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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동족상잔(同族相殘)의 6.25전쟁이 일어 난지 올해로 63주년이 지나갔다. 아직도 휴전선을 그어 놓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으며, 천만의 이산가족(離散家族)중에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픔을 안고 한 맺힌 세상을 떠나는 슬픈 역사가 언제나 마감될 수 있을까? 전후세대인 자라나는 고등학생들에게 6.25전쟁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대답한 학생들이 70%나 되었다는 사실에 기성세대들은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엄연한 남침을 북침으로 답하였을까? 그런데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해보니 “북침”이라는 어휘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말로 알고 있었다니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문에서 “6.25전쟁은 북한과 남한 어느 쪽에서 먼저 공격을 했는가?”라고 했으면 당연히 북한이 먼저 공격을 해왔다고 답했을 것이다. 한자어를 사용할 때는 문법상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데서 오는 혼동(混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약 70%가 한자(漢字)어 인데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세대 선생님들도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라서 한자어를 풀어서 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국방부에서는 6.25 전쟁을 ‘북한이 남침을 한 전쟁’으로 용어를 정리하였다고 한다. 줄여서 말하자면 ‘북의 남침’이 정확한 말이다. 문법상으로 보면 남침의 남(南)은 방향을 나타내는 부사로 앞에 북(北)이라는 주어가 생략되었고 침(侵)이 술어(述語)가 되기 때문에 “북한이 남쪽으로 침략을 한 전쟁”이 분명하여 ‘북의 남침’이 완전하게 줄인 문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생활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사상까지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생활도구 이면서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국어생활은 오랜 세월 ‘한글전용정책’으로 일관해 오고 있기 때문에 조상대대로 써온 한자를 외국어라고 못쓰게 하는 어문정책은 대단히 잘 못 된 것이다. 한자는 지금의 중국 땅에서 만들어 쓰기 시작하였지만 한자의 자원(字源)을 풀이해 보면 글자를 만들 당시의 생활풍습이 한자 속에 숨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생활풍습이 우리조상 대대로 이어져 왔고 오늘날에도 상당수가 남아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자는 황하문명권에서 발생한 중국의 문자로 잘 못 알고 있지만 학자들의 연구발표에 따르면 황하문명 보다 훨씬 먼저 발생한 요하문명권의 동이(東夷)족의 글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홍산 문화의 토템은 곰"이라며 홍산 문화의 주도세력인 곰 토템 족이 단군신화의 웅녀 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요하일대에 중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제5의 문명권이 있었다."면서 "그 주도 세력들이 우리 민족의 선조들과 연결된다는 것을 바탕으로 동북 고대사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의 선조는 동방역사의 중심에 있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전통문화를 후손에게 전하려면 우리의 글이며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한글과 한자를 조화롭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한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소리글인 한글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의 국자(國字)는 한글과 한자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화롭게 국어생활을 하도록 어문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간단하면서 중요한 단어도 혼돈을 일으키는데 조상들이 남긴 서적이나 문서를 이해하려면 한글만으로는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 중에는 동음이의(同音異義)어가 많은 것은 20여 가지가 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독해력이 부족 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고 있다. ○○○의사(義士)를 무슨 과(科) 의사(醫師)냐고 물으며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도 구분하지 못하는 고학력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주지역에서 한자(漢字)를 배우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음은 동세서점(東勢西漸)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예견(豫見)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방문화의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은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30) 글자를 풀어보면 눈 목(目)자 위에 손 수(手)를 세워 쓰지 않고 약간 빗겨서 눈과 밀착시켜서 결합한 글자이다. 멀리 있는 경치를 바라 볼 때 눈 위쪽에 손을 대고 바라보는 모양이다. 간(看)자는 회의문자로 바라보다. 지키다, 감시하다. 관찰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看(간)은 시(視)와 달리 먼 곳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뜻을 가진 見(견)과 옛 음(音)이 비슷하여 같은 근본(根本)에서 分化(분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글자의 쓰임을 보면 간주(看做 : 그렇다고 침), 간호(看護 : 환자나 노약자를 보살펴 돌 봄), 간판(看板 : 상호, 업종 등을 써서 내거는 표지(標識)), 간과(看過 : 예사로이 보아 넘김)등에 쓰인다. 사자성어로는 주마간산(走馬看山 : 직역하면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이고 의역하면 “바빠서 대강보고 지나감”이다.)을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요즘 학교 현장에 ‘과태료 폭탄’이 난무해 교직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무슨 소리냐 하면 고용노동부에서 2011년 5월 19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 때 과태료 부과 대상에 대해서는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예고를 한 후부터 최근 2~3년 안에 2건 이상의 산업재해가 발생한 학교를 대상으로 지방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이 조사일 바로 전날에 연락을 한 후에 방문해 현장 점검 후 위반 사항에 대해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의 사항은 한교닷컴 6월 26일 기사(학교에 ‘산안법’ 적용 과태료 처분이라니...)에도 나온 바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 인근 학교에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서 산재가 2건 이상 발생했었던 학교를 방문해서 급식실, 과학실, 자재보관 창고 등을 돌아 보면서 지적을 하고 갔다는 후문을 들었다. 