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동안에 일독을 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책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는 것처럼 일상이 된 공병호 연구소에서 만나는 칼럼과 서평으로 낯익은 책을 책방에서 만났을 때, 오래전 친구를 만나는 것같은 친숙함으로 다가온 책이다. 한 경제학자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내게는 늘 도전해 보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미래의 화두가 '창의성'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개인이건 회사이건, 국가이건 간에 남과 다르지 않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체제가 아니고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가장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지닌 젊은이들을 앞에서 인도해야할 선생님들의 사고는 어떤 집단보다 더 창의적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과거를 답습하고, 권위를 내세우며, 경직된 질서만을 고집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세대를 인도할 가치로서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격한 도덕률과 높은 정신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행동으로 옮길 수있는 젊은 그들과 함께 발을 담글 수 있는 유연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 때 '스승'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 책이다. 이 책은 '창의적인 내가 되고 싶다'는 화두
오늘은 독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꼬마 신사 한서효가 학교에 오는 날입니다. 여름 방학 동안 못 본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고 독도 이야기도 듣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화단가에서 서성이다 곱게 핀 다알리아꽃이 어린 날의 우리 집 꽃밭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작은 꽃밭에 가득 피어 있던 다알리아꽃과 백합꽃을 비롯해 화단가의 작은 돌들의 모습까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여덟 시를 넘기며 산골 아이들의 목소리가 교문을 너머 달려오기 시작하고 출근하는 트럭에 아랫마을 아이들을 잔뜩 싣고 오신 이주사님이 도착하니 학교는 떠들썩해집니다. 그 뒤로 피아골 아이들을 싣고 내려오신 자모회장님의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보태니 학교는 부자가 됐습니다. 달려오는 서효가 내 품에 와락 안깁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 "나도 보고 싶었어." 나는 이 꼬마 신사들을 만나는 재미로 날마다 나이가 어려지는 샘물을 마시고 삽니다. 등굣날 학교에 못 온 미안함을 갚으기라도 하신 듯, 서효 엄마는 울릉도 오징어를 품에 안기며 미안해 하십니다. 오늘은 학생회장 선거가 있는 날이라서 회장 후보인 하
'나는 왜 지식에 목말라 하는가?' 아직도 매미는 운다. 밤송이들이 살쪄 가는 초가을의 교정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넘기는 책장의 의미를 자신에게 묻는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아니 채울 수 없는 갈증을 탓하며 나를 얽어맨 정신의 감옥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본다. 아무나 살 수 없는 곳, 오고 싶다고 아무 때나 올 수 없는 천혜의 땅에서 숨쉬는 순간을 기록할 날을 시간을 재며 나 자신과 싸운다. 이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이 정확히 99일 남았다. 부모님과 함께 독도 여행을 떠난 서효가 없는 교실은 참 힘이 없다. 배 편이 맞지 않아 개학날을 놓쳤다며 미안해 하는 서효 엄마의 전화에도 그리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맞벌이라서 늘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사느라 자식들이 어렸을 때 여행을 시켜준 기억이 없으니 내 반 아이만이라도 여행의 기쁨을 갖게 하는데 동의한 것이니... 우리 반의 분위기 메이커인 서효가 없으니 아이들도 시무룩하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보는 기쁨에 달려온 아이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보다 먼저 품 속으로 달려든 개학날. "얘들아, 서효는 참 나쁘지. 응. 우리만 놔두고 저만 여행 가서 안 오니 말이다." 아이들은
며칠 전 도교육청에서 추진하는 복식수업 연찬회의 강사로 차출되어 우리 학교에서 추진해 온 실적들을 복식학급이 낯선 선생님들께 진솔하게 전해주면 좋겠다는 도장학사님 덕분에 강의 원고를 내놓고 참 많이 고민했다. 차라리 원고를 몽땅 써내고 말지, 발표공포증이 많은 내 심장은 며칠 전부터 방망이질을 해댔다. 이래서 수줍은 아이들 심정을 또 절감했다. 발표를 잘 못하는 아이들의 붉어진 얼굴, 주춤거리는 태도, 자신감의 결여를 내 스스로 실감나게 체험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더 너그러워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듣는 내 태도까지 반성하게 되었다. 10분짜리 연설을 위해서 몇 시간을 준비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보다 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주제가 '창의적인 복식학급 운영사례'였기 때문에 바로 그 '창의' 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나는 그 '창의'를 강의에 넣기 위해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 순신 정신'에서 찾아냈다. 미래의 화두가 '창의'임을 생각하면 이 순신 장군만큼 창의적인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주어진 악조건을 극복하며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
