다리 위와 밑의 인간 군상을 교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연인 간의 애증을 치밀하게 표현한 퐁네프의 다리. 다리 위에서 불꽃쇼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희열에 떠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그 얼마나 이중적이었던가. 무려 천년의 세월을 버틴 다리라고 한다. 현대 공학이 총 집결된 현수교나 사장교가 아닌돌 하나만으로 만든 다리가 무려 천 년 동안 같은 장소
- 2008년, 해운대의 모래밭을 찾다 모래로 축제를 연다? 기발하면서도 신선한 발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재료 중의 하나인 모래를 이용하여 축제를 연다는 것은 깔밋하면서도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래조각품 전시회, 모래 속 진주 찾기, 모래밭에서 오리발 신고 달리기, 그리고 강호동도 울고 갈 모래밭 천하장사 선발 대회까지. 지난 2005년 시작된 해운대의 모래 축제가 벌써 4회를 맞았다. 이 행사의 기원은 APEC 정상회의 D-150일 기념행사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념행사로 열렸던 것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친환경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축제는 모래를 이용한 친근감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 찬란한 호평 덕분에 이제는 해운대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모래 그림 그리기나 모래시계 만들기 같은 행사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체험코너였다. 또 모래 번지 점프나 모래밭에 설치된 풍선 놀이 시설도 어린이와 부모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모래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모래밭에 설치된 모래 조각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해운대에서 수년 째 모래 조각품을 만들고 있는 어느 모래 조각가의 작품 사이로 아마추어 조
- 칠순 할머니의 머리 위에 얹힌 빵을 받으며 딸랑~. 내 사무실에 걸린 작은 종에서 청아한 음색이 흘러나온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원고 작성에 여념이 없던 나의 눈은 현관으로 자연스레 옮아간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바구니를 머리에 인 어떤 할머니.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옥수수 빵 하나 사라며 바구니를 내려놓으려고 하신다. 아침을 늦게 먹은 터라 식욕이 날리 없는 나는 순간 손사래를 저었지만 오늘이 사월 초파일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손사래를 급히 거두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에 찾아온 초로의 할머니라. 할머니는 초라한 옷차림에 힘겨운 미소를 짓고 계셨다. 이런 날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할머니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가장 큰 덕목은 자비가 아니던가. 평상시 잡상인들이 자주 찾아와서 귀찮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난 습관적으로 손사래를 쳤던 것이다. 옥수수빵이라. 그래 한 번 사먹어 보자. 난 할머니에게 사겠다고 했고,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이천 원이란다. 그래서 하나 달라고 했다. “내가 집에서 옥수수를 갈아서 우유도 넣고 해서 맛있게 만들었다우.” “아, 그래요. 아직 따뜻하네요.” “따뜻하지우. 맛도 있
- 자동차 전시장에서 만난 여러 모습들 2008년 부산국제모터쇼가 벡스코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국내외 유수의 자동차회사들과 세계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저마다의 대표작들을 내놓고 손님들을 맞기에 바빴다. 현대, 기아, GM대우, 르노삼성, 쌍용 등 국내 기업과 푸조, 혼다, 아우디, 폭스바겐 등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부산에 총출동한 것이다. 어떤 이는 자동차를 보고 꿈과 로망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환상이라고 이야기했다. 현대 문명의 총아이자 산업 사회의 병폐인 자동차. 그 자동차는 때론 문화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흉기로, 폭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자동차는 우리의 생활이 되었다는 것이다. 벡스코1,2,3 전시장에 널따랗게 자리잡은 자동차 전시장. 야외 전시장에서는 미니카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부대 행사장에선 모형자동차와 미니카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무선조종자동차 경주대회와 각종 수출상담회나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동차 전시장에 등장한 레이싱 걸들은 약간의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쩔 때는 모델 전시장인지 자동차 전시장인지 헷갈릴 지경이니 말이다. 모델들의 옷차림이 그렇게 야할
