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80,56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교육인적자원부에서 ‘2007년 여성 교원 관리직 세부현황’을 발표하였다. 전체 여성 교원 비율은 지난해 65.8%에서 올해 66.9%로 1.1%포인트 올랐다. 전체 교원 30만2848명 가운데 20만2519명이 여성이다. 초등 교원의 72.8%, 중학 교원의 69.2%, 고교 교원의 48.7%를 여성이 차지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여성 교원 비율은 전체 교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서 여초(女超) 현상이 심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부모가 올린 다음과 같은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아들이 초등4학년인데요, 여자선생님반은 아예 체육을 안한답니다. 유일하게 남자선생님이 가르치는 반만 체육시간에 공도 차고 재미있게 논다며 이젠 자기도 제발 남자선생님한테 배웠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이다. 교총 설문결과 여교사의 58.5%가 여성화를 우려하고 있고 현장에서도 학생 생활지도, 교육활동 상 애로를 느끼는 게 사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와스모어대학 경제학자인 토머스 S.디이 교수가 지난 1998년부터 2만명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분석해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발간한 논문에 의하면 남학생은 남자 교사에게, 여학생은 여자 교사에게 배울 때 학생들의 학습참여는 물론 학업성적도 상당히 올라간다고 하였다. 여성 교장과 교감 비율은 전체의 14.1%로 2003년 9.7%, 2005년 11.8%에서 해마다 증가했다. 초등학교에선 14.2%, 중학교에서 19%, 고교에서 5.5%의 교장 교감이 여성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여교사의 승진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교육전문직 진출도 활발해졌다. 연구사의 30%와 연구관의 11.3%가 여성이다. 교육장의 8.3%가 여성이다. 앞으로 사회는 3F시대라고 한다. 감성(Feeling), 상상력(Fiction), 여성(Female)이다. 그 만큼 여성들이 더욱 활동하여야 하고 앞으로 여성들의 더 많은 역할에 따라 우리 나라가 4만불 달성이 더 당겨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학교의 경우 교장, 교감, 교원의 전부가 여성이라고 한다. 또 인사철만 되면 남자교사 모시기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앞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남성교사들이 더 많이 배치되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번 대선에서 절반에 가까운 지지로 경제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는 경제가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운 것은 경제에서만 찾기보다는 우리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사회양극화가 심해지고 청년실업자가 많아 젊은 인재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하니 국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경제가 튼튼하게 성장하고 윤택한 나라살림을 꽃피우며 국민이 행복한 알찬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토양에 맞는 밑거름인 교육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밑거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좋은 경제는 이룰 수 없다. 훌륭한 농사꾼은 수확의 결실을 높이기 위해 먼저 좋은 토양을 조성한다. 경제를 살리려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밑거름인 교육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그 동안 흐트러진 우리교육의 맥을 정확히 짚어서 100년 대계의 밑그림을 그리고 30년 10년의 중 단기 계획을 구상한 다음 5년 임기 내에 튼튼한 기반을 조성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순위를 정하여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는 일을 하면서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을 병행해야만 그토록 바라던 성공한 경제대통령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정치, 행정, 사회, 복지, 환경, 어느 것 하나도 교육을 외면 한 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의사당에서 몸을 날려가면서 의장석을 점거하려는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교권을 바로 세워주어야 아이들의 교육이 올바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학교를 맡기려는 무자격교장 공모제를 서두르고 교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가르치려는 의욕을 꺾어 놓은 현 상황으로는 이 나라의 교육은 희망을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교육을 바르게 세우는 크고 튼튼한 밑그림부터 그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교육대통령이 되겠다며 장밋빛 공약을 내걸어 놓고 교육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우리교육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교원들의 사기는 많이 저하되어 있어 안타깝다. 5년 임기 중에 교육부 수장의 임기가 평균 1년도 못가는 정책으로 교육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교육자들에게 맡기되 경제논리로 교육을 풀어나가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란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며 경제발전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보면 새 대통령께서는 경제에만 전력하기 보다는 경제가 활성화되는 밑거름인 교육에 먼저 투자하고 교육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을 모든 교육자들의 소박한 소망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소규모학교 교감조차 없다면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하루 업무 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가장 길다. 초등교사 고학년 담임들은 거의 매일 6교시의 수업을 해야 한다. 오후 4시가 되어야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조용한 교실에서 쉴 수 있다. 그러나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는 없다. 다음 날의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교재연구를 비롯해서 학습자료 준비 등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각종 공문에 의한 행정 업무 추진, 보고 공문서 작성, 각종 자료조사 및 실적보고 등 등 수업이외의 산적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시급을 요하는 업무 때문에 본연의 교수·학습 준비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학교의 2007년도에 접수된 공문은 무려 4426건이며 자체생산 문서는 4413건으로 거의 비슷하다. 하루 평균 20여 건의 공문을 접수하고 20여건의 문서를 생산한 셈이다. 업무를 처리하는 교직원은 일반 행정공무원 2명과 교원 18명이다. 전 교직원들이 하루 1건씩은 공문을 접수하고 생산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말이 1건이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공문에서부터 처리 시간이 3-4시간씩 걸리는 공문도 매우 많다. 우리학교는 13학급 규모이다. 5학급이하의 학교에 비하면 두 세배의 큰 규모이다. 5학급이하 소규모학교 교직원들은 우리학교에 비해 3배 정도의 행정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긴급을 요하는 공문처리를 위해서는 본의 아니게 학생들을 자습시킬 수밖에 없다. 수업을 마친 뒤에도 교수·학습에 대한 사전 준비는 아예 생각지도 못할 때가 많다. 매일 공문처리 때문에 무척 힘들어한다. 농산어촌의 특성상 방과후에도 학생들을 돌보고, 부진학습을 보충해주고, 특기적성이나 취미생활 및 정서 순화 등을 위한 대화시간 놀이시간 등이 필요하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오직 공문처리에 매달려야 한다. 교감은 학교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한다. 물론 특별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교사들의 업무를 덜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시급을 요하는 공문처리를 담당자를 대신해서 처리하기도 한다. 담임교사들의 학습결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유기공문을 관리하면서 상급기관의 보고 요구에 충실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학급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 교감의 학교 전반적인 업무 처리 및 협조는 실로 많은 교사들에게 작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수업 결손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감의 역할은 소규모학교일수록 더 크고 더 필요한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이제 5학급이하의 소규모학교에는 교감을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연 소규모학교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당국에 묻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농산어촌의 교육 황폐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는데, 학교에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교감마저 배치하지 않는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대규모학교에 복수교감의 필요성보다 소규모학교의 교감 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백년대계인 학교교육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교육본연 외의 업무 때문에 교사들의 수업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 받지 않도록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수 때 귀로 듣기만 하는 선생님들, 어떻게 하면기록까지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연수 발표자 요약본 배부 등여건을 마련하고중요사항을 메모하는선생님들의 문화풍토 조성을 요구하는 교장의 교육철학에 교감이 아이디어를 짜낸다. 학년말 바쁜 선생님들의 업무부담도 줄이고 발표자의 심적인 부담을 줄여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연수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교감은 교장과 선생님들의 윈윈(Win-Win)전략을 취해야 한다. 발표주제와 발표자명을 적고 아래 빈 메모 공간을 마련한 유인물이 바로 그것! 그리고 여분 필기도구(사진 참조)까지 준비하라고 담당부장에게 지시한다. 12월 28일(금) 13:30, 방학과 동시에 안성수덕원으로 1박2일 교직원 연수회를 떠났다. 첫 프로그램이 '2007 교육계획 평가 및 반성'이다. 120분 프로그램. 연수 시작 전, 소강당으로 가 보았다. 입구에 유인물과 필기도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교직원에게 친절을 베풀며 연수 발표를 경청하게만들고 기록하는 문화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문득 떠오르는 말 한마디! "이래도 안 적을래?" (이렇게 했는데도 빈손으로 듣기만 할 터인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와, 무서운(?) 교감과 교장이다.
