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각박함 앞에 오늘 우리의 교단은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태롭습니다. 선생님들 서시는 교단에 밝음이 사라질까 조바심하며 염려합니다. 세태 인심의 이악스러움에 오늘 이 나라 선생님들은 상한 갈대처럼 야위어 가고 있습니다. 사회 어디서나 자기 이익을 위하여 지나치게 아득바득하는 기운들이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만연하고, 이런 몰염치의 세상이 선생님들을 시들게 합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선생님들을 위한 기도를 마음에 품을 때입니다. 교단에 서는 선생님들은 그 자체로 국가의 기본 인프라이고 공공재입니다. 소중합니다. 귀합니다. 공항이나 철도나 발전소나 고속도로처럼 선생님들도 매우 소중한 국가의 공공재입니다. 선생님은 이 나라 미래의 차세대를 육성하는 인프라입니다. 이점을 보지 못하는 현대인 우리는 영악하면서도 어리석습니다. 내 이기심으로 선생님을 시들게 하면, 우리들 자식의 교육도 함께 시들어 버림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선생님들을 위한 기도를 마음에 품을 때입니다.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과 섭리가 있어서, 그 어떤 선함이 선생님께 작용한다고 믿는 저의 기도문은 이러합니다. 선생님 자신
선생님! 지난해 교육대학을 졸업하며, 선생님의 가슴은 새 소망의 꿈과 보람을 향하여 참으로 청신(淸新)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롯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교단에 선 지 불과 한 해 남짓인데, 선생님이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소식을 아프게 듣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착잡한 마음 첩첩합니다.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순정한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요. 명복을 비는 이 순간에도 이렇듯 아리게 감지되어 오는 선생님의 아픔을 헤아려 봅니다. 어찌 그런 극단을 택했단 말입니까.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길을 가려 했습니까.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했으면, 그렇게 자신을 차단해 버리려 했습니까. 교단에 대한 자기 책무를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으면서 불면의 밤을 보냈을 선생님! 슬픔과 아픔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자리입니다. 선생님을 그렇게 몰고 간 병든 우리 사회의 생태에 대한 각성이 밀려듭니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의 영전에 선 우리에게 밀려와 쌓이는 부끄러움과 분노와 회한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 교실 현장 선생님들이 서 있는 자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절박하게 느끼며 마음이 어둡습
인사동에서 점심 모임이 끝나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매우 두꺼운 신간으로 나온 말씀 등불 밝히고를 찾았다. 저자(김기석)가 신학자이자 목사이고, 목회 현장의 설교를 책으로 낸 것이어서, 나는 당연히 이 책을 ‘종교’코너로 가서 찾았다. 그러나 책은 그곳에 없었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책이 있는 곳을 검색하여 알려 준다. 책이 있는 곳은 ‘인문학’코너였다.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북 토크(Book Talk) 영상을 이미 보아 두었다. 저자가 목사이면서 문학평론가였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는 서점이 이 책을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하여 배치해 놓은 데에 흔쾌히 동의하였다. 신학자인 저자는 성서를 다양한 인문학 코드(특히 문학적 코드)로 불러와서 해석의 정교함과 수월성을 보여 주었다. 많은 인문 고전이 성서로 와서 성서 해석의 풍성함을 도움으로써, 성서를 통한 실천적 지향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서점을 나오려다가 작년 여름에 내가 편저한 책 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가 궁금했다. 이 책은 지구촌 각지에서 디아스포라 코리안으로 살아가는 750만 재외동포들이 각기 거주지역 커뮤니티에서 주말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에게 한글과 한국어 그리고 우리 역사와 문화
지난봄 딸아이가 시집을 갔다. 결혼식장에서 나에게 인사를 올리며, 눈물을 비쳤다. 어릴 때 큰 시련을 겪으며, 나에게 인생에 대한 감사를 일깨웠던 아이다. 자라서는 내게 늘 따뜻한 대화 친구였다. 그 순간 나도 간신히 눈물을 참아내었다. 딸아이와 아프게 정들었던 세월은 이렇게 응축되어 ‘보석 같은 눈물’이 되나 보다. 마음에 오래 새겨지는 장면이었다. 그날 내 마음에 새겨진 장면은 ‘딸아이의 눈물’ 말고도 또 있었다. 그것은 주례를 맡으신 김기석 목사님의 주례사 말씀이었다. 딸아이의 눈물이 ‘감정의 울림’으로 새겨졌다면, 목사님의 주례사 말씀은 성숙한 인간과 삶의 태도를 불러오는 ‘이성의 울림’으로 새겨졌다. 명색이 교육학자인 나에게는 ‘교육적 성찰’의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주례 목사님은 신랑 신부가 살면서 두 개의 동사를 실천하며 살기를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우러러보다’이고, 다른 하나는 ‘바라보다’였다. 서로 우러러보고 바라봄으로써,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관계를 복되게 이끌어 가라 하신다. ‘우러러보다’와 ‘바라보다’는 단순한 ‘보다’가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은 자못 진실하고 간곡하다. 나는 이 두 동사를 사
