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안의 빼어난 해안 명소, 주선해수욕장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고고성이 울렸다. 꿈과 낭만의 계절이자 열정의 계절인 7월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몰려갈 것이다. 젊은이들은 사랑과 낭만을 찾아, 중년층들은 자녀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위해, 그리고 노년층들은 말년의 한가로움을 위해 바다를 찾을 것이다. 역시 여름의 시작은 바다, 그것도 모래사장이 낭창낭창한 허리를 자랑하는 해수욕장에서 테이프를 끊기 마련이다. 이럴 땐 우리나라의 삼면이 바다인 게 너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천혜의 관광자원을 누구나 공짜로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여름을 맞이하여 과감하게 던질 말이 하나 있다. 이 말을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를 빌려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해수욕장에 모래사장이 있다는 편견을 버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다수의 해수욕장에는 모래사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모래사장이 아닌 둥글둥글한 자갈이 깔린 해수욕장도 있다는 말이다. 이름 하여 '몽돌해수욕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름만으로도 신기함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몽돌해수욕장은 전국의 수많은 해수욕장 중에서도 그 희소성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곳이다. 그 중
- 올바른 전원주택 문화를 위해서 몇 년 전이었다. 강원도 양양의 빈지골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양양군청에서 발행된 관광안내서에는 빈지골에 굴피집이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오지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막연한 동경을 안고 빈지골로 향하게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빈지골로 가게 되었는데, 빈지골 초입에 들어선 순간 심한 허탈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도시민들의 여흥을 위한 펜션타운이 무려 4군데나 있었다. 오지 중의 오지라는 곳을 어찌 알고 이리도 재빠르게 펜션을 지어놨는지. 펜션들을 보면서 참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용객들이 쏟아내는 각종 오수들이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펜션 앞에 흐르는 작은 개울에 그 오수들이 무작정 흘러갈게 뻔했다. 펜션 주인들은 규정대로 정화조를 설치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가만 보니 그 개울에서 도시민들이 수영복을 입고 즐거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정화조에서 나온 수질의 급수를 알고나 있는지 궁금했다. 또 몇 년 전에는 대학 동기생들이 양산 어느 산에 지어놓았다는 전원주택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약 10여 채의 집이 있었는데, 거의가 콘크
- 동해의 아름다운 비경, 울진 성류굴에서 동굴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이다. 옻빛보다 더 어두운 색감이 존재하며 끝도 모를 심연은 막연한 공포와 불안을 일으킨다. 어둡고 긴 동굴 속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갑자기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지하의 신 하데스가 검은 손을 뻗쳐 올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가면 만장굴이 유명하다. 만장굴은 전형적인 용암동굴로써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동굴이다. 삼척에 가면 태백산 중턱에 자리 잡은 환선굴이 유명하다. 그리고 울진에 가면 석회암 동굴로 유명한 ‘성류굴’이 수 백 년 된 측백나무 군락에 둘러싸인 채 왕피천 자락에 곱다시 앉아 있다. 천연 기념물 제55호인 ‘성류굴’은 성스러운 존재가 머물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명 ‘선류굴’이라고도 한다. 인류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 동굴. 기실 동굴의 상징은 에로틱하다. 바위 틈새에 난 구멍이라는 것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여성의 성기가 성적인 기능과 더불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역할을 하듯이 동굴은 인류에게 생명을 안겨 준 고귀한 존재이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곡은 그의 관동유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암벽 밑 긴 하천
- 한 광기어린 수학자에 대한 농밀한 해석 수인의 딜레마 : 가령 체포된 공범 A, B에게 경찰이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1년, 한 사람이 자백하면 그는 바로 풀어주되 자백을 안 한 자는 10년, 둘 다 자백하면 5년형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자. 공범 A, B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A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자기만 자백하고, B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 이 경우 B는 10년형을 받겠지만 자신은 곧바로 풀려나니까. 하지만 B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라고 자백을 안 하겠는가? 그리하여 A, B 모두 자백하여 둘 다 5년형을 받게 된다. 반면 두 사람이 상대를 믿고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모두 1년형만 받는다. 이게 모두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이나, 불행히도 둘 다 자백하고 5년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상대방의 선택 하에서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내시의 균형이론: 게임이론의 주요 초석. 인간은 개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주위 사람이나 경쟁자가 어떤 행동이나 전략을 선택을 할지 모르는 가운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맞고 있다. 그래서 인간사는 운동 경기와 같은 게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학문
