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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총(회장 하윤수·전 부산교대 총장)은 교육부가 발표한 '2021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와 관련해 "실태조사 결과만 반복해 발표하는 데 머물지 말고 학교의 어려움을 파악해 현장 중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총은 6일 보도자료를 내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학교폭력 괴롭힘을 당했다'는 학생이 3만6000여명에 달하고, 1만2000여명이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있다'고 해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점으로 등교 확대에 따른 피해응답률 증가, 특히 초등학생의 학폭 피해와 신체 폭력 증가를 꼽았다. 2학기 등교확대가 학폭 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생들에게 누적됐을 우려가 높은 심리·정서적 불안감도 학폭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맞춤형 학교폭력 예방·대응 방안이 방역 못지않게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교총은 학폭 예방을 위한 근본 대책은 담임교사가 학생 개개인을 살필 수 있는 교실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 교육당국이 힘을 모아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6월 23일 시행 이후 학교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는 가·피해자 즉시 분리 조치에 대해서도 조속한 개선을 요구했다. 관련 법령 개정을 개정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우선 관련 지침부터 현실에 맞게 고쳐 학교에 탄력성을 부여하라는 제안이다. 또한 △학폭위 지역교육청 이관 1년 평가 및 보완대책 마련 △전문상담교사 전국 학교 확대 배치 촉구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속에 치유와 관계 회복 목표 정립(갈등 조정 제도 강화 및 의무화 등) △너무 광범위한 학교폭력의 정의(범위) 재정립 등을 촉구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정부와 교육당국의 학교폭력 예방, 근절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잇따른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침묵할 게 아니라 민감성을 갖고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교총은 지난달 30일 학교폭력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특별위원회’를 출범했다”며 “현장 중심의 학교폭력 대책을 마련해 정부와 국회에 적극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선생님 저..진혁(가명)이에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나즈막하고 더듬거리는 한 아이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3년전 스승의 날이었던가? 늘 가슴 언저리에 낡은 가구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녀석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을때 였던 것 같다. “어. 진혁(가명)이구나”,“ 선생님..저..잘 지내시죠?”더듬거리는 말투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장애라는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이 굽은 아이! 곱추! 말더듬이! 그래서 키가 잘 자라지 않는 아이... 그 녀석을 따라다녔던 수식어들이다. 20년전 합천의 작은 시골 마을! 합천에서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했지만 그 마을은 생소했고 그래서인지 뭔지 모를 두려움과 작은 설레임을 동시에 안고 교정 정문을 들어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100년은 족히 넘을 듯한 큰 플라타너스 나무의 큰 그늘 아래로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고, 검게 그을린 얼굴들 사이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운명처럼 배정받은 6학년! 18명! 남학생과 여학생 비율이 9:9로 황금비율이었고,그것도 하나같이 눈망울들이 컸던 아이들. 이것도 교정에 처음 들어섰을때의 좋았던 기분만큼 앞으로의 첫 교직 생활에서의 출발이 좋을거란 내 마음속의 반전 신호였을까? 사람이 살면서 언제나 좋은 예감이 꼭 다 맞는 법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일주일도 안가서 “휴~”자조섞인 한숨으로 나오게 되었다. 9:9의 황금 비율은 9:8내지는 10:8의 불균형적인 모습으로 우리반을 갈라놓고 있었다. 걸음이 느리고 말이 어눌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늘 아픈 손가락! 특수반 수업을 위해 갈때면 17명으로! 게임을 위해 편을 가를 때면 늘 한쪽팀으로 핸디캡을 안고 가야 했던 아이! 그래서 원망도 많고 울음이 많았던 편이었다.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때가 많았고,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아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심정은 누가 알까? 햇살이 비추던 4월의 여느 봄날, 평소와 같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 녀석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교실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지우개야! 내..지우개”하며 울부짖으며 소리지르는데 한 섞인 민요도 이 보다 더 진할수 있을까? “야~ 최진혁(가명)~~ 너 뭐하는 짓이야?”목청 한껏 올려 샤우팅을 퍼부어 봤지만 소용없고 되돌아 오는건 메아리 뿐이었다. 당체 진정이 되지 않는 아이를 나는 그저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얗게 된 머릿속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아이를 꼭 껴안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그렇게 삼십여분이 지나서야 울음은 그쳐지고 난동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각자 자기의 일들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진혁(가명)이는 화가 나면 원래 저래요!”,“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되거든요”등등의 대처 요령과 훈수들이 내 고막을 수시로 때렸다. ‘하! 이런 것이었나?’임용전 모 선배의 말이 문득 떠 올랐다. 발령 받고 나면 생각만큼은 쉽진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3월부터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그 조언이 왜 그렇게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는지. 생각했던 달콤한 교사 생활은 안되겠구나 어렵겠구나! 스스로에게 격려를 하면서 진혁(가명)이 어머니와의 상담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선생님요, 진짜로 힘들지에? 우리 진혁(가명)이 좀 잘 봐주이소. 이놈이 태어날 때부터 이상해가지고...형편도 어려워서 등에 혹 난것도 수술도 못해주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전화가 끝나는 내내 이어졌고 아이의 사정들을 그때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자라서 몸의 불편함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까지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에서 연민의 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몸이 불편해지고 등굽은 곱추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불편한 몸과 함께 정신까지 피폐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사랑이 필요했던 아이, 친구들에게 관심 받고 싶었던 아이! 그 시절 장애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관심 밖의 일들이었고 가까이 하기에는 왠지 눈치가 보이고, 주변 아이들 조차 편견아닌 편견! 막연한 관심밖의 이야기꺼리였던 것 같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에게 그런 사명 같은 것을 주실려고 한 건 아닐까? 한창 젊은 혈기와 열정에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다가 상담 공부를 시작하던 때와 겹치게 되는 고마운 일들이 순순히 전개되었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모대학 교수님으로부터 수많은 상담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고, 비슷한 생각과 사례를 가진 동료 교사들의 체험담 등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과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북돋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때 만났던 한 선생님의 일화는 나에게 울림을 주었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결국에는 서로 따뜻한 교감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교감의 의미를 되씹고 되새기다가 아이들의 편견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찾아 같이하는 기쁨을 알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해 여름! 야영수련 활동은 그 노력의 댓가를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 생기게 된다. 수련활동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래프팅 종목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던 것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 물살은 세지 않았지만 래프팅의 특성상 어쩔수 없이 배가 흔들리게 되었는데 그만 진혁(가명)이가 물에 풍덩 빠지게 된 것이었다. 교관이 손을 쓰기도 전에 일은 일어나 버렸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그 순간 정말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한 아이가 물에 뛰어들어 진혁(가명)이를 붙잡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누구랄 것없이 노를 두 아이쪽으로 잡으라고 쭉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결국 교관이 빠른 조치를 취해서 안전하게 다시 배로 끌어 올릴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장면이다. 전부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고, 아이들이 가만히 있었어도 결국 교관이나 선생님의 도움으로 진혁(가명)이는 건져 올려 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진혁(가명)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 10초도 안되는 찰나에 일어난 일은 진혁(가명)이의 가슴속에 깊이 박혔던 것 같다. 야영의 하이라이트인 캠파이어 시간으로 모든 활동을 종료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의 촛불의식! 한마디씩 정리하는 자리에서 진혁(가명)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오늘 동규(가명)가 ..나를..살려주었어요. 친구들이 좋아요” 소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카타르시스 같은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울고 있는 동료들과 숙연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모두들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온정이라는 따뜻한 씨앗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겨울이 되었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인데 그해 12월은 꼭 첫눈같이 설레고 달콤한 기억이 가슴언저리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 결혼식날! 축가를 부르기 위해 우리반 18명이 모두 함께하여 합창을 하는게 아닌가? 나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고 알아보니 옆반 선생님께서 고맙게도 몰래 아이들을 데리고 평소에 조금씩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선물도 이런게 있을까요? 다들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유독 눈에 띄는 한 아이! 언울한 자세에 등이 굽어 있고 작지만 눈이 큰 아이! 그것도 맨 앞줄 정중앙에 자리하여 나를 보고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수근 거림이 내 귀에 들려올때쯤‘사랑으로’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식장에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의 웅성임은 이내 감탄으로 변하였고 박수로서 화답하고 있었다. 아내가 나의 눈을 닦아 줄 때 그제서야 내가 울고 있구나 느꼈고, 오늘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그렇게 이 아이들과의 지지고 볶음을 뒤로하고 졸업을 시키는데 그 감회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진혁(가명)이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해 나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 졸업식 중간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작은 감사패를 주셨는데 그 속에는‘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제 아이가 잘 컸고 이렇게 졸업을 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되세요’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저 또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뿐이었다. 뜨거운 눈물의 졸업식이 언제 끝이 났을까! 아련한 기억속에서 잠겼다가 시간은 어느새 15년이 훌쩍 지나 그때 그 아이의 전화를 받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선생님 저..진혁(가명)이에요”,“ 선생님.. 저.. 이만큼 컸어요”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는데 굽은 등은 펴져 있고 혹은 제거술을 받아서 예전의 모습이 아닌 바른 자세에 가까웠다. 자랑이라고 하듯 자신의 커 있는 모습을 당당하게 보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게 바로 보람이라는 것이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스승의 날만 되면 전화하고 만나는 친한 친구가 되었죠. 지역 노인복지센터에서 작지만 힘을 보태고 살아가는게 행복이라고 말 할만큼 훌쩍 성장해버린 녀석! 키만 큰게 아니라 마음까지 훌륭하게 컸구나! “선생님, 저 이만큼 컸어요”한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 작지만 큰 울림! 교직 생활 20년을 힘 잃지 않고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고, 그때부터 나를 채찍질 했던 동기였으며 그래서 가르침의 참맛을 깨닫고 여기까지 오게 해준 고맙고도 벅찬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 2021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제자의 작은 외침으로 시작된 친구 같은 스승과 제자 서울에서 특별히 전화가 올 일이 없는데, 광고성 전화인 줄 알고 끊으려다가 받은 입상 소식은 새해 깜짝 선물이 되었습니다. 제자로 인해 나 자신이 더 성장하고 발전한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그런 제자 덕에 상을 받게 된다니 괜스레 민망하기도 하고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집니다. 평소에 존경하고 따르던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현인(賢人)이 되기도 하고, 폐인(廢人)이 되기도 하니,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스승다운 스승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큰 복이 되니 자네가 그런 스승이 되어 보면 어떻겠나” 스승의 의미를 말씀하신 은사님의 깊은 뜻이 가슴으로 저며 옵니다. 만약 그 시절 제자의 작은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면 지금의 친구 같은 스승과 제자가 만들어졌을까요 교사로서 가르치는 일에만 급급할 때마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제자가 한 명쯤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소중한 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상을 계기로 참된 스승의 의미를 다시 한번 아로새기고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부족한 글 선택하여 주신 한국교육신문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기 마련이다. 제일 급하고 아쉬운 사람이 서둘러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사안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가 법령 등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회적인 파장과 우려가 큰 학교폭력 사안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 제정과 총28회의 개정을 통해 예방 대책이 시스템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학교폭력 심의가 매년 3만〜4만여 건에 달하고, 점차 저연령화되는 등 사회와 학교의 큰 고민거리다. 현실 외면한 법, 학교 부담 가중 교총의 노력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지역교육청으로 이관돼 부담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학교는 힘들다. 특히, 학교 현실을 고려치 않은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에 따라 올해 6월 23일부터 시행된 가·피해자 즉시 분리 조치는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광주광역시와 강원도에서 학생이 학교폭력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고, 경기도에서는 대낮 도심에서 학생의 목을 조르고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파장이 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장의 어려움과 잇단 중대 학교폭력 사건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등 교육당국이 침묵한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교육 성과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보도자료를 내 입장을 밝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자 교총이 나섰다. 교총은 학교폭력에 대한 현장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현장에 적합한 중·장기 대책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달 30일에 1차 회의를 개최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절박함이 담긴 위원회의 출범에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책임 교사, 담당부장, 학교장, 장학사, 연구위원과 변호사 등 1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만큼 현장의 어려움과 제도상의 문제를 핀셋같이 발굴해내기를 기대한다. 위원회는 학교 현장의 동의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누구나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에 대해서는 약한 경우가 많다. 교직 사회 내의 다양한 해법과 견해차가 있는 만큼 현실과 괴리되거나 반대가 있는 방안을 내놓으면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 '즉시 분리 조치'부터 개선해야 구체적 제도 개선방안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예방법과 시행령, 매뉴얼에서 개선돼야 할 사항을 중·단기로 구분하고 구체화해 정부와 국회에 제시해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당장 급한 가·피해학생 ‘즉시 분리’를 ‘지체없이 분리’로 지침을 개정해 학교 현장이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국회에 줄기차게 요구해야 한다. 교직 사회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와 교사의 편리성에만 치우쳐 학생, 학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방안이라면 비판만 받을 뿐 법령 개선은 어렵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학교 현장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 학교폭력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과 상관없이 과정과 결과에 대해 행정적·법률적·도덕적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교총 접수 교권 사건 총402건 중 학교폭력 관련 사건이 18건에 달하고,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학교폭력 관련해 징계받은 교원이 77명에 이른다. 학교폭력 관련 문제점 개선을 바라는 교원의 간절한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교총 학교폭력 대책위가 되길 바란다.
