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영어 정책이 공격적이고 구체적이다. 새 정부는 교육 개혁의 핵심으로 영어 공교육의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학교의 영어 교육 강화는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국가 경쟁력도 강화되고 그것이 곧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새 정부는 영어 공교육 계획을 ‘제2 청계천 프로젝트’로 삼아 국가 경쟁력 발전을 위한 전기로 삼겠다는 의지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점검해 볼 것이 있다. 우선 백년대계(百年大計)의 교육 정책이 순식간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수립이 불과 소수의 입에서 나오고 실천 방안도 매 시간마다 나오고 있다. 물론 좋은 정책이라면 인원수와 시기가 문제 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서두르면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영어 몰입 교육은 백지화되기도 했다. 이렇게 급하게 가다보니 엉뚱한 논리가 개입한다. 일부 신문은 새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을 환영하면서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사람이면 영어 교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해외 거주 경험이 있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단 기간의 연수를 시켜 교단에 서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예 사범대·
새 정부가 바쁘다. 국가의 행정을 바로 잡고, 선거 공약 실천에 대한 의지도 강력하다. 특히 경제 분야 기대가 큰 만큼 사업 구상도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 분에도 새로운 정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교육 분야는 과거 정부와 확연하게 다른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과거 정부는 본고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는데, 지금 정부는 이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자세다. 특목고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평준화 교육에 치중했지만, 지금 정부는 이미 선거 공약에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겠다며 차별화 교육 정책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의 성격이 바뀌면 개별적인 정책에서는 당연히 변화가 온다. 그러니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말하기는 섣부른 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근 학교의 모습이 과거와 많이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는 정책이 없어서 아쉽다. 얼마 전 프랑스는 교육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은 전국 교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요점은 “교육의 중심에 지식은 없고 학생들의 인격만 있다”, “교사가 교실에 들어올 때 학생들이 일
주간지에서 ‘담임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은 현재의 담임은 가정의 가부장처럼 학급에서 전권을 휘두르고 있고, 이로 인해 학생과 학교의 평등한 관계가 어려워진다는 내용이다. 기사에는 학교 담임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사례와 담임의 강요에 학부모가 커피포트와 냉장고를 사 주어야 했던 일화를 제시하며 학교에서 담임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보도 내용은 학교자치연대가 추진하고 있는 ‘담임제 폐지와 지도교사제’를 근간으로 작성된 글이다. 학교자치연대는 학급담임제는 일제강점기 전시 행정의 산물로 담임제의 유지는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다소 이상적인 ‘교과제 변화’를 제안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기사의 내용을 접하면서 일부는 공감을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담임 과 학교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앞섰다. 이 기사에서 학급 체재는 비민주적이고 그 중심에 담임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또한 담임은 무조건 학생을 통제하고, 학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그린다. 실제로 과거에는 아무 죄의식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학부모한테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담임도 있었다. 이러한
논술 시험은 교육부와 대학 당국의 타협물 현재 고등학교 교육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은 논술이다. 2008 대입제도에서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등급제로 시행되고, 주요 대학들이 학생 변별력 강화를 위해 논술 비중을 확대하면서 저마다 논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울대의 통합논술 시험 발표 이후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까지도 열기가 뜨겁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논술 교육이 모든 교육의 핵심처럼 떠들고 있다. 전문가들도 마이크만 들이대면 논술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문들도 아예 정기적인 논술 특집에 논술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학원가는 학원가대로 논술 교육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심지어 동네 조그만 학원도 초등학교 때부터 통합 논술을 해야 한다며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맹신은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 다시 말해서 논술 교육 집착에는 허점이 보인다. 우선 현재의 논술 시험은 순수하지 않은 면이 있다. 논술 시험은 대학과 교육부의 힘겨루기에서 탄생한 어정쩡한 시험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은 끊임없이 국․영․수 형식의 대학별고사를 보겠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고등학교의 성적을 못 믿겠다는