12월 말이 되면서 일선학교의 대부분이 방학에 들어가고 있다. 방학에 들어가기전 교사들은 마무리 작업과 새학기 준비작업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방학이 시작되면 학교가 차분해지고 새학기 준비를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어 새학기에는 더욱더 발전되고 창의적인 학교교육활동이 이어지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올해의 겨울방항은 다른 때보다 어수선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이미 학생지도가 통제불능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이고,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중학생들까지도 교사를 폭행하고 두발단속에 반기를 들어 수업을 거부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심각하게 '인권'과 '학생지도'라는 두 가지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인권과 학생지도 모두가 중요한 만큼 모두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새학기가 되면 어떤 상황으로 발전해갈지 염려스럽다. 방학을 맞이하고 있지만 결코 편하지 않은 이유이다. 외고의 입시문제유출, 수능등급제의 문제점 제기, 수능 복수정답인정 등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터져나온 교육계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가 터질때마다 재발방지라는 대책없는 대책을 내놓지만 일시적인 효과일뿐 제2, 제3의 문제가 터질 개연성은 충분히 잠재하고 있다. 특히 수능등급제 도입으로 일선고등학교에서는 진학지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 한창 대학입시철인데, 방학에 들어가고 있지만 역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새정부의 탄생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명박 당선자가 교원의 방학중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전면 계약직으로 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교원들의 불안감은 더해만 가고 있다. 물론 정확한 근거제시는 되지 않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우기 인수위원회에서 교육분야 간사를 이주호의원이 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더해가고 있다. 그동안 이주호의원이 내놓은 각종 교육정책들이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교육부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한다. 지방교육자치를 위해서는 어느정도 개편방향이 맞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각 시,도교육청으로 권한을 넘기게 되면 국가차원의 교육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된다. 또한 권한이양을 교육부의 해체수준까지 몰고 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육행정기관이 교육부임을 감안한다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교육부에서 해야 할 일과 각 시,도교육청에서 해야할 일의 구분을 명확히 한 후에 이루어져야 할 문제들이다. 교육부의 직제개편을 정부의 작은정부실현에 묶어서 대폭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아무런 사전연구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옳지 않은 방향이다. 이런전런 여러가지 이유로 일선학교는 방학에 들어가고는 있지만 그 어느해보다 어수선하다. 특히 교원의 신분을 위협할 수 있는 소문까기 합세하면서 더욱더 어수선한 상태이다. 현실적인 대안없이 이루어지는 교육정책의 개선방향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교사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 후에 개혁을 하거나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런 여건조성없이 행동의 제약만 증폭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현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의 추진을 기대해 본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e Seagull) 1970년대 중후반, 서울 거리 곳곳에는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노점상? 이렇게 말하면 제법 좌판을 갖추고 리어카라도 미는 형편의 책판매상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 급히 정정한다. 널따란 비닐이나 신문지 조각들을 대강 펼쳐서 그 위에 책을 얹어놓고 파는, 그저 꾀죄죄한 행색의 보따리 책장수였다고…. 하지만 필자는 거기서 종종 근사한 세계명작들을 만나곤 했다. 톨스토이의 부활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입센의 인형의 집, 헷세의 데미안, 여기에 모파상의 목걸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까지, 세계 명작들이 카바이드 불빛에 일렁거리던 길바닥은 보통 사람들의 어엿한 서점이요, 도서관이었다. 조악한 종이에 엉터리 활자들로 어지러운 싸구려 책들이었지만 그들은 늘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들던 세계 명작들이었고, 바로 거기서 필자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발견했다.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의 비상(飛上) 갈매기의 꿈의 원제는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 번역 제목이 원래 제목보다 더 좋은 경우다. 어느 특별한 갈매기의 이름을 ‘내세우는 단순함’보다는 ‘꿈’이라는 작품 주제를 ‘드러내는 함축성’이 더 근사하게 다가오니까. 맨 처음 우리말로 옮긴이의 작품 해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이 경우는 바흐라 부르지 않고 바크라 하는지 궁금하다). 당시 마흔 정도에 불과한 나이에 갈매기의 꿈을 썼다니 놀랍다. 더구나 무려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한 작품이 1970년에 나온 지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의 길바닥 세계 명작 Top 10에 끼어들다니! 당시에는 세계화의 물결도 없었는데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은 어떻게 날아 왔으며, 어떻게 갈매기의 꿈으로 금세 우리나라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갈매기의 꿈은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이라는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진정한 삶의 의미와 세상 현실에 대해 깊이 파고든 명저이다. 간명하게 시작하면서도 심오하게 마무리되며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와 가치, 개인과 공동체, 인습과 혁신 등의 주제를 찾아낼 수 있는 작품이다. 중간 중간에 갈매기의 다양한 사진들을 넣어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얇은 책인 것이다. 갈매기의 꿈은 갈매기를 의인화한 알레고리의 세계가 기본 배경이다. 바로 여기서 주인공은 그 자신, 기존의 인습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갈매기들, 나아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한 갈매기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인간 세상의 구체적인 쟁점이나 현안들을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갈등의 단짝들인 안주와 변혁, 개인과 사회, 현실과 초월 등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대표하는 문장은 단 하나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이는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인과 바다의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러브 스토리의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에 맞먹는 정도다. 이렇게 작품 전체를 관통하여 독자들의 머릿속에 남는 궁극의 문장, 이런 문장을 남길 수 있다면…. 모든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을 때 늘 품는 소망이 틀림없다. 물론 여기서 ‘새’는 불가(佛家)의 오랜 화두인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내지?”나 데미안의 빛나는 대목, 즉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와 다르다. 물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식의 어쭙잖은 ‘신자유주의에 중독된 새’와도 분명 격이 다르다. 해변으로부터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고기잡이 배 한 척이 먹이를 가득 던져 주며 물고기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아침먹이를 찾고 있던 갈매기 떼에게도 그 소식이 바로 전해졌고, 그러자 수천 마리의 갈매기들이 몸을 던져 한 조각의 먹이를 얻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또 하루의 분주한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9쪽) 갈매기의 꿈의 첫머리는 늘 일용한 양식을 위하여 생존 다툼을 반복하는 지루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지 못하고 그저 외부의 손길에 기생하여 근근하게 연명하는 불확실한 세계. 그렇다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근사하게 살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실과 세계는 요즘 식의 표현대로라면 ‘블루 오션’이 아니라 ‘레드 오션’(red ocean), 즉 무한 경쟁이 벌어지지만 결코 모든 구성원들이 만족할 수 없는 차원의 한계 상황 그 자체다. 하지만 갈매기 조나단은 자신들의 또래 집단과 전혀 다르다. 다르기에 그는 손가락질 받지만, 동시에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다. 그는 ‘저 너머’의 세상에서 ‘혼자서 나는 연습’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존재의 진정한 독립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고기잡이배와 해변 저 너머에서,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30미터 상공에서 물갈퀴 달린 두 발을 구부려 몸에 바짝 붙이고, 부리를 쳐든 채, 두 날개를 가지고 고통스럽고 힘든 선회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선회는 곧 속도를 줄여 천천히 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바람이 그의 얼굴에서 속삭이며 불어올 때까지, 바다가 그의 아래에서 고요히 누워 있을 때까지 천천히 날았다.