다행히 그 학교는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지는 않았지만 해당학교 행정실장은 그렇게 살 떨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모 고등학교는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천만 원이 넘는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하고, 교직원 건강검진 미수검 인원이 있는 학교는 1인당 5만원씩의 과태료를 부과한 곳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휘발유통이나 보일러 관을 청소하는 청관제에 위험물 표지를 부착하지 않거나 예초기 같은 기계에 사용안전 표지가 없는 경우에도 1차로 과태료 3만 원이 부과된다. 가장 흔한 사례는 산업안전 보건법 요지를 급식실 등에 전부 게시하지 않거나 갖추어 두지 않은 경우다. 또한 과학실 실험실 보관장의 시건장치가 없거나 위험물 표지가 붙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항은 비단 대전만의 경우에 국한되지 않은 듯 보인다.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있는데 노동청 근로감독관 말로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학교를 제대로 살피지 않아서 지적을 받은 후 이러한 막무가내식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이러한 사항이 학교 현장에 대한 어떠한 계도나 홍보도 없이 노동부에서는 2011년에 예고를 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과태료를 남발하고 있다는데 있다. 더욱이 과태료는 학교회계에서 지출할 근거가 없기에 납부 때 이를 둘러싼 교직원 사이의 잡음도 생기고 있다. 사람의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게을리 했다면 지적하고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노동부와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기관의 중요한 몫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태료 즉시부과 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노동부에서 2011년에 이 제도를 입법예고는 했다고 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이를 제대로 아는 교직원이 없었다. 노동부 쪽에서 이러한 사례를 가지고 교육계를 상대로 전달 교육하는 등의 방법도 없었다. 노동부는 교직원들의 관심 부족이라고 탓할 수 있겠지만 어떤 홍보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홈페이지만 올려놓고 단속하는 것은 그 도가 지나치다고 본다. 둘째, 공공기관인 학교의 인력 배치 특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학교는 많은 교직원이 근무한다 해도 안전 관리자나 보건 관리자 등을 선임하기에 인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하기에 자체로 직접적인 관리나 교육은 어려운 편이다. 잘해야 과학실험 때 주의 사항이나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요령 등의 공문을 교육청으로부터 받아서 교직원에게 열람시키는 정도였다. 교육청에서 홍보나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교육부나 교육청의 노동부를 상대로 한 설득이 부족했다. 산업재해에 대한 공문은 간간히 있었지만 과태료 즉시부과 제도는 금시초문이고, 작년에 교육청에서 시설 공사하는 학교의 행정실장들을 불러서 2시간 정도의 교육을 위탁해서 한 기억만 있다. 즉, 산재예방을 위한 경각심 고취를 위해 적어도 1년에 적정시간의 산재예방 교육이 확보 되어야 하고, 교육기관 특성이 반영될 수 있게 노동부와의 사전 교섭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총이 교육부와 노동부를 상대로 한 협의는 시의적절한 행위라고 본다. 과태료(過怠料)는 공법상의 의무이행을 태만히 한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으로서 행정형벌인 벌금과 달리 형벌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 법령을 위반한 행위에 책임을 묻는 행정질서벌이다. 과태료 부과라는 행정행위가 잡음이 없으려면 사전 홍보, 계도 등의 절차가 이행돼야 한다. 심지어 경찰의 심야 음주운전 단속도 사전에 홍보나 계도를 한 후에 실시하고 있는 마당에 지금 같은 산안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즉시부과 제도는 인명을 보호하려는 좋은 목적과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장의 불만과 함께 반발만 드세질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노동부를 상대로 한 협의와 설득이 요구된다.
광양여중에서는 학생들에게 6.25를 계기로 올바른 국가관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6월 21일 7교시에 학생 간부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장 특별수업을 실시하였다. 우리 민족사에 6.25등 험난한 고비가 많았지만 이를 극복한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바로 알아도록 후세들에게 전달하여야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 한국내부에서도 갈등이 많이 있는데 오늘의 대한민국이 나가갈 방향을 바로 잡게 될 것이라는 생각때문이다. 수업을 실시한 후 3학년 한학생이 수업을 듣고 쓴 기록이다. "비극의 기억" 나는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많은 책을 읽었다. 박완서 작가는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찾아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천의무봉이라 불리는 문체로 써낸 많은 글 중에는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글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한번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아름다움에 몸서리가 쳐질 듯한 봄을 묘사하는 따스한 글이었고, 나는 죽 읽어내려갔으나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새롭게 전개될 생활에 대한 예감이 충만한 특별히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러나 하필 19 50년의 5월이었다. (중략) 그 해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는 뒤의 내용을 편히 읽지 못했다. 뒷 내용에 바로 ‘그 해 6월’이 나온 것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그때 후편인 를 이미 읽은 상태였고, 그것은 그 모든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던 사실과 더해져 나를 불안하게 했다. 박완서 작가의 책들은 직접적으로 가장 참혹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섬뜩하고 참담한 마음이 서서히 피어오르게 했다.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읽고 있노라면 오로지 어렴풋한 짐작만으로 채워졌던 전쟁의 끔찍함이, 오히려 담담하게 서술된 문체에서 점점 더 퍼덕거리게 생생해져 내가 잠겨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석 달쯤 지나 공부에 바빠 감정들이 마음속 밑바닥에 조금씩 가라앉았을 무렵,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안보교육 특강 수업에서 다큐멘터리 하나를 보았다. 6·25에 참전하셨던 분들, 그 중에서도 주로 재일교포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나라에 와 싸운 이야기였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을 떠나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러 나간 사람……. 아직 대학생인데도 전쟁에 나가기로 결심했던 사람……. 각종 작전에 동원되어서도 언어의 차이로 고생했지만 끝까지 온 힘을 다했던 사람들……. 그분들이 쏟았던 힘과 노력만큼 그분들의 미래도 밝았으면 좋았겠지만……. 휴전 후 다시 가족이 살던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분들이나, 심지어는 돌아가신 분들도 상당히 많았다. 640여 명 중 135명 전사. 