01 대학 입학 동기 친구들 몇몇이 모여서 강원도를 걷는다. 우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에 모여서, 남한강의 역사적 시원지(始原地)라는 오대산 우통수(于筒水)에 오르는 것으로 이 걷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다음 두 번째 회동에서는 우통수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길을 걷고, 또 그다음에는 상원사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이렇듯 모일 때마다 조금씩 오대천·평창강·동강 등을 끼고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래서 늦가을 어느 날에는 마침내 영월 동강을 걸을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 중에 이런 걷기 모임을 열 번 이상 해야 한다. 우리 일행은 전공이 각기 다르다. 그래서일까.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문제를 진단하고 그 솔루션을 구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만 문과 출신이고, 다른 친구들은 물리·화학·지구과학·환경 등의 전공자들이다. 걷는 동안 학창 시절 이야기를 비롯하여, 옛 은사님들 에피소드, 군대 갔다 온 이야기, 시리고 아픈 첫사랑 이야기 등등을 한다. 이야기 중에도 서로의 다름을 의미 있게 발견해 가는 일도 재미의 일종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나누면서도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위에서 자연의 모습에 감응한다. 산과 계곡, 나무와 풀, 꽃과
01 군 복무를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가 대학 3학년 때 ROTC(단기복무 장교훈련 코스)에 지원하였다. 대학생 신분과 사관후보생 신분이 묘하게 섞인 대학 3·4학년 시절을 보냈다. 이런저런 고충이 있었지만, 뒤에 생각하면 내게 부족한 인내와 책무감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유익한 자양이 되었고, 그것은 내 나름의 자부심을 만들어 주는 바탕이 되었다. 사관후보생 시절 구보하고 행군하며 불렀던 군가 중에 지금도 청신하게 자부심을 일깨우는 노래 하나가 생각난다.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가 주는 어떤 일깨움이 내 자아의식에 와 닿았다. 군부대의 사기는 구성원의 자부심에서 나온다. 일선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초급 장교들의 자부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신의 자부심을 넘어 부대의 자부심을 이끈다. 열등감에 찌들어 기운 빠진 장교를 상상해 보라. 청년 장교의 자부심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노래의 제목은 ‘장교단가(將校團歌)’라 했다. 1절 가사는 이러하다. 우리는 젊은 사관, 피 끓는 장교단/ 저 하늘 푸른 창공을 나는 솔개// 세월아! 화랑도 빛나는 전통을/ 굳게 세워 새 나라 건설에 용진하자 용진해.// 자부심이란 ‘자신의
01 주변 사람들에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말을 어떤 뜻으로 이해하는지 물어보라. 어휘력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열에 일곱 여덟은 “그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얻어 자며, 남의 신세 지는 거 아닙니까?”라고 할 것이다. 맞다. 국어사전에도 ‘동쪽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는 뜻으로,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냄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요컨대 일정한 삶의 근거지도 없이 돌아다니며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의 행태를 일컬을 때 이 말을 관용구처럼 쓴다. 구차하고 궁색 맞고 좀 쓸쓸하고 처량해진 사람의 신세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이 생겨날 때의 원뜻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동가식서가숙’이란 말은 중국 북송 초기의 학자 이방(李昉) 등이 977~983년 사이에 편찬한 태평어람(太平御覽)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이런 부류의 책을 중국에서는 일찍이 유서(類書)라고 불렀는데,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이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제(齊)나라에 혼기가 찬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마침 두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동쪽 집의 아들은