기후의 역습...내일은 늦다 지난여름 한반도가 지글지글 끓었다. 열돔 현상 때문이란다. 대서양 건너 북미 서부도 대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고 있다. 반면 라인강이 범람하고 서유럽이 홍수에 잠겼다. 수백 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재난이 닥쳤다. 올해 지구촌을 휘감고 있는 기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기후를 현상으로 부르던 시대가 지나갔다. 이제는 기후위기란 단어가 익숙하다. 기후위기는 천천히 진행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심각성을 인식하기 어렵다. 혹자는 성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침묵의 살인자’ 당뇨병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참고 견디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안이한 인식이 지구를 더욱 병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해 지구조절시스템이 붕괴되어 기온 상승 등으로 인해 인간 삶이 힘들어짐은 물론이고 가뭄, 장마, 식량부족, 물 부족, 해수면 상승 등 문제들이 가속화되어도, 인류의 멸망이 재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도 절박함은 여전히 덜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물려주는 최악의 재앙일 수 있다. 지구생태계에 비상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교육은 그래서 너무나 중요하다. 기후위기 교육의 키워드는 공생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개인의 자아실현 혹은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향한 삶을 위한 생태적 가치를 가르치고 강조해야 한다. 즉,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가 서로 연결된 존재이며, 따라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기후위기시대의 교육적 전환은 단지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을 교육과정안에 포함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기후위기시대에 더 나은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후위기의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는 삶을 말한다. 이번 호는 기후위기와 교육체제 전환을 중심으로 다룬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교육현장의 실천사례를 중심으로 다룬다. 또 우리의 학교와 교실 등 교육공간은 기후위기에 대응의 적합한 것인지,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울러 학교 밖 인프라를 활용, 교육과 사회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들어가며: 기후변화 또는 ‘기후위기’를 교육적으로 바라보기 현재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매우 빨리 변하는 듯하다. 최근의 몇 년을 되돌아보더라도 미세먼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났다가, 바로 다음 해에는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우려가 커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2008~2012년의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맥락에서 기후변화가 중요한 화두인 듯하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 사회와 정부도 탄소중립을 향해 매진하는 상황에서 학교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지구기후변화 또는 소위 ‘기후위기’를 다룰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환경교육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의 심각성과 위기감을 강조하던 방식을 되짚어보고 동일한 상황에서 보다 교육적인(pedagogic) 방식으로 환경을 다루어야 한다고 공감한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환경교육을 논의하는 공론장에서는 학교 환경교육을 환경문제의 해결(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구로 볼 것인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더디지만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미래 시민의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적 시도로 볼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졌다. 현재의 기성세대 중 다수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 기후변화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이지만, 우리나라 학교현장의 교사 대부분이 학급에서 만나는 학습자나 자신의 자녀를 또 다른 ‘그레타 툰베리’로 길러내고자 결심하고 있지 않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어떤 목소리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기후변화’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그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청소년 역시 분명 생겨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의 학교 환경교육이 매년 수십만 명의 어린 환경운동가를 길러내는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어떤 목소리는 육식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학교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교육자들은 자신이 먹는 것이 지구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심하여 살펴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기다려주자고 한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교육적 논의는 ‘기후변화교육은 어떤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하여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는 생태발자국(탄소발자국) 개념과 생태시민성 논의를 통해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우리 교육의 방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생태발자국 개념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생태시민성 논의를 환경교육 또는 기후변화교육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실천 방향과 연결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생태발자국(탄소발자국)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지구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세계 각국이 인식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줄이려는 시도가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탄소발자국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과감하게 시도하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 생산 등의 영역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과 달리 탄소발자국 또는 생태발자국을 전혀 남기지 않는 현대인의 삶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십여 년 전 생태발자국을 측정하는 웹사이트를 우리나라 산림청이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자신의 생태발자국을 측정하려면 외국어로 된 웹사이트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지구가 4개 또는 5개 이상이 필요합니다”라는 응답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즉, 생태발자국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현재 우리는 1개의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살아가는 방식을 훨씬 넘어섰다. 생태발자국은 주거·교통·먹을거리 등의 영역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때로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나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을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교통체계·에너지체계·먹거리체계 등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는 한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생태발자국 또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이 종종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생태발자국의 의미와 적용 생태발자국이란 특정한 지역 인구의 자원 소비 규모를 생산적인 토지 면적의 규모로 환산한 것으로 한 사람이 현재 수준으로 자원을 소비하고 배출한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땅의 면적을 말한다(Wackernagel Rees, 1996). 그동안 생태발자국의 개념이나 환경교육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주로 생태발자국을 측정하고 각 개인에게 이를 줄이도록 하여 환경위기를 극복하려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생태발자국 개념이 갖는 중요하지만 비교적 덜 주목받은 의미를 생태부채와 환경정의 관계성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환경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과 넓은 환경의 관계를 온전히 바라보는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환경시민(또는 생태시민)을 길러내는데 토대가 될 수 있다. 생태발자국 지표를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면 개인이나 지역에 따라 소비 수준, 대외 의존도가 다른 것을 통하여 생태부채(ecological debt)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나의 풍족한 생활이 가능한 것은 생태발자국 크기가 작은 누군가의 희생이나 부담을 기반으로 한다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생산성에 비해 초과되는 수준으로 소비하고 있다면 대외 의존도가 높음을 의미하고, 이는 생태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태발자국 지수가 큰 개인이나 국가는 생태발자국 지수가 작은 대상에게 부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현재 지구상 여러 나라들 사이에는 북반구의 산업국가들이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 생태부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태발자국 지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활한다면 지구가 몇 개나 필요한지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필요한 지구의 개수를 알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위기가 경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구가 유지되는 것은 누군가 나보다 생태발자국을 적게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그 해석을 확장할 수 있다. 나의 생태발자국 지수와 다른 나라 사람의 생태발자국 지수가 다름을 인식하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봄으로써 생태발자국을 통한 환경정의 또는 환경부정의 상황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기후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개체가 똑같은 비중으로 자연환경을 이용하는지, 환경오염으로 인한 영향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이 같은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발국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원이나 자연환경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고, 열대우림의 목재 등 눈에 보이는 자원도 개발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부담도 개발국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본과 발달된 기술로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은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고, 한 국가 내에서도 빈부격차에 따라 환경문제의 부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생태발자국은 환경교육에서 환경 불평등 상황, 환경부정의 상황을 인식하는 개념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또한 지구상의 누군가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통해 생태발자국은 ‘관계성’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생태발자국은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사람, 또는 환경에 대해 가해지는 영향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개인이 생활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 찍어 놓은 생태발자국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내 주변 사람일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 사람일 수도 있고, 미래세대일 수도 있다. 이처럼 생태발자국 개념을 활용하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더라도 생태발자국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다양성을 인식하도록 도울 수 있다. 생태시민성 개념과 특징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 차원의 환경문제는 공간적 영역이 제한된 전통적인 시민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의 시민성 논의를 요구한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새롭게 재구성된 생태시민성 개념은 다음의 특징이 있다. 첫째, 생태시민성의 주요한 차원은 비영역성(non-territoriality)으로 이는 기후변화와 같이 지구적 성격을 가지는 환경문제와 생태시민성을 연계시키는 중요한 특징이다. 대한민국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남극의 빙하나 투발루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생태시민성은 권리보다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생태시민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비호혜적이며 시·공간적 관계성에 기반하고 있다. 생태시민의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이며, 자신과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받게 되는 미래세대와 비인간 생물 종까지 확장된다. 또한 내가 미래세대의 삶이나 북극곰의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고 어떠한 호혜적 대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호혜성을 벗어난다. 셋째, 생태시민성은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전통적인 시민성은 정치나 경제와 관련한 공적인 영역에 적용되지만 생태시민성은 내가 무엇을 먹고 소비하며 살아갈 것인지와 같은 매우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도 적용된다. 이에 개인적 책임·배려(care)·공감(compassion) 등의 가치체계가 생태시민성의 핵심적 덕성으로 인식된다. 즉, 생태시민성이 발현되는 범위는 공간적으로 국가, 시간적으로 현재라는 영역을 넘어선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인을, 종의 경계를 넘어 모든 생물을 시민성 발현의 대상 또는 동료 시민(fellow citizens)으로 여기고,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관심을 확대한다. 생태시민성 논의가 기후변화교육에 주는 시사점 생태시민성 논의는 지구기후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환경교육 또는 기후변화교육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먼저 생태시민성이 갖는 비영역적 특성은 지구기후변화의 영향이 미치는 시·공간적 스케일을 이해하고 시민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구기후변화의 영향은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많은 국가에 그 영향이 국한되지 않고 시·공간적으로 분산된다. 투발루와 같은 도서국가에서부터 안데스산맥의 마을이나 북극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시민성은 시간적으로 미래세대를 고려할 뿐 아니라 비인간 생물 종까지 우리의 배려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생태시민의 책무가 원인과 영향의 비대칭적인 분포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환경교육에서 지구기후변화를 다룰 때 초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동안 환경교육은 환경문제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때로는 저개발국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도 (개발국이나 기업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하는 모두에게 환경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도록 하였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주 영향을 미친 주체와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생태시민성은 누가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고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평균적인 한국인은 저개발국 국민에 비해 1인당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생태발자국 또는 탄소발자국의 크기로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모든 이들이 지구기후변화에 대해 동일한 책임을 갖기보다는 (공동의 그러나) 차별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 동시에 생태시민으로서 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 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산업계 등의 영향을 이해하고 이를 따져 묻는 역할 또한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 지구기후변화를 주로 다루어온 방식이 원인과 영향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함께 각 개인이 온실기체 배출을 줄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 것이라면, 생태시민성 논의는 시민의 책무와 역할, 사회구조적 문제의식과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지속가능성의 형평성 원칙 등의 측면에서 기후변화교육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다. 맺으며 지구기후변화를 비롯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접하게 될 다양한 실천적 상황은 생태적 성찰과 역량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새로운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생태시민성이 갖는 개념 자체를 논의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지구기후변화 등과 같이 생태시민성을 적용하여 해석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또한 환경교육에서 지구기후변화를 다룰 때 주목해야 할 점을 제시해줄 수 있다. 글쓴이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함께 꿈꾸는 좋은 교육이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여기서 살펴본 생태발자국 개념과 생태시민성 논의가 ‘기후변화교육은 어떤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방향을 일부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70대 미국 대통령과 10대 소녀가 맞짱을 떴다.