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호흡을 멈추고 한 번, 또 한 번, 조금이라도 더 선회하려고 애를 썼다.(9쪽) 갈매기의 꿈의 첫대목은 이렇듯 갈매기 조나단이 다른 갈매기들과 달리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열심히 비행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비행이란 삶의 존재 이유다. 이는 대부분의 갈매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자세이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곧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부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10쪽) 갈매기의 꿈은 현실의 완벽한 알레고리다. 존재와 현실의 허무와 무의미를 극복하며 진정한 자신의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주인공의 노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알레고리를 읽으며 세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저자는 의인화를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 갈매기 조나단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자기 극복과 해방, 실현에 두면서 남들과 다른 비행(飛行)에 몰두하는 대목은 갈매기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인간 이야기임을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포기의 순간 내면의 소리를 듣다 그 결과 이 책의 초반부는 끊임없이 기존의 갈매기 집단과 이제 막 비행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갈매기 조나단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러나’라는 부사가 자주 끼어든다. 이는 집단의 안주에 저항하는 개인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실제로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나’와 같은 역접의 부사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이미 어휘 차원이 아니라 존재, 즉 갈매기 조나단 차원으로 변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신에 단락 전체가 갈매기 조나단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는 식으로 비중이 현격하게 강화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갈매기 조나단의 노력은 여느 갈매기들에게서 동의와 호응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부모에게서조차 공감과 지원을 받지 못한다. 조나단의 아버지가 하는 말은 요즘의 평범한 부모들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아버지가 타이르듯 말했다. “겨울이 멀지 않았다. 고기잡이하는 배들도 거의 없어질 것이고, 수면에서 놀던 물고기들도 깊은 데서 헤엄칠 것이다. 만일 네가 꼭 배우고자 한다면, 먼저 먹이를 구하는 법부터 배우거라. 물론 네가 원하는 비행 기술도 다 좋지만, 나는 것만으론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걸 너도 알 것이다. 네가 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먹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11~12쪽) 조나단은 부모와 기성의 요구에 순응하고자 나름대로 애쓴다. 그 역시 자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운명이나 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보통 사람들을 뜻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난 한 마리의 갈매기일 뿐이다. 난 나의 본성에 의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고민하는 모습은 평범한 갈매기, 아니 보통 사람의 인간적인 몸부림을 잘 보여준다. 조나단은 반항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로 그 후 며칠 동안 다른 갈매기들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갈매기 떼와 더불어 선창가와 고기잡이 배 주위에서 꽥꽥거리고 다투면서 물고기와 빵조각들 위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는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무의미한 짓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힘들게 획득한 멸치를 자기를 추격하는 굶주린 늙은 갈매기에게 일부러 떨어뜨려 주었다. “이런 시간을 모두 나는 연습을 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울 것이 너무도 많은데!”(12쪽) 다행히 갈매기 조나단은 마지막 안주의 순간에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안주하는 대신에 스스로의 한계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다양하게 시도를 거듭하고, 다시 그 이상으로 거듭거듭 태어나며 성장한다.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경험을 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거듭 나는 모습들로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거듭 나게 돕기’는 모든 교사들이 늘 마음에 두어야 할 소명이 아닐까. “이제 삶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게 되었는가! 하찮은 먹이를 얻기 위해 끝없이 고기잡이배와 해변 사이를 단조롭게 오가는 대신, 삶의 이유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우리 자신이 탁월하고 지성적이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나는 법을 배울 수가 있다!”(32쪽) 마침내 갈매기 조나단은 스스로의 벽을 깬다. 하지만 조나단은 여기서 만족하는 대신에 다른 갈매기들에게 자신이 발견하고 깨달은 것들을 나눠주고자 한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갈매기 조나단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려 애쓰는 덕목들이다. 늘 그렇듯이, 기성의 집단은 그러한 조나단에게 격리와 추방을 싸늘하게 선사한다. 그의 노력과 성과는 모든 갈매기들의 따뜻한 안주를 방해하는 위험한 도전으로 취급 받는다. 새로운 시도를 통한 노력의 빛나는 성취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사회, 주변 사람들의 세태를 잘 보여준다. 이제 조나단은 ‘육체뿐만 아니라 똑같은 내적 통제력을 갖고서’, 짙은 바다 안개 너머의 ‘눈부시게 맑은 하늘로’, ‘해안에서 멀리 들어간 내륙까지 날아갈 줄도 알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맛있는 곤충들을 잡아먹는 법도 터득했다.’ 그는 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치러야 했던 대가를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조나단 시걸은 지루함과 두려움과 분노가 갈매기의 삶을 그토록 짧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생각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참으로 길고 훌륭한 삶을 살았다.(44쪽) 현실의 한계와 초월의 방법 모색 조나단의 성취는 완벽하다. 하지만 또한 조나단의 성취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가장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조나단이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다. 그는 갈매기 전체를 위해 소망했을 뿐 자신만을 위해서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조나단을 찾아온 두 마리의 갈매기들은 조나단과 함께 완벽하게 비행함으로써 그들이 조나단과 같은 형제들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힘 있고 부드럽게 말한다. “우리는 너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왔어. 너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바로 이 순간부터 갈매기의 꿈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든다. 그전까지의 작품 공간이 단지 알레고리를 배경으로 인간 사회를 그려내었다면 이제 작가는 알레고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알레고리는 현실을 대단히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이솝 우화를 읽으면서 인간 세상의 요지경과 인물 군상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알레고리의 힘이다. ‘신포도’를 놓고 중얼거리는 여우를 그리면서 곧바로 얄팍한 욕망에 사로잡히고 다시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인간을 근사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알레고리는 현실을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알레고리의 한계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알레고리로 그려진 세계가 아무리 근사해도 구체적인 현실 그 자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여우와 신포도’는 실제가 아니라 만들어진 실재, 가상의 인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실에 실존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존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훌륭한 알레고리는 현실을 매우 그럴듯하게 보여주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갈매기 조나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피워 올린 허구의 꽃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든 알레고리는 현실을 적극 지향하지만 동시에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작가 리처드 바크는 이러한 알레고리의 한계를 풀어내고자 애쓴다. 작품의 현실이 기존의 인간 세상과 근본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 한계를 관념과 영혼의 초월적 차원으로 바꿔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천국’과 ‘관념’, ‘영혼’ 등의 어휘로 나타난다. 현실의 구속을 풀어내고자 종교를 꿈꾸는 사람들처럼 작가 역시 알레고리에 갇힌 갈매기 조나단에게 천국과 관념, 영혼의 세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조나단에게서 발견한 교사의 모습 이는 종교적 시도와 같은 맥락으로서 찬반의 격렬한 논쟁을 낳을 수 있는 지점이다. 갈매기의 꿈이 발표되자 성직자들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의 죄로 가득한 작품’이다”라고 비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서가 아닌 다른 작품이 천국과 종교를 추구하면 이단인가 보다. 독자들이 이 작품에 뜨겁게 반응한 것은 작가와 같은 종교적 구원의 시도였는데…. 지상의 행복과 달리 천상의 행복은 비할 나위 없는 ‘너머’의 차원이다. 천국의 삶은 어떠한가? 갈매기 조나단의 삶은 어떠한가? 천국은 과연 천국인가? 