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국가의 핵심 전략이 되고, 대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영역으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기술적 특성이나 경제적 효과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 기술의 급격한 진보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며 인간의 삶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지 깊이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은 과거의 시선으로 미래를 설명할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세상을 보는 눈과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담론과 그 함의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8명 학자의 논의를 정리한 책이다. 닉 보스트롬은 포스터휴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포스터휴먼은 그 기본 능력이 지금의 인간 능력을 과도하게 넘어서서, 현재의 기준으로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미래의 가능한 존재이다.” 우리가 ‘휴먼’이라고 하면 그것은 생물학적 존재로 지금의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래에는 인위적 지능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거나 기술적으로 변형된 사이보그 생명체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같은 것이 나타나 인간과 공존할 것이다. 정보기술, 생명기술, 가상현실 같은 첨단 과학기술은 그 속도나 범위에서 전례없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인공장기, 유전자조작, 줄
들판이 확 달라진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여문 벼들은 수확의 시기를 알리는 듯 노르스름한 빛깔을 하고. 그 위로 메뚜기며 여치가 뛰노는 가을 초입입니다. 어느새 벌레들은 옥타브 높은 맑은 소리를 냅니다. 긴 우기를 보낸 탓에 까슬하고 맑은 바람과 청량한 햇살이 더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옷걸이에 걸린 옷에 거의 하얀 곰팡이가 조금씩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탁기에 돌려 옷들을 베란다에 널어 가을 햇살에 말렸습니다. 빨래가 말라가는 동안 베란다에 앉아 저를 위해 한 권의 기분 좋은 책을 읽습니다. 김소연 작가의 『한 글자 사전』입니다. 작가는 읽는 이가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어떤 말에 대해 작가는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책에서 찾은 한 글자로 가늠하는 생의 감촉을 표현한 멋진 말들입니다. 귀/ 토론할 때는 닫혀 있다가 칭찬할 때는 잘 열리는 우리들의 신체 기관. 밤/ 노동자가 비로소 온전히 오금을 펴고 눕는 시간. 창가의 식물들이 면적을 오므리는 시간. 농구공을 받아내는 텅 빈 운동장처럼 누군가의 성정을 울리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시인에겐 밥물을 재는 시간 싹/ 마음속에 낙담밖에 남
이용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학여울 풍경》.푸른 잉크가 번지는만년필로 서명을 하는 모습에는 삶의 연륜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시집을 받아들고 첫 만남을 생각하였습니다. 오래전, 소년 같은 시인은 막걸릿집에 혼자 앉아 카메라를 만지며 긴 침묵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날 경주는 추웠고, 작가 모임이 끝나고 겨울 서라벌의 밤이 아쉬운 저와 벗은 숙소 가까운 보문호로 처용가를 부르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찬바람에도 천년 고도의 향기를 품어 행복하기만 하여, 막걸리나 한잔하자며 들어선 곳에는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시인이 앉아 파전을 펼치고 막걸리를 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람 같은 문우 한 명을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 시인의 시가 더 여물어가고 열매를 맺고 다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삶의 편린(片鱗)과 시대의 풍경이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들이 SNS를 타고 흘러들곤 하였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외로운 늑대이며, 문안 인사를 드리러 새벽이슬에 옷자락을 적시는 아들이며, 아직도 청년 장교의 마음으로 검을 사랑하는 바람 같은 영혼입니다. 강에 비추어진 설산의 얼굴이 제게 온 시집의 첫모습이었습니다. 산비탈에 내린
장마가 길고 질기게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울한 우기를 견디며 비가 잦아드는 시간이면 가까운 숲으로 산책을 합니다. 물기 머금은 숲에는 하얀 버섯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다시 스러지고 있습니다. 집중 호우가 지나간 자리에 여물지 못한 푸른 밤송이와 도토리, 때죽나무 둥글고 여린 열매가 보입니다. 흰구름이 휘감은 고운대 암봉이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봄철 고운대 주변에는 진홍의 아름다운 철쭉이 피어납니다. 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라의 어느 여인도 이 자리에서 저처럼 감탄을 하였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나를 위해 헌화가를 부르며 철쭉 한 송이를 꺾어줄 사람을 찾아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기분 좋아집니다. 역사서『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수로부인이라 고운기 교수는 말합니다. 신라 성덕왕 때, 수로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철없는 미녀 수로부인은 해변에서 점심을 먹다가 절벽에 핀 철쭉꽃을 탐냅니다. 아무도 절벽을 오르지 못하는데, 한 노인 암소를 몰고 가다가 멈춰서더니, 그 꽃을 꺾어와 바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가 ‘헌화가(獻花歌)’입니다. 이틀 뒤 그녀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사건을 일으