그 중 한 장의 사진은 나를 가장 큰 충격으로 몰고 갔다. 손과 발이 몸쪽으로 오므라든 채 빳빳이 굳어 죽어있는 군인의 모습. 그 뒤에 이어진, ‘사람이 여기에 총을 맞으면 피가 조금씩 나오다 손발을 이렇게 하고 죽는다, 그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라던 앞서 나온 사진을 설명하는 증언은 나를 더 큰 충격에 빠뜨렸다. 전쟁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은 종종 보아왔지만 그저 잔인할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이 같은 모습은 다시 재현된 것에 비할 바 없이 충격적이었다. 비극이었다. 한 민족이 둘로 갈라져서 싸우는 비극, 이라는 자주 나오곤 하는 말을 쓸 것까지도 없었다. 6·25 전쟁으로 약 440만 명의 사상자와 민간인 사상자 (오롯이 남한 측에서만이다) 약 140만 명, 그리고 이산가족 1000만 명이 발생했다.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토록 참혹한 모습이 다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TV에서부터 교과서까지, 북한과 관련되었다 하면 꼬박꼬박 나오던 ‘평화통일’이라는 말의 무게가 새로이 깨달아졌다. 그러기 위해서 얻고 지켜내야 할 안보의 중요성도 새삼 다가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픈 기억이지만, 꼭 되새겨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러하였는지, 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각종 언론매체에서 비치는 남북관계는 오늘도 위태롭다. 그러나 우리는 역시 기억해야 하며, 60년 전의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나라는 진정한 안보의 길로, 평화와 손을 잡고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렇게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무사히 생활할 수 있도록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그분들께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격포초, 전교생 청학동으로 go~ go~ 꿈ㆍ사랑ㆍ재능을 키우는 격포초등학교(교장 김윤배)는 지난주 목요일 전교생이 청학동서당 청소년수련원으로 야영을 다녀왔다. 청소년의 조화로운 인격형성과 가치관 확립, 인성, 예절, 문화를 전수 함양시켜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함양에 목적을 두고 학력향상형 창의경영학교 예산을 지원하여 추진하였다. 첫날은 훈장님의 인성 예절 강의를 시작으로, 사자소학 중심의 한문교육과 심신단련을 위한 선비체조, 둘째날은 사제동행 전통문화 체험으로 우리떡 인절미 만들기, 황토염색과 국궁체험 등 다양한 체험활동 중심의 인성교육을 받고 왔다. 1학년 임해인은 “활도 쏴보고 염색도 하고 밥도 먹고 한자도 배워서 재미있는 즐거운 현장학습이었다.” 2학년 최아영은 “공수 예절이 너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예절을 배웠으니 부모님과 선생님께 효도 할 것이다.” 3학년 임태은은 “인절미 만들어 먹어서 재미있고 맛있었다. 활도 쏘아보고 순수건에 물들인것도 재미있고 신기했다. 훈장님은 무서웠지만 헤어질때는 좀 아쉬웠다.” 4학년 방성주는 “공수를 하고 훈장님 말씀을 들을 땐 좀 힘들었지만, 예절에 대해 배웠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학년 박세원은 “청학동 수련원에서 예절을 배울 때 너무 힘들기도하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예절을 배우니까 뿌듯하다.” 6학년 오은미는 “서당에서 훈장님과 공부할 때는 다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인절미 만들어 먹고 염색하고 친구들과 치킨을 먹을 때는 재미있었다.”고 하였다. 한편 격포초등학교는 학력향상형 창의경영학교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하여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며 꿈ㆍ사랑ㆍ재능을 키우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육공동체가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고 있다.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위기에 몰린 북한은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10월 25일 미국의 진출에 두려움을 느낀 중국은 6․25전쟁에 군대를 보내기에 이른다. 이제 전쟁은 중국군과 북한군, 그리고 UN군과 국군의 대결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북한군과 중국군에 의해 밀려 내려가게 된 유엔군과 국군은 다음 해인 1951년 1월 4일 다시 서울을 내주고 후퇴를 하게 되는데 이를 1.4 후퇴라 한다. 1951년 5월 이후 전투는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한 번은 국군과 유엔군이 이기면, 또 한 번은 중국군과 북한군이 이기는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기에 이른다. 이제 전쟁을 그만하기 위해 1951년 7월 10일 처음으로 휴전을 위한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회의에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마주 앉게 되었다. 이때 한국은 계속 북진 통일만 외쳤기 때문이다. 휴전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변해갔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중국군, 북한군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하여 3년 이상 계속된 전쟁이 멈추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 1129일이나 계속된 전쟁이 잠시 멈춘 휴전 일뿐이라는 사실이다.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휴전이 벌써 6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6․25전쟁 기간 동안 많은 군인이 죽었다. 전쟁 중에 있었던 일이라 정확한 자료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자료를 보면 국군 중에서 약 20만 명이, 북한군인은 60만 명이 죽었다. 또 미국, 중국,영국, 소련 등에서 온 군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0만 명 가까이 늘어나고. 전쟁 중에 군인들만 죽거나 다친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남북한의 전체 인구 3,000만 명 중 약 40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또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10만 명이 넘었고,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을 잃어버리는 이산가족이 되어 슬프게 살아야 했다. 이 것 뿐만이 아니야. 우리 한반도에 쏟아진 폭탄으로 인해 산업시설의 반 이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아픔을 60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고 성장했다. 아직도 중학생 가운데는 ‘38선’과 ‘휴전선’ 이해가 안되는 아이들이 상당수이다. 38선이란 6․25전쟁 전 해방이 되었을 때 위도 38도선으로 남북을 나눈 선이고, 휴전선은 6․25전쟁 후 남과 북이 휴전하며 그은 선이다. 휴전선이란 쉴 휴(休), 전쟁 전(戰), 선 선(線)을 써서 말 그대로 전쟁을 잠시 쉬는 동안 그어 놓은 선이란 뜻이다. 전쟁을 멈춘 지 60년이 된 현재 상황을 바로 인식하는 일이다. 전쟁을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그어 놓은 선이 휴전선이라면 언제든 다시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헐뜯는 옛날로 돌아간다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우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수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한 시점이다.
