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엄청 비가 많이 왔다. 비다운 비가 왔다. 미세먼지 날리고 폭염 없애고 식수 해결해주고 농심을 살려주고 정말 고맙다. 아직도 부족하니 더 많은 비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시간은 비둘기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비둘기는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고 하는 것 보니 고맙다. 늘 평화를 가져오니 고요한 평강이 넘친다. 비둘기를 떠올리니 비둘기와 올빼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장동사(我將東徙)’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장차 동쪽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라는 뜻이다. 비둘기가 올빼미에게 물었다. "그대는 장차 어디로 가려는가?" 올빼미는 "동쪽으로 옮아가려 한다"고 답했다. 비둘기가 다시 "무슨 까닭인가?"고 묻자 "이 고을 사람 모두가 나의 울음소리를 싫어한다. 그래서 동쪽으로 이사가려는 것이다" 그러자 비둘기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능히 그 울음소리를 바꿀 일이다. 그 울음소리는 바꾸지 않고는, 동쪽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그대의 울음소리 고치지 않으면 듣기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비둘기는 지혜롭다. 올빼미가 나는 동쪽으로 이사갈 것이라고 말하는 올빼미에게 이사 가면 환영을 받을 것
7월 첫날이다. 주말이라 편히 쉴 수 있는 날이다. 비올 준비를 하고 있으니 기다림도 생긴다.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27년 동안이나 사용했던 냉장고를 교체하는 날이다. 고장이 난 것도 아니다. 아직도 성능이 좋다. 더 오래 사용하고 싶지만 폭발 위험, 화재 위험이 있다기에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정든 냉장고를 보내려고 하니 아쉽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많은 유익을 안겨 주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 냉장고가 잘 수리되고 정비되어 다시 오래 사용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의 전자제품의 기술이 수준급임을 알 수가 있다. 모든 기술자들이 바로 한국 교육의 산실이다. 많은 기술자를 길러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냉장고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냉장고는 식품이나 약품 따위를 차게 하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저온에서 보관하기 위한 상자 모양의 장치다. 지금까지 이 냉장고가 없었다면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음식을 상하지 않도록 저온을 유지시켜 줌으로 음식을 잘 보관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 선생님들도 냉장고와 같이 학생들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부패한 나라는 주로 후
17년 6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의 새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6월의 마지막 날을 잘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하려는 것 같다. 새들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 아침부터 대화를 나눌 사람은 잘 없다. 자연은 늘 곁에서 이른 새벽부터 친구가 되어 준다. 감사할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변화의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참 많다. 그 중에 극소수의 선생님만이 선택을 받는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참 소중하다. 많은 학생들을 곧게 자란 나무처럼 곧게 자라도록 하는 분이시기에 대단히 중요한 분들이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곧게 자라는 이가 많지 않다. 졸업을 할 때가 되어도 기대에 못 미치는 학생들이 많아 실망도 한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학생들을 좋은 사람 만들도록 잘 지도해 나간다. 우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아무리 미워도 제대로 된 사람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가득차면 정말 제대로 된 사람, 몰라보게 달라지는 사람을 키워낼 수가 있다. 그게 교육의 힘이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 변화의 사람이 되도록 지도해 보자. 변
6월이 저물어가고 있다. 무더운 6월이었지만 6월이 우리에게 준 기쁨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아침마다 들려주는 새소리이다. 무기력해지고 나약해지는 6월의 우리에게 새들은 힘을 주었다. 게으른 자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쳐 주었다.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 새 힘을 얻게 했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어느 교향악단의 연주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지금도 새소리가 귓전에 울리고 있다. 불평의 소리가 아니다. 원망의 소리도 아니다. 짜증의 소리도 아니다. 기쁨의 소리다. 환희의 소리다. 희망의 소리다. 꿈의 소리다. 야망의 소리다. 새들을 보면서 오늘도 기쁨의 삶, 즐거운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 6월이 준 기쁨은 단비였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단비를 맛보게 했다. 폭염을 사라지게 했다. 미세먼지가 날라가게 했다. 시들어가는 식물들이 생기를 얻게 됐다. 생명은 참 고귀한 것이다. 큰 화분에 심겨진 나무의 잎과 줄기가 다 말라버려 잘라버렸는데 큰 두 둥치의 나무에서 새잎이 나기 시작했다. 물을 주고 먹다 남은 커피를 주고 음료수를 주고 관심을 보이고 했더니 제법 나무 모양을 지니고 있다. 푸른 잎으로 생명을 과시하고 있다. 물은 참 귀한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역할