이곳의 갈매기들은 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 각자에게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일에 있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51~52쪽) “그럼 이곳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천국과 같은 장소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요?” “그렇다. 조나단.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도 아니지. 천국은 완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념과 영혼, 초월의 사고는 갈매기 조나단이 추구해온 속도의 세계 역시 관념과 영혼, 초월의 세계에 녹아들어야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맺게 한다. ‘속도’를 통하여 시작한 현실 극복의 노력 또한 현실에 대한 집착 차원을 벗어날 수 없으며, 완벽한 극복은 현실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관념과 영혼, 초월의 힘은 현실의 문제와 한계 속에서 언제나 영원하다. 그런데 갈매기 조나단에서 바로 우리 교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지나칠까?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갈매기의 꿈은 바로 인간의 꿈, 바로 우리 교사의 꿈이 아닐까. “만일 그곳으로 돌아가면, 혹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갈매기가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고기잡이배로부터 빵부스러기를 얻으려고 날아다니는 것 이상의, 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 고독하게 싸우고 있는 갈매기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곳엔 갈매기 무리의 면전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추방당한 갈매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자비에 대해 더 많이 배워나갈수록,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수업을 받을수록 조나단은 더욱더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고독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조나단 시걸은 교사가 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그 자신의 방법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어떤 것을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기회를 얻고자 원하는 다른 갈매기에게 주는 것이었다.”(63쪽)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 휘하의 몽골군, 1240년대 초에 빈과 프라하를 지나 계속해서 서진하다.” 몽골족이 중원을 더 오래 지배하고 중앙과 서남아시아 그리고 동유럽 일대를 보다 확고하게 장악했을 경우, 또 헝가리평원을 지나 오스트리아·독일 등 중부 유럽까지 진격했을 경우 세계사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유럽은 중앙아시아로부터 내습한 훈족(흉노족으로 보기도 하나 확실치 않다)에 의해 이미 4세기 중엽 이후 살육과 약탈이라는 일대 참극을 한 차례 경험했다. 그로 인해 흑해연안의 동·서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의 로마제국 영역으로의 침략 내지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결국 노쇠한 로마제국이 멸망한 사실을 역사는 비교적 소상히 전하고 있다. 동유럽을 향한 징기스칸의 대약진 징기스칸의 몽골족은 중원을 차지하고 원나라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중앙·서남아시아 일대를 장악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동유럽으로 진출한 그들은 모스크바 지역을 경유해 헝가리 평원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유럽의 십자군과 이슬람세계가 각축을 벌이던 1250~1260년대에는 시리아와 레바논까지 진출해 십자군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여기서는 바투군의 동유럽정복을 중심으로 몽골족 대약진의 일단을 살펴보기로 하자. 징기스칸은 금을 공격해(1211년~1215년) 동아시아를 장악한 후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1218년에는 부장 제베에게 2만군을 주어 서요를 정벌한 후 이듬해 가을에는 카스피해 남쪽의 호레즘샤왕국을 공격케 했다. 술탄 무함마드는 수도(사마르칸드)를 버리고 서쪽으로 도주했고(1221년) 왕국은 무너졌다. 이후 호레즘샤의 잔당을 쫓아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몽골군은 1백만의 무슬림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때 무함마드를 추적하라는 징기스칸의 명을 받은 제베와 수베에테이의 별동대는 아제르바이잔을 지나 킵차크 지역을 포함한 남부 러시아를 석권했다. 당시 루시, 곧 러시아에는 바이킹의 일파인 바라크족이 9세기 중엽에 세운 노보고로드왕국이 있었다. 이후 슬라브족에 동화된 그들은 9세기말에 드네프르강 중류에 키예프공국을 건설하고 비잔틴제국과 교류하는 등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했지만 13세기 초에 몽골에 정복되었다. 러시아는 15세기 말에야 200여 년 간의 몽골지배를 벗어났다. 수베에테이의 몽골군이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루시(러시아)를 석권할 무렵 루시의 노보고로드 연대기는 1224년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우리들의 죄악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족이 찾아왔다. 그들이 도대체 누구일까? 어디서부터 와서, 어떤 말로 야기하고, 어떤 인종이며, 어떤 신을 믿을까? 누구 한 사람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을 타르타르라고 부르고 있다.”(타르타르(Tartar)는 ‘명계·지옥’을 의미한다). 러시아 전역을 폐허로 만든 몽골 그 십 수 년 후 몽골은 다시 서방정벌군을 일으켰다. 금을 멸하고 남송을 압박한 태종 우구데이는 조카 바투(징기스칸의 장자 조치의 둘째)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유럽원정군을 일으켰다. 킵차크초원(카스피해-카프카즈-흑해 북부 일대)을 장악해 근거지로 삼아 서쪽으로 더 진출하기 위한 원정군이었다. 남송정벌을 위해 같은 시기에 남방정벌에 나선(1236년) 우구데이의 셋째 쿠추의 동방원정대는 큰 전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서방정벌은 다대한 전과를 올렸다. 바투의 원정대는 우랄강을 넘어 킵차크초원으로 향했고, 결국은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격해 흑해연안·러시아·동부 유럽을 5년 가까이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원정군 사령관은 조치가(家)의 수장 격인 바투였지만 다른 황족들도 참전했다. 후일 몽골 황제가 된 구육(우구데이의 장자), 뭉케(징기스칸의 넷째 톨루이의 장자)도 출전해 그들의 부대를 지휘했다. 그밖에 징기스칸의 서방원정 때 공을 세운 수베에테이도 부장으로 참가했다. 바투군은 제베와 수베에테이가 일차 정벌한 킵차크를 다시 공격했다. 일부 저항하거나 서쪽으로 도주한 자들을 제외한 주민의 대부분은 바투군에 흡수되었고, 바투군은 일거에 대규모 군단으로 탈바꿈했다. 더욱이 킵차크족은 모두 유목민이라 몽골군에 편재됨으로써 뛰어난 기병이 될 수 있었다. 킵차크를 손에 넣은 바투의 원정군은 루시로 진격해 정복했다. 그 무렵 루시는 공국들로 분열해 대립·반목했으므로 몽골 침략군에 결속해 항전하지 못했다. 몽골군은 루시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그로부터 러시아의 불행, 곧 ‘타타르의 멍에(몽골의 잔혹한 지배)’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사가들은 그것은 몽골이 애용했던 ‘공포전략’에서 비롯한 소문일 뿐 과대하게 선전되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몽골군이 적의 전의를 꺾기 위해 퍼뜨린 소문에 불과했을 뿐 루시가 입은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체의 마을’된 참담한 유럽의 패배 노보고로드에서 키예프로 남하한 바투군은 거기서 동유럽으로 방향을 돌렸다. 키예프 부근에서 2대로 나뉜 후 주력 부대는 헝가리로, 다른 부대(별동대)는 폴란드로 진격했다. 차카다이(징기스칸의 둘째)의 넷째 바이다르가 이끈 별동대는 바르샤바 남쪽 크라코우를 거처 1241년 4월 9일 리그니츠 동남쪽 10㎞ 지점의 평원에서 폴란드·독일 연합군과 조우했다. 실레지아공(公) 하인리히 2세가 이끈 폴란드·독일군 3만은 바이다르의 별동대에 완패했다. 하인리히 2세를 포함해 다수가 전사했다. 사료에 따르면 전사한 적군의 수를 계산하기 위해 몽골군이 한 쪽씩 잘라낸 귀가 9개의 자루를 채웠다고 한다. 유럽연합군이 참패한 ‘리그니츠전투’는 ‘발스타트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독일어 발스타트는 ‘사체의 마을’을 의미한다. 그 후 바이다르의 별동대는 몰다비아(모라비아)를 거쳐 본대와 합세했다. 그때 교황은 대(對)몽골 십자군을 제창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사가들은 리그니츠전투 자체를 의문시한다. 이는 당시의 문헌에 없는 전투이야기가 15세기 문헌에 갑자기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시기에 폴란드 귀족인 공(公)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2백~3백 정도였다는 사실을 들어 전쟁이 있었다고 해도 큰 전투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한편 바투의 주력군은 리그니츠전투 이틀 후에 티소강변에서 헝가리 국왕 벨라 4세의 군대를 무찔렀다. ‘티소강전투’로 불리는 전투를 위해 벨라 4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원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티소강전투 후 다뉴브강변의 헝가리 수도 부다와 페스트(후일 통합되어 부다페스트가 되었다)를 비롯한 헝가리는 몽골의 수중에 떨어졌다. 원정 후 ‘킵차크한국’ 건설한 바투 헝가리를 정복한 몽골군은 1241년부터 다음해까지의 겨울을 헝가리평원에서 보냈다. 그때 바투군의 한 부대는 헝가리군을 추격해 빈 부근인 빈 노이슈타트까지 진격했고 또 다른 부대는 아드리아해의 한 섬으로 도주한 벨라 4세를 추격해 달마티아해안으로 출동했다. 몽골군은 그때 이탈리아 침공을 꾀하기도 했다. 그 무렵 헝가리 서북의 독일과 달마티아 건너편의 이탈리아 등지에는 폴란드와 헝가리 피난민들이 넘쳤다고 한다. 훈족의 살육과 약탈의 역사를 기억하는(‘훈(hun)’은 ‘문명의 파괴자’와 ‘야만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럽 사람들에게 몽골의 동유럽 침공이 준 충격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유럽으로서는 다행이었지만 바투의 몽골군은 더 이상의 서진을 포기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242년 3월에 우구데이가 타계했다는 소식과 서방정벌군의 귀환명령이 바투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서방정벌군의 대부분은 몽골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곧바로 빈에 이른다는 사실과 빈은 프라하나 베를린 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몽골군의 서진 중단이 유럽 역사와 관련해 갖는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벨라 4세는 몽골의 재침에 대비해 방어력을 강화하는데 노력했지만 몽골군의 서진은 더 이상 없었다. 그처럼 원정군을 구성했던 황족의 부대들은 회군했지만 조치가(家) 군단, 즉 바투의 직할부대만은 헝가리 등지를 약탈하면서 서서히 동진했다. 1243년경에 바투는 전부터 본영지로 삼아온 볼가강 하류 사라이초원으로 회향한 후 킵차크한국(汗國)을 세웠다. 