어느 순간부터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고, 미래의 모습을 다듬어 보고 싶었다. 어느 순간이랄 것도 없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젊은 사람들이 부러워지고 부터이다. 제법 나이를 먹고 남보다 많은 세월을 흘러왔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새로운 인생 설계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왔다. 뭐랄까. 인생의 정상을 밟지는 않았지만, 이제 정상에서 내려가는 느낌을 가졌다고나 할까. 전에는 머리가 희고 풍기는 인상이 어른스러우면 경외감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위치에 다다르니 뭔가 불안한 느낌이다. 입 밖에 꺼내기는 두려운 면도 있지만, 운이 좋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의 태풍이라도 오면 여기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조심스럽게 아주 신중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불뚝불뚝 일어선다. 그동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애써 하지 않았다. 마음을 앞세워 젊은 축에 드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았다. 정상을 향해서 달리기 바빴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삶의 즐거움만 찾아다니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너무 외향에 치중하며 걸어왔다. 남이 어떻게 볼까. 남보다 멋있게 걸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
서울의 한 고교가 올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생이 직접 원하는 담임을 선택하는 ‘담임 선택제’를 실시키로 했다는 보도다. 학교 측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급 담임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올해 신입생에 한해 전국 최초로 담임 선택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따라 학교 환경의 인식과 제도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담임 선택제는 왜 하는지 그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 학교 측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급 담임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먼저 학교 측은 수요자 중심 교육을 잘못 이해한 듯싶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란 학습 수행 과정에 있어서 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량을 제시하거나, 수요자의 학습 환경을 배려하는 것이다. 피교육자가 담임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수요자 중심 교육과 관련이 없다. 보도에 의하면 담임 선택은 1학년을 상대로 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담임을 맡을 교사 명단과 함께 예비 담임교사들의 사진ㆍ과목ㆍ학급운영 방침 등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면 학생은 인터넷을 통해 담임을 선택했나보다. 학교 실정도 모르는 신입생이 몇 줄의 학급 운영
새해 첫날 산에 올랐다. 내 딴에 제법 마음먹은 산행이었다. 새해 첫날 누구보다 제일 먼저 해를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듯한 겨울 산에서 뼛속까지 후벼 파는 바람에도 끄떡 않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내 삶의 깊은 영혼까지 맑게 씻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새해 첫날 동이 트기 전에 산에서 조용한 가운데 마음을 다독이겠다는 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산등성이는 아직도 어둠을 덮고 있는데,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발끝으로 어둠을 차면서 오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혼자만 듣겠다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는데 음악 소리가 밖에 까지 들린다. 정상에 올라와서 휴대 전화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친지에게 중계하는 아주머니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애완견까지 끌고 와서 깊은 산 속이 갑자기 도떼기시장이 되어 버렸다. 참 시끄러운 세상이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니 우리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미국과 아랍 단체는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이에 이라크에서는 연열 사망자가 늘었다. 북한 핵문제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섯 명이 모이는데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아베 총리 등장 그리고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의 모습도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언제부턴지 학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의 교육 방식, 심지어 선생님과 제자들의 관계도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오늘날 민주 사회에서는 권력에 있는 사람도 잘못했다면 뭇매를 맞는다. 따라서 학교가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비판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 하지만, 최근 학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학교의 모습을 정확히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들은 적당히 신문 지상에 나와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이야깃거리를 삼으면 남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며칠 전 어느 대학 총장이 학교에서의 두발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분은 학교의 두발 규정은 과거 권위주의의 소산이고, 인권 탄압의 실례라며 언성을 높였다. 과연 그럴까. 모든 사회 조직은 그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다. 회사는 회사대로, 군대는 군대대로, 또 대학과 고등학교, 초등학교의 문화가 다른 것이다. 여기서 대학 문화만 좋고, 고등학교 문화만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고등학교의 두발 규정도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동의해서 지키고 있는 전통이고 문화이다. 전체 구성원의 생각은 살피지도 않고 일부의 푸념만 듣고,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된
새 출발하는 입학식 자리가 비어있다. 총장님, 이사장님의 근엄한 축사에, 입학생 몇 명이 장학 증서를 받는 입학식은 신세대 대학생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이제는 신세대 감각에 맞는 입학식을 해야만 새내기들이 자발적으로 참석을 할 것이다.