보슬비가 내린다. 새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인다. 은행나무잎이 흔들린다. 이런 아침은 정말 보기 힘든 좋은 아침이다. 상쾌한 아침이다. 온 국민이 비를 간절히 소망하니 단비가 쏟아졌다. 어제 오후에는 오랜만에 천둥 번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법 굵은 비가 쏟아졌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감사가 철철 넘치는 아침이다. 엊그제 중학교 때부터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좋았다. 목소리는 변하고 있었지만 옛날의 목소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로 안부를 물었다. 전화를 해도 편안했다.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친구가 참 좋은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친구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친구는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우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들을 친구처럼 여기며 다가올 것이다. 친구는 자연스럽다. 꾸밈이 없다. 허물이 없다. 친구 사이의 무슨 허물이 있나? 있다면 그건 다 덮어준다. 莫逆之友(막역지우)라 거스름이 없다.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다. 우리 선생님들이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허물없이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간밤에 비가 내렸다. 촉촉이 비가 내렸다. 먼지를 씻어냈다. 폭염이 사라졌다. 무기력한 이들에게 새 힘을 주었다. 온갖 나무들과 식물들이 새 힘을 얻었다. 농부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농심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곧 더 많은 비가 내려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해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하루를 열어간다. 오늘도 물과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비를 애타게 기다렸을 때 내리는 비는 단비다. 목이 마를 때 마실 물은 금장옥액(金漿玉液)이 된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 단잠을 잘 수가 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다. 목이 말라 갈증을 느끼는 학생을 보면 그들에게 다가와 시원스럽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선생님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겸손의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하류가 더 좋다. 하류가 상류를 지배한다. 하류는 큰 바다를 이루고 큰 강을 만들어낸다. 실력이 쌓이려면 언제나 마음이 비워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빈
오늘 아침에 매일 같은 일을 하는 분을 만났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최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매일 운전을 하고 요즘처럼 더위에도 지붕을 오르고 작업을 해야 하는 분이셨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니 매너리즘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을 뻔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개가 끄떡여졌다. 우리 선생님들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봤다. 개척정신이 필요하다. 어느 티비에서 한 40대의 농부가 메뚜기가 미래가치가 있다고 하시면서 메뚜기를 집에서 키우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분야의 일을 처음 시작해 새로운 길을 닦고자 하는 정신이 돋보였다. 머지않아 성공의 소식이 들릴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매일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전문분야를 깊이 파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 보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편할지는 모르지만 교직의 흥미는 점점 잃게 되고 말 것이다. 가르침에 대한 방법도 연구해 보아야 한다. 똑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니 가르치는 본인도 지겹고 재미도 없고 배우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새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듣고 싶은 소리는 바람소리와 물소리다. 곧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들리리라. 매일 볼 수 있는 정원에 한 그루의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다. 부채모양의 은행나무잎이 진한 녹색으로 변해간다. 이 녹색이 찬란하게 빛나다가 가을이 되면 노란 계절로 물들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은행나무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은행나무는 뿌리가 깊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뿌리가 깊으면 태풍이 와도 넘어지지 않는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열매도 많이 맺는다. 