이후 그들은 후계자 선출을 둘러싸고 내분에 휩싸인 몽골 본토를 멀리서 보면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킵차크한국은 14세기 초 우즈베크칸과 자니베크칸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안으로 모스크바대공을 통해 러시아 영주들을 지배하고 밖으로는 비잔틴제국과 교류했으며 이집트와 통혼하는 등 국기를 튼튼히 했다. 킵차크한국은 특히 흑해무역을 독점하여 경제적으로 번영했으며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아 학문과 예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자니베크칸 사후 내란이 일어나고 티무르제국의 침공을 받아 약화의 길을 걷다 15세기말 모스크바대공 이반 3세에게 망했다. 몽골의 분열로 유럽역사 달라져 잘 알려져 있지만 몽골은 그밖에도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인도 서북부를 지배한 차카타이한국과 외몽골 남부 알타이산맥에서 알마타 북쪽의 발하시호(湖)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오고타이한국을 세워 킵차크한국 등과 함께 4한국 시대를 열었다. 반(半)독립적 한국들은 세조(쿠빌라이)가 원(元) 중심 체제를 강화하면서 완전히 독립했다. 그것은 물론 몽골세계의 분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투의 서방정벌이 중단되지 않았을 경우 세계, 특히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의 역사는 어느 행로를 걸어왔을까? 몽골군이 회군하지 않았더라면 알렉산드르의 유업, 즉 동·서 세계의 융합이 크게 진척되었을 것이다. 몽골이 유라시아를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었다면 동양과 서양 사이의 간격을 크게 좁혔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몽골은 아랍인을 관리로 채용하고 그들의 상인조합 ‘오르타크(Ortaq)’에 무역상의 특권을 부여하는 등 색목인(色目人:중앙아시아인)을 우대했고, 초원길을 비롯한 동·서 교역로를 개척했으며, 역참제를 도입했다. 이슬람제국의 과학과 기술이 중국에 전래되고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여행가 이븐 바투타 등 서양 선교사와 여행가들이 몽골을 왕래하던 당시가 바로 이때였다. 나아가 바투군이 서진을 중단되지 않았을 경우 유럽 기독교세계는 아마도 현재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몽골족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종들이 유라시아의 주도권을 잡고 있거나 적어도 유럽과 아시아의 혼혈인들이 주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 경우 기독교 문화만이 아니라 비(非)기독교적 문화 또한 유럽의 주류 문화의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인생의 반환점에서 만난 타임 리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곤노 마코토는 명랑한 열일곱 살 소녀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턱걸이로 지각을 면해도 등굣길을 나서는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마코토에게는 늘 장난을 거는 유쾌한 치아키와 어른스러운 모범생 고스케라는 듬직한 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세 사람만의 즐거운 야구연습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푸르디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교정, 파란 하늘이 눈부신 여름. 청춘의 가장 빛나는 한 때를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인생의 심각한 고민 따위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마코토에게도 결정과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다. 선생님은 문과냐, 이과냐 진로를 묻고 단짝 친구 치아키와 고스케에게는 그들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등장한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좋았던 소녀의 시간은, 이제 반환점을 만난 것이다. 7월 13일. 일본어 발음으로 ‘나이스 데이’라 불리는 날 마코토는 턱걸이로 지각을 면하고 하루 종일 의도치 않은 불운한 일들을 겪는다. 가사 실습 시간엔 그녀의 프라이팬에 불이 붙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친구랑 교정을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공이 날아와 머리에 맞는다. 그리고 방과 후 들린 과학실 구석에서 호두처럼 생긴 이상한 물체 위로 넘어져 신비한 현상을 본다. 그 날 하굣길, 비탈길을 달리던 마코토의 자전거는 철도 건널목의 차단기를 뛰어 넘어 기차와 부딪힌다. “설마 죽겠냐 했는데 죽는구나.” 다음 순간 마코토는 자신이 시간을 뛰어넘어(time leap) 살아 있음을 발견한다. 신기한 능력이 생긴 것에 신바람이 난 소녀는 그 날 이후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자주 달리게 된다(있는 힘껏 달려야만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또 다른 의미 갖는 되돌려진 과거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능력에 맛을 들여 버린 마코토는 시간을 되돌려 쪽지시험을 다시 보고, 맛있었던 철판구이를 다시 먹거나 노래방 시간을 줄기차게 연장하는 등 온갖 소소한 일상의 스릴을 만끽한다. 마코토가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되돌려진 과거는 또 다른 의미를 낳는다. 내가 즐거움을 얻는 순간, 누군가는 기막힌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13일의 실수들을 바로잡기 위해 되돌아간 마코토가 타임 리프를 써서 사고를 피하는 순간, 옆에 있던 친구가 대신 다치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은 책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횟수가 제한된 타임 리프 능력을 별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써버려서, 막상 필요할 때 쓰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소녀는 불현듯 성장한다.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된 소녀가 역설적으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지금 이 순간에 미루거나 회피하지 말고 반드시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강둑에서 마코토가 치아키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다. 뒷자리에 앉아 가던 마코토는 스스럼없이 지내던 치아키로부터 “사귀어 볼래?”라는 말을 듣는다. 갑작스런 고백에 당황한 마코토는 타임 리프의 능력을 발휘해 이전 상황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하지만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려도 고백을 계속 듣게 되자 자전거를 얻어 타고 가기를 포기한다. 그렇게 치아키의 고백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만,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함이 감돈다. 당혹감에 빠진 마코토.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학교에서 치아키를 무작정 피해 다닌다. 그러던 중 치아키와 자신의 단짝 친구가 사귀게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후회한다. 왠지 가슴 한 쪽이 허전하고 기운이 빠진다. 되돌린 시간도 지울 수 없는 감정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타임 리프를 통해 곤란한 ‘순간’을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어난 ‘사건’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시간을 뛰어 넘을 수는 있어도, 감정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떳떳하게 대면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후회와 아쉬움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 즈음 또 다른 단짝 코스케도 후배 여학생의 고백을 받고, 둘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시간을 자꾸 되돌리던 마코토는 꼬여버린 시간 속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된다. 처음 마코토의 상의를 받고 “타임 리프란 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는 가끔 있는 일이야”라고 자상하게 일러줬던 이모는 중요한 교훈을 깨우쳐준다. “그런데 네가 이득 본 것만큼 손해 본 사람이 있지 않겠니?” 비로소 마코토는 사소한 하나의 행위라도 반드시 결과를 낳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에 눈뜬다. 이렇게 이 영화의 매력은 시간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그 안에서 한 소녀의 성장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소녀의 성장담은 그러나 너무 심각하지는 않다. 실수를 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기에…. 옥상을 내달리는 경쾌한 질주와 침대 위를 굴러다니며 고민하는 순수함과 함께 소녀의 타임 리프는 그 여름의 한 때를 가로지른다. 우리의 기억 속 타임 리프 순간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시간여행 자체보다 시간의 간극을 타고 펼쳐지는 사춘기 소녀의 미묘한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설레기도 하지만,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그 시기의 혼란스러운 상태는 무수히 시간을 되돌려도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될 때 인간은 자기만의 ‘타임 리프’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모의 대사처럼, 사춘기 그 시절에는 누구나 타임 리프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매일 써내려간 일기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타임 리프 순간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965년 발표된 이래 40여 년간 일본에서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성장소설이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요시야마 카즈코는 이 영화에서 35세의 노처녀이자 미술품 복원가로 일하는, 마코토의 이모 캐릭터로 등장한다. 마코토에게 “아, 그거 타임리프라는 거야”라며 느긋하게 답해주는 이모도 한 때는 시간을 달리던 소녀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시간의 비밀을 깨우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그녀는 마코토에게 있어 인생의 선배라는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조카의 비밀을 공유하고 다독거려 주는가 하면, 시간여행을 남용하는 행동을 나무라고, 과거의 사랑을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를 기다릴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오래돼버렸네. 사실 오래 걸리진 않았어. 순식간이었지.” 하지만 후회가 전부는 아니다. “마코토는 나 같은 성격이 아니잖아. 누가 늦으면 먼저 만나러 달려가는 게 너잖니?” 신세대의 적극성을 예찬하는 이모의 이 말에는 마코토를 향한 부러움과 기대가 담겨있다. 일상에 감춰지는 성장 속의 비밀 덜렁거리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소녀 마코토. 