지난 6월 15일, 청주토요산악회에서 국토의 중앙‧청춘의 고장 양구를 다녀왔다. 이곳에 60여 년 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다 지난 2004년 생태관광코스로 개방된 두타연계곡, 북한이 기습적으로 후방을 공략하기 위해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만든 제4땅굴,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타원형 분지를 감싼 펀치볼과 북한 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을지전망대가 있다. 이른 시간이지만 6시가 되자 용암동을 출발한다. 창밖으로 빗속에서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들이 보인다. 궂은 날씨를 걱정했는데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를 지나던 6시 50분경 붉은 태양이 짙은 구름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마음이라도 편해야 한다. 특히 멀리 떠나는 여행은 더 그러하다. 먼발치로 천년 세월을 이겨낸 농다리가 보인다. 이래서 ‘생거진천’이라고 했나보다. 막 비가 갠 뒤라 들판가득 녹색세상을 만든 풍경이 보기 좋다. 청주토요산악회는 명품 산악회라 총무님이 생수와 떡에 커피까지 타주며 먹을 것을 챙긴다. 더구나 뒷자리에 혼자 앉다보니 장거리 여행에서 공간의 자유까지 누린다. 중앙고속도로 원주휴게소의 무인안내소에서 '국토의 정중앙 양구 즐겨찾기' 여행안내지도를 챙기고 커피도 마신다. 9시경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관광버스가 낭만의 도시 춘천으로 향한다. ‘국토의 정중앙 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 양구에서 자주 만나는 문구와 달리 군사경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왠지 생소하게 느껴진다. 양구에 들어선 관광버스가 9시 40분경 읍사무소와 이웃하고 있는 명품관에 도착했다. 두타연 관광은 양구군청 문화관광사이트에 출입신청을 예약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또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에 두 번 예약을 확인하고 입장료(어른 2000원)를 낸 후 인솔자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청정 환경에서 자란 농특산물과 관광상품을 전시‧판매하는 특산물전시관과 휴가 나온 군인들의 쉼터가 있는 명품관을 둘러보고 10시경 두타연으로 향했다. 양구시내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물줄기가 파로호다. 북쪽으로 31번 국도를 달리면 군용트럭과 군부대가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한우를 키우는 축사, 땅 냄새를 맡은 벼 포기, 인정이 넘나들기 쉬운 낮은 담장 등 여느 시골과 같은 풍경이다. 왼쪽의 460번 지방도로 들어서 녹음이 짙은 고갯길을 오르고 도고터널을 지나 평화누리길이목정안내소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군사작전상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이라 군인들이 술 등 반입금지 물품이 차량에 실려 있는지를 철저히 검사한다. 10시 40분경 바리케이드 사이로 민통선을 통과하자 길가의 철조망을 따라가며 역삼각형의 빨간색 '지뢰' 표지판이 심심찮게 보인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두타연의 상징 열목어 조형물, 두타연과 소지섭길 안내판, 해발 338m를 알리는 나무기둥, 자연보호 표석과 음식물 반입금지 안내문이 맞이한다. 여러 곳의 사람들이 모이니 조용하던 숲속이 왁자지껄하다.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가 두타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두타연계곡의 물은 금강산에서 흘러 내려온다. 사람들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오가지 못해도 계곡의 물은 늘 자유롭다. 11시부터 두타연계곡 트레킹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북쪽의 평화누리길을걸으면 왼쪽으로 전투위령비가 보인다. 6.25전쟁 막바지 주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로 뒤편에 ‘배고픔으로 삼백 예순 날 사무친 그리움으로 삼백 예순 날’로 시작되는 ‘길 가소서’가 써있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위령비의 맞은편 광장에 전후 세대의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했다. 관광객들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도 있다. 낡은 전차와 전시된 작품이 왠지 전쟁으로 일그러졌던 우리의 역사와 남북분단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다. 광장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숲길이 이어지는데 계곡으로 들어서는 오른쪽에 천년의 역사를 지닌 두타사 터가 있다. 발굴 결과 ‘두(頭)’자 명문이 발견되어 절터로 확인되었다는데 지금은 달랑 안내판만 하나 세워져 있다. 삶의 걱정을 없애고 욕심을 버리는 ‘두타(頭陀)’가 이곳의 청정 자연환경과 잘 어울린다. 직진하면 청정 자연 속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두타정과 발아래로 물줄기가 흘러가는 전망대를 만난다. 전망대가 두타연폭포 바로 위에 세워져 금강산 유점사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좁은 바위 사이에서 용틀임하는 모습과 폭포가 만든 큼직한 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잠시 숲길을 따라 두타연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두타연 계곡은 음식물 먹는 것까지 통제하는 청정지역이다. 이곳에서 만난 나뭇잎은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바위들은 울퉁불퉁 생기가 넘친다. 오른쪽 물가로 내려서면 계곡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일부의 관광객은 북에서 흘러온 차가운 물에 손이나 발을 담그고 즐거워한다.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면 북쪽은 물길 위로 높은 산이 가로막고, 남쪽은 방금 지나온 두타정과 전망대가 가깝다. 단순한 이치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징검다리의 돌부리를 넘어 남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남북관계를 생각한다. 냇물을 건넌 후 오른쪽 숲길을 걸어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곳의 조그만 전망대에 서면 맞은편의 두타정과 전망대가 가깝다. 두타연폭포가 왼쪽 바로 아래편에 있지만 나뭇잎이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계곡 옆으로 데크 길이 이어지고, 오른편에 물가로 내려서는 통로가 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연못과 폭포의 멋진 모습을 감상하려면 물가로 가야한다. 이곳이 연못(소)의 깊이가 12m나 되는 국내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 두타연이다. 두타연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금강산에서 흘러온 물이 암반으로 이루어진 협곡의 절벽 밑으로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폭포도 볼거리다. 두타연 아래편의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폭포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자리 잡은 냇가의 출렁다리가 멋지다. 출렁다리를 건너 숲길을 따라가면 생태탐방로가 이어진다. 두타연폭포와 주차장이 가까운 곳에서 탐방로가 끝난다. 해설사를 따라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주어진 시간이 20여분 남았다. 다시 전망대에 올라 12시까지 홀로 시간을 보냈다. 생수를 마시다 또 철조망의 지뢰 표지판과 붉은 꽃을 바라본다. 멀기도 하고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 가까이 있는 사람들끼리 열목어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뱅이골공원의 잔디밭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모든 사물은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활짝 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북한 땅으로 평화를 전하는 전령사를 닮았다. 점심을 먹은 후 오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삼거리에서 북쪽길로 접어든다. 금강산로와 펀치볼로를 달려 양구통일관으로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금강산 가는 길’ 안내판이 들어온다. 돌산령터널을 지나 해안면에서 만나는 통일관의 좌우에 양구 도솔산·펀치볼 지구 전투전적비와 전쟁기념관이 있다. 녹슨 철모가 전쟁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통일관에서 수속을 밟고 1시 40분 제4땅굴로 향한다. 통일관에서 북서쪽으로 달려 언덕 위에서 남침분쇄 조형물이 반기는 제4땅굴에 도착했다. 안보전시관에서 10여분 영상물을 관람하고 전시물을 돌아봤다. 전시관에서 땅굴로 가다보면 화약 냄새로 폭탄을 찾아내 땅굴을 수색 중이던 군인들의 목숨을 살리고 자신은 죽어 소위로 추서된 충견 헌트의 동상, 무덤, 비석이 있다. 우리가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역으로 파내려간 340m 길이의 갱도를 걸어 내려가면 4번째 발견된 제4땅굴을 만난다. 우리가 사용했던 기계가 갱도를 뚫으며 남긴 자국이 나이테처럼 선명하다. 왕복 운행하는 전동차에 앉아 폭이 좁은 땅굴의 내부는 물론 북측이 가설한 선로와 광장을 구경한다. 2시 50분경 가칠봉 능선에 위치한 을지전망대로 향한다. 양구는 높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로 전쟁 당시 9개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지역이다. 전망대에 오르는 산길은 안전벨트 착용을 여러 번 얘기할 만큼 오르막이 급해 차가 신음소리를 내는데 산중턱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또 수속을 밟는다. 드디어 정상에 우뚝 서있는 을지전망대에 도착했다. 개성과 금강산에 다녀오며 봤던 북한의 산은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북한과 우리의 경계선을 한눈에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숲이 우거졌다. 이곳에서는 우리 측의 초소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철저히 사진촬영을 금한다. 날씨가 좋으면 비로봉을 비롯한 금강산 줄기가 육안으로 보인다는데 매봉의 선녀폭포와 자급자족하기 위해 일궜다는 밭마저 희미하게 보였다. 그래도 철조망 너머 북한의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이 멋지다. 냉전시대에는 북한이 우리 군인들을 선동하기 위해 선녀폭포에서 여군들이 비키니차림으로 목욕을 하고, 우리는 을지전망대와 가까운 봉우리에 수영장을 만들고 미스코리아선발대회를 개최하며 지금으로 봐서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코미디가 펼쳐진 현장이다. 전망대에서 펀치볼의 독특한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펀치볼(punch bowl)은 전쟁을 취재하던 종군기자가 해안면 일대의 분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타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 큰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또한 피의 격전지였던 펀치볼 전투에서 총알이 떨어져 주먹으로 싸운 육탄전이 펀치볼을 연상시킨다. 펀치볼포토존에서 기념사진도 남겼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민속전시관 옆 휴게소에서 비빔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4시 40분경 청주로 향했다. 청주토요산악회 임원들 덕분에 의미 있는 여행지 양구를 편하게 다녀간다.