가을의 은행을 보라 엄청 많은 열매를 보게 된다. 탐스럽기까지 하다. 선생님의 실력의 깊이가 은행나무 뿌리만큼 깊어지면 든든하게 된다.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가 있다. 주렁주렁 탐스런 제자들을 많이 양육할 수가 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뎌낼 수가 있다. 누가 뭐라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평안이 지속된다. 조용한 연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뿌리가 깊어지기 위해서이다. 은행나무는 마주 서야 연다. 유명한 속담이다. 은행나무의 수나무와 암나무가 서로 바라보고 서야 열매가 열린다는 뜻으로, 사람이 마주 보
새소리가 들린다. 머지않아 비 소식을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비올 구름이 형성될 것이란 징조인 것 같다. 모두가 바라는 비가 내렸으면 하는 바람을 오늘 아침에도 갖게 된다. 이른 새벽 글을 읽다가 버들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어릴 적 버들이 생각났다. 고향의 강가에 길게 늘어선 수십 그루의 버드나무가 떠올랐다. 강둑을 따라 걸으며 뛰놀던 때가 그리워진다. 이들은 언제나 강으로부터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므로 언제나 푸르고 푸르렀다. 오늘 아침에는 버드나무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버드나무는 언제나 수분을 공급받기 위해 애쓴다. 그리하여 건강한 나무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언제나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풍성한 지식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우리 선생님들이 언제나 지식의 수분을 섭취해야 할 것 같다. 학생들에게 전문지식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지식의 강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풍성한 지식을 전할 수 있다. 지식의 수분이 떨어지면 지식이 얕아져 천박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영양가 있는 지식 전수를 위해 언제나 수분을 공급받아야 할 것 같다. 버드나무는 언제나 푸름을 자랑한다. 그들의 푸
비가 와야 하는데 비가 너무 오지 않는다. 비 예보도 없다. 땅은 갈라질 대로 갈라지고 저수지에 물은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람 불으소서 비 올 바람 불으소서. 가랑 비 그치고 굵은 비 들으소서. 큰길이 바다이돼임 못가게 하소서’라는 노랫가락이 떠오른다.’ 임을 보내기 싫어 비가 오라고 했지만 지금은 모두의 생을 위해 비를 간절히 바라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바람 부소서 비올 바람 부소서 강마다 계곡마다 물이 넘치도록 비올 바람 부소서, 비올 구름 형성돼이 땅 위에 비가 쏟아지게 하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읊어 본다. 오늘 아침에는 격려의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격려가 필요하다. 농사를 지으면서 물이 없다고 농부끼리 싸우면 모든 게 끝난다. 평생을 이웃 삼고 살아가야 할 농부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안 된다. 서로 양보하면서 서로 힘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농부들이다. 이와 같이 우리 선생님들도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피곤한 선생님을 보면 힘내라 하고 지친 선생님을 보면 다시 일어서라 하고 낙심한 선생님을 보면 용기를 내라 하고 화난 선생님을 보면 참으라 하면서 학교생활
이른 아침에 밖을 나가면 봄날과 전혀 다름이 없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푸른 잎은 더욱 푸르다. 새들은 즐겁게 노래한다. 오늘 아침 길을 가다가 해바라기를 보았다. 해바라기의 넓적한 푸른 잎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둥근 해바라기를 보면서 해바라기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해바라기(영어: Helianthus 또는 sunflower)는 국화과에 속하는 일년생 식물로, 꽃은 두상화(頭狀花)이다. 두상화는 꽃대 끝에 많은 꽃이 뭉쳐 붙어서 머리 모양을 이룬 꽃. 국화, 민들레, 해바라기 따위가 있다. 사람의 몸 전체에서 머리가 제일 중요하다. 거기에서 각종 아이디어가 나온다. 좋은 생각이 나온다. 삶의 지혜가 나온다. 진리를 탐구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끈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악하고 더러운 생각 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명예로운 것과 덕이 있는 것 생각하게 한다. 해바라기는 해를 닮은 노랑색 꽃이 상당히 인상적인 식물이다. 해는 둥글다. 해바라기도 둥글다. 모난 것보다 둥근 것이 훨씬 좋다. 모난 성격을 지닌 자는 매일 훈련되고 단련돼모난 부분을 둥글게