자신에게 갑자기 생겨난 이상한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대신, 순간순간을 즐기며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타임 리프를 사용하는 낙천적인 신세대 캐릭터다. 그런데 시간 사이로 숨차게 뛰어다니는 마코토의 무모하고도 진심어린 모습에 내가 지나온 그때 그 시절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감독은 마코토의 일상을 통해 성장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던 등굣길, 수업이 한창인 교실, 친구들과 뛰어놀던 운동장,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같은 공간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매순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감독의 목소리는 마음을 두드린다. 진지함과 유쾌함 사이를 오가며 그 시절을 행복한 미소로 추억하게 만든다. 인생의 그 많은 사건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해와 오해 속에서 우리는 갈팡질팡 균형을 잡아나가야 한다. 마코토는 미숙하지만 아직 젊기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미래를 향해 씩씩하게 달려갈 수 있다. 마코토가 잠시 멈춰 버린 시간 속에서 세상을 새롭게 느끼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이, 어느새 ‘성장’이란 세월의 선물이 소녀를 찾아온다. 그렇게 끊임없이 출렁대며 달려가는 시간을 지혜롭게 건너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영화 정보* 제목 :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감독 : 호소다 마모루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제작연도 : 2007년
Q1. 개인사정으로 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휴직 중 알아두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1. 휴직 중에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국가공무원법」제63조에 의해 품위유지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또 휴직 중 6개월마다 소재지와 휴직사유의 계속 여부를 유선 또는 서신으로 학교장에 보고해야 하며, 휴직사유가 소멸되거나 휴직기간이 만료되면 지체 없이 복직해야 합니다. 휴직기간의 만료 또는 휴직사유가 소멸된 후에도 직무에 복귀하지 않거나, 직무를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휴직기간의 만료일 또는 휴직사유의 소멸일을 임용일자로 하여 직권면직됩니다. 휴직 기간이 2년 이상인 육아휴직, 동반 휴직한 교원이 복직하고자 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18시간 이상의 연수를 받아야 합니다. 고용휴직 교원의 경우에는 복직 시에 실제 담당한 주당 수업시수 및 보수지급액이 명시된 경력증명서, 보수 지급 증거자료, 교원 수업시수배당표 사본 등을 재외주재 교육관 등의 확인을 받아 제출해야 합니다. Q2. 고용휴직은 어떤 경우에 신청할 수 있으며, 고용휴직 기관은 어떤 것이 있나요. A2. 고용휴직은 국제기구·외국기관 또는 재외국민교육기관에 임시로 고용되거나 「한국국제협력단법」에 따라 해외봉사단원으로 참여한 경우 신청할 수 있으며 법정휴직기간은 고용기간과 일정하며 휴직의 횟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여기서 국제기구라 함은 복수의 국가가 집합하여 구성하는 「국제법」 상 독자적 지위를 가지는 조직체로서 국제연합 및 그 산하기관을 뜻합니다. 외국기관은 외국의 정부기관·공공단체 등이 포함되지만 외국의 사기업체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외국의 정부기관은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포함되며, 정부에서 직접 관리·보조하는 공공성 있는 연구소·공기업 등입니다. 또 재외국민교육기관은 「재외국민의교육에관한규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기관으로 재외국민교육을 위하여 외국에 설립된 학교·학원·교육원·강습소·토요학교·기타 이와 유사한 교육기관입니다. 참고로 고용의 의미는 당해 기관과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상시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에 대하여 일정액의 임금(교통비 등의 항목으로 받는 돈을 임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을 지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용역계약에 의한 과제연구나 시간제 근무 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 임금을 받지 않고 학생을 교육하는 등의 근로를 제공하는 행위는 고용계약이 아니므로 휴직사유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2008년은 새교육이 탄생한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한민국 교육을 대표하는 정론지인 본지와 60년의 세월을 함께 해 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지는 60주년을 맞아 ‘사진으로 보는 새교육 60년’을 통해 귀중한 교육적 사료(史料)를 소개합니다. 독자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피난처인 부산 사무실에서의 새교육 편집회의 장면.
아시는 분들은 실감하실 겁니다. 작년 하반기의 ‘테엘미~ 테엘미~ 테테테테테~테엘미’ 텔미 열풍을. 해가 바뀌었으니 요즘 이슈라 하기엔 조금 철 지난 듯해도, 2007년 하반기 키워드 중 하나가 ‘텔미’였을 정도로 메가톤급 이슈가 아니었나 싶어 다시 얘기 꺼내봅니다. 조카뻘 또는 막내여동생뻘 되는 다섯 명의 소녀가 어깨를 살랑거리며, 복고풍의 원색의상을 입고 등장한 가을께만 해도, 그녀들의 ‘텔미’가 전국적 열풍이 불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더랬습니다. ‘텔미’의 멜로디와 팔찌춤은 원더걸스 다섯 소녀를 국민여동생으로 자리매김시키며 연예인에 시들해있던 오빠부대(또는 삼촌부대)를 다시 TV 앞에 불러앉힙니다. 텔미가 7주연속 1위를 차지하던 시기엔 세대를 막론하고 어느 노래방에서나 친숙하게 불려지는 곡이기도 했죠. 연말 각종시상식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연예인, 아나운서까지 ‘텔미’를 따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였고요. TV와 신문, 잡지에서도 ‘텔미’는 하나의 사회현상인 양 ‘신드롬’화시켰습니다. 점심먹고 자리에 돌아와 온라인 뉴스 검색을 하던 시간에 원더걸스의 막둥이 소희 양의 ‘어머나’ 윙크 부분 위주로 텔미동영상을 한 번 돌려보는 것이, 즐거운 오후를 위한 상큼한 청량제가 된다는 동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왜 '텔미'인가? 후렴구의 반복적인 멜로디, 약간(?)만 노력하면 출 수 있는 어깨춤이나, 팔찌춤 동작. 따라하기 쉬운 노래와 안무가 ‘텔미’ 가 주목받는 가장 주효한 이유라 언론에선 입을 모읍니다. 실제로 원더걸스 열혈 팬인 동료, 친구, 선후배에게 ‘텔미의 인기비결’을 질문해본 결과도 대략 비슷했습니다. ‘테테테텔~ 텔미’ 하는 후렴구의 중독성, 이렇다 할 여성아이돌 그룹이 부재한 상황에 섹시미와 신비주의를 대신 옆집 동생 캐릭터를 택한 편안하면서도 개성 있는 어린 처자들이 살랑거리며 추는 귀여운 율동을 공통적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노랫말, 율동, 어린 처자의 매력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가 있었으니, 평소 점잖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의외의 ‘텔미매니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시츄에이션 때문이라고 하네요. 생각해보세요. 인자하고 후덕하신 어느 선생님께서 ‘텔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흔들고 계신 모습을…. 탈 권위의 시대, 표현의 시대 작년 말 송년회를 준비하던 한 지인의 회사에는 사장님의특명이 내려졌답니다. 다름아닌 송년회 특별게스트로 ‘원더걸스’를 섭외하라는 것이었지요. 직원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 생각한 아이디어라 했지만, 40대 중반 사장님도 실은 텔미 마니아라고 고백하셨다는군요. ‘원더걸스’ 섭외는 실패했지만, 송년회에서 약간의 팔찌춤을 선보인 후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급호감완소 CEO’로 대변신하였답니다. 텔미의 인기가 상승할 때마다 가짓수가 늘어났던 여러 가지 버전의 UCC 텔미동영상도 기억하실 겁니다. 군인 텔미, 고3 텔미, 발레 텔미, 경찰 텔미 등등 넷인프라와 영상기기의 IT환경에 너무도 익숙한 세대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표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네요. ‘텔미’라는 가요 한 곡으로 세대 간의 벽을 허문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만, 지난 연말 여러 모임에서 수도 없이 ‘텔미’를 부르고 추고 감상하며 확실히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세대 간 거리감은 조금 사라진 듯합니다. 가사를 다 외우고, 춤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더군요. 찌르기 춤이 약간은 어색하더라도 ‘텔미’를 부르는 본인도 즐겁고 동료나 선후배도 즐겁게 해주려는 기성세대의 노력, 그것이 참 고마웠던 겁니다. 2008년에는 또 어떤 히트이슈가 탄생할까요? ‘텔미’처럼 대국민 열풍이 불만한 히트곡이나 또 다른 유행이 새롭게 등장하겠지요. 우리가 모두 고단하고 힘들 때, 한층 웃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이슈면 더행복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텔미와 관련되어 가장 재미있었던 짤막한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리며 마무리하죠. 듣다가, 따라부르다가 보다가, 따라추는 텔미중독의 수순을 그대로 밟은 30대 후반의 선배가 남긴 얘기.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소희만한 딸이 있었을 텐데…. 그 딸 같은 애들의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는 나 대체 뭐니? ㅋㅋㅋ 그래도 텔미 느무 좋다~”