-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영도 나룻배의 풍경 통통통. 오늘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은 통통배 한 척이 영도 대평동과 자갈치 사이를 오간다. 통통배가 오고 갈 때마다 낡고 허름한 도선장에는 평범한 영도 사람들이 모여든다. 자갈치 시장에서 해산물을 산 주부도 있고, 윤기 나는 머리를 휘날리는 여고생도 있다. 어떤 노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지긋한 눈길로 바다를 쳐다본다. 저쪽 뱃머리에선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주변의 풍경을 찍는다. 통통배위로 날아다니는 한 떼의 갈매기들. 갈매기들은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힘찬 날개 짓을 하면서 배 주변을 돌아다닌다. 저 멀리 보이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의 평화로운 모습. 이 배는 100년 전에도 영도와 남포동을 오가면서 수많은 이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이 흩뿌리고 간 사연과 함께. 영도와 육지를 잇는 최초의 뱃길은 1890년 한 척의 나룻배로 시작되었다. 영도에 사람들이 점차 모이면서 육지와의 뱃길이 필요해졌는데, 영도 사람들이 돈을 추렴하여 오늘의 봉래동 갯가에서 현재 롯데월드를 신축하는 옛 부산시청 사이에 나룻배을 통한 물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영도에 점차 인구가 늘고 나룻배도 4척으로 늘어
-선바위에 서린 처녀와 스님의 전설 사람들은 울산이라고 하면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울산 시내의 태화강이 많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태화강은 지난 1990년대만 해도 물고기가 거의 살지 못하던 죽음의 강이었다. 그러나 지금 태화강은 연어와 숭어, 은어가 은린을 번쩍이며 돌아다닐 정도로 완전히 되살아났다. 특히 태화강변에 위치한 십리 대밭은 그 규모의 장쾌함을 자랑하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준다. 이 십리대밭을 따라 강 상류로 천천히 올라가보자. 언양 방면 국도 24호선을 따라 올라가니 푸른 물색이 어느새 옥빛으로 변한 곳을 만나게 된다. 가만 보니 십리 대밭이 슬그머니 마무리를 짓는 곳이다. 그리고 눈앞에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연초록 물빛 속에 아름드리 자태를 연출하며 고고히 잠겨 있다. 이름 하여 선바위라고 하는, 높이 33m에 둘레 46m를 자랑하는 기암괴석이 강물 한 가운데에 유유히 떠있다. 덩달아 선바위 주변의 층층절벽들에서도 기이함과 신령스러움이 묻어난다. 울산 12경의 하나인 선바위와 십리대밭은 도심의 산소창고이자 철새도래지로써 울산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 중의 하나이다. 또한 선바위 주변의 에메랄드빛
- 생선대가리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리며 오랜 만에 아이들과 함께 먹는 저녁밥. 늘 회식이다 술자리다 해서 2, 3주에 한 번 아이들과 저녁을 먹을까 말까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였다. 그래서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먹는 저녁밥이 그저 향긋하기만 하다. 이제 겨우 유치원생인 아들과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아이는 아빠와 먹는 저녁밥이 신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는 식구가 많아 온 가족이 모여서 먹는 저녁이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요즘엔 각 가정마다 고작 서너 명인지라 소담하면서도 오순도순한 분위기 속에 다들 저녁을 먹을 것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애 엄마는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있고, 나와 아이들은 숟가락을 놀리며 저녁을 먹는다. 오늘의 주 메뉴는 조기 구이이다. 나는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열심히 생선살을 발라준다. 백설기처럼 하얀 생선살은 부서질 듯 위태하게 내 젓가락에서 아이들의 숟가락으로 이동한다. 아이들은 유독 하얀 생선살을 좋아한다. 간간히 나도 내 몫의 생선살을 먹지만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생선살을 발라주다 보면 어느새 접시에 남겨진 것은 해체된 생선의 뼈다귀와 대가리 뿐이다. 그럼 그 생선대가리는 오롯이 내 차지가 되고,
- 부산의 꿈과 동남권의 미래를 위한 축제 제41주년 과학의 날을 맞아 부산광역시와 교육청, 국제신문이 주최한 제17회 과학축전은 한마디로 신나는 과학놀이였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와 부산광역시과학교육원과 벡스코가 주관한 이번 축전은 부산경남에서 찾아온 어린이들과 부모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번듯한 과학관이 별로 없는 부산에서 대규모 과학축전이 열린 것은 부산의 어린이들에겐 대단한 행복이었다. 지난 토요일인 4월 19일과 20일 양일간 벡스코에서 개최된 이번 축전의 주제는 ‘부산의 꿈, 동남권의 미래, 과학기술에 있습니다.’였다. 주제 한 번 잘 정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번 축전의 컨셉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의 대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마련한 체험코너는 부산 어린이들에게 과학이 학문이 아니라 놀이임을, 과학이 실생활과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입구의 혼잡함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각종 체험코너에 어린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 서 있다. 열성적인 몇 몇 부모들은 손에 두, 세 개의 체험 작품을 들고 이리저리 분주히 오가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한 개라도 더 많이 아이들에게 체험시켜주고자 하는 욕구가 뚝뚝 떨어