6월 26일(수) 충남 서산 서령고등학교(교장 김동민)는 유명 코미디작가인 신상훈 교수를 초청, 오후 7시 30분부터 8시 40분까지 송파수련관 세미나실에서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펼쳤다. '유머가 이긴다'를 주제로 강연을 펼칠 신상훈 교수는 서울종합예술학교 -개그MC학부 겸임교수로 1년에 200차례 이상 강연을 하는 명강사이다. 신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우리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신비한 힘은 바로 유머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그동안 20여년 간 방송작가 활동을 통해 축적한 유머 노하우를 공개하여 방청객들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강연에 참석했던 학부모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각자 자신 안에 숨어있던 유머감각을 깨울 수 있었으며, 독특한 유머기술을 익힐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령고는 앞으로도 지역주민들의 평생교육차원에서 사회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을 초청, 스마트한 강연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아울러 강연이 끝난 뒤에는 학부모님들과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을 가졌다.
세상에는 이름만 들어도 무엇으로 유명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의 삼성을 존재케 한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헬렌 켈러, 정경화, 조수미, 박지성, 빌 케이츠, 스티브 잡스, 손정의 등이 비교적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찍부터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노력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을 설립한 정 주영 회장은 '나는 새벽에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일이 하고 싶어서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어제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앞을 못 보는 것은 불쌍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전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장님보다도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는 일생을 태양을 보고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둠을 볼 여가가 없었습니다."라고. 애플 컴퓨터를 설립한 우즈니악과 스티브 잡스의 비전은 "컴퓨터를 학생들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려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전을 가진 그날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전을 전달했다. 회사가 어려워서 옴짝달싹 못할 때도, 소매점에서 거절을 할 때도, 제조업자가 제조를 할 수 없다고 할 때도, 은행에서 더 이상 대출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도 애플사의 리더들은 계속해서 도전하고 노력했다. 애플사 창립 후 6년이 되었을 때 회사는 연간 65만 대의 개인용 컴퓨터를 팔게 되었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에 있다. 앞에는 언덕이 있고 시냇물이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좋은 반반한 길만은 아니다. 먼 곳으로 향해하는 배가 전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순탄하게 갈 수만은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충만한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이 얼마나 건조하고 단조로운 것인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마구 뛴다.”고 니체는 말했다. 워렌 버펫은 “난 사실 여러분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수수하게 차려입은 워렌 버펫이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학생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강의실 안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어쩌면 나는 여러분들보다 돈이 더 많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여러분과 나 진정한 차이가 되지 못합니다. 물론 나는 비싼 최고급 양복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입으면 싸구려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내 입맛에는 100달러짜리 고급 음식보다 패스트푸드점의 치즈버거가 더 맞습니다.” 학생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워렌 버펫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과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단지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매일매일 말이죠. 이 말이 내가 여러분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입니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 담긴 역사이다. 올해 정전이 된지 63년을 맞이한다. 아직도 전쟁이 끝난 종전 상태는 아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소홀히 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011년 행정안전부의 국민안보의식 설문조사 결과 청소년의 57.6%, 19~29세의 성인의 절반이 넘는 55.1%가 6·25전쟁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최소한 6․25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무엇을 우리가 할 수 있는가를 찾아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가슴 아픈 전쟁 이야기는 끔찍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고 지우려고 해서는 안 돼. 안 좋았던 일이라도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6․25 전쟁은 한국 땅에서 1950년 6월 25일부터 시작된 전쟁으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 6월 25일 이었기 때문에 6․25(육이오) 전쟁이라고 한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약속한, 정전 협정이 맺어지는 1953년 7월 27일까지 계속 되었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남과 북은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북은 3.8선을 넘어 남쪽을 침략한 것으로, 소련의 도움으로 전쟁 준비를 한 북한군은 준비가 안 된 남쪽으로 밀고 내려와 전쟁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군에게 침략을 중지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북한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남쪽으로 공격을 가하자 이후 6․25전쟁은 단순히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아닌 미국을 포함하여 16개 나라로 이루어진 유엔 연합군이 남한을 도왔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을 도왔다. 유엔군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북한군을 당해낼 수 없어, 7월 16일은 금강 방어선을, 7월 20일에는 대전을 빼앗기게 되자, 8월 18일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가고, 더 이상 밀릴 수 없던 UN군과 국군은 마지막으로 낙동강을 지키기로 결심하여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고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국군과 UN군은 바다를 통해 인천을 공격하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북한군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은 패하기 시작했고, 9월 28일 서울을 되찾을 수 있어. 10월 1일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쳐들어가지. 이 날을 기념하여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이다. 이제 전쟁은 남한 땅만이 아니라 북한 땅으로 확대가 되었어. 그만큼 전쟁이 커진 확대되어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하고, 11월에는 압록강까지, 또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두만강까지 진출을 하게 되었다.