내게는 습관이 된 행동이 하나 있다. 신문을 볼 때나 텔레비전 뉴스를 접할 때, 짧은 인터넷 뉴스를 볼 때도 습관적으로 '감동 뉴스'를 찾는 버릇이 그것이다. 라디오 방송으로 즐겨 듣는 프로그램에도 '굿 뉴스'를 즐겨 듣는다. 이러한 작은 행동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교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착하고 좋은 행동은 얼른 발견하여 크게 칭찬해 주고 언짢거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몰래, 작게 꾸중하여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장점을 살리며 자존감을 잃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소식보다 긍정적인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쏟아내는 말과 글도 긍정적인 내용일 때 뇌내 호르몬이 왕성하게 반응하여 행복바이러스를 내뿜는다고 한다. 그것은 마약인 모르핀보다 6배나 강하면서도 전혀 독성이 없는 물질이 뇌에서 생성되며, 부정적인 언어를 듣거나 쓰는 경우에는 독사의 독만큼이나 강한 아드레날린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일찍 감동 뉴스는 많은 생각을 갖게하는 '아름다운 아이들'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이 백혈병에 걸린 담임선생님의 치유를 위해 바자회를 열어 모금을 했고 이에 감동한 학부모님들이 동참하여 투병중인 선생님과 그 가족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00입니다." "S대생 한00?" "소식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그 동안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넉넉치 않은 가정 환경을 딛고 시골 읍내에서 일류대학을 진학하여 고장의 자랑이었던 제자. 성우 뺨치는 멋진 목소리로 내 휴대폰을 두드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광중앙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가르칠 때 유별난 추억을 남긴 제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30대 초반의 나는 무모하리만큼 파격적인 교육 방법이나 에피소드를 많이 남기며 6학년을 가르치던 정열이 되살아났다. 수학경시대회를 지도한답시고 하교시키지 않기, 수요일 오후까지 가르치기를 비롯해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설득하고 회유하며 수사반장 노릇까지 하며 기어이 버릇을 고치곤 했었다. 40명 가까운 6학년 아이들과 사는 일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을 참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나라도 더 가르칠 욕심에 점심 시간에 공부 가르치는 일은 다반사였고 쉬는 시간 잘라서 형성평가까지 보게 하는 못된 담임이었음을 후회한다. 그러기에 아이들과 즐거웠던 추억들이 별반 없다. 오히려 아픈 추억은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가정 불화로 가
작년 9월 4일, 첫 방송을 타며 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온 이순신 장군의 모습. 오늘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불멸의 이순신'은 끝났다. 그러나 그 분은 이제 시작이라는 불씨를 내 마음 속에 던졌다. 내 나라를 지킨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이외에는 어떠한 사심도 없이, 운명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그 비장함이 전편에 흐르고, 영원한 짝사랑으로 주군의 매서운 의심을 받으며 돌아오지 못할 길로 몰입하는 한 인간의 고뇌와 절망이 민족을 지키는 희망으로 승화되던 마지막 장면의 영상이 방송의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았다. 자신의 몸보다 더 아끼는 부하의 죽음을 비통한 눈물로 보내는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앞에 숙연해졌다. 아직도 그 분의 죽음은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하니 아직도 그 분은 우리 앞에 그 진실을 내놓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른다. 한 편의 잘된 영화를 보고 난 감동이 아닌, 아직도 내 곁에서 살다 가신 부모님의 모습처럼, 늘 알고 지내던 분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만약 이 순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을 인정받아 주군으로부터 깍듯한 대접과 사랑을 받았다면 이렇게 아쉽고 애달픈
며칠 전까지 내가 근무하는 피아골엔 휴가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늘을 찾아, 물을 찾아 가족들과 아니면 연인들과 무리지어 오는 사람들. 때로는 학교에 들어와서 노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네들이 가고 난 다음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지성인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학교에 말도 안하고 저녁 늦게 까지 야영을 하고선 촛불 잔치의 흔적으로 온통 어질러 놓고 가는 경우도 있어 마음 상하게 한다. 자신의 쓰레기 하나도 감당 못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며 자연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휴가' 또는 '여행'의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원시로 돌아가는 것, 소유로부터, 존재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탓에 나는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엔 책 속으로 도피하는 일이 나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에 잠을 깨면 학교 앞 개울가에 나가 아침 나들이 나온 다슬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발을 담근다. 돌아와서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채소 밭에 나가 풀을 매 주고 상