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매섭게 쏘아보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사진 한 장은 당시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로도 툰베리와 트럼프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설전은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다보스포럼에서 ‘나무 1조 그루 심기’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환경운동가들을 향해서는 ‘과거의 바보 같은 예언자들의 후손’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툰베리는 그런 트럼프와 세계 지도자들을 성토했다. “우리들의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의 무대책이 시시각각 불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70대 대통령과 10대 환경운동가의 설전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닌 인식과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당뇨병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한다. 당뇨병은 혈액 내 포도당이 높아져 소변으로 포도당이 넘쳐 나오는 질병으로,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한다. 말기 신부전이나 시력상실, 외상이 없어도 손·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당뇨병은 국내 5대 사망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초기엔 증상이 없는 데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 하더라도 체중감소나 다갈증, 다뇨증과 같은 통증 없는 증상으로 시작하다 보니, 상당수 환자는 당뇨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장 아프지 않으니, 치명적 위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과 기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7월 29일은 올해 지구가 재생해내는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해 버린 날이었다. 국제환경단체 세계생태발자국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 따르면 올해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은 7월 29일. 지난해 8월 22일보다 한 달 가까이 앞당겨졌다. 남은 5개월간 우리는 ‘생태적자’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그해 지구가 재생하는 자원의 양을 인류의 생태자원 수요량으로 나눠 그 비율을 1년 달력에 적용한 것으로, 1970년 12월 30일에서 1980년 11월 4일, 1990년 10월 10일, 2000년 9월 22일로 10년마다 한 달씩 빨라지는 추세다. 올해 국가별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살펴보면 미국은 3월 14일, 영국은 5월 19일, 한국은 4월 5일에 각각 주어진 일 년간의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전 세계 인류가 미국인이나 한국인처럼 생활한다면 인류에겐 지구가 4개쯤 더 필요하다. 그러나 지구는 하나다. 우리는 미래세대에 할당된 생태자원을 허락 없이 끌어다 쓰고 있는 셈이다. 70대 트럼프에게 10대 툰베리가 호통을 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미래세대에게 고리대금의 빚을 떠넘기는 몰염치한 행위를 멈춰야 한다. 2018년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세계자연기금의 ‘지구생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0년간 생물 종의 75%가 멸종했고, 무분별한 자원과 에너지 사용으로 기후위기의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다. 인간과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를 멈춰야 하듯, 우린 지구에 대한 학대를 멈춰야 한다.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위기’ 기성세대가 ‘현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위기’가 됐다. 자본주의적 성장과 발전 그리고 편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양보받고, 모든 희생에 면죄부를 받았던 기성세대의 안이한 세계관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미래세대의 시간이다. 한국환경교사모임은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었던 지난 7월 29일, 국가교육회의가 올해 발표할 ‘2022 개정 교육과정’에 현재와 미래의 청소년을 위한 기후행동과 환경교육을 반영하자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계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감소, 자원과 에너지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기후위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올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18ppm에 도달했으며,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2015 파리협약을 기준을 따른다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고작 7년도 남지 않았다”라며 현재와 미래세대가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 환경교육을 제안했다. 세계의 교육도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핀란드에서는 환경과목을 선이수 9학점으로, 영국은 25개년 환경교육계획을 세웠다. 호주의 고등학교는 환경과목을 필수로 도입했고, 지난해 이탈리아는 초·중·고 주당 1시간씩 연간 33시간의 기후환경교육을 필수화했다. 캐나다에서는 2016년부터 탄소중립학교를 만들기 시작하여 2030년까지 학교 온실가스 80% 감축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미국 뉴저지주에서는 유·초·중·고등학생 140만 명에게 기후환경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우리나라도 환경과목을 채택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20년 기준으로 환경과목을 선택한 중학교는 6.6%, 고등학교는 21.9%에 이르지만(표 1 참조), 이마저도 고3 자습 편성이 대부분이다. 더 암담한 것은 전국 약 50만 명의 교원 중 환경교사는 34명뿐이라는 사실이다(표 2 참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DA)가 지난달 초,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지만, 한국의 환경교육은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기후위기 교육은 단순히 학교만의 노력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교와 지자체, 유관기관 등 범사회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론만이 아닌 현실성 있는 사례를 기반으로 교과서를 개정하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환경 감수성과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키워나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참가국들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도 아래로 유지하되 1.5도를 넘지 않도록 했다. 탄소배출량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줄이지 않으면, 2040년에 지구의 기온 상승은 1.5도를 넘길 전망이다. 1.5도가 대수냐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몸의 정상체온에서 1.5도가 올라가면, 우린 고열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지구온도 1.5도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 스스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이다.
‘기후위기’ ‘환경재난’이라는 말이 일반 대중에게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환경·기후변화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홍수·폭염·태풍 등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새로운 바이러스나 질병으로 인해 개인은 물론 인류의 영속성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학생들 역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기성세대에게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를 하고 있다. 광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설문조사1 결과 ‘심각하다’는 응답이 평균 8.31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보듯 청소년들은 기후변화·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직시하고 있었으며 보다 지속 가능하며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교육’ ‘실천 중심의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가 있기까지 국가적 또는 교육적으로 환경교육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긴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가적으로는 「환경교육진흥법」 제정 및 개정을 통해 학교와 사회 환경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 환경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학교 환경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국가수준교육과정에도 환경교육을 제시하여 필수적으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 환경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기에 기후위기·환경재난에 직면한 지금에서야 학생은 물론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환경교육에 대해 단일 영역 또는 교과가 아닌 융합교육 관점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학교 환경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분리수거·해양오염·산림파괴와 같이 학생의 실질적 생활과 거리가 있는 이론중심의 도덕적·피상적 환경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환경교육에서도 지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선 기후변화가 환경문제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교육의 핵심과제이다. 이는 기후변화를 생태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는 새로운 질병 발생의 원인이며,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을 사회발전을 위한 변화의 객체가 아닌 자신과 사회변화를 이끄는 능동적 행위주체자로서의 학습자로 보아야 한다. ‘OECD 교육 2030 : 미래교육과 역량 프로젝트’에서는 행위주체자로서의 학생(student agency)을 강조하고 있다.2 환경학습권을 보장해 달라는 청소년 기후행동의 요구는 학생들이 수동적인 존재에서 능동적인 행위주체자로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와 같은 기후위기와 환경재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국가정책까지도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학생은 1명이면 충분하다. 앞으로 학교 환경교육을 통해 우리는 툰베리처럼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실천력을 가진 학생을 많이 길러야 한다’라고 말한다. 셋째, 학교 환경교육은 지역사회와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교육은 크게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환경교육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환경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교 환경교육은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며, 수업전문가인 교사가 진행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러 교과에 내용이 분산되어 있고 집중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생태계 파괴 등 이론 중심의 도덕적 환경교육이 이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사회 환경교육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가진 시민사회단체가 실천중심교육을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업내용과 방향에 대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학교는 지역사회 거버넌스의 한 축이 되어 학교 환경교육과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사회 환경교육과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넷째, 학교의 모든 시설물은 환경교육의 자료가 되어야 한다. 교육부에서는 안전하고 쾌적한 녹색환경과 온·오프 융합학습 공간 구현을 위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에너지 절감시설 설치 및 디지털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환경교육보다는 시설 구축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설을 환경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도 태양광 발전기·빗물저금통·다양한 나무·텃밭 등 환경교육자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실제 학생교육자료로 활용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기존의 시설물들을 환경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학생 삶과 직접 연계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온도 1도 낮추기 교육활동 이런 의미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학교교육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인 ‘녹색커튼’3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주 수완초등학교는 2018년부터 지구 온도 1℃ 낮추고, 사랑의 온도 1℃ 올리는 ‘녹색커튼 프로젝트’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특히 전 교과를 통해 지속가능발전교육(ESD) 즉, 기후위기 대응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융합을 통한 재구성이 매우 특징적이다. 수완초는 ‘녹색커튼’을 활용하여 과학교과의 ‘식물의 한살이’ 관찰하기, 국어교과의 ‘시화 그리기’ 및 ‘토의·토론’, 실과교과의 ‘식물 가꾸기’ 등과 연계한 융합수업을 실시하였다. 우선 과학과 실과시간을 이용하여 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한살이 과정을 관찰하도록 하여 일반 교과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ESD나 환경교육은 일시적 수업으로는 효과가 적어 국어시간에는 시화, 미술시간에는 이름표와 사진찍기 등을 하였다. 또한 도덕시간에는 기후변화와 인권·공정무역·로컬푸드 등이 연계되도록 프로젝트를 계획하여 실천하도록 하였으며, 특히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시민단체 주관 ESD 박람회에서 녹색커튼 홍보 및 학교에서 직접 재배한 작두콩차와 천연 수세미를 판매했다. 수익금 전액은 유네스코(UNESCO)와 연계하여 저개발국가 학교 짓는 활동에 기부하도록 함으로써 실천 의식과 세계시민의식을 길러준 점이 특징이다. 단순히 학교 외부환경 미화용으로만 사용될 수 있었던 시설인 녹색커튼’을 여러 교과의 융합수업을 위한 학습자료로 활용했다. 또 학습활동 과정 중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활동내용을 수정하고, 시민단체 주관 축제에 참여하여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촉구하는 능동적 학습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수업에 왕도는 없다.’ 하지만 추구해야 할 방향성은 확실하게 있다. 유능한 일타 강사는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테크닉을 전수한다. 제아무리 일타 강사라 하더라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면 한 시간의 멋진 강의는 할 수 있으나 지속적인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 교실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의 학생들이 있기에 교사는 일타 강사의 스킬보다는 다양한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수업설계 능력이 필요하다. 수업은 학생들의 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배움이 느린 학생도, 특정 과목에 흥미가 있는 학생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프로젝트학습’이다. 프로젝트학습과 관련된 자료는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교사마다 프로젝트학습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설계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프로젝트학습이 있는 날! 아이들은 무척 분주하다. 스스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각 팀의 매니저는 자신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기본 기기를 세팅하고 팀장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확인한다. 물론 갈피를 못 잡고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부르기도 하고, 매우 애처로운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팀장도 있다. 이날은 교사인 나도 정신이 없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이들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희가 찾는 자료가 없어요, 선생님! ○○이가 자꾸 장난을 쳐요, 선생님! 이게 맞는 거예요? 선생님!!!!….” 프로젝트학습은 보통 블록차시로 계획한다. 40분 단위로는 아이들이 활동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2블록 또는 3블록 수업을 진행하는 데 아이들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없다고 시간을 더 달라고 애원한다. 교사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아이들 또한 정신없이 몰입한다. 물론 선생님이 바쁜 틈을 타서 유유자적한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교사의 설명식 수업에서 과연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을까? 이 세상에 모든 학생을 위한 하나의 학습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바람직한, 효과적인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프로젝트학습이란? 프로젝트학습은 일반적으로 ‘프로젝트학습(Project-Based Learning) 또는 문제기반학습(Problem-Based Learning)’을 의미하는 약자인 PBL로 쓴다. 학자마다 사용하는 단어는 다르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모두 ‘학습자 중심의 문제해결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해결학습은 듀이가 제안한 수업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학습한 내용을 활용하여 해결책을 고안하는 학습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기초학력 저하와 같은 약점이 있다고 공격을 받았다. 킬페트릭의 프로젝트학습은 학습자들이 책임감을 느끼며 특정 주제를 연구하는 수업방식을 말한다. [PART VIEW] 이 또한 과제를 독점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발생하는 등 교과의 체계적인 학습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약점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프로젝트학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프로젝트학습이 갖는 강점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걱정하는 약점을 최소화하도록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교실의 모습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학습은 자기주도학습과 협력학습이라는 큰 축에서 출발한다.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 부여되는 각자의 책무성과 함께 해결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실에는 분명 무임승차하는 학생, 과제를 독점하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한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는 교실을 만들 수 있다. 