동아일보와 베인앤컴퍼니코리아가 공동으로 평가한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DBCE지수)'에서 한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내는 '아이디어 창출' 단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중국 등 전체 35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쳤다. 학업성취도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뛰어나지만 최하위권에 머문 자기주도적 학습역량이 순위를 끌어내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으로 공부하는 나라로 알려진 우리나라 학생들이 실상의 내용은 실망할 정도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부모의 욕심에 의한 공부라는 점에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두뇌가 우수하고 손재주가 많아 세계 어느 곳에든 한국인의 능력이 돋보인다는 것은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어릴 때부터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창업하려는 의지까지도 약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부모들의 잘못된 직업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게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들의 어렵고, 모험적이며 도전적인 일보다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고 있다.부모들이 꼽은 최고 인기 직업은 의사, 검사 같은 고소득의 전문직이며, 그리고 교사,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들이다. 동아일보가 KOTRA의 도움을 받아 실험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부모 가운데 '아이가 대기업에 취업하길 바란다.'고 대답한 사람은 절반이 넘는다. 창업에 반대하는 한국 부모들은 '창업은 불안정하고 힘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고, 심지어 '아이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롤 모델로 삼았으면 한다.'는 학부모 4명 가운데 3명은 '창업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취업을 권유하겠다.'고 했다. 미국 부모 10명 중 7명, 이스라엘 부모 9명 중 6명이 '아이가 고생하더라도 창업했으면 한다.'고 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 부모들은 자녀의 진로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들 또한 자신의 의지보다는 부모들의 뜻에 많이 따르고 있어학생교육과 함께 부모의 올바른 진로교육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못이룬꿈을 아이들을 통해 성취하려는 성향이 강해아이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러다보다 정작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꿈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우리의 주입식 교육이 남과 다른 사람은 '괴짜'로 몰아가지나 않을까하는 염려다. 많은 교육학자나 전문가들은 우리 교육을 소위 ‘붕어빵식’ 다양성이 결여된 교육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천재를 천재로 키우지 못하고 모두가 같은 ‘둔재’로 키우고 있다는 것이 요즘 우리 교육을 비꼬는 말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을 아음껏 도전하고, 모험할 수 있는 체험적 진로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진로교육의 목표는 자기의 독특한 꿈을 마음껏 펼치도록 도와주는데 있다.지금과 같은주입식 교육과 부모들의 직업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2의 스티브 잡스나 싸이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이나 시행착오 없이 안정되고 편안한 세상을 살기만을 바라는 부모가 있는 한 아이들의 새로운 진로는 요원할 뿐이다.
미래 사회에서는 지식을 기억하고 재생하는 능력보다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 해결력 등의 능력이 중요하다. 2009개정 교육과정에도 이런 교육의 방향이 보인다. 학습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고,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창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 학교 교육은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과 잠재력을 키워줘야 한다. 학생들은 미래 삶에서 직면한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학습의 방향도 이렇게 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수 학습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학습 시간에 교사와 학습자, 학습자끼리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한 의미 구성 과정이다. 비고츠키는 사고의 발달은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학습자의 사고 활동은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을 하게 되면 현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학습자가 자기 생각을 말하고, 나누는 수업은 의미가 있다. 수업이 이렇게 변하면 평가도 그렇게 가야 한다. 암기 위주의 평가를 배제하고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고등 정신 기능 중심의 평가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평가에 대한 고정 관념을 쉽게 허물 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1. 평가에 대한 철학이 변해야 평가에 대한 생각이 유연해져야 한다. 혹시 평가는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평가는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서열을 위한 평가로 인식되는 순간 배움보다는 점수를 얻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한다. 다시 말해서 수업에서 배움이 일어나고, 이를 평가한다는 사고를 해야 한다. 아울러 평가의 본질은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남의 지식이나 생각을 외우는 것보다 자기 생각 갖기를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배제된 배움은 상상할 수 없다. 토론 학습, 협동 학습 등 참여형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 토론을 하고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학생이 주체가 된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함으로써 고등 정신 능력이 길러진다.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면 평가는 자연스럽게 서술형․논술형으로 간다. 2. 평가에 대한 걱정,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 새로운 평가 형태인 서술형․논술형 평가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걱정을 한다. 업무에 쫓기는 와중에 오랜 시간 채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상대 평가 체제에서는 학생의 우열을 명확히 가려야 하는데, 논술형은 채점의 신뢰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논술형 문항 출제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것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논술 능력이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아 점수가 낮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부분은 모두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에 제시된 문제점은 해결 방안이 분명하게 제시된 꼴이다. 즉 출제만 잘하면 평가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답이 담겨 있다. 결국 평가에 대한 우려는 현장의 몫이라는 것만 명확해진 셈이다. 3. 언제까지 현실론 탓을 할 수는 없다 선택형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시제도와 괴리감이 있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즉 현재 수능시험이 선택형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이것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수능시험이 이미 단순한 지식을 암기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사고에 근거한 문제를 해결하는 문항을 묻고 있다. 이러한 평가 경향은 국어뿐만 아니라, 전 교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교사들은 누구나 단순 정답을 외우고 선택하는 평가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경험과 성장을 강조하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4. 평가,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이동해야 우리는 그동안 개인별 성적 비교를 위한 결과 평가에 치중했다. 이를 토대로 개인 성적표를 만들고 그 자료를 근거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내신 자료를 만들었다. 이러다보니 평가를 위한 평가,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고착화되었다. 결국 평가에 얽매이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교실은 정서적 갈등만 양산하게 되었다. 평가는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과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보다는 과정 평가를 해야 한다. 교육은 현재보다 미래에 초점이 있다. 다라서 학생들이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6‧25 한국전쟁 63주년을 맞이하여 조회시간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아이들에게 몇 가지를 질문을 던져 문제를 맞춘 학생에게 준비한 선물을 주기로 하였다. 