요즈음 나는 개인적으로 미래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강의 요청이 생기면서 관심의 분야가 넓어진 때문이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몇 명의 아이들과 오붓하게 살면 그만이었던 시야가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 알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가진 지식의 지평이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지 부끄러울 지경이다. 하루에 100권 이상 출판되는 책의 제목조차도 접해 보지 못하고 오늘 하루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때늦은 철듦에 한숨이 일어나곤 한다. 그 동안 나무만 보고 세상을 살아 온 것 같고 지극히 단편적인 삶에 안주해 왔음을 생각하면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산골 분교에 근무하다보니 언제부턴지 텔레비전을 안 보게 되었다. 그 대신 불어나는 책들이 텔레비전이 차지했던 시간들을 대신해 주게 되었다. 어쩌다 주말에 집에 가는 경우에도 텔레비전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 된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에 리모콘맨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소파에 눕거나 앉아서 연신 텔레비전 채널을 리모콘으로 조종하며 시간을 보내는 남편을 가리키는 단어로 알고 있다. 많아진 프로그램만큼 볼 시간도 늘어나서 좀처럼 텔레비전을 끌 생각을 하지 않는 남편. 틈만 나면 텔레비전 좀 끄고 살
사랑스러운 제자, 서효에게 서효야, 안녕? 먼저 이렇게 답장이 늦어진 것을 참 미안하게 생각하며 사과한다. 네 부모님께 안부 전화는 드렸지만 내가 먼저 편지를 쓰지 못한 것이 부끄럽구나.오랜 동안 집을 비우고 강진에 다녀오니 네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대견했단다. 글씨를 보니 매우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참 많아서 혼자 많이 행복했단다. 뭐든지 잘 하는 우리 반의 ‘한 박사’님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글씨 쓰기였는데, 깨끗한 종이에 일일이 줄을 긋고 반듯반듯하게 써서 보낸 너의 편지에 감동을 받았단다. 빨리 여름 방학이 끝나서 선생님과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너의 마음처럼, 나도 어서 개학이 되어서 귀염둥이 우리 반 친구들과 즐겁게 살고 싶구나. 항상 부지런해서 심부름도 똑 부러지게 잘 하고 친구를 도와주는 일도 매우 좋아하며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다녀서 아는 것도 많은 1학년 박사님! 생각도 깊어서 말도 잘 하는 너를 보며 날마다 행복한 1학기였단다. 그 동안 바이올린도 열심히 배우고 있겠지? 좋은 책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오라고 욕심을 부린 선생님도 서효에게 지지 않으려고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으며 책도 많이 읽고 있단다
2005년 8월 21일 입법 예고된 '부적격 교사 영구 퇴출' 소식은 2학기 개학을 앞둔 교단에 자성의 목소리와 더불어 부끄러운 모습을 온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에 충분했다. 마치 우리 나라에는 범죄를 저지른 교사들이 많이 있음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해서 내 반 아이들이, 옛 제자들이 볼까봐 부끄러웠다. 대통령도 탄핵하는 세상, 부모를 유기하는 세상, 이젠 스승(아니 교사인가?)도 퇴출되지 않으면 이상한 논리가 아닐까? 바야흐로 세상은 투명성을 향해 가고 있다. 불법 도청이 징벌을 당하고 금품 로비 의혹으로 옷을 벗는 고위직 관료들과 엘리트 집단의 모습에 비한다면 교직에 대한 징벌은 이제 시작인 지도 모른다. 군사부일체를 논하던 의식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을 수 없으리라. 위기가 곧 기회임을 잊지 않는다면, 이제 교단이 새롭게 거듭나야 하는 시기임을 절감하게 된다. 부적격 교사 퇴출의 조건은 다분히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교육 현장에서 '사도헌장'을 마음에 새기고 '무명교사 예찬'을 숭배하던 초임 교사 시절로 돌아가 '초심'으로 다시 일어서야 함을 생각한다. 일본의 한 생태학자가 개미의 생태를 연구한 결과, 근면의 상징답게 열심
음력 7월 보름이 지나고 처서를 앞둔 요즈음의 아침 공기는 제법 시원하다. 자지러질 듯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한풀 꺾인 듯 하더니 풀 여치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며 이른 잠을 깬다. 강진에서 올라와 보니 선생님이 보고 싶다며 편지를 보낸 1학년짜리 우리 반 한서효의 편지가 오랜 동안 편지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린 ‘편지’ 현대인들은 편지가 주는 아기자기한 사랑과 그리움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방학이면 편지를 주고받던 교단의 모습도 이메일로, 문자로 전화로 대체된 지 오래이다.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이라 문명의 때가 끼지 않은 모양이다. 참 오랜만에 받아든 편지를 읽으며 이젠 다 자라 어른이 되어가는 제자들의 옛 편지를 보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물건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는 말을 되새김하며 우리 집 책꽂이에서 뽑아든 책, (정민/마음산책)를 읽으며 때 이른 초가을을 준비한다. 조선 시대와 고려 시대의 문인과 학자들이 남긴 글을 재조명한 120개의 문장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한 책이다. 책 제목이 풍기는 사색의 그림자는 내면을 시원하게, 때로는 호된 꾸지람으로 정신을 후려치는 죽비 소리로 다가선다. 첫