깊은 강, 신이여, 나는 강을 건너, 집회의 땅으로 가고 싶어라 -흑인 영가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흑인 영가의 한 구절입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닌 저는 엔도 슈사쿠의 책을 처음 만났습니다. 헌책방에서 푸른색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 보여 무심코 사 와서 몇 달 동안 책의 존재를 잊고 있었습니다. 장맛비에 읽어야 할 책을 찾다가 ‘깊은 강’이란 묘한 울림이 느껴지는 제목에 빗소리를 들으며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저는 갠지즈강의 긴 흐름에 몸을 맡긴 방랑자처럼 책 속에 젖어 들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네 사람은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나게 됩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은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찾아 인도로 간 것입니다. 신분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어 안는 어머니의 강 갠지즈와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는 사람들을 통해 치유와 안식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가장 이소베는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런데 아내는 유언으로 자신이 꼭 다시 태어날 것이니 자신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게 됩니다. 이소베의 아내를 간호했던 미쓰코는 대학 시절 그저 장난으로 유혹했다 버린 카톨릭 신자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
한교닷컴 e리포터로 활동 중인 수필가 이선애는 최근 독서에세이《강마을에서 책읽기》 (출판사: 지식과 감성, 값13,000원)를 출간하여, 온라인 7개 매장과 전국 대형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책읽기로 구성하여,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책읽기가 혼융된 모습을 보인다. 권대근 교수(대신대학원대학교)는 ‘책갈피 속에 숨은 감성적 창조 역량과 사계의 숨결’이라는 평설을 통해 “읽고 쓰는 가운데 지혜가 생기고, 쌓이는 지혜에서 사고는 계속 높아지는 것이다. 높은 사고는 그만큼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행동을 효율적으로 하게 한다. 이선애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생활이 건전해지고 향상되며, 높은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를 쌓아가게 마치 숨을 쉬듯, 읽고 쓰는 일을 해내는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선애, 경남 의령 지정중 교사)이 독서 에세이집 《강마을에서 책읽기》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읽어 내는 고통을 즐기며,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에 빠진 저자가 책에서 얻은 지혜를 세상과 나누고자 한 것이다. 이 독서 에세이집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황병기의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김훈의 《자전거 여행》, 왕양명의
우기입니다. 장맛비는 우수수 내리다 그치고 다시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아파트 앞 화단에 일곱 그루의 배롱나무, 다섯 포기 참나리꽃, 노랑 꽃이 새치름하게 핀 각시원추리 두 포기, 여기저기 피어난 루드베키아가 비에 젖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비 내리는 화단 풍경에 눈을 맞추고 잠시 쉬다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 아침 나절, TV를 켜니 유명 정치인의 죽음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정치인의 아들과 주변인들도 계속해서 보도자료로 생산되어 인터넷에 떠돌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과연 진실일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일부 황색 언론이 선정적인 태도로 누군가의 삶에 대해 보도하고 있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 생각합니다. 칠월의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롬의 잃어버린 명예』입니다.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폭력 즉, ‘언론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정관리사로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아파트까지 소유하고 있는 스물일곱 살의 섬세하고 단정한 이혼녀 카타리나 블롬 개인의 명예는 언론의 폭력에 의해