01 나는 ‘선생을 한다’라는 표현이 좋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선생 직분’에 대한 가치가 생기는 듯하다. 옛날 선생님과 요즘 선생님의 근무 생태와 조건도 많이 달라졌다. 어떤 분들은 그래도 옛날에 선생하기가 좋았다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옛날의 환경 여건에서는 선생하기가 힘들었다고도 한다. 내 경험상 옛날 선생의 정신적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학교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납부를 독려하는 일이었다. 의무교육은 초등학교까지였으므로 중학교부터는 돈을 내야 했다. 독려는 또 그럭저럭한다고 치더라도, 끝내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너 내일부터는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말해 줘야 하는 일은 참 괴로웠다. 내가 근무한 J 여자중학교는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반 70명 중 20여 명 정도는 공납금 내기에 어려움이 늘 있었고, 그중 5~6명 정도는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공납금 독려와 미납자 처리가 학교행정의 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그 방법이 참 마뜩하지 않았다. 내 초임지의 교장선생님은 월요일 교직원 조례에서 전교 45개 학급의 공납금 납부 실적표를 막대그래프로 제시하고, 그걸 짚어 가며 실적이 부진한 반을 골라내었다. 공납금 이외에
01 SNS에서 알게 된 ‘이 아무개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하다. 그 ‘먹먹한 가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나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안타까움·애틋함·조바심·개탄(慨嘆)·부끄러움·응원·소망과 기원·반성 등의 마음이 나를 휘감고 돌아간다. 세상을 오래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내가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음도 깨닫는다. 이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동시에 일곱 살 아홉 살 된 남매를 둔 어머니이다. 그런데…, 그녀의 두 자녀는 모두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선생이 감당하는 어머니로서의 고통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무게이지만, 그것보다 더 그녀를 힘들게 주저앉게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대와 편견, 차별과 몰이해이다. 그녀의 체험을 받아 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운다. 연배로는 나보다 한 세대쯤 아래이지만, 나는 그녀가 나의 선생 같다고 생각한다. 그 힘듦을 얼마나 잘 견뎌내는지, 내가 배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나에게 진정 감화를 주는 것은, 이것 말고도 또 다른 마음의 세계를 그녀가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녀는 밝음과 의욕을 향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 이걸 보며 나는 ‘긍정의 감화’에 든다. 이는 앞서
01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반대말(반의어)과 비슷한 말(유의어)을 배웠던 것 같다. 한 단어를 다른 단어와 쌍을 맺게 하며 익힌다. 언어의 유창성을 기르기 위한 어휘력 학습의 과정이다. 겉으로는 어휘를 배우는 과정이지만, 인지심리 차원에서는 사고력 발달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언어와 사고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이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과 반대말 익히기를 스피드퀴즈 활동으로 하고, 쪽지시험으로 선생님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유의어와 반의어를 잘 끄집어내는 능력은 말하기(speech)와 글쓰기 역량의 기반이 된다. 나는 처음 반대어를 배울 때, ‘반대어는 참 쉽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특히 동사나 형용사는 주어진 말 앞에 ‘안’을 붙이면 바로 반대어가 된다고 생각했다. ‘죽다’의 반대어는 ‘안 죽다’, ‘자다’의 반대어는 ‘안 자다’, ‘부지런하다’의 반대어는 ‘안 부지런하다’, ‘가난하다’의 반대어는 ‘안 가난하다’ 등으로 대답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런 대답이 잘못된 것이라는 합리적인 설명은 나중에 들었던 것 같다. ‘안’을 앞에 붙인 말, 이를테면 ‘안 부지런하다’는 ‘부지런하다’의 반대어가 아니라, ‘부지런하다’를 부정하는 말이라
01 구약 성서 시편 51편은 통렬한 참회의 장이다. 누가 참회하는가. 유대의 왕 다윗이 신에게 참회한다. 다윗은 유대의 역사가 받드는 위대한 영웅이다. 그래서 마태복음도 예수가 다윗의 계보에 속함을 밝힌다. 그런 다윗이 처절 비통하게 참회한다. 무슨 잘못인가? 그는 신하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여 자기 아내로 삼는다. 그리고는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어 죽게 한다. 성서는 다윗의 죄를 책하면서도 이 통절한 참회를 깊숙이 새겨 둔다. 두터운 믿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회개는 거듭남을 향하는 문임을 성서는 가르친다. 아무튼 그 참회의 토로가 시편 51편이다. 17세기 초, 교황청의 작곡가이자 사제인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는 1638년 이 시편 51편을 가사로 작곡을 했다. 그 곡에 ‘미제레레(miserer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참회의 곡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이다. 인간의 목소리를 신의 은혜로운 선물로 여기는 중세 가톨릭의 전통에 따라, 이 미제레레 성가는 변성기 이전 소년들의 목소리로 아카펠라 방식으로만 불렀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8세(1568~1644)는 이 성가에 담긴 거룩함과