프로젝트학습을 설계할 때 교사는 다음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프로젝트 주제를 선정할 때 학생이 꼭 배워야 할 내용인지, 배움을 통해 삶과 연결이 되는지 고려한다. 둘째, 프로젝트의 시작과 진행, 마무리에서 교사는 끊임없는 조언 및 조력자로서 역할을 통해 프로젝트가 목적에 맞게 진행되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 프로젝트의 마무리는 반드시 탐구문제에 대한 결과 발표 및 성과물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때 탐구결과는 PPT·동영상·보고서·연극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제작할 수 있다. 넷째, 학생들이 활동한 결과를 함께 공유하며 프로젝트 과정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욕심을 내는 것은 금물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작은 성과를 반가워하며 조금씩 나아간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고, 교사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젝트 수업설계를 위해서는 먼저 교육과정 분석이 필요하다. 어떤 교과, 어떤 단원을 프로젝트로 설계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살펴보고,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할지 결정한다. 2021학년도 5학년 1학기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개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주제중심 프로젝트학습으로 시작해봐요 교육과정에서 비슷한 주제를 통합하여 사회·도덕·창체(자치활동·다문화교육·인권교육·장애이해교육)를 교과 간 재구성으로 ‘모두 다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1차 프로젝트 주제로 선정했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는 혼자하기보다는 학년 단위로 함께 협의하여 진행해야 학년 교육과정과 학급 교육과정이 이원화되지 않는다. ‘모두 다 행복한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출발했다. 첫째, 민주사회의 공정함과 정의로움,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기른다. 둘째, 어린이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인다. 셋째, 나의 인권에서 출발하여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상호존중 문화를 만든다. 위 세 가지를 목표로 관련 성취기준과 과정중심 평가계획을 세운 후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되었다. 주제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는 국어 글쓰기에서 이야기 글을 쓰는 과정과 비슷한 절차를 따른다.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배움의 과정이 있고 이 프로젝트가 절정에 달하는 소주제를 설정한다. 학생들은 이 프로젝트의 중심주제에서 그동안 함께 배워왔던 내용을 최대한 활용하여 프로젝트 성과물을 제작한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복도 갤러리에 전시가 되었으며, 누구나 살펴보고 피드백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서로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이 ‘모두 다 행복한 세상’이라는 결론을 학생들 스스로 도출하도록 계획되었고 학생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나만 행복한 세상에서는 나도 행복할 수 없음을 공감하고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였다. 마지막 활동으로 우리 반 인권선언문 만들기는 행복한 우리 반을 만들기 위한 의견을 각자 1개 이상씩 발언하고 그 중 투표로 10개의 조항을 선정한 후 인권심의위원회(회장·부회장·자발참여 2인)를 조직하여 검토 후 최종 우리 반 인권선언 10조를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교사가 의도했던 목표는 확실하게 달성이 되었다. 서로의 인권이 존중될 때 모두 행복할 수 있다고 학생들이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마지막 소주제였던 ‘우리 반 인권선언문 만들기’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치회의를 진행하고, 각 조항을 인권심의위원회에서 3일에 걸쳐 검토하여 확정한 10개의 조항을 보며 교사로서의 뿌듯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특히 인권선언문 제9조는 ‘모든 선생님은 존중받고, 배려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모든 학생은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이다. 모든 과정은 학생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교사는 조력자로서 역할만 했으나 학생들은 학교의 구성원으로 교사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선생님이 존중 받을 때 모두 다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기반학습(PBL) 프로젝트학습으로 성장해가요 프로젝트학습은 본질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문제를 찾고, 탐구방법을 설정하여 탐구 결과물까지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되돌아보게 된다. 처음에 이 방법으로 학생들과 마주할 때 주제만 정하면 물 흐르듯 모든 과정이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가장 큰 벽은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문제를 찾아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냥 교사가 탐구문제를 주는 게 훨씬 쉽지만, 그럼 PBL의 본질이 흐려질 것 같아서 참을성을 가지고 예상 시간보다 많이 투자해서 스스로 탐구문제를 찾도록 하였다. 2번째 프로젝트는 과학 5단원 ‘다양한 생물과 우리 생활’을 교과 내 재구성으로 ‘미생물(Mi) 탐구(Re)로 인류 구원하기 프로젝트(Microorganism Research Man Save)’로 탐구주제를 정하였다. 먼저 해당 단원의 성취기준과 학습요소를 추출하여 학생들이 이 단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이번 프로젝트 활동 팀의 수로 재구조화했다. 현 교육과정 내에는 ‘바이러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 어떤 것보다 ‘바이러스’에 대해 학생들이 탐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학습요소를 분석하여 4개의 탐구내용은 교과내용에서 추출하고, 바이러스를 추가하여 5개의 탐구내용을 선정하였다. 이렇게 추출한 탐구내용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각 탐구내용이 포함되도록 탐구문제를 정하라고 안내하였다. 만약 탐구내용을 정해주지 않으면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요소를 빠트리기 쉽다. 또한 탐구주제를 선정할 때는 교과서는 참고서가 된다. 학생들은 제시된 탐구내용을 검토하고 다음과 같은 탐구주제를 각각 선정하였다. 주어진 탐구내용에서 첫 번째 팀은 원생생물을 빼고 탐구주제를 정했다. 그 이유는 본인들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탐구하기에는 자신이 없다고 하였다. 이때 교사는 당연히 ‘no problem!’이라고 하며 빠진 부분은 따로 수업을 진행하면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문제를 정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탐구문제를 잘못 정하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가 없기에 이때 교사의 가장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탐구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찰하고, 피드백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탐구문제를 설정하는 데 예상시간보다 많이 소요되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3명 있었으나 점차 프로젝트 탐구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각 팀은 탐구문제의 결과를 동영상이나 동영상이 삽입된 PPT와 보고서로 제작하였으며 발표는 동영상과 PPT로 진행하였다. 코로나 상황이라 발표는 줌에서 실시간으로 진행했다. 오히려 등교 상황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몰입이 되었고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학부모들과 공유했다. PBL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오개념이나 난개념을 형성시키지 않도록 교사는 학생들의 발표에 집중하고, 의도적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정확한 개념을 형성해가도록 돕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물론 서로의 탐구결과를 경청하며 학생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탐구내용을 모두 학습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번 탐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각각 도출하였다. 동영상 등으로 탐구결과를 발표하여 그 내용을 모두 공유하지 못해 무척 아쉽다. 학생들이 위와 같은 탐구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각각 기본 개념과 다양한 사례를 탐구하였고 마지막으로 각자 정한 탐구문제에 대한 결론을 도출했다. 발표 후 친구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과정에서 개념을 더욱 명료화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탐구한 결과와 다른 의견들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팀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학생은 ‘바이러스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인류의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교실에서 얻는 기쁨 한 학기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한 학기 교육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코로나로 인해 주 2회만 등교수업이 이루어지고 3일은 실시간 쌍방향수업으로 교육과정이 진행되었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불가능은 없었다. 교사의 수업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프로젝트학습으로 학생들은 스스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고,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체육수업만큼 프로젝트 활동이 좋았다고 대답을 하였다. 스스로 탐구하도록 비계를 설정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수업에 왕도는 없다. 하지만 방향성은 반드시 있다.’ 교사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은 너무 많이 달라진다.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학생들의 숨겨진 재능을 깨우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최고의 교육시스템은 ‘교사’라는 것이다.
왜 정의적 영역인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역량’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역량의 개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으나 OECD가 발표한 2030 Education 문서에서 역량은 지식을 포함하여 기능·태도·가치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하면서, 단지 인지적인 부분만 아니라 전인적인 인간을 길러야 한다는, 그래야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평생 학습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내가 하는 수업이 더 좋아지도록 하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학습자 바탕을 만드는 일은 중요했다. 2020년 한 해, 학교에 나오지 못해 얼굴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성취기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내가 생각한 수준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 답답해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또 다른 궁리를 하기도 했다. 한 해가 끝날 즈음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중1 학생들은 가끔씩 나온 터라 학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2021년, 초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기본 학력도 떨어졌지만, 그 전에 학습동기가 필요했고, 하면 된다는 자기효능감이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보려는 자기주도성도 필요했다. 상황을 살펴 가며 자신의 욕구를 참을 줄 아는 학생, 친구가 어려움을 보이면 나서서 돕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절실했다. 잘 배우기 위해서는 배움이라는 인지 영역 바깥의 많은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의적 영역 평가방법 2012년부터 실시된 성취평가제에 따르면 교사는 교수학습의 계획과 평가 모두 성취기준에 근거해야 한다. 학생이 받은 점수는 그 학생이 성취기준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아무리 수업준비나 학생의 근면 성실함, 혹은 남을 기꺼이 도우려는 자세를 강조하고 싶다고 해도 그것을 점수화하여 성적에 넣을 수는 없다. 교사는 수업시간의 모든 배움을 성적으로 산출하지 않는다. 학습과 관련되어도 성취기준과 관계없다면 그 또한 점수화하지 않는다. 사회수업에서 인구 변화에 관한 발표 PPT가 보기 좋고 멋지다고 점수를 더 주지 않고, 국어수업에서 독서신문의 글씨체가 단정하고 깔끔하다고 점수를 더 주지 않는다.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점수에 넣을 때 학생에게 교사의 생각이 전달되리라 생각된다. 모둠으로 수행평가를 한다고 할 때, ‘협력’이라는 항목을 넣고 점수 배점을 하면 학생들이 모둠활동을 하면서 더 협력하려고 노력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자. 협력 항목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모둠활동을 열심히 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장려할 일이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아마도 교사는 그 학생이 진짜 협력하는 인간으로 자라기를 바랄 것이다. 점수라는 외적 동기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내적인 동기에 의해 협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모둠활동을 하면서 협력할 때의 시너지를 깨닫고 본인 스스로 점검해 보고 가끔 친구들의 잔소리를 듣는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물론 점수로 넣을 때만큼 눈에 띄는 행동변화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게 언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던가. 가랑비에 옷 젖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교사가 점수를 빌미로 학생들이 고분고분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학생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 점수가 아니라 어찌 보면 은연중에 조건부로 ‘이런 걸 하면 내가 점수를 줄게’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국어과 성취기준에 ‘태도’나 ‘가치’를 나타내는 정의적인 영역이 포함된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이를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바꾸어 그 도달 여부를 점수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어과 성취기준 중 ‘[9국03-10] 쓰기 윤리를 지키며 글을 쓰는 태도를 지닌다’를 다룬다고 할 때 ‘쓰기 윤리를 지키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 후, 쓰기 윤리를 지키며 글을 쓰는 사람의 특성, 그중에서도 특히 관찰 가능한 행동을 적어본다. 또한 쓰기 윤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특성도 적어본 후, 수행평가에 있을 법한 상황을 고려하여 양쪽 극단의 행동 그사이에 존재하는 모습도 기술하여 채점기준표로 만들면 된다. [PART VIEW] 수업시간에 정의적 영역 끌어들이기 학습을 위한 자세와 몸만들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고민하다가 학생의 마음을 우선 교실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몸은 교실에 있지만, 마음은 천지사방을 떠도는 학생들이 있다. 어젯밤 즐겼던 게임을 생각할 수도, 방과 후 친구와 약속을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을 ‘지금 여기’로 데려오기 위해 싱잉볼을 구입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느껴보고,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보게 했다. 1분 남짓 짧은 의례였지만 싱잉볼 소리가 끝났을 때 학생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교실이 안전하고 편한 공간이어야 친구들과 함께 학습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첫 시간에 모두가 함께 지키면 좋을 가치에 관해 이야기해 본 후 ‘공동의 약속’을 만들어 칠판 앞에 게시했다. 또한 반 친구들끼리 관계 맺기를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화 관련 성취기준을 앞쪽으로 가져와 첫 프로젝트로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시작했다. 낯선 짝에게 공감하고 반응하며 대화하고, 그 내용을 다른 친구들에게 발표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공감적이고 비폭력적인 대화법을 익히는 게 필요했다. 어설프게 내가 설명을 하는 것보다 더 깊게 배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수업시간 시작 때 10분씩 청소년·어린이를 위한 비폭력대화 책을 꾸준히 읽고, 읽은 내용을 스스로 요약 정리하도록 했다. 이론적으로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일 ‘배려하는 말하기 체크리스트’를 쓰면서 비폭력대화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도록 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생활할 때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집중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보게끔 했다. 자기평가를 활용한 정의적 영역 평가 사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보다 더 많았다. 학생들의 행동과 태도가 더 성장하여, 궁극적으로는 학습으로 연결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시간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관찰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했다. 마침 How to use grading to improve learning이라는 책을 읽다가 링컨 초등학교의 정의적 영역 루브릭 성적표를 보았다. 그래, 이거야! 어설프게 번역하여 ‘인성 발달 자기점검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여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첫 시간에 항상 그 프로젝트에서 도달해야 하는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한 ‘배움확인표’를 먼저 보여주면서 지금 자신의 상태를 표시해 보도록 했다. 이때 성취기준으로 대표되는 인지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인성 발달 자기점검표’로 대표되는 정의적 영역까지 함께 점검하도록 했다. 루브릭을 하나씩 함께 읽으며 수업시간 자신의 행동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스스로 점검하여 표시 해보게 했다. 