한아이가 전도한 황규성은 요즘 아이답지 않게 말수가 적고, 남자아이답지 않게 조용조용했다. 외모 또한 껑충 큰 키에 하얀 살이 얇게 붙어서 어쩐지 우수에 찬 아이로 보였다. 길게 물으면 짧게 대답하고, 활짝 웃으며 물으면 짧은 미소가 잠깐 얼굴에 스칠 뿐이었다. 하도 답답하여 얼굴 표정과 손짓 발짓을 크게 하고 다소 야단스럽게 무얼 물으면 그저 고개를 까딱일 뿐, 한창 개구쟁이로 뛰어놀 어린이답지 않게 감정 표현이 너무도 절제되어 있었다. ‘필시 원인이 있으렷다.’ 신년 첫 주일 예배가 끝난 뒤 김태평 선생은 아이들을 보내면서 규성이에게 뒷정리를 시켜 교회에 잠깐 남도록 하였다. 김 선생은 규성이를 눈이 푸짐히 쌓인 교회 뒤뜰로 데리고 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눈이 칼바람에 날려 예서제서 하얀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김 선생은 뜰에 앉아서 눈 위로 솟아있는 가늘게 바짝 마른 잡초의 끝머리를 잡아 하나둘씩 뽑았다. “규성이 아빠 연세는 어떻게 되시지?” “마흔 여덟이세요.” “사람의 겨울은 머리카락에서부터 온다지? 그러시면 흰 머리카락도 슬슬 나타나고 있겠네?” “조금요.” “네가 뽑아드리니?” 규성이는 고개만 까딱했다. “뽑는 사람은 신바람 나고 뽑히는 사람은 차츰 서글퍼진다는데 너희 아빠는 어느 쪽이시니?” 전혀 우스운 일도 아니지만 김 선생은 일부러 껄껄 웃으며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 입으로 ‘후’ 부는 시늉을 했다. ‘이놈아, 좀 너도 나처럼 크게 웃으며 말 좀 해 봐라’하는 뜻이 담겨 있었으나 그 뜻은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짧고 작은 미소가 규성이의 얼굴에 언뜻 비치기만 하였다. “너도 앉거라. 잡초를 한 묶음 쥐어뜯어 뽑는 것은 힘도 들고 재미도 없지만 눈 온 다음 날에 이렇게 하나씩 쏙쏙 뽑으면 꼭 새치를 뽑는 쾌감이 일어난다구. 너도 해봐. 요렇게 쏙쏙, 아이고 재미있다.” 그러나 명색이 교회 주일학교 담임교사가 앉거라, 뽑아라 두 가지를 부탁하였는데도 규성이는 그 두 가지 요구를 발로 뻥뻥 걷어차고 멀뚱 서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김 선생이 마른 겨울 풀을 뽑을 때마다 제 몸의 털이 뽑히기라도 하듯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었다. 허, 이런 놈 봤나. 아무리 마음 좋은 천하태평 김태평 선생이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허나 아이의 심리와 그 원인을 알고자 하는 상태였으므로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내가 공연한 얘길 했구나. 아빠도 교회에 나가셔?” “아뇨.” 했으나 그건 그 아이의 입이 말한 것이 아니고 고개가 말한 것이었다. “엄마 아빠랑 친하셔?” “아뇨….” 이번에도 입 대신 고개가 대답했다. “아빠는 어디 계신데?” 직업을 노골적으로 묻기가 뭣하여 말을 살짝 비튼 것인데 규성이는 그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병원에 계세요.” “병원?” 순간 김 선생은 지금까지 이 아이의 언행으로 보아서 의사라는 직업으로 병원에 계신 것이 아니라 환자라는 신분으로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물론 그건 추측일 뿐이었다. 김 선생은 다시 말을 한바퀴 돌렸다. “아빠 친구 분들이 아빠를 부르실 때 뭐라고 부르시니?” “…….” 규성이는 말이 없었다. 빤히 쳐다보는 김 선생의 눈길을 되물음으로 풀이한 규성이가 머뭇거리다가 “식물인간….”하고 말했다. 김 선생의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규성이는 말의 맨 끝에 웃음을 달았는데 그것은 긴 고통을 겪고 난 뒤의 처절한 미소로 번역되어서 김 선생은 하마터면 눈물을 찔끔 짤 뻔하였다. “병원에 계신 지 얼마나 되는데?” 김 선생이 규성이의 손을 잡고 어깨를 다독이면서 물었다. “20년은 될 거예요.” 20년? 아아, 김 선생의 가슴은 놀라다 못해 기절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묻는 것은 아이에게 고문이다’하면서도 김 선생은 한 번만 더 질문의 기회를 허락해 주십사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현재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알고 싶었다. “엄마가 뭐라시든?” “…….” 역시 괜히 물었다 싶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가자.” 김 선생이 침통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규성이를 이끌자 그 아이는 다소 울먹이듯 그러나 누구에겐가 항의하듯 말했다. “지긋지긋한 식물인간이라시며 꼴도 보기 싫으시대요.” ‘아아, 하나님.’ 자기가 요구한 질문의 정답은 아니었으나 그 아이답지 않은 강한 어투에 김 선생은 또 한 번 놀랐다. 성탄절이 지난 지 불과 며칠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 예수를 바라보며 규성이와 나란히 앉은 김태평 선생은 어린 양에게서 자신에게 옮아온 크나큰 아픔을 누르느라 꽤나 힘이 들었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 맺혔다. 김 선생은 그 날 목사님을 만나 저간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규성이네 집을 심방(尋訪)하여 주십사 청하였다. 어떤 목사가 이를 마다하랴. 김 선생은 당장 규성이네 집으로 전화를 하였는데, 의외로 그 아이 어머니 음성이 밝았고 심방을 매우 고마워하였다. 다음날 김 선생과 목사님이 규성이네 집을 찾아갔다. 규성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의 어머니가 두 사람을 맞이하였다. “그러잖아도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두 주일이 넘었는데 살림살이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교회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습니다. 다행히 규성이가 교회를 정했다기에 다음 주일부터 저도 그 교회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미리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규성이 어머니는 모태 신앙이었다. “그러면서도 여태 남편 한 사람 전도를 못하고 있으니 모태 신앙이라는 말이 부끄럽지요.” 규성이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식물인간인 남편을 전도하고 싶으나 전도할 수도 없는 기가 막힌 처지를 얘기하는구나 싶어 두 사람은 차마 무슨 위로의 말을 보태기가 어려워서 잠자코 성경책만 만지작거렸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 가정에 알맞은 찬송을 부르고 이 가정에 알맞은 목사님의 절절한 기도가 이어졌다. 목사님은 김 선생의 예감대로 직접적인 표현을 절대 삼가고 우회적이거나 비유법을 아주 많이 써서 기도하였다. 이미 깊고 깊어진 상처를 새삼 들추어 겨우 진정된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할 수 없다는 깊은 뜻이었을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집을 나올 때 김 선생은 병원에 가서 규성이 아빠를 위해 기도해 드려도 좋으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제 남편을 꼭 주님 앞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제가 못한 일을 목사님께서 이루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깊이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제야 마치 정글이 연상될 만큼 빽빽한 거실의 들풀과 화초와 무성한 나무가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김태평 선생, 목사님, 규성이의 어머니 세 사람은 이틀 뒤 병원 현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PAGE BREAK] “20년 동안 병 수발 든 사람치고는 너무 얼굴이 밝지 않소? 집안 분위기도 그렇고.”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이 갸웃하였다. “감당하기 힘든 큰 불행을 오래도록 딛고 일어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오히려 담담하고,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여서 그런지 참으로 진실된 평화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그도 맞긴 맞는 말이오만.” 하여튼 세 사람은 약속한 날 병원 현관에서 만났다. 큰 대학 병원이었다. 규성이 엄마가 두 사람을 반겼다. 두 사람은 그녀의 안내로 입원 환자들이 문틈으로 보이는 병실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방 앞에 섰다. “들어오시지요.” 노크와 함께 규성이 엄마가 문을 연 방은 병실이 아니라 웬 연구실이었다. “……?” 순간 김 선생과 목사님의 시선이 공중에서 타타탁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여봇! 오늘은 목사님을 아예 모시고 왔어요. 이래도 교회에 안 나가시면 이 식물원이 동물원으로 바뀌어도 난 책임 안 져요. 어서 나오시라니까. 금방 나무 뒤에 숨는 걸 다 봤다구요. 어서욧!” 그녀가 숨바꼭질 놀이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두 사람을 돌아보고는 살포시 웃었다. “글쎄 이 양반이 온갖 식물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강의하고 환자 치료하는 시간 외에는 이렇게 식물 속에서만 산답니다. 일요일 꼭두새벽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전국의 야생풀을 구해와 기른 지 20년도 넘었어요. 그러니 교회 인도를 할 수가 있어야지요. 가족보다 식물을 더 끔찍이 사랑하는 양반이라 친구 분들이 모두들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답니다. 게다가 요새는 하나뿐인 자식마저도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니 원 참 내, 기가 막혀서.” 교수 연구실이라기보다 무성한 숲 속 같은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김태평 선생과 목사님은 마치 오랜 여행 끝에 밀려오는 무거운 피로처럼 얼었던 몸이 한꺼번에 녹작지근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창가 화분 밑에 납작 엎드려 있던 ‘식물인간’이 술래에게 들켰음을 알고 히죽 웃으며 벌떡 일어나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초록빛에 젖은 그의 등 뒤 통 유리창으로 새해를 축복하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끝 ------------------------------------------------------------------------------------ 최영재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별난 초등 학교, 별단 가족, 대통령 자동차, 우리 좋으신 선생님, 하늘에서 달리기 등의 책을 펴내 한국동화문학상, 어린이가 뽑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 신월초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독일에 사립학교가 매주 한두 개씩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이와 함께 독일의 교육적 지형도 바뀌고 있다. 공립학교들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지만 사립학교는 매년 80∼100개 새로 문을 열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사립학교를 세우고 있는 걸까? 이들은 예전의 사립학교 설립자들처럼 권위주의에 반대하며 거창한 대안교육을 꿈꾸는 교육철학자들이 아니다. 현재 독일에서 사립학교 설립 붐을 일으키고 있는 주체는 바로 학부형들이다. 이들은 더 이상 공립학교의 교육을 신뢰하지 못한다. 한 달 전쯤 독일의 소규모 도시인 브레멘에서는 공식인가를 받지 않은 사립 초등학교가 14년간 버젓이 운영되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안겨줬다. 공교육을 믿지 못한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학교였다. 일률적으로 정해진 교과과정만 따르는 공립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을 앗아간다고 생각하는 학부형이 늘고 있다. 실례로 독일에 잘 알려진 텔레비전 방송 진행자인 요오크 필라바는 13명의 다른 학부형과 함께 직접 사립학교를 세웠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교육이념을 따르는 작은 초등학교다. 학부형들이 직접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매달 200유로의 수업료를 지불하면서도 학교 행정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 어떤 이는 직접 학교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또 어떤 이는 체육시간에 보조교사로 일하며, 어떤 학생의 할아버지는 이 학교의 건물관리인을 하고 있다. 학교가 생긴 지 아직 초기 단계라 2∼3년 후에야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교육 콘셉트가 독일 기본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또 그에 따르는 재정적 뒷받침이 된다면 누구나 사립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또 국가가 규정하는 교과과정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쉽게 인가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설립된 사립학교는 2∼3년의 실험기간을 거쳐 검증 받으면 국가에서 전체 재정의 60%에서 7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학부모의 20%가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의 사립학교는 전체 학교 수의 7.5%에 불과하다. 