OECD가 내놓은 국제 교육환경평가에서 우리 나라는 학생들의 학교 소속감이나 교사의 헌신도는 조사대상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공교육 붕괴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바로잡는 데는 교단 개혁이 시급하다며 최근 기획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방송 보도 내용을 지켜보니 공교육을 바로잡기보다는 우리의 학교 교육을 노골적으로 추락시키고 있어 우려가 된다. 지금까지 방송도 문제점이 있었지만, 지난 번 ‘학원보다 학원이 좋아요’는 방송분은 왜곡 보도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방송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이었다. 방송 내용은 이랬다. 학교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자고 있고, 학원은 회초리로 맞아 가면서 수업을 하고 있다. 전달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두 장면을 대비시켜 보도하며, 기자는 학원에서 학생들은 강사의 열띤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신 학교의 모습은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학생과 MP3로 음악을 듣는 학생을 클로즈업 했다. 학생도 인터뷰를 했고, 학부모도 인터뷰를 했는데, 그 내용은 모두 학교와 학원을 비교해서 학교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생활지도면도 학원이 우수한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해 왔지만, 여름방학은 고3 생활 중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맞는 학습 전략을 면밀히 짜고, 시간을 잘 보내면 자신의 학습능력과 결과가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방학 동안 효과적인 학습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이 시기에는 권하고 싶은 것은 1학기 공부의 성과에 대한 반성을 철저히 하고, 자신에게 맞는 학습전략을 세우라는 것이다.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말이 있다. 즉 수능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1학기에 본 모의고사 성적표를 체계적으로 도표화해서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언어영역에서 듣기, 쓰기, 문학, 비문학 영역별로 취약 부문을 점검하는 것이다. 다른 영역도 이렇게 세부적으로 학습 결과와 약점부분을 집중 체크하면 어느 영역이 강하고, 어느 영역이 취약한지 분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취약한 과목에 비중을 두어 여름방학 동안 철저히 학습하고 수능시험 일까지 꾸준히 학습한다면 좋
동일한 단어를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발음한다면 통일된 언어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표준어의 발음과 관련된 규정이 필요합니다. 동일 언어 공동체 안에서 지역적, 사회적 차이를 초월하여 널리 공통되는 발음은 표준적인 발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준어가 국민의 언어 현상을 통일하려는 목적 하에 제정되는 것처럼, 표준 발음은 언중(言衆), 곧 국민의 언어 행위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규범화된 발음이라고 정의(定義)합니다. ‘표준발음법’은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표준 발음이란 표준어의 발음을 말하는데, 표준어가 현재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이라 했으니, 표준발음법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의 발음인 표준발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표준발음은 효율적인 의사소통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문자로서 언어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입으로 발음하고 귀로 듣는 소리말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표준발음을 해서 상대방이 쉽고 빨리 알아듣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표준발음은 지역감정을 극복하여 국민 화합을 이룩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 중에 하나가 지역감정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제/ 일지(一枝) 춘심(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이 읊은 것처럼, 배꽃은 한 밤중에 봐야 제격이다. 보름달이 배꽃을 더욱 희게 하고, 접동새가 슬피 울어준다면, 마음속에 이는 병을 달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얀 배꽃을 따뜻한 햇살 아래 보는 즐거움도 이에 못지않다. 수원 장안고 2학년 3반 29명과 학부모 지도봉사단 8명은 지난 23일 오전 9시부터 화성시 비봉면 구포리에 위치한 현명농장에서 4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날 유명 배 주산지인 현명농장에서 실시한 봉사활동은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와주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땀을 흘려 봉사함으로써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봉사활동은 남을 도와주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 남을 도우면서 마음의 만족을 얻고, 사회적 기여에 대한 마음의 싹을 키우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교육활동이다. 또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봉사활동은 손쉽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이웃 사랑을 함께 실천함으로써 구성원간의 일체감 및 세대간에 쉽게 융화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