- 동해안의 관동별곡(3) 이화는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 울 제/낙산 동반으로 의상대에 올라 안자 일출을 보리라 밤중만 니러 하니/상운이 집픠난 동 육룡이 바퇴난 동 바다를 떠날 제는 만국이 일위더니/천중에 치뜨니 호발을 혜리로다 아마도 녈구름 근처에 머물세라/시선은 어듸 가고 해태만 남았나니 천지간 장한 기별 자셔히도 할셔이고 - 관동별곡 중 본사 (2)-3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낙산사의 일출을 묘사한 부분으로써 그 탁월한 묘사력이 무척 인상적인 부분이다. 새벽의 어스름을 젖히고 조금씩 올라오는 태양의 몸짓은 농홍한 구슬이 바다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누구라도 넋을 잃지 않을 수 없다. 장엄하면서도 묘려한 그 모습에 누구라도 엄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동해의 일출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표현하는 가장 웅대한 오브제이다. 기실 동해에는 낙산사의 일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활처럼 휘어진 모래사장 위로 떠오르는 해운대의 일출도 있고, 서로 제일 빠른 일출이라고 다투는 간절곶과 호미곶의 일출도 있다. 옥색바다 위로 떠오르는 정동진의 일출도 있고, 겨울연가의 애잔함이 스며있는 추암 해수욕장의
- 동해안의 관동별곡(2)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오오...' 내 마음이 호수처럼 넉넉하고 맑으니, 사랑하는 그대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라고 슬며시 고백하는 마음. 거울처럼 투명한 호숫가에 서서 떠오르는 은색의 달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포옹하는 연인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은 언어의 묘사가 필요 없는 한 폭의 그림이다. 두 연인의 마주잡은 손 사이로 달빛이 미끄러져 들어오면 그들 사이에는 어느새 다섯 개의 달이 묘려하게 떠오른다. 하늘의 달이 호수와 바다, 술 잔 속을 맴돌다가 애인의 눈동자로 곱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석양 무렵 현산의 철쭉꽃을 잇따라 밟으며, 신선이 탄다는 마차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십리나 뻗쳐 있는 잔잔한 호수물이 흰 비단을 다리고 또 다린 것 같구나. 맑고 잔잔한 호수물이 큰 소나무 숲으로 둘러싼 속에 한껏 펼쳐져 있으니, 물결이 잔잔하기도 잔잔하여 물 속 모래알까지도 헤아릴 만하구나. 새 깃으로 뚜껑을 만든 마차인 우개지륜은 신선이나 귀인만이 탈 수 있는 귀한 마차이다. 평범한 마차를 타고 경포호를 구경하는 것이 마치 실례라도 되는 양, 송강은 부러 우개지륜을 들먹여 경포호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군자호 혹은 경호라고
- 초라한 부산 문화계의 마지막 자존심 새벽녘이었다. 시간은 여명이 트기에는 아직도 먼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료와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중구 동광동의 인쇄 골목에 있는 기획출판사로 접근하였다. 기획사가 있는 빌딩의 정문 앞에는 자동차 두 대가 주차하고 있었는데, 그와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2층의 기획사로 올라갔다. 우리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기획사 여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인쇄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옆 건물에 있는 인쇄소에 있으니까 안심해요." "잘 나왔지요?" "그럼, 잘 나왔지. 가만있자, 내가 샘플 좀 보여줄게." 여사장님은 잠시 내실로 들어가더니 깔끔하게 인쇄된 유인물을 가지고 왔다. 노란 갱지에 청타로 찍은 인쇄물은 우선 보기에도 산뜻했다. 먹물을 묻혀가며 등사기로 밀어서 나오던 조잡한 인쇄물과는 그 질이 현저하게 달랐다. 참 좋았다. 역시 돈 들인 보람이 있었다. 이 인쇄물을 내일 교내 행사에 뿌릴 생각을 하니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동료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우린 해냈어! 필자는 이 동광동 인쇄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그 시절의 일이 생겨나 늘 미소가 빙그레 피어오른다. 늘 등사기로
-동해에 흐르는 관동별곡의 흔적을 따라(1) 고성을란 뎌만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서 단서는 완연하되 사선은 어디 가니, 예 사흘 머은 후의 어디 가 머믈고 선유남 영랑호 거긔나 가 잇난가 청간정 만경대 몇 고듸 안 돗던고 -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10수 중에서 위 노래는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의 제 10수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가사는 실제 노래로 연주된 가사(歌詞)와 문학으로 창작된 가사(歌辭)로 구별되는데, 정철의 관동별곡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며 창작 연대는 선조 13년인 1580년이다. 당시 정철의 나이는 45세였다. 관동별곡은 일종의 기행가사이다. 송강이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된 후 임지로 향하던 중에 방문했던 명승지를 뛰어난 문장실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씩 흠향하면 문장의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천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피어난 설중매의 은은한 향이 문장 사이에 배어있다. 그러면 관동별곡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노래한 것일까. 송강 정철이 치밀하면서도 부드러운 언어로 노래한 관동별곡에는 관동팔경의 모습이 담겨있다. 즉 고성의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 미하엘의 한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잠시 문예반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문예반에는 괴짜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박씨 성을 가진, 큼지막한 안경을 낀 선배였다. 그의 말 중에 아직까지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가 영국처럼 강대국이었다면 우리는 송강 정철을 중국과 바꾸지 않겠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저런 말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감동이 천천히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그 선배의 사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서구 중심의 획일적 사고를 벗어나자는 그 선배의 발언은 이후 두고두고 내 인생의 소중한 화두가 되었다. 그 선배의 말에 의해서인지 나는 그 후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서구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제도 공간에 들어가서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었다. 한마디로 셰익스피어 희곡은 그 자체가 서구의 역사이자 문학의 정수였다. 소포클레스로 시작되는 서양 문학의 모든 것을 셰익스피어는 훌륭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