새소리가 들린다. 하늘도 푸르다. 천의무봉이다. 깨끗하다. 하루를 상쾌하게 만든다. 출발이 좋으면 오늘의 마침도 좋아진다. 월요일이라 피곤할 텐데 자연을 둘러보면서 새 힘을 얻게 되길 원한다. 오늘 아침에는 칭찬하는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 나쁜 사람이 없다. 누구든 칭찬을 받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칭찬에 인색하기보다 칭찬하는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다. 학생들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칭찬할 것만 메모해서 기회가 주어지면 칭찬의 말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학생들은 칭찬 속에서 더 잘 자라게 된다. 어떤 이는 “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어도 두 달은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칭찬을 들으면 두 달뿐만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칭찬을 들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난다. 칭찬을 들으면 고요한 평강이 마음에 자리잡는다. 칭찬을 거부하는 이들은 칭찬을 하면 고래도 멍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가 있다. 칭찬을 듣는데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나? 그렇지 않다. 칭찬을 듣는데 기쁨보다 슬픔이 밀려오나? 그렇지 않다. 칭찬을 듣는데 화가 나나? 그렇지 않다. 그
6월이 점점 익어간다. 점점 짙은 녹색으로 온 산을 장식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산도 많고 나무도 많은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살기 좋은 나라다.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선생님들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주차장으로 나왔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소리가 새소리였다. 이 시간에는 새와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새는 언제나 듣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준다.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 준다. 새소리를 들으면서 시끄럽다고 하는 이는 정상이 아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보다 더 좋은 소리는 없다. 더 감미로운 소리를 들어볼 수가 없다. 주변에 운동하시는 분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여러 가지 운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소리가 귀에 들리면 짜증이 난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들리는 소리가 일부에게만 좋게 들리지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 우리 선생님들은 새들처럼 언제나 학생들에게, 동료 선생님들에게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말이 입에서 나오도록 하면 새와 같은 선생님이라 할 수 있다. 새는 너무나 부지런하다. 새들보다 일찍 일어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일찍
오늘 아침에 죽순부터 지켜본 대나무를 가까이서 쳐다봤다. 이제는 키가 클 만큼 컸고 이제는 굵기가 점점 굵어져 있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도 더욱 체격이 단단해 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간에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학생들의 요구를 잘 알면 그만큼 애들을 효율적으로 잘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의 요구를 알면 어린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이들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요구 중 하나는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 욕구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이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안 되면 이게 불평불만이 돼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애들이 "사랑을 주세요"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이나 행동으로 나오게 되기를 원한다. 친하는 친구들 사이에게도 그렇다. 가정의 출발이 참 중요하다. 가정의 부모님이 사랑을 주고받는 첫걸음이 된다. 가정 결손에서 자라난 아이는 학교에 오면 반항적이게 되고 일탈적인 행동을 예사로이 한다. 그러기에 애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가 되어야 모든 애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애들의 요구의 또 하나는
바닷가에서 살아본 사람은 해변가의 조약돌에 대한 관심을 한번쯤은 가지게 된다. 옛날에 6개월 동안 해변가에 있는 교육연수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기에 바다와도 인연이 깊고 조약돌에 관한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이 시간에는 조약돌과 같은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조약돌은 무수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매를 맞았다. 말도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모난 돌에 정 맞듯이 시도 때도 없이 맞았다. 다듬어지고 다듬어졌다. 조약돌과 같은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경륜에 따라 얼마나 많은 파도에 얻어맞았는지 모른다. 위로부터, 좌우로부터, 아래로부터, 외부로부터 시련이 겹치고 겹쳤다. 하루이틀이 아니다. 시련을 견디어 낸 선생님들을 보면서 한없는 존경을 보낸다.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었고 인내가 성숙한 선생님으로 우뚝 서게 했다. 하루에 열두 번 화를 낼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풀어도 되지만 그건 선생님으로서의 자세는 아닌 것을 알아 참고 또 참으면서 자신을 잘 훈련시켜 나가는 것을 보면서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조약돌(pebble)은 입자 직경 2~64 밀리미터의 돌이다. 아주 작은 돌이다. 우리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