사전에 예고 없이 낸 문제라 평소 아이들이 한국전쟁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느냐를 판단하는데 충분했다. 우선 6‧25 한국전쟁은 누구의 침략이라는 질문에 아이들 모두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전쟁이라고 답하여 다행이었다. 그리고 발발연도(1950년 6월25일)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알고 있었으며 휴전 협정일(1953년 7월 27일)을 알고 있느냐의 질문에 불과 10%의 아이들만 연도와 일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미묘한 차이점을 드러냈다. 잠시나마 아이들로부터 ‘전쟁’에 대한 소견을 들어보았다. 아이들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허심탄회(虛心坦懷) 이야기하였다. 고3 수험생의 힘듦에서 탈피하고 싶은 생각에 우스갯소리로 전쟁이 났으면 하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아이들 대부분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전쟁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탓인지 그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지난 4월 한반도의 전쟁 위기설로 국민의 안보의식이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국민 대부분이 그 심각성을 잊고 생활하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6‧25 전쟁이 국경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이 날이 갖는 의미를 아이들에게 새겨줄 필요가 있다. ‘안보의식’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듯 주기적인 계기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교총이 교무·행정 환경 개선을 위해 교감을 부교장으로, 행정실을 행정지원실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노총·교육청노조와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입장차를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 교무행정 환경 개선에 대한 교총 입장이 나가자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조는 28일 교총을 방문하고, 행정실의 행정지원실 변경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이에 대해 “행정지원실 변경은 행정실의 지원업무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변경한 것과 같은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학교 교육활동 지원이 원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 상호 입장차를 조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몇 년 전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청와대 고위 공무원과 염문을 뿌렸던 신 모 전 교수를 필두로 정치인, 연예인, 대학교수, 건축가 등의 허위 학력이 고구마 엮이듯이 나왔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학위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쟁이 심해진 사회에서 나를 드러내는 이른바 스펙이라고 불리는 능력을 나타내는 자격증으로서 그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언론의 기사 중 감사원 감사결과 모대학원대학의 편법적인 학사운영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학위를 취득한 일부 교원들의 승진 연수가 보류됐다는 내용이 있었다. 해당 대학원은 충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음식점에서 수업을 하는 등 부실한 교육을 운영했다. 이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한 151명 가운데 30여명이 이를 승진 가산점으로 이용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석사나 박사학위를 승진 가산점으로 인정해주는 교육공무원 승진규정 제36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교사의 경우는 순수한 학문탐구의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을 수 있다. 그리고 부실한 학교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부실한 학사운영 실태를 그대로 묵인한 채 받은 학위는 그 실효성은 둘째치고 도덕성과 양심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불법에 눈감은 채 그것에 기대 학위를 받은 것은 애초의 순수한 뜻마저 오염시키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이런 사례로 인해 그간 주경야독으로 공부해 학위를 받았던 다른 교원들이 도매금으로 비난받게 될 수도 있다. 이 기회에 승진 가산점을 위해 변질된 교원의 석·박사학위 취득에 대한 가산점이 득보다 실이 많다면 폐지하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대학원 수학의 의지가 꺾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학문탐구의 순수한 면보다 오직 가산점 획득을 위한 대학원 진학으로 형설지공의 빛이 바랜다고 본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3년 학업성취도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의 성취도는 교사의 열성과 자질에 따라서 좌우되지 학위소지 여부로 볼 수 있는 평균학력에 따라 결정되지 않았다. 학위소지 자체보다는 자기연찬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순수한 학문탐구를 위한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는 장학금 지급 등 장려정책을 펼 수 있겠지만 부작용이 자꾸 생기는 승진 가산점 운영은 폐지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느 때부턴가 별명은 ‘저니맨’이었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저니맨’은 자주 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포털사이트에 ‘저니맨’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소개가 나오는 선수, 최익성. 실제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프로선수시절 동안 8개 구단 중 6개 구단으로 이적한 국내 유일 선수니 당연히 그럴 법도 하다. 체육시간은 아직도 자습시간 늘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고 책임에 충실했을 뿐인데 어느새 저니맨의 상징이 돼 있었다. 저니맨이라 불리는 것이 싫었고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남들이 실패라고 말했던 은퇴 이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자신을 믿고 무작정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성공의 길이었다.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 세상 구석구석에 있는 저니맨들을 보게 됐다. 저니맨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지난해 ‘저니맨’이라는 별칭을 따서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설립했다. 프로생활을 하다 방출된 선수, 프로에 지명 받지 못한 아마추어 선수 등을 위해. 9개 구단에 2군 선수들까지 하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의 쓴 맛을 본 사람은 더 많다. 야구에 정말 미쳐있는 사람들, 야구가 아니면 안 되는 간절함을 가진 이 친구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가능성은 현실이 돼 LG에서 방출된 민경수 선수가 SK로 입단했다. 그 과정에서 스포츠가 한 사람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느꼈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학교스포츠 활성화’가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땀 흘리며 친구들과 우애를 다지고 심적으로 건강한 청소년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 취지에 십분 동감한다. 하지만, 그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시간이 없다. 올해 막 고교를 졸업한 우리 회사 인턴의 얘기를 들어보니 당혹스럽게도 아직도 체육시간이 학원숙제를 위한 자습시간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과열된 학구열에 학교 체육교사마저 그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입시라는 교육현실이 당장 바뀔 수 없다면 스포츠가 학생들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스포츠라고만 하면 인프라가 부족해서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라켓과 셔틀콕만 있어도 되는 배드민턴도 바람이 안부는 실내체육관이 필요하다 하고 넓은 운동장과 공만 있어도 되는 축구는 방과후 지역주민에게 주차장으로 개방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내쫓고 있다. 아직 교육당국이 학교스포츠와 생활체육 인프라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프라 부족 변명임을 보여줄 것 인프라와 준비물이 많이 필요한 스포츠로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야구다. 그래서 야구를 통해 단계적인 커리큘럼과 야구가 가진 인성 교육적 장점을 살려 ‘인프라’만 운운하는 변명을 깨뜨리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학교스포츠가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 방법을 찾아 다각도로 접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성교육실천범국민연합에도 동참하기로 했다. 청소년의 체육활동 참가가 폭력 및 범죄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자료는 이미 많이 보고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운동선수 출신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그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보여주려고 한다. 운동을 통해서 더 많은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말이다.