시작할 때 표시한 후, 프로젝트 끝날 때 자신의 성장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게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매일 점검하지 않는다면 학생들 스스로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매일 목표 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행동변화를 이끄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매 수업시간 시작할 때 ‘배움진행표’를 쓰게 하는데, 여기에 ‘인성 발달 자기점검표’를 이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움진행표’는 수업 시작할 때 교사가 오늘 어떤 내용의 수업을 할 거고, 핵심질문은 이런 거라고 소개하면 그걸 듣고 학생 스스로가 목표를 쓴 후, 수업이 끝날 즈음 자신의 목표 달성 여부와 관련지어 ‘배우고 느끼고 궁금한 점’을 적어 보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해마다 학습목표 달성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인지적인 목표에 정의적인 목표까지 덧붙이게 했다. ‘배우고 느끼고 궁금한 점(배/느/궁)’을 쓸 때에도 정의적 목표 달성 여부도 적어 보면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은 공책 앞부분에 ‘인성 발달 자기점검표’를 끼워 놓고 매시간 ‘배움진행표’에 정의적 영역 중에서 자신이 오늘 특별히 잘해보고 싶은 부분을 적었다. 짝과 대화를 순조롭게 나누겠다는 성취기준 관련 목표를 적고 리더십을 보여야겠다는 정의적인 영역의 목표도 함께 적는다. 한 달여에 걸쳐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인성 발달 자기점검표’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했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표시하고 한 달 전과 비교하여 자신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적게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성장하고 발달했다고 소감을 적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수업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은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 본 후 학생들의 소감이다. 학생들이 쓴 자기점검표를 보니 대부분 학생은 자기 상태에 관해 솔직하게 풀어 놓았는데 몇몇 학생은 그냥 무조건 자신이 잘했다고 표시한 것이 눈에 띄었다. 스스로 점검하게 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한 건 순진한 발상이었나? 다시 고민했다. 내가 너는 어떻다고 체크를 해서 줄까? 그러면 학생이 상처를 받을까? 모든 학생에게 다 체크해서 줄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학생들이 교사보다 친구를 더 무서워한다는 걸 이용하여 친구들과 상호평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이거 괜히 친구들 사이 이간질시키는 거 아닐까? 모둠활동 상호평가표를 점수에 넣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성취기준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칫 친구들의 불성실함을 선생님께 고발하고 뭔가 처벌(보통은 점수)을 바라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대신 수업 끝나기 전 매일 배움진행표에 사인을 해 주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도와줄 것은 없는지를 묻고 다양한 불만사항들을 처리해 주었다. 새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모둠 친구들이 체크하도록 자기점검표를 수정했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 이렇게 표를 수정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너희들이 좀 더 멋진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거니까 성실하게 자기 상태에 대해 성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끝날 때 점검을 할 예정이니 ‘부동의’가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 정확하게 표시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 ‘배움확인표’에 자신의 그날 정의적 목표를 쓰고 점검하게 했고, 프로젝트 끝나고 난 후에는 프로젝트 전체 성찰 글쓰기와 더불어 다시 ‘인성 발달 자기점검표’에 표시해보게 했다. 아무래도 친구들이 이걸 다시 본다고 생각하니까 더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걷어서 꼼꼼히 살펴보니 몇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학생은 거의 매시간 교사에게 지적을 받는 학생이었다. 내 시간에도 그랬는데 다른 시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인지 본인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고 점검을 하면서 무조건 가장 나쁜 부분에 표시했다. 그런데 너무나 예쁘게도 같은 모둠이었던 친구가 ‘부동의’에 표시를 하면서 친구에게 그 정도까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이 학생이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면 좋겠다. 정의적 영역의 기록 그리고 학생의 성장 학생 스스로 점검하고 교사가 관찰한 학생의 특성은 순간순간 피드백을 하면서 학생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아울러 누가기록을 해 두었다가 학기 말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 그 학생 고유의 면면을 살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적어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교사는 학생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평가(assessment)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제공하여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학습을 조절할 수 있도록, 자아효능감 발달을 도와야 한다. 아주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참 쉽지 않은 길이다. 정의적 영역 평가라니 용어부터도 낯설기만 하다. 점수를 매기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학생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평가를 위해서는 자신이 해 오던 관행을 돌아보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부터 딱 한 가지만 바꿔보자.
매년 출판시장에 등록되는 어린이 책은 5천여 종 이상이다. 이 수많은 어린이 책 중에서 우리 학교도서관에서는 교과연계도서와 학생들의 수준과 관심을 고려한 다양한 주제의 책 1천여 종을 구입하고 있다.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한 책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많은 책 중에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너무 많은 정보는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 책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맞는 책을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 필자의 교육목표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도서관을 소개할 때, 도서관은 보물창고라고 알려준다. 재미있는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도서관이 보물창고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직 책과 친해지지 않은 학생들은 책은 보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도서관에는 3만여 권의 책이 있는데, 이 중에서 내가 보물처럼 좋아할 만한 책이 단 한 권도 없을까?” 하고 물으면 “책이 그렇게 많다면 그중에 한두 권쯤은 있겠죠”라고 대답한다. 사서교사와 함께하는 독서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단 열권을 읽더라도 스스로 보물 같은 책 한두 권은 꼭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보물의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파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어느 때나 읽어도 유익한 책은 없다. 나에게 맞는 책이란 읽으면서 내가 즐거워지는 책이고, 내가 처한 상황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권장도서 목록의 책 또는 누군가 추천해준 책을 읽었을 때 만족스럽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묻자 대부분의 학생이 재미없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의 고민을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때,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책을 읽었을 때, 숙제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책을 만났을 때 등 자신과 잘 맞는 책은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진다. 나의 상황을 인지하고 책을 고를 수 있어야 즐거운 독서생활을 할 수 있다. 수업의 전개 나에게 필요한 책, 내가 좋아하는 책을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책을 읽은 경험이나 내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4차시 온라인 수업을 구성하였다. 마침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첫 단원이 ‘읽을 책을 정하고 내용 예상하기’이므로 통합수업을 준비해도 좋다. 1·2차시에서는 목적에 맞게 책을 체계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고, 3·4차시에는 독서 성격유형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장르에 대해 배우고 나의 성격에 맞는 책을 찾는 재미있는 시간으로 구성하였다. 독서 성격유형 테스트는 생각이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매년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매년 실시하고 있다. [PART VIEW] ● 1차시 ● 2차시 ● 3차시 ● 4차시 기대 학습효과 초등학교 때 형성된 책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평생 독자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을 재미없고 누군가 시켜서 읽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필요한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면 학생들의 책 읽기 동기가 높아지고 자기주도학습의 기초가 될 것이다. 책 읽기 전 단계인 책 고르기 단계에서부터 책을 비판적으로 찾는 학생들은 읽기 목적이 더욱 뚜렷해지고 정보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교실과 복도로 만들어진 학교의 모습은 1차 산업혁명 시대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학교공간의 구조가 당시 첨단생산체계인 컨베이어시스템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이고 유지·관리·통제가 편하도록 고안된 장치인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의 반복적인 단순작업을 통해 표준화된 생산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테일러주의에 충실한 성과중심의 대량생산 공장체계다. 이러한 공장 모델이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학교에 적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많은 학생을 표준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단위화된 시·공간으로 나누어 균일하게 교육해야 하는 당시 학교의 목적과 맞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관리·통제·규율·표준화·성과중심주의 등의 가치관이 그대로 교육공간인 물리적 구조를 통해 학생들의 행태와 생활방식을 형성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학교와 더불어 근대를 대표하는 병원과 교도소 그리고 군대 막사 등의 건물들도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다. 결국 학교를 포함해 이 시설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서 일정한 인원으로 나누어 수용하고, 규율과 권위로 통제하며, 동시에 관리하기 좋은 공간구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시설들은 표준화된 도면으로 규격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데다 대체로 공간구조가 비슷하고 건물을 구축하는 방법과 자재 내역이 같아 시설 유지관리에도 수월하니 최고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규격화된 학교 … 성과와 관리의 산물 근대는 ‘기획의 세대’였다. 생산방법의 표준화로 일정 수준의 상품 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기획을 통해 일정한 목표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정을 세웠으며, 이를 통제 진행하는 일정관리와 생산관리가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근대기획의 성과추진방식이다. 근대학교의 보급은 앞서 말한 표준화된 공간구조뿐 아니라 이를 보급하고 시설을 확대하는 방법도 근대기획의 방식을 따랐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200년 전 생산체계 모델이 전혀 다른 생산과 평등한 사회구조를 지닌 지금에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환경을 설계하고 짓고 있는 것처럼 미래를 지향하는 학교도 새로운 교육환경의 학교건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또 하나의 문제는 근대적 성과달성방식의 고착이다. ‘기획-실행-성과평가’로 구성된 근대기획의 실행 방법은 효율적인 추진체계로 성과를 거둔 성공한 경험이 되어 변화된 사회와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혁신기업에서조차 성과중심 관리자와의 갈등이 비극을 부르는 경우처럼 생산방식은 바뀌어도 이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근대적 사업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육비전과 내용이 바뀌어도 학교건물은 바뀌지 않았듯 사업의 내용이 바뀌어도 이를 집행하는 방식을 답습, 오히려 형식이 내용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교육부는 2019년 ‘학교공간혁신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기획가로 참여한 필자는 사용자 참여 설계방법을 중심에 두고, 학교의 학생·교사·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과거 ‘열린교실사업’의 경우에서처럼 아무리 선진적 형태의 공간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경험과 준비 없이는 실패한다는 교훈을 반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를 실행하는 사업방법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적 상상을 공간적인 상상으로 바꾸어 나가는데 협력할 ‘학교공간 촉진자’라고 이름한 공간전문가들을 선발하여 사용자 참여과정을 학교공동체와 함께 진행하도록 구상했다. 학교가 교육지원청 시설담당이나 건축사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바람직한 학교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전문가 거버넌스 방식’으로 바꾸어 진행한 것이다. 사업과정이 시설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학교를 상상하고 만드는 것을 경험하고, 교사들은 더 적극적인 교육방법의 새로운 시도에 집중하며,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학교가 가능한 물리적 환경으로 협의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교육부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라는 학교시설 관련 사업을 새로이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실시된 학교공간혁신사업을 ‘40년 이상 된 노후학교’의 시설개축이 시급함을 반영하여 1,400여 학교를 대상으로 미래 지향적인 학교공간으로 개축 리모델링하는 확대(?)된 학교 단위 시설사업이다. 그런데 벌써 사업의 대상이며 주인인 학교공동체와의 참여 설계과정이 사라지고 기존의 시설사업으로 되돌아가는 등 사업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최근 몇몇 지역교육청에서 사업기간에 쫓겨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전기획 용역을 7~8개 학교, 또는 지역 전체를 한꺼번에 묶어서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미래학교구상의 핵심인 참여 설계과정과 학교-공간 마스터플랜을 사업집행의 속도와 편의에 따라 기존 시설사업 진행의 틀에 욱여넣어 ‘사전기획’이라는 대략 3개월 정도의 단기간 연구용역형식으로 축소한 결과가 결국 이렇게 학교의 미래를 덤핑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참여설계과정을 15일에 마치라는 협의가 있었다니 참여설계를 통한 우리 학교의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학교구성원들의 진지한 노력을 무시한 사업 진행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 안에 있는 ‘사전기획’ 내용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학교의 참여설계과정을 단지 시설공사를 위한 기획설계의 일부로만 보는 기존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공간을 다루는 일은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학교 학습공간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교의 마스터플랜과정이며, 학생들의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학교공간혁신사업’이 나름의 호응을 얻고 확대된 배경에는 지금까지의 학교시설사업과 달리 학교구성원의 참여와 이를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신중한 방법적 접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축소해 형식적인 과정으로 시설사업 틀 안에 다시 가두려는 것이다. 왜 그토록 학교공간은 바뀌지 않았는가 교육부는 ‘미래’라는 의미를 사업의 수식어로 이해하고, 기획된 사업의 기간 내 완수라는 성과만을 바라보는 오래된 사업관리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마치 설거지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레시피를 제한하는 격이니 왜 그토록 학교공간이 바뀌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래학교를 위한 공간·시설사업은 기간과 진행과정까지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계약(newdeal)이 필요한데 교육부 사업이 학교구성원의 바람보다 완고한 예산집행과 감사 등 옛 계약에 눈치를 더 보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러므로 법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여 새로운 사업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등 미래형 학교전환을 돕는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 관리 등에 대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오히려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미래학교를 위한 개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과거의 시설사업과정은 그대로 두고 그나마 의미 없는 참여과정으로 축소시킨 ‘사전기획’을 법제화하면서 이를 특정 기관에 위탁하여 적정성 검토 및 감독을 위임하는 독점권한을 주려고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공간사업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이를 학교교육의 미래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기에 기존의 시설사업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지와 관리라는 시설의 관점에 충실한 기관이자 규제와 책임, 대응과 통제라는 틀을 유지하려는 기관이 사전기획의 질을 제고하고 미래를 견인한다는 건 난센스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그릴 학교공간을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지역이 참여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진정한 사업과정이 되도록 사업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울러 미래를 함께 구상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과정을 존중하는 새로운 제도적인 틀이 필요하다. 미래학교는 공간적 실천을 통해 지금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몇 가지 제언을 붙인다. 교육 수요자가 만들어 가는 학교공간 첫째, 학교공간을 기존 시설사업의 진행방식으로 무리하게 진행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기간과 예산의 감독이 아니라 현장에 같이 힘을 보탤 유연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식, 그리고 감독할 또 다른 기관이 아니라 현장과 함께하는 지원기관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의 기본 구상단계부터 시설사업에 맞추어 짜인 사업구조를 시급히 재검토하여야 한다. 특히 사용자 참여를 통한 학교공간 변화의 힘든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학교공간 촉진자의 역할과 전문가 거버넌스 과정을 무시하고 과거 시설관련 용역의 일부인 소위 ‘사전기획’ 과정을 만들어 단기간(올해는 사업기간의 역산으로 산출된 3개월 남짓)안에 학교의 교육-공간 마스터플랜과 참여설계 그리고 미래학교의 밑그림까지를 그리라는 무리한 사업구조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의 모든 가치가 박제화되거나 형식화되는 결과를 만들 뿐이다. 셋째, 각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공간에 대한 역량과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공간을 구상하고, 경험을 확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영역 단위사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학교 전체에 대한 갑작스러운 개축 리모델링 사업은 그 규모나 사업 진행 등의 복잡성으로 경험이 없는 학교공동체가 참여를 꺼리게 된다. 학교공동체를 예전의 수동적인 사용자로 머물게 하려고 기획한 것이 아니라면 단계적인 사업을 같이 포함시켜야 한다. 작은 규모와 경험이 주체적인 공간사용자들의 역량을 증진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이 쌓여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선 올해는 많은 사업을 미래학교라는 잣대로 무리하게 끌고 가기보다 시설의 노후도 및 보수 시급성과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과 역량을 고려하여 ‘노후시설 개축 중점사업’과 ‘미래학교 공간혁신중심사업’으로 구분하여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오히려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에 대한 의지와 공동체의 역량에 적합한 미래학교 공간을 위한 지원을 집중할 수 있고 바람직한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하면 그 건물을 짓는 목적 자체를 잃게 되는 그런 과정이라는 점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옛 사업구조에 고착되어 진행한다면 새로운 학교사업의 목적을 잃게 하는 것이고 사용자의 주인됨을 빼앗아 과거 학교를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다시 강요하는 우를 범하게 될까 걱정된다.