01 나이가 들며 아픈 데가 두 군데 생긴다. 가까운 종합병원을 정하여 진료를 받아온 지가 10년이 넘었다. 한 증상은 순환기내과에서, 다른 한 증상은 내분비내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정기검사를 하고, 그에 따른 진료와 약 처방을 받는다. 한 병원에서 두 가지 증상을 같이 진료 받으면 이점이 있다. 두 분 의사선생님이 내 진료정보를 공유하며 나를 살펴준다. 채혈검사도 한 번만 하면, 그 결과를 두 분이 함께 활용한다. 그런데 이 두 분 의사선생님이 환자인 나를 대하는 방식은 너무 다르다. 내분비 내과 A 의사선생님은 환자가 자기관리를 잘못하면 호통을 친다. 나이 불문, 신분 불문, 가리지 않고 야단친다. 게으른 환자에게는 나빠질 예후를 말하며, 거침없이 경고한다. 나도 야단을 맞는다. “또, 아무거나 절제 없이 먹고 다녔구나. 밤 9시부터 아침까지는 물 이외에는 먹지 말라고 했잖나!” 나는 진료일이 다가오면, 검사 지표가 걱정되어 음식과 운동 등에 신경을 쓴다. 이럴 때의 나는 그저 야단맞기 싫어하는 초등학생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A 의사를 만나는 날, 나는 내 병에 대해서 진지해진다. 또 그런 만큼 한편으로는 약간의 우울을 품
01 살기가 너무 어렵던 시절이 멀리 있지는 않았다. 내 어릴 적에는 춘궁기에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마을에 더러더러 있었다. 거지들이 집마다 찾아와 밥 한술을 달라고 깡통을 내밀던 장면도 흔하게 있었다. 소꿉놀이하면 으레 밥 구걸하러 오는 거지 장면이 있었다. 일상에서 늘 겪는 결핍과 가난의 생태이었으므로 아이들 소꿉놀이도 그런 현실을 반영했다.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 시절은 국가의 계몽이 과도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국가가 하향의 (Top-down) 방식으로 국민을 계몽하고자 하는 나라, 그래서 구호가 넘쳐나는 나라, 이는 대개 근대에서 볼 수 있었던 나라의 모습이다. 계몽은 가난과 무지에서 그 세를 떨친다. 그런 나라일수록 민주주의는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고, 민주주의가 피지 못하는 근저에는 백성의 궁핍과 가난이 일상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가난 구제를 팽개쳐 두고 민주주의를 피운 나라는 없다. 그런 시절이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았다. 계몽의 범람은 흉패 달기에서 나타났다. 그 무렵 학교에 다닐 때는, 무언가를 적은 헝겊 표장을 수시로 가슴에 달고 다니게 했다. 마치 어버이날에 부모님 가슴에 ‘부모님 감사합니다’ 하는 패를 달아드리는 것과 같
01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약수동에 있는 초임지 장충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20대 중반의 풋풋한 청년 교사이었다. ‘청년 교사’란 말은 ‘교사의 젊음’에서 순수와 열정을 바라는 기대가 담긴 말이다. 그런 덕성을 향하도록, 듣기 좋게 부각한 표현이다. 말과 실제가 똑같지는 않다. 나를 두고서만 보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경험 미숙한 총각 선생이란 설명이 나의 실제에 더 맞았을 것이다. 신학기로 분주한 3월 중순, 최옥려 교장선생께서 나를 교장실로 부르셨다. 사정은 이러했다. 시내 인문계 K고등학교에 갑자기 국어교사 결원이 생겼다. 정규 인사이동은 이미 다 끝났고, 새 학기 학사일정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다른 고등학교에서 K고등학교로 올 수 있는 선생님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형편이 급하여, 적절한 사람을 중학교 교사 중에서 추천받고자 하는데, 그 추천 요청이 우리 최 교장 선생님에게 온 것이다. 최 교장 선생님은 나를 추천했노라고 하며, 공식 인사발령이 나는 대로 고등학교로 옮겨 갈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배려해 주신 것이 틀림없는데, 무어라고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라 그냥 우물쭈물했던 것 같다. 마음과는 달리 반듯한 감사의 인사말이
01 멀다, 먼 곳, 멀리 오다, 이런 말을 들으면, 여행이 생각난다. 무언가 아릿한 낭만의 기분도 함께 따라온다. 나는 먼 나라에 여행을 가면, 그곳 그림엽서를 사서 이렇게 적는다. “멀리 오니 그대 더욱 그립다.” 이렇게 적고 나면, 내 안에서 어떤 고적하고도 먼 이격감이 일어난다. 그것을 멋의 감정으로 이끌리게 하는, 호젓한 여수(旅愁)의 감정도 생겨난다. 골치 아픈 복잡한 일에 시달릴 때, ‘눈을 들어서 먼 곳을 보라’고 한다. 먼 곳이 주는 치유의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낙원이나 유토피아는 언제나 먼 곳에 있다. 그래서 먼 곳은 동경의 대상이다. 동경을 품고 있는 정서가 그리움이다. 김광균 시인의 ‘설야(雪夜)’라는 시는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먼 곳으로부터 오는 그리움의 소식이 ‘밤에 오는 눈’이라는 것이다. 부천에 있는 동네 ‘원미동(遠美洞)’은 ‘멀리(머~얼리)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이다. 새겨보면 운치가 있다. 미학적 원리로는 적절한 거리가 아름다움을 빚어낸다고 하지 않는가. 너무 근접하면 신비함이 사라진다고, 그래서 가족끼리는 존경하기가 좀체 어렵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