나무는 씨앗을 낳고 씨앗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다시 씨앗을 낳는다. 봄빛은 잎과 꽃을 만들고, 꽃은 열매를 만들고, 잎은 열매를 키우고, 여름빛은 열매를 살찌우고 ..... 열매는 이제 가을바람을 기다린다. p.14 『신갈나무 투쟁기』의 주인공은 비교적 높은 곳에서 사는 흔히 볼 수 있는 참나무의 한 종류이다. 신갈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전체 숲의 면적 중에서 소나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이 증가할 것으로 지은이는 예상하고 있다. 가을 산에 오르다 만나는 도토리는 참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들의 열매를 통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 도토리가 자라는 과정을 나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리하고 있다. 어미 나무는 소나무들 틈에서 숱한 고난을 견디며 키워낸 도토리를 최대한 멀리 떠나보낸다. 어미나무의 곁을 떠난 열매들이 시간의 변화를 통해 멋진 청년 나무로 자라나는 과정과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가지 자연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세세하고 재미있게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 삶을 따라가는 것이 무척 즐겁다. 전체적 책의 얼개는 ‘세상 밖으로, 생장, 생장을 위한 전략, 겨울나기, 꽃, 적과의 동
비 갠 유월의 숲은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을 감싸고 자잘한 하얀 꽃이 다발로 피어 있습니다. 제가 매주 오르는 산은 무학산입니다. 옛 마산 시가지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크고 작은 능선과 여러 갈래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학산의 옛 이름은 두척산입니다.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면서 산세를 보니 학이 나는 형세같다 하여 무학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완월동에서 보면 무학산 줄기를 따라 먼저 몇 길의 절벽으로 이루진 아름다운 암봉인 학봉이 보입니다. 이곳의 다른 이름은 ‘고운대’입니다. 최치원이 수양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운대는 평평한 바위가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로, 무학산의 정기가 넘쳐흐르는 듯하면서 아름다운 합포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구름이 고운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기라도 하다면 마치 신선이 사는 곳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고려를 대표하는 천재 시인 정지상, 조선의 이황(李滉)과 정구(鄭逑)를 비롯한 학자들이 이곳을 찾았고, 월영대와 더불어 신선이 사는 곳과 같다고 노래한 명소입니다. 무학산의 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상은 학 몸통의 중심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서
주말이면 가까운 숲으로 갑니다. 해가 산허리를 넘어서면 배낭에 물통과 빵 한 조각을 넣고 복실이 간식도 몇 개 챙겨 집을 나섭니다. 산자락에 사는 덕에 금방 무학산 완월공원을 지나 산불초소에 도착합니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어 넣고 맨발로 천천히 산을 오릅니다. 비가 내려 찐득하고 붉은 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옵니다. 등산로를 천천히 걸으며 온몸으로 산의 기운을 느낍니다. 푸른 차나무와 꽝꽝나무, 산벚꽃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가 반깁니다. 소나무의 넘실거리는 붉은 줄기가 용비늘처럼 같습니다. 숲 친구들과 웃으며 눈인사를 나눕니다. 숲은 하얀 때죽나무꽃으로 장식하고 저를 반깁니다. 별처럼 하얗게 빛나는 그네들을 만나는 산길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하얗게 빛나는 별 모양의 꽃들이 은하수처럼 흩뿌려져 있습니다. 밟고 지나기에 너무 아깝습니다. 우수수 밤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면 저 모양일까요? 그런데 무심한 사람들이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로 으깨어 밟습니다. 하얀 꽃송이들이 안타까워 자리를 뜨지 못하고 혼자 동동거립니다.^^ 이 좋은 시간을 함께하는 벗이 둘 있습니다. 첫째 벗은 아파트에서 지내다 주말만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집‘복실이’입니다. 몇
보리밭은 까끄라기가 벌어진 이삭이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망종이 멀지 않아 보리타작할 때가 다가오나 봅니다. 토실하게 잘 여문 마늘과 수확할 때가 다가오는 양파가 수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서둘러심은 어린 모가 무논에 어릿하게 서 있습니다. 뻐꾸기 소리가 날로 짙어져서 하루 종일 강마을 휩싸고 있습니다. 사이사이 산비둘기는 구우 구우 구구구 중저음의 울음을 토해냅니다. 무심한 봄이 가고 있습니다. 지척에 여름이 당도하였나 봅니다. 농촌의 봄수확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저 역시 봄 수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썼던 아침독서편지와 독서 관련 에세이를 모아 책을 엮었습니다. 표지 디자인 최종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강마을에서 책읽기』라는 제목입니다. 이렇게 읽기와 쓰기는 제 삶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처럼 책을 읽고, 내용을 베껴 쓰고, 생각을 갈무리합니다. 고미숙 선생의 책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는 책 한 권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제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생각하면 밝고 명랑한 겉과 다르게 속으로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저를 휘몰아쳤습