‘메타버스(metaverse)’를 향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어떤 이는 또 한 번 교육계에 불어 닥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곧 지나갈 유행일 뿐이라며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메타버스가 전 세계 경제시장의 핫이슈로 떠올랐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빠르게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듀이(Dewey)는 생활 경험적 관점에서 교육이란 생활이며, 성장이고, 사회적 과정이자 계속적인 경험의 재구성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교육이란 끝없는 경험 개조의 과정이며, 경험을 사회적·실용적으로 넓히고 깊게 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 역시 최신 기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교육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시도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주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기에,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적 시도와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말이다. ‘메타버스’ 너는 누구? 그렇다면 메타버스가 대체 무엇이고, 우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메타버스란 가상·초월의 의미인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온라인 속 가상공간에서 아바타 모습으로 구현한 개인이 돈을 벌거나 소비하고, 놀면서 일하는 상호소통과 현실 활동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초월적 가상공간에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콘텐츠가 모이게 되고, 그 안에서 현실세계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즉,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AR·VR로 대변되는 가상현실·증강현실은 이전에도 있었고, 더 이전의 싸이월드처럼 도토리를 모으며 온라인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세상도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메타버스가 요즘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키워드가 된 까닭은 무엇이며, 우리 교육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첫째,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시대가 급속히 도래하면서 모든 기술의 원격지원이라는 시장의 니즈를 충족시켜 나갈 수밖에 없는, ‘디지털 지구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영상회의·원격수업·재택근무 등 대부분의 일상 활동에 비대면 방식이 빠르게 침투하였고, 대중 집합이 지속적으로 금지되고 제한되면서 교육·의료·공연 등 모든 분야에서 단순 일방 중계를 넘어 메타버스와 같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교육현장을 떠올려보자. 처음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원격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원격수업만으로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보다 효과적인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그렇게 커졌던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는 이제 가상공간에서 아이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수업도 듣고, 학교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있는 새로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로 옮겨가고 있다. 줌이나 구글 미트와 같은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 플랫폼이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에서 교사의 지시에 따라 수업을 듣고 발표하고, 쉬는 시간에는 잠시 현실세계로 나왔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면 가상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라면,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의 수업은 이와 사뭇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수업과 상관없이 학생들은 이미 메타버스 세상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다 등교시간이 되면 학교로 이동하여 친구들과 만나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과 동아리활동도 자유롭게 해나갈 수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실시간 쌍방향수업을 받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자유롭게 메타버스 교실 속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친구들과 여전히 상호작용하며 현실세계에서 해왔던 것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또다른 자아실현을 둘째,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해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과 목표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환경에 노출됐기에 가상세계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스냅챗·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하루에도 수차례 사용하며, 비디오 스트리밍을 하는 시간이 1주일에 23시간 이상 된다고 한다. 또한 사회적 이슈,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도 상당히 적극적이며, 하나의 게시물·트윗 또는 상태 업데이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게임·유통·광고업계 등이 주 소비층으로 성장하고 있는 Z세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개발이 활기를 띄고, 메타버스를 핫 키워드로 만들고 있다. 이는 교육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하다. 현실세계에서는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직업세계를 메타버스 속에서는 경험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선두주자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레고처럼 생긴 아바타가 되어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게임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등교를 못 하게 된 미국 초등학생들이 상호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55%가 가입했고, 하루 평균 접속자만 4,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 인기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다른 이용자와 함께 테마파크를 건설하고 운영한다. 애완동물을 입양하여 키울 수 있고, 레스토랑을 지어서 경영해 볼 수 있으며 스쿠버다이버가 되어 전 세계 곳곳을 헤엄칠 수 있다. 다양한 세상과 직업군을 경험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경험하지 못할 세계가 없다는 점이 바로 이 메타버스 세상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메타버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의 세계는 가상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상세상에서의 음악활동이 현실세상의 음악활동으로도 이어지고, 가상세상에서의 가게운영이 실제 현실세계의 수익과도 이어지는 구조를 생각한다면 미래 우리 학생들의 직업·진로체험이나 금융·경제교육과도 연계해볼 수 있는 시사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우리나라 메타버스 선두주자인 모 기업의 경우 나만의 아이템을 직접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어 이를 판매할 수 있게 했다.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현실세계에서 못했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셋째, 실감형 콘텐츠를 가능하게 하는 5G·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메타버스 핵심 기술인 AR·VR을 포함한 XR(확장현실)이 점차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메타버스 시장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이는 교육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잠시 디지털 교과서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성 여부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서책형 교과서에서 디지털 교과서로의 전환은 단순히 종이에 담던 내용을 모니터로 옮긴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의 전환은 교수·학습방법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디지털화된 교육의 내용은 초연결세상에 접근이 가능하므로 새로운 지식으로의 전환과 연결이 매우 용이해진다. 또한 수정이 용이하고 데이터화된 모든 학습행동이 저장되면서 이를 분석한 결과를 새로운 교수·학습환경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실감형 콘텐츠 교육효과 클 것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교육 역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실감형 콘텐츠가 주는 역동성과 현실감은 교육의 효과성에 큰 진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기술적 한계로 디지털 교과서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빠른 기술적 발전은 이전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실감형 교육 콘텐츠 개발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문제해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고 융합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지식의 폭을 상상 이상으로 확장시켜 줄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교육데이터들은 더 나은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교육활동을 위한 데이터로서 다시 또 활용되는 선순환적 디지털 교육생태계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이상으로 ‘메타버스’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키워드가 된 까닭과 우리 교육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메타버스 산업이 이제 막 부흥하고 있고 교육에의 접목 역시 아직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교육에 적용된 사례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갈 때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사실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큰 성장을 위한 준비를 가능하게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세상에 대한 경험적 시도를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그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 교사가 해야 할 당연한 숙제는 아닐까. 메타버스와 교육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성공 신화는 고도의 경제성장 덕분 청년 중 실업자가 절반인 지금은 ‘전원일기’ 같은 옛 향수일 뿐 딜레마에 빠진 한국 교육 파괴적 혁신 절실 … 지금이 변신 적기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학은 곧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인생 변수’가 되곤 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학 졸업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직장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성장을 교육이 이끌었다는 ‘한국판 드라마’의 신화가 세계적으로 회자 되었다. 한국 교육이 한 편의 ‘드라마’로 표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학교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경제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다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학교 문을 나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쳤다면,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대한민국에 대한 교육 찬사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칭송은 이제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추억일 뿐이다.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학교교육은 별반 바뀌지 않고 고학력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전체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해 미래의 부푼 꿈을 설계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절반은 실업자 신세가 된다. 4년제 대졸자가 좋은 직장은커녕 전문대 졸업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심지어 고졸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협한다. 교육의 배신이자 교육의 실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경제인구 활동조사-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실감이 난다. 우리나라 청년층 인구는 879만 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만 6,000명(-1.5%) 줄어들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49%, 고용률은 44.4%에 불과했다. 주목할 대목은 대졸자 통계다. 대졸자 휴학 경험 비율은 48.1%였고, 졸업(중퇴) 후 첫 취업 소요기간은 10.1개월로 나타났다.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2개월, 첫 일자리 임금은 150만~200만 원 미만이 37%, 200만~300만 원 미만이 23.2%, 100만~150만 원 미만이 20%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나. 필자는 ‘대한민국 교육의 딜레마’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은 교육을 통한 희망사다리 오르기로 상징되는 교육 출세론에 부모주의(parentocracy)가 결합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칠판 하나만 놓고 가르쳐도 학생들이 넘쳐났고, 졸업장을 받은 청년들은 쉽게 취업하는 황금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이 확 바뀌었다. 대졸자의 절반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외국 대학 유학파까지 응시하니 이거야말로 교육의 실패이자 딜레마가 아닌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입학자원이 급감하고 4차 산업혁명 등 국내외 환경변화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이후 대학 입학정원이 입학 가능 학생 수보다 커지는 역전현상이 본격화하는 격변기를 맞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을 갖고 대응하는 것(피터 드러커)’인데 우리 교육이 딱 그런 꼴이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왜 그럴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번 가까이 칭송한 한국 교육의 우수성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한국 교육은 우리가 못 살고 학교 교육환경이 엉망이었을 때는 ‘인기 드라마’를 방영했지만, 외국 대학도 부러워할 정도의 쾌적한 호텔 같은 인프라를 갖춘 대학이 수두룩한 현재는 ‘실패의 드라마’를 억지로 내보내고 있다. 2021년도 전체 대학의 충원율은 91.4%로 미충원 인원이 4만 586명이었다. 특히 거점 국립대의 경우도 미달 사태가 속출했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 사립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21학년도 입학정원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정원 미달 인원이 2022년부터 매년 증가해 2024년에는 10만 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4년에 지방대학 10개교 중에서 1개교는 신입생 충원율이 ‘50% 미만’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 교육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초·중·고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으로 고착화했고, 객관식 위주의 교육은 여전하고, 커리큘럼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분들에게는 야박한 평가라서 송구스럽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3학기 보낸 시점에서 반추해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등교육 구조조정, 국립대부터 실시해야 효과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대학 문턱이 낮아진다고 해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다. 대학 수십 개가 문을 닫아도 소위 ‘SKY 대학’ 입시 경쟁률은 별로 완화될 것 같지 않다는 게 필자의 우둔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녀를 한 명이나 두 명 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한 교육비 지출을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고, 교육 출세론에 대한 ‘희망 고문’ 또한 여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등교육이 변화하지 않으면 고3 담임들은 계속 상위권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에 대한 평가 압박에 시달릴 게 자명하다. 