- 고당봉의 이면에서 만난 기암들의 함성 화창한 토요일 오전. 선배와 함께 가기로 한 산행길이 즐겁다. 그것도 부산의 진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금정산을 오르는 산행이기에 더욱 즐겁다. 부산에 많은 산이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금정산은 부산의 아버지 같은 산이다. 그 금정산을 오른다기에 발걸음도 가볍게 지하철을 탔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선배. 간단한 수인사를 나누고 바로 산행 길로 직행한다. 오늘의 등반코스는 고당봉의 뒷면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보통 금정산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범어사를 지나 금정산 북문 광장을 통해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코스가 가장 무난하며 사람들이 접근하기에도 가장 좋다. 그러나 금곡동 호포역에서 출발하여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등반코스는 사람들이 잘 타지 않는 코스이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도 한적하다. 토요일인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고요한 산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호포역에서 올라가는 등반코스는 한적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는 범어사를 통해 올라가는 등반코스에선 맛볼 수 없는 기묘함이 서려 있다. 바로 정상 근처에서 만나게 되는 각종 기암괴석들이 그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이 기암괴석들은 일명 ‘하
부산에서 송정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한 10분쯤 가다보면 기장군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멸치회로 유명한 대변항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수산물로 유명한 기장 시장이 나온다. 여기서 조금만 더 위로 가면 오른 쪽으로 빠지는 샛길이 하나 있다. 한적한 이 샛길을 따라 자동차로 약 3분 쯤 가면 작은 어촌이 하나 나온다. 조용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어촌이 바로 죽성리 라는 곳으로써, 전형적인 어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아담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죽성 초등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의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내음과 뒷산에서 불어오는 풀 향이 결합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신선하면서도 깊은 맛을 지닌 향이 외로운 나그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뒷산 정상에 있는 바윗돌 같은 것이 눈에 걸린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을 쓸고 있는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대뜸 ‘왜놈들 성’이라고 하신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뒷산 정상을 자세히 보니 성곽의 형태가 어슴프레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도 임진왜란의 상흔이 고스란히
- 청관거리에 흐르는 중국의 향기를 찾아 그 거리에는 붉은 색감이 넘쳐 흐른다. 하늘을 보아도 붉은 색이요, 땅을 보아도 붉은 색이다. 거리의 상점들에서도 붉은 색감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붉은 색감을 보면서 감동적인 영화 한편을 떠올린다. 지난 1989년 장예모가 메가폰을 잡고 공리와 강문이 열정적인 연기를 펼쳤던 ‘붉은 수수밭’이 그것이다. 당신들이 진정 사내라면 이 술을 먹고 동족의 원수를 갚아달라며 절규하던 주인공 추알의 얼굴에는 수수밭에서 피어오른 붉은 빛깔이 잔잔하게 스며 있었다. 부산역 맞은 편 남쪽에 자리 잡은 상해의 거리. 일명 청관거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부산의 차이나타운이자 중국인의 거리이다. 이 거리의 큰 길 중앙로에는 지난 1999년 부산시와 상해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으로 세운 ‘상해의 문’이 역시 붉은 색감을 온 몸에 두른 채 지나가는 이방인들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그 문에 드리운 황금빛 장식물이 국화꽃 색깔을 지상에 내린다. 120여 년 전 이곳을 점유했던 청국인들의 영화를 그리워하면서. 당시 부산역 앞은 백사청송이 해풍 속에서 은근하게 나부끼던 한적한 해안가였다. 그리고 그 해안가에는 후손을 알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