제 2의 ‘새교육 운동’을 내세운 한국교총의 제35대 회장단이 취임식을 갖고 임기를 시작했다. 안양옥 회장은 교총회장 선출 직선제를 도입한 이래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임기 동안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의 존재감을 크게 부각시키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살아있는, 행동하는 교총’의 영향력 휴대폰을 통해 하루에도 몇 통씩 교육현안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한 한국교총의 입장 표명이 오는 것을 볼 때 교총 회원들에게 ‘교총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각종 언론매체들이 교총의 그런 견해를 보도함으로써 대외적으로 교총의 존재감이 드러나고 ‘행동하는 교총’의 영향력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안 회장이 정치권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교총 회장으로서 직무수행에 매진한 점 또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과거에 여러 분의 교총 회장들이 회장직을 다른 직으로 나가는 발판으로 삼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진출을 비난받을 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회장직 수행을 우선시 하는 것과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두고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안 회장은 한국교총의 전신인 ‘조선교육연합회’가 전개했던 ‘새교육 운동’을 오늘에 맞게 계승해 제2의 ‘새교육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방 직후 조선교육연합회가 벌였던 ‘새교육 운동’은 교육 부문에서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교육의 기틀을 다지는 것으로 교원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35대 회장단이 주창(主唱)한 제2의 ‘새교육 운동’은 포퓰리즘을 좇는 교육이 아니라 본질을 회복하는 교육, 성적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인성 중심의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교육이 개인의 잠재력을 싹틔우게 해 삶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적 덕목을 체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또 제1의 새교육 운동과는 달리 교원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원과 학부모, 학교와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공동체 회복 운동이라 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외국 속담이 말해주듯, 교육은 학교나 교원만의 일이 아니다. 제2의 새교육 운동은 오늘날 교육이 우리 모두의 일임을 절실하게 깨닫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안 회장은 이어 “교사 스스로가 연구를 통해 전문직의 소양을 쌓을 때 사회와 학부모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교총은 교사 스스로 전문연구직이 될 수 있는 연구풍토 조성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다짐이다. 학생들이 지식을 이해하고 독립적인 판단력을 갖도록 하는 일, 전인격(全人格)을 표출하도록 하는 일 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보통의 일’이 아니다. 교직은 이렇게 ‘전문직적인’ 성격의 일이고, 교원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원단체는 교원들이 ‘가르침’이라는 전문적 활동을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 특히, 요즘 약화되고 있는 교사와 교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교권보호위원회 등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전문성 신장과 학생 교육에 대한 교원들의 부단한 노력과 헌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그런 활동을 주도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교원들이 연구를 통해 전문직으로서 소양을 쌓는 일에 교총이 적극 나서겠다고 한 안 회장의 다짐은 매우 중요하다. 신뢰 회복은 전문성 함양에서 시작 새 임기를 시작한 안 회장 체제의 교총은 지난 임기 동안 대내외적으로 교총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제2의 새교육 운동을 펼치기 좋은 여건을 갖췄다. 안 회장을 비롯한 35대 회장단은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연구를 통한 전문성 함양과 학생 지도에 대한 헌신에 기반을 둔 교직의 신뢰회복, 시류에 휩쓸리는 포퓰리즘적 교육정책을 지양하고 본질을 중시하는 교육정책을 펴도록 하는 일, 교원들이 학교에서 성적 위주보다는 지력과 인성의 개발을 균형 있게 추구하게 하는 일에 매진하기를 기대한다. 35대 회장단의 성공을 기원한다.
7월 1일은 현직 직선 교육감들이 취임한 지 4년째 접어드는 날이다. 그동안 교육의 정치 이념화를 막고 학교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선출한 직선 교육감들이 줄줄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사표(師表)가 돼야 할 교육감이 음독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비교육적인 모습까지 나타났다. 이제 지난 3년간 교육감들이 내세운 공약을 점검하고 남은 1년간의 업무 수행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때가 됐다. 교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절반 이상이 직선제 교육감 선출로 학교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표를 앞세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교육의 정치적 이념화와 교육공동체 사이의 대립이 격화됨으로써 공교육 기반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많다. 날로 증가하는 학교폭력과 교권침해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교육감 선출제 관련 토론회를 열고 국회정치쇄신특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직선제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제한적 주민직선제, 러닝메이트제, 공동등록제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심지어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시?도지사 임명제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은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를 당세 확장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정치인의 교육감 진출 장벽을 낮추기 위해 교육 경력을 완화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교총은 교육감 직선제 보완은 교육자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의 정치 예속은 더 큰 폐단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 보장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명제다. 이를 위해 직선제 폐단을 근절할 방법을 찾되 교육감 후보의 교육 경력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현장의 현실을 아는 교원 스스로가 현 교육감이 추진한 3년 동안의 공과와 앞으로 남은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 표로 심판해야 한다.
이미정 한국보육학회 회장은 지난달 22일 한국교총 회관에서 ‘2013 한국보육학회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유·보 발전을 위한 통합 패러다임의 고찰’이란 주제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발전 및 재정지원 방안, 보육정책의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