유능한 교사와 무능한 교사의 평가 잣대가 SKY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가 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업적주의(meritocracy)의 악령이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정원 조정 개입→자율→방기→개입을 되풀이하는 사이 대학은 자강 능력을 잃고 ‘눈치 대학’으로 변질됐다. 대학구조개혁의 기본은 교육시장원리에 따른 수요 공급과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의 자생적 질(교육·연구·사회기여도)이 높아지는 데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 평가나 나눠주기 지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교육기관 수를 장기적으로 최소 100개 이상 줄여 양적 팽창을 질적 팽창으로, 추격형 교육을 선도형 교육으로 바꾸는 파괴적 개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한 정치권의 입김에 대학구조개혁은 답보 상태다. 정치인들은 개별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와 경제적 비중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대학이 문 닫으면 지역 경제가 초토화한다’는 레토릭만 반복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과 대학의 성적표인 ‘교육수요자 원칙’을 냉정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신호탄을 국립대가 쏴야 한다. 국립대에 웬 안경광학과인가 … 국립대부터 구조조정 해야 고등교육 재편은 곧 중·고교의 커리큘럼 변화와 교수법 변화와 맞물린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수술 칼날은 예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와 국·공립대 개혁을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립대는 단계적으로 줄여 지역별로 통합해 광역화하는 게 당연하다. 궁극적으론 ‘1도(道) 1국립대’로 개편이 절실하다. 교육부가 대학을 인위적으로 손본다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대가 더 적합하다. 국립대 개혁의 필요성은 전공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국립대가 전문대 전공을 카피하는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에 의뢰에 근거 자료를 찾아본 결과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 중 114개 대학(원) 520개 학과(학부 307, 대학원 213)에서 전문대가 운영하는 학과를 중복 개설하고 있었다. 전문대가 처음 개설한 전공을 일반대학(대학원)이 따라 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경광학·치위생·치기공·철도·물리치료·작업치료·방사선·뷰티/미용·응급구조·외식·조리·카지노·소믈리에·바리스타·반려동물·제과제빵 전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국립대의 전문대 카피 사례는 다음 표와 같다. 물론 국립대가 전문대의 전공을 더 심화해 학문적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 장관은 20대 국회의원 시절 정책자료집(전문대학 10년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 전문대학 정책 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 안에서는 4년제 대학의 전문대학 관련학과 신설을 막기 어렵고, 오히려 확대되기 쉽다. 정부는 산업계에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 경영 악화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있듯이, 대학교육에서도 전문대학만이 유지할 수 있는 학과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해 전문대학이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관이 된 후에도 고등교육 체질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고등교육의 실패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더 이상 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전공과 기업 수요의 미스매치(mismatch)는 고사하고 절대 일자리 수가 부족해서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신화는 앞으론 허망한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고 있다. 그런 교육의 딜레마가 계속된다. 이제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도, 사회도, 기업도, 교육공무원도,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의식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학자와 전국의 선생님,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이 적기(適期)다.
“2022 교육과정 개정에 맞춰 초등 정보교육을 3~4학년군부터 시작하고 초·중등교육에서 SW 코딩에 기반한 AI 융합교육을 하루속히 확대 실시해야 합니다.” 이재호 한국정보교육학회 회장(사진·경인교대 교수)는 “미래세대인 초·중등학생에게 ‘SW 코딩 기반의 컴퓨팅 사고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정보교육을 공교육체제에서 시행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고 국가적 책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AI 시대 인재 양성을 위해 정보교육 시기를 앞당기고, 상급학년과 연계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SW/AI 디바이드’가 발생, 새로운 교육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996년 설립된 한국정보교육학회는 초등분야 정보교육에 특화된 학회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 존재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교육정보화 분야를 개척하며 대한민국 미래교육을 선도해 온 학회는 초등교사부터 대학교수, 전문가 등에 이르기까지 1,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발행하는 학술지는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인용됐느냐를 나타내는 임팩트 팩터에서 최상위 등급을 차지,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초등 정보교과 수업시수 연 17시간 불과 학회는 지난 8월 13일 ‘초등학교 정보교과 교육과정 구성 방안을 주제’로 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초등학교 정보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이 회장은 행사에 앞서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에 무슨 정보교육이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는 데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강력한 미래 경쟁력은 SW와 AI 분야에서 얼마나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현행 2015 교육과정에서는 학교 SW교육을 필수로 지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 교육과정이란 호적에는 올라 있지만 대접은 형편없다. AI 등장으로 SW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과 반비례, 교육현장에선 되레 역주행이다. 우선 교육 시기가 너무 늦다. 대부분 초등학교가 6학년 2학기에 SW교육을 실시한다. 졸업을 앞둔 분주한 시기, 내실 있는 교육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초등 3학년부터 SW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3~4학년 시기에 SW교육을 받아야 5~6학년 때 본격적으로 각 교과에서 시행하는 AI 융합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으며, 교육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초등 SW교육 수업시수도 문제로 들었다. 초등학교에서는 SW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수업시수는 1~6학년 과정을 통틀어 17시간. 초등학교의 총 교육시간을 5,892시간으로 가정했을 때 비율은 0.289%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학원에서 SW교육을 받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교육이 교육수요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셈이다. 실제 이 같은 사교육 격차는 학생들 간 ‘SW 및 AI 디바이드’ 발생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회장은 “초등학생 시기에 형성된 ‘SW 및 AI 디바이드’는 상급 학교로 진급하면서 그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성인이 된 후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정의 소득 격차가 학생 간 디지털 역량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미래사회 역량을 좌우하면서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법은 없을까? 이 회장은 우선 SW교육 수업시수를 34시간을 늘려 최소 일주일에 한 시간은 수업할 수 있게 해야 기본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생 간 ‘SW/AI 디바이드’ ... 교육불평등 초래 할 것 SW교육의 기반이 되는 초등 정보교과 독립도 학회의 숙원사업 중 하나. AI와 SW를 학생들의 필수 역량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실과교과의 일부 단원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교과로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의 정보교과 신설만이 ‘SW 및 AI 인재 강국’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이를 통해 포스트 AI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사고력 즉,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는 데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명제는 SW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수한 교사의 배출이 학교 SW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정부는 역주행이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초·중등 교원양성체제개편 방안을 통해 교대 교육과정 기본이수과목에서 초등컴퓨터 과목을 과학/실과 교과군에 흡수 통합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쉬어가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 상황에서 학교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사들의 우수한 컴퓨터 활용 능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기초가 된 것이 교육대학 교육과정이었고요. 그런데 초등컴퓨터 교과를 폐지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입니다.” 이 회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들어 AI교육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교사연수 등 역량개발에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종전에는 교사들에게 각종 연수기회가 많이 주어졌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소수 정예 양성을 명분으로 AI융합대학원에서 연수를 실시하는 바람에 규모가 많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AI융합대학원이 심도 있는 연수로 질적 수준을 높인 것은 바람직하지만, 소수로 운영되다 보니 양적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정보교육학회와 함께 앞으로 초등 정보교육 활성화에 모든 것을 바칠 각오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기 대권후보들에게 정보교육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주길 호소할 생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교육정보화사업을 주도했던 것처럼 차기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보교육 활성화에 적극 나서 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고 말했다.
부산 금명초등학교 송지영(사진) 교사가 ‘제65회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육부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교수·학습방법 개선과 교원 전문성 신장을 위해 전국의 교원을 대상으로 열린다. ‘변화하는 사회, 선도하는 현장교육, 꿈을 이루는 미래학생’을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송 교사는 ‘소행성+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L-STAR 역량 기르기’를 출품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소행성+인공지능 프로그램’이란 블렌디드러닝을 기반으로 한 소통·행복·성장 교육활동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공감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미래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데 목적을 뒀다. L-STAR 역량은 2015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의사소통역량(story), 공동체역량(together), 자기관리역량(auto), 지식정보처리역량(report), 창의·융합리더역량(leader)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첫 글자를 따 만든 용어다. 송 교사는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온택트 활동으로 학생들의 핵심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2학기에도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이 병행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연구물로 보인다. 한창 뛰어놀며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모니터 앞에서만 선생님을 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들 마음속에 꽁꽁 담겨있는 이야기를 꺼내 함께 나누며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보이는 거리두기는 지켜야겠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히는, 그래서 같이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큰 상을 받고 보니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 아직 얼떨떨하다. 소통과 행복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길을 끈다. 온라인 학습이 길어지면서 기초학력부진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학력부진은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신감 하락과 무기력감, 우울감 등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교사인 나도 당혹스러웠는데 학생들은 오죽했겠는가.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사는 데서 오는 행복과 꾸준히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려 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소통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작년에 맡은 반이 3학년이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을 만나고 보니 모두가 낯설고 어색했다. 이대로는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서로 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급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좌우명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즐기는 취미생활 등을 동영상으로 공개하게 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거나 수영하는 모습들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교실에서는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관계를 형성해 갔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부터는 토론을 통해 학급규칙을 만들고 특정 주제를 정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신호등 토론이나 피라미드 토론, 악마와 천사 토론 등의 기법을 사용했다. 소심했던 아이들이 활기를 되찾고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 소행성 프로그램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학생들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했다. 나부터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해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구나, 그럼 나도 자신 있게 말해야지’ 하는 마음을 심어주려 했다. 교사가 망가지니까 모두들 좋아하고 활기찬 학급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 또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열심히 들어주려 노력했다.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연대의식과 또 언제 어디서든 학교는 너희들의 성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인공지능교육을 한다는 게 무리가 아닐까?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주로 5·6학년 실과시간에 다루는 내용이어서 솔직히 부담이 컸다. 학생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했고 어떻게 하면 흥미 있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튜링 테스트나 안전 챗봇 놀이를 진행했다. 또 언플러그드 보드게임을 통해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컴퓨터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했다. 연구논문에는 영역별로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소통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행복은 개그맨 유재석, 성장에는 김연아 등 이들을 내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소행성’이 추구하는 바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연구논문이 단순히 연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전파되고 스며들기 위해서는 일반화 가능한 요소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화두에 맞는 인물을 선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유재석 씨를 가장 좋아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누구에게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재석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 교사들이 이를 활용할 때 도움이 될만한 팁을 준다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부딪혔던 문제들과 풀어가는 과정, 학생들 반응까지 연구논문에 자세하게 실었다. 스스로 반성했던 부분도 언급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좀 더 잘하려고, 좀 더 많은 성과를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아이들도 조금은 힘들어했다.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더라. 현장연구대회를 거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1년 반 정도 준비했다. 스스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였다. 처음엔 학생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마치고 보니 내가 변하는 계기가 됐다. 도움 주러 같다가 도움 받고 온 기분이다. 현장연구대회 두 번의 도전 만에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앞으로 또 다른 목표가 있나? 미래역량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변화하는 교사, 연구하는 교사, ‘라떼’에 머무르지 않는 교사이고 싶다.
