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1일 입법 예고된 '부적격 교사 영구 퇴출' 소식은 2학기 개학을 앞둔 교단에 자성의 목소리와 더불어 부끄러운 모습을 온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에 충분했다.
마치 우리 나라에는 범죄를 저지른 교사들이 많이 있음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해서 내 반 아이들이, 옛 제자들이 볼까봐 부끄러웠다. 대통령도 탄핵하는 세상, 부모를 유기하는 세상, 이젠 스승(아니 교사인가?)도 퇴출되지 않으면 이상한 논리가 아닐까?
바야흐로 세상은 투명성을 향해 가고 있다. 불법 도청이 징벌을 당하고 금품 로비 의혹으로 옷을 벗는 고위직 관료들과 엘리트 집단의 모습에 비한다면 교직에 대한 징벌은 이제 시작인 지도 모른다. 군사부일체를 논하던 의식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을 수 없으리라. 위기가 곧 기회임을 잊지 않는다면, 이제 교단이 새롭게 거듭나야 하는 시기임을 절감하게 된다.
부적격 교사 퇴출의 조건은 다분히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교육 현장에서 '사도헌장'을 마음에 새기고 '무명교사 예찬'을 숭배하던 초임 교사 시절로 돌아가 '초심'으로 다시 일어서야 함을 생각한다.
일본의 한 생태학자가 개미의 생태를 연구한 결과, 근면의 상징답게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집단의 2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집 근처에서 그저 시간만 보냈다. 이번에는 열심히 일하는 20퍼센트만 모아 새로운 집단을 만들었더니 놀랍게도 그 가운데 80퍼센트는 다시 빈둥거리며 노는 개미군이 되었다고 한다.
생태계의 '20:80 법칙'은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보고들이 많이 있다.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1906년, 이탈리아 인구의 20퍼센트가 국토의 8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러한 20:80의 법칙은 일상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의 80퍼센트는 20퍼센트의 친근한 사람들로부터 걸려오며, 20퍼센트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좋은 생각 2005년 9월호 참고)
이를 좀더 확대해서 교단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열심히 노력하는 20퍼센트의 핵심적인, 교육적인·도덕적인·효율적인 교사는 20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누군가 지적한다면 나머지 80퍼센트는 숨죽이고 살아야 할 판국이다.
나는 오늘 심각한 고민을 한다. 20:80 법칙은 '최소 노력의 법칙', '행운의 법칙'으로도 불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과감하게 비효율적인 80퍼센트의 노력을 버리고 가치있는 20퍼센트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하는 깨우침의 시간이 우리 모든 교사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80퍼센트에 들지 않으려는 소극적이고 뒤로 숨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아니라, 좀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확실한 정신 무장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자는 뜻이다.
경제위기의 그늘 속에서 가장 안정적이라는 교직에 대한 선호도는 필연적으로 다소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성이나 품성을 자로 잰듯이 찾아낼 수 없는 출발점이 그렇고, 수요자와 만나는 상호 관계에서 이해 타산이 맞물려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어느 나라보다 높은 교육열은 그 자체로서 이미 문제의 소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적 위주의 교육열은 인위적인 조건을 만들어서라도 더 높은 고지를 선점하려는 '시장 경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교사도 인간이라는 가정을 해보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점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 폭력, 성범죄를 비롯해서 금품 수수, 성적 조작, 시험문제 유출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부적격의 조건을 갖춘 교사를 그대로 둔다는 것 또한 옳지 못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제 나를 포함한 모든 교사들은 양심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일이 여기까지 온 데는 실수였든, 단 한번이었든 간에 우리 교사들의 책임이 크기때문이다. 철저한 자기 반성이 따르지 않고 떠넘기거나 변명하며 실수였음을 강변하는 자세로는 결코 새롭게 나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은 내가 곧 전체의 모습이며 세상의 거울임을 처절하게 자각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어떤 직업보다도 도덕적이기를 바라는 '교직' 자체의 특수성을 깨달으며 '월급쟁이'로서 가장 안정적이어서 너나 없이 교직으로 몰리는 곳이어서는 안 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인간도 처음부터 완전하지 못 하듯이, 교사도 처음부터 천직으로 교직의 품성을 가지고 교단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부단히 만들어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약간 더 인간적이거나 교육적인 자질, 앎에 대한 태도, 생명에 대한 사랑의 농도가 진하다면 충분히 다듬어진다고 생각한다.
'부적적 교사 영구 퇴출'이라는 충격적이고 부끄러운 소식을 접한 오늘, 이 땅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교사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신발끈을 더 단단히 매고 내 어깨에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소신으로 더 열심히 사랑하고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20:80의 법칙이 교단에서만은 통용되지 않기를, 그렇다고 해서 위축되어서 소심해지거나 학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시간만 때우는 80퍼센트가 되어서도 안 되리라.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다'며 가난한 콩나물 교실에서도 분필 하나만으로 배고픈 교단을 지켜 온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경제 대국의 부흥을 이루었으며, 세계 속에서 이 나라의 이름을 빛낸 인재들의 뒤에는 모두 훌륭한 스승이 있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제도가 아버지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없듯, 교권이 침해되는 상황으로 번져서 잃는 것이 많아지는 교단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직종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조조정과 퇴출 바람 때문이 아니라, 건강한 교단을 위한 선택이라는 긍정적인 대책이기를 바란다.
마지막 바람은 너무 가혹한 잣대로 교단을 들쑤셔서 항아리까지 깨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 현명한 정책으로 제자와 학부모, 선생님들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낸 투명하고 엄정한 제도로 정착되어 가장 투명하고 신뢰받는 교단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도 다시 믿을 곳은 '교육'이 아닌가? 세계 과학 특허의 80퍼센트를 생산한다는 미국의 경쟁력이 우수한 교육제도임을 생각하며 창의력과 우수한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말기를 바라며 당근과 채찍의 수평 저울도 갖추었으면 한다.
(가장 선호한다는 교직을 가장 많이 질타하는 우리 나라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선·후배 선생님들이 용기를 내어 새로운 다짐과 희망으로 2학기를 시작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