희랍 즉 그리스의 고전 읽기는 늘 어렵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에게 닿은 그 책의 내용을 파악한다는 것은 숨은그림찾기처럼 생각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알기 쉽게 설명된 안내서 한 권을 동반한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희랍 고전 전문가인 강대진 교수의 책을 제 희랍고전 읽기의 동반자로 선택하여 읽었습니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기에 이해가 더 쉬웠습니다.^^ 『오뒷세이아』는 문학 장르상 서사시에 속합니다. 운율이 있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번역본은 더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래의 문장을 보십시오.잿더미 속에 불씨를 감추고 있는 모습으로 비유된오뒷세우스는 어떤 의미인지 알기어려웠습니다. 이런 부분을 저자는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근처에 이웃이라고는 없는 가장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검은 잿더미 밑에도 타고 있는 나무들을 감추고 있어 불씨를 보전하게 되고 다른 데서는 불을 가져올 필요가 없을 때와 같이, 꼭 그처럼 오뒷세우스는 자기 몸을 덮었다. 5권 488~491행 오뒷세우스가 바다에서 빠져나와 나뭇잎을 덮고 잠드는 장면이다. 여기서 오뒷세우스는 재 속에 묻힌 불씨에 비
산은 초록의 숨결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참나무 무리의 톤 다운된 노랑 꽃차례와 보드라운 잎으로 가득한 산으로 들어서면 먹먹한 푸른 기운 앞에 숨이 막힙니다. 우렁우렁한 산이 깨어나고 산줄기마다 숨겨진 계곡은 맑은 물줄기를 개울로 흘려보내는 기분 좋은 소리로 부산한 계절입니다. 사시사철 산에 올라도 늘 다른 표정으로 만나는 산이 무성한 이곳은 대한민국입니다. 저는 숲과 강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바다보다는 산에서 풍겨 나오는 푸른 기운과 나무들의 청청한 웃음과 산자락 접힌 곳에 흐르는 냇물에 발을 잠그고 있을 때 기분 좋은 서늘한 감촉을 좋아합니다. 숲으로 산책을 다녀와서 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푸른 산과 맑은 물과 논바닥을 기는 거머리마저 그리워하며힘없는 나라에서도 더 힘없는 백성들이 살기 위해 떠나간 먼 이국의 슬프고 아픈 이야기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1905년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들의 이민사(移民史)를 그려낸 장편소설로 2004년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가장 약한 나라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 경영을 강렬하게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백 년 전 멕시코로 떠나 완전히 잊혀 버린 이들의 삶을 간
어여쁘게 피었던 봄꽃이 우수수 날립니다. 연분홍 꽃잎은 발길이 뜸한 식당 문 앞에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가게 문을 열고 초로의 아저씨 한 분이 빗자루를 들고나와 마른 꽃잎을 쓸고 있습니다. 봄이 쓸려 가고 있습니다. 지구를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상관없이 계절은 속절없이 가고 있습니다.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 없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게 되는 이 사태가 안타깝고 슬픕니다. 그래도 우리는 성실하고 꿋꿋하게 버티며 나아가야겠지요. 이 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책을 추천하라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입니다. 조용한 해양도시인 오랑시가 페스트로 감염되고 대유행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극한상황 속에서 죽음의 공포로 인한 인간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전염병으로 도시가 봉쇄되어 고립되면서 의사 리유를 중심으로 페스트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파루는 외지인이지만 리유를 도와주기 위해 민간인 자원봉사대인 ‘보건대’를 만들어 병자들을 돕습니다. 보건대에서 성실하고 위대하며 우스꽝스러운 그랑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 봉쇄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지 못하게 된 파견 기자 랑베르는 끊임없이 도시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에는 마음
눈길 닿은 곳마다 봄꽃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네들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습니다. 꽃잔치가 펼쳐진 남도에는 어디에나 사회적 거리두기 현수막이 보입니다. 꽃구경을 내년으로 미루고 집에서 가족들과 에어프라이어에 튀긴 닭과 맥주를 멀리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흔들리는 벚꽃나무를 보면서 즐겼습니다. 개학이 자꾸만 미루어 지다 보니 교과 진도표를 3번이나 고쳐 썼습니다.^^ 교육과정 시간 감축으로 재구성하는 수고보다는 아이들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동네 사람들과 하는 독서모임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온라인으로 이달의 책을 추천하고 간간이 안부를 전합니다. ‘강원도 감자 드디어 구입!’라는 메시지를 달아놓은 벗이 추천한 책이 『보건교사 안은영』입니다.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인 그녀가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면서 3월의 도서로 단체 밴드에 소개하였습니다. 요즘같은 시기에 읽으면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당장 구입하였습니다. 집 앞 백목련이 꽃잎을 떨구는 날 읽은 그 책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보건교사가 퇴마사라니요. 이 환상적인 조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으니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보건교사이자 남들이 볼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