프롤로그 _ 여행을 왜 하는가?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여행을 왜 하느냐고. 인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 인도가 어떻더냐고 물어왔을 때와 비슷한 물음 같았지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금 식상한 비유로 답을 했습니다. 여행을 해도 세월은 가고, 여행을 하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다만, 여행을 하며 보낸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에 비해, 계량화하여 말할 수 없는, 내면적인 어떤 채워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잉카문명이나 그 유명한 우유니사막 같은 것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혹은 아프리카처럼 안데스 남아메리카 그리고 티티카카란 이름들이, 같은 세상이지만 세상 밖인 것처럼 여겨지던 그런 낯선 세계에 대한 그리움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은 어쩌면 사랑과도 닮았네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끌리고 급기야는 그에게 온 마음을 사로잡히는 경우 같은 것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수직으로 땅굴을 파고 나가면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곳이 남미 땅이야”라며 어릴 적에는 이 대륙에 대해 동화 같은 표현으로 말하곤 했지요. 지구상의 가장 먼 곳, 쉬이 다가설 수 없고 그래서 더욱 그리운 사람처럼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생이 끝나기 전에 만나고픈 존재, 결코 이를 수 없을 것만 같던 먼 바다였던 당신이 바로 남미였습니다. #2 _ 페루의 두 얼굴 남국의 온화하고 즐거운 햇빛입니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시원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엔 저마다 즐거운 미소가 흘러내립니다. 페루 리마에서 시작한 여행. 번화와 남루는 경극 배우의 뒤바뀌는 얼굴처럼 순식간에 드러나곤 합니다. 대통령궁과 리마 대성당 언저리의 식민지풍 세련미 그리고 신시가지의 번화함과 산트로발 언덕길 황막한 산길과 빈민가 모습들의 대조…. 오래된 삶의 모습들이지요. 그리고 또 페루는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안데스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인 이 지역은 연중 비가 내리지 않는 가장 건조한 지역이랍니다. 그러나 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로 관제 시설을 한 곳은 남국의 싱그러운 푸른빛을 자랑합니다. 반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은 모래 먼지 흩날리는 목마른 사막, 황무지의 풍경입니다. 사막과 농경지가 한 풍경 안에 드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구도입니다. 원경으로는 황폐한 사막 구릉이 펼쳐져 있고 근경으로 푸른빛 성성한 농경지라니…. 이런 비현실적 구도의 반복이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됩니다. 1년 평균 강수량이 25~5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불모의 땅이지만, 안데스의 축복으로 흘러내리는 빙하의 물줄기가 있어 푸른 목숨을 출렁이게 하는 것이로군요. 내가 지구 반대편 나라에 와 있단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여기 페루에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 생이 놀랍답니다. 다른 미사여구보다도 더 확실한 여행의 기적이지요. 따뜻한 남국, 강이 흐르는 낮은 곳에 접어들면 무성한 푸른빛이 출렁입니다. 1년에 사나흘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곳 날씨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지요. 내가 있고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 삶의 가장 놀라운 기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두 얼굴이 있습니다. 잉카의 토대 위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로이 새겨진 제국주의 문명. 태양을 모시던 잉카의 제단은 제국주의의 침탈로 몸체를 잃고, 그 위에 아이러니한 제국주의 문명의 상징인 성당으로 트랜스포머가 됩니다. 서구풍으로 광장이 세워지고, 계획된 도시는 삶의 편리와 새로운 문명의 합리성으로 치장되어 칼과 총으로 강제되었던 사실마저 종국에는 아득히 잊게 만듭니다. 원주민들에게 노동을 착취하면서 그 대가로 기독교인이 되게 해 준다는 지독한 모순이 몇 세기 지속되어온 곳. 그 이중성이 모자이크된 이 땅의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쿠스코를 향해 버스가 안데스 산줄기를 넘습니다. 버스에 탄 몇 사람들은 고산증을 호소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저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네요. 그래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줄곧 달려 밤을 새우는 이 길이 안데스 고산을 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해발 4,000을 어떨 땐 5,000m를 넘었다고 고도계를 가진 분들이 말을 하곤 합니다. 버스가 하도 더디게 운행을 해서 차창 밖을 내다봤더니, 세상에나 눈이 내립니다. 적도 조금 아래인 이곳에, 그것도 한여름인 계절에 눈이 내린다면 얼마나 높은 곳에 놓인 길인지를 짐작할 것 같지요? 그런 높고 꾸불꾸불한 길을 17시간가량 짚어 나갑니다. 내게도 옅은 두통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나는 아득한 이 고산의 느낌이 딴 세상에 온 표징이라도 되는 듯 반갑고 즐겁습니다. 희뿌옇게 하늘이 열리고, 마음속 탄성과 함께 높은 안데스의 희끗한 산봉우리가 눈에 듭니다. 대서양을 넘어온 비구름들은 모두 이 산줄기에서 그만 발목을 잡혔나 봅니다. 리마나 나스까에서 찾아볼 수 없던 푸른 빛깔들이 온 산과 언덕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스코(해발 3,400m). 잉카인들이 세상의 배꼽이라 여겼다던, 잉카의 수도에 도착합니다. 고산 도시 특유의 으스스한 한기와 옅은 고소 기운이 먼저 마중 나와 온몸으로 안겨듭니다. 숙소에 짐을 푼 나는 주저함 없이 꼬리깐차로 향합니다. 잉카제국의 신전이었던 터를 깔고 앉은 산토도밍고 성당. 잉카인들은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는 믿음에 따라 쿠스코 도시 전체를 퓨마 모양으로 본떠서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 중심 허리부분에 설계한 것이 바로 꼬리깐차라고 하지요. 철기조차도 없었다던 16세기 잉카문명의 거듭 놀라운 석조 기술. 그 위에 기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또한 너무나도 화려한 정복자들의 문명. 분명 거듭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스페인 침략 전인 잉카제국 시절 꼬리깐차는 잉카제국이 숭배했던 태양(Inti)을 모시는 신전이었습니다. 침략 후 스페인 사람들은 이 꼬리깐차 신전의 본래 건물은 부수고 아주 견고했던 터와 외곽 벽을 기초로 그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짓고 수도원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 큰 지진에 성당은 무너져 다시 세웠지만, 지탱하고 있는 꼬리깐차 신전의 외벽과 기초는 견고하게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리마·쿠스코 등 주요 도시에 이를 때마다 이런 풍경은 계속됩니다. 어디 페루뿐이겠습니까. 남미 대륙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새였으니, 지난 제국주의의 위세를 온몸으로 다시 느끼게 되지요. 나무를 고사시키고서라도 자신의 생명을 더욱 푸르게 하는 기생식물처럼 제국주의자들은 그런 식민지를 설계했나 봅니다. 해가 지지 않을 영원한 제국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웅장한 성당들과 치밀하고도 견고하게 그리고 서구식 감성까지 더하여 만들어진 도심을 보며 느낀 생각입니다. 잉카의 토속 문명 그 토대 위에 파괴와 혼합의 배율이 혼재되어 있는 남미 곳곳의 풍경이 마치 우리의 식민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여행 내내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교육 구현과 미래역량을 갖춘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 양성’을 비전으로 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비전에 따른 추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큰 화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디지털 전환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의 질 개선, 그리고 2025년부터 시행할 고교학점제인 듯싶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추진계획은 발표되었으나 총론이나 각론은 발표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현장 적용 상황을 토대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바라는 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바른 인성의 토대 위에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다양한 지식을 창조·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교과교육을 포함한 학교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핵심역량을 함양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각 교과별로 교과역량을 정하고 이를 각론에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과역량은 실제 수업현장에서 얼마나,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연수가 2016학년도에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긴 하였으나 교과별 교육과정의 내용 변화(추가·삭제·이동 등)에 집중되다 보니 강사든 연수생이든 교과역량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았다. 강사 또한 교육부에서 연수받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으므로 교과역량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교과역량의 명칭을 안내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현장교사들의 교과역량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까지는 학교현장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이 학교수업과 평가에 적절히 적용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교육부에서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과별 과정중심평가 연수를 통해 평가과제 설계 및 채점기준 작성 시 교과역량이 언급되면서 적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일부 이루어진 상태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역량함양교육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행 수업과 평가에 교과역량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학교현장에 대한 지원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취기준 재구조화는 어떻게? 교과역량과 더불어 수업현장에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 중 하나는 성취기준의 재구조화이다. 성취기준의 재구조화란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실제 교수·학습 및 평가상황에 적합하도록 조정하는 것으로, 교사는 필요한 경우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성취기준을 보다 명료하게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마다 학생의 수준·환경 및 교사의 관점 등이 다르므로 교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20학년도부터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면서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높아졌으나 교사들은 성취기준 분석의 과정을 수행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교과서의 내용 순서를 바꾸거나 수업 소재와 도구 등을 변경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교육과정이 등교수업을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원격수업을 적용함에 있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성취기준에 대한 해설이 없다 보니 그 해석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 또 교사마다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 성취기준 재구조화를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사연수 등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취기준과 함께 그에 따른 해설서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그 해설에 대한 교사연수를 병행하는 등 교육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해설서 및 연수자료에는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목적과 방안, 그에 따른 예시를 함께 제시하면 좋을 듯하다.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등교수업뿐만 아니라 원격수업 등 다양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과속 … 준비 안 된 현장은 혼란 마지막으로 매번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중·고등학교에 도입된 2018학년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언급되었다. 교육과정 개정은 일선 학교의 수업과 평가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적인 교육의 흐름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 같지만 교육과정 개정으로 인한 학교현장의 혼란과 어려움은 소외돼 아쉽다. 교육과정이 아무리 좋은 목적과 의미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학교현장에서 이를 소화할 수 없거나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교육과정 개정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혼란만 초래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오히려 현장교사들의 의견은 더욱 축소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아직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2020학년도에 와서야 비로소 모든 학년에 적용이 완료됐다. 때문에 현장교사들의 적극적인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현 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논의를 거친 뒤 보완해야 할 점을 찾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7차 교육과정의 테두리 안에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현장에 요구되어지는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고려하여 서두르지 말고 체계적인 과정을 밟아 신중하게 개정되었으면 한다. 일정에 따르면 현재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총론 주요사항 및 각론 재구조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주요사항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책연구뿐만 아니라, 토론회·포럼·공청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얼마나 실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부에서는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간단한 웹사이트를 개설하거나 티클리어에 관련 게시판을 만드는 등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와 의견 수렴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교육과정의 실제 운영자인 교사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고의 교사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가르치는가 (더그 레모브·TLAC팀 지음, 김은경 옮김, 해냄출판사 펴냄, 252쪽, 1만6800원) 코로나19 장기화로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저하되고, 교사들의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저자는 온·오프라인을 넘어 좋은 수업의 본질을 정의하고, 온라인 교실에서 학생들과 유대감을 쌓고 학생들의 집중력을 관리하는 온라인 수업의 핵심 비법 등을 담았다. 온라인 수업의 성패는 화려하고 다양한 도구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사의 교수법에 있음을 강조한다.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 (김현수 지음, ㈜창비 펴냄, 302쪽, 1만6800원) 정신의학과 의사이자 수많은 교사 모임과 함께하며 교사들의 치유자로 활동해 온 저자는 소진과 마음의 상처로 병원을 찾은 교사들의 아픔을 면밀히 분석하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자신이 만나고 상담했던 사례들을 통해 교사들의 아픔을 알아주며, 교사라는 직업의 중요성과 가르치는 일의 숭고함을 상기시키고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응원하고 있다.
고마워 교실 (양경윤·김미정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280쪽, 1만5800원)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아 했던 ‘문제 학급’에 갑작스럽게 담임으로 투입된 교사가 수석교사의 코칭을 받으며 ‘고마워 교실’을 꾸려간다. 하루 100번 아이들에게 ‘고마워’를 말하는 ‘고마워 샤워’부터 ‘고마워 미소’ ‘고마워 안아주기’ 등 존재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훈련을 통해 놀랄 만한 변화가 시작된다. 감사일기 열풍을 불러온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의 저자인 양경윤 수석교사의 후속작이다.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데보라 레버 지음, 이로미 옮김, 수오서재 펴냄, 392쪽, 1만7000원) 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을 키우는 저자는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만들며 새로운 양육법을 제안하고 있다. 신경학적 ‘다름’을 ‘결핍’이 아닌 ‘다양성’으로 지지하며, 정상의 틀에 맞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대로 인정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18가지의 양육법을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