"이 어린이는 아는 것이 있어도 발표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통지표에 담임 선생님이 남기신 기록이다. 발표를 잘 하면 더 좋겠다는 취지로 쓰신 글이었겠지만, 내게는 낙인이 되어 버린 문장이다. 그렇다고 발표를 하지 않아서 꾸지람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이제는 내 나이가 그 때 담임 선생님만큼 되었으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지적이다. 나는 지금 내일 있을 두 시간 짜리 강의를 위해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강의 자료를 정리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을 25년 가까이 가르쳐 왔으면서도 아직도 대인공포증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급 정교사 자격 강습을 받는 젊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연수원에서 실시하는 강의이니만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망, 교사로서 살아온 진솔한 경험을 선배 입장에서 강의를 부탁받은 때로부터 내 마음은 늘 긴장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면 빨라지는 말투와 놓쳐버리는 핵심에 심장이 두근대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글을 써서 수십 장 나누어 주는 일이 훨씬 쉬울 것만 같다. 이미 제출한 강의 원고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더 많이 해야 될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이면 식사 준비와 함께 시작되는 컴퓨터 부팅. 제일 먼저 한교닷컴과 오마이뉴스를 검색하고 두 번째 들르는 곳이 '공병호의 경영연구소'이다. 학교라는 경직되고 다소 고답적인 장소에서 일하는 관계로 세계적인 동향이나 시각이 무디어질까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행동이기도 하다. 한교닷컴에서는 교육계의 동향과 가르침을, 오마이뉴스에서는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공병호연구소에서는 경영전략이나 책 소개를 통해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곤 한다. 방학을 맞아 서평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서 서점에서 /해냄/ 을 구입했다. 실용주의와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공병호 박사의 커뮤니티에 소개되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으며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한 번 읽은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충격이었다. 10년 후를 다루고 있지만 바로 오늘의 문제이며 지금 바로 서지 않으면, 긴장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우리 제자들의 미래가 불투명할 수 밖에 없는 증거들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느림의 철학이 솔솔 풍겨나오는 요즈음. 웰빙 바람이 불어서 느슨해진 것 같은 일상 속에서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세계 시장의 모습
"감사함의 크기 만큼 행복하다" 이 말은 동양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한 말이다. 또 어떤 이는 사랑의 크기가 그 사람의 인격을 죄우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 그릇이 크고, 가족을 넘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의 그릇이 크다는 뜻이다. 광복절을 맞이한 오늘,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걸며 내 사랑의 크기를 생각해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 그릇은 작지만, 그래도 희망이 남아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 자식들을, 교실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자는 다짐을 하며 태극기를 걸었다. 나는 여름 방학을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휴가철이라며 산으로 들로 물놀이나 피서를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반 년 동안 제대로 읽지 못한 책들을 만나는 일, 신간 서적을 사서 읽는 일, 이미 읽었던 친구같은 책들을 다시 보는 기쁨만으로도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박노해의 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은 1998년 1월에 사서 읽으며 무척 감동을 받았던 책이다. 책 갈피마다 내 생각들이 적혀 있고 작가와 같이 마음 아파한 대목들이 정겹게 다가 왔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이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