또 학생 수로 따지면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전체학생의 6.5%다. 당연히 사립학교 입학의 경쟁도 치열하다. 2001년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보고서의 충격으로 사립학교가 열풍이 일어났다는 견해도 많지만, 통계를 살펴보면 독일 통일 후인 90년대 초부터 사립학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통일 전 동독 지역에 사립학교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동독 지역에 사립학교 숫자 증가비율이 훨씬 높긴 하지만, 통일 후 전체 사립학교 수가 40% 더 늘었다. 이에 발맞춰 상업적 이익을 보려는 사립학교도 성업 중이다. 1년 전 베를린에서 문을 연 사립학교 포름(Phorm)은 수익성 증권회사를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라면 독일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이 학교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도 무색할 정도로 학교엔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수업료는 지역과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한 달에 140유로에서 840유로에 달한다. 다른 사립학교보다 월등히 가격이 높다. 이에 대해 포름 사립학교의 재단장 베아 베스테는 “자녀에게 최신 학습 방법과 시설로 최상의 교육을 선사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포름 사립학교는 쾰른, 뮌헨, 프랑크푸르트에도 이미 문을 열었으며, 현재 함부르크와 하노버에도 개교를 준비 중이다. 미국인인 베를린 포름 학교 교장 리처드 헨젤브로크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면 교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240명의 초등생과 20명의 인문계학생이 다니는 이 학교 교문 앞에 서서 그는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에게 일일이 인사한다. 교장은 “학생들은 이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재능과 성공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취학 전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고 개발하도록 지원할 것이다”라며 교육 소신을 피력했다. 포름 사립학교에선 두 가지 언어, 영어와 독일어 두 언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교사들 상당수가 영어권 국가 출신이다. 한 학급의 학생수도 매우 적을 뿐더러 초등학교 과정에선 수업 시간 당 교사가 둘이다. 또 수업 종소리가 없고, 수업시작 시간이 9시로 보통 8시 반에 수업을 시작하는 다른 학교에 비해 훨씬 늦다. 학생들이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하려는 배려다. 또 독일의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성적 부진 학생들이 그 학년을 되풀이하게 하는 낙제제도가 없다. 이처럼 대안 교육의 요소도 다분히 있다. 포름 사립학교는 앞으로 10년 안에 전 독일에 모두 40개 학교를 개교하고 ‘고급 교육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포부를 갖고 있다. 한편 독일에선 대안학교에 대한 열기 역시 아직 식지 않았다. 대안학교들도 꾸준히 생기고 있다. 80년대 ‘99개의 풍선’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팝가수 네나가 함부르크에 대안학교를 설립해서 화제다. 부모님이 모두 교사인 그녀가 설립한 이 학교는 ‘새로운 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곳엔 학급도 없고 수업시간표도 없다.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 학교의 기본 이념은 미국 서드버리 학교의 것으로 세계에 모두 40개가 있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스스로 학습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사를 스스로 선택하고 다른 학생들과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상의한다. 빌레펠트의 대안학교인 ‘실험실 학교’ 학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클라우스 위르겐 틸만은 이러한 사립학교 열풍에 대해 “독일의 공립학교는 대안교육을 더욱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틸만은 “현재 비스바덴의 헬레네 랑에 학교나 보쿰의 자유학교와 같은 독일의 사립 대안학교에는 정원수에 비해 3, 4배가 더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든다. 공립학교들이 더욱 개혁교육을 지향한다면 우리가 그리 많은 사립학교를 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독일의 사립학교는 80%가 카톨릭이나 개신교계열이다. 그 다음으로 수가 많은 사립학교는 발도르프 학교다. 그 밖의 다른 계열의 학교는 몬테소리나 다른 대안학교들이 대부분이다. 사립학교가 부유층 자녀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 못지않게 현실 또한 그러하다. 수업료는 보통 부모님의 수입에 따라 그 액수가 단계별로 나뉘어 있고,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학비 면제 제도도 있지만 보통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들은 자녀를 어떤 학교에 보낼지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독일 공교육에 불신을 가지고 있는 부유층 학부형 일부는 독일 사립학교에도 성이 차지 않아 자녀들을 영국 엘리트 국제 기숙학교에 보내고 있다. 영국 기숙학교에선 독일인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외국인 집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립학교의 출신들의 학업 성취도는 공립학교와 비교해 월등히 뛰어날까? 사실 사립학교 출신들이 더 나은 성적을 보인다는 통계자료로 검증된 보고는 없다. 그러나 PISA테스트를 공립학교 대 사립학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류층 가정의 학부형이 사립학교를 선호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사립, 공립학교 사이의 학업성취도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학계와 연예계 등 사회전반에 만연해있는 학력위조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학력위조는 당사자들이 학력위조를 자신의 신분 상승에 이용함으로써 정직하게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이 같은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이 사회적 비난의 핵심이었다. 이처럼 학력위조와 이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문제는 중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중국에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낫다고 할 정도로 진짜 같은 가짜가 판치고 있다. 무수한 외국 유명 브랜드의 모방 제품과 더불어 최근 사람들을 경악시킨 바 있는 가짜 분유, 가짜 술 심지어는 가짜 달걀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그야말로 가짜의 천국이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에서 가짜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곳은 바로 정부기관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정부 관료들이 자신의 학위 위조를 통하여 승진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이른바 공무원들의 가짜 학위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부정부패 척결의 차원에서 국가가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가짜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곳, 정부 현재 중국 공산당 및 정부기관의 관료들 중에는 고학력자들이 많다. 특히 이들 기관의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이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으며, 박사학위를 가진 자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물론 정부기관의 간부들이 자신의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여 석사나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현실적으로 공무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관료들이 직업을 병행하면서 취득한 학위는 실질적인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불법으로 취득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료들의 학력위조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몇 년 전 중국 정부에서는 학위와 관련하여 위법을 저지른 관료들에 대한 조사를 이미 수행한 바 있다. 2004년 10월 중국 정부는 2년간에 걸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당시 67만 명의 간부 가운데 40명당 1명꼴로 신고한 학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중국의 관료들이 자신들의 학력을 속이는 가장 큰 이유는 학력이 관료들의 승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즉, 중국에서 관료들이 승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갖춰야할 조건들이 있으나 그 가운데 학력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때문에 관료들은 자신의 승진을 위해 필요한 학위취득에 열을 올리게 되고, 이로 인해 많은 부작용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공공연한 서류위조에 엉터리 학위 취득 중국 관료들이 학력을 위조하는 방법은 학위 증서를 위조하는 것과 엉터리로 학교를 다니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학위를 취득하는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가짜 학위증을 만들어 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이는 그동안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돼온 학력위조의 방법이다. 다소 위험은 있지만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그동안 지방의 관료들은 가짜 학위증을 많이 구입하여 사용하였으며, 대도시에는 현재까지 이러한 가짜 증서를 판매하는 업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중국에 오래 거주해본 사람들은 중국에서 증명서를 위조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베이징의 경우 주요 도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른바 위조된 증명서를 사겠는가 묻는 호객꾼들이며, 시내 건물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 전단지의 내용 대부분이 이른바 ‘빤쩡[辦證]’이라 불리는 증명서 위조와 관련된 것일 정도로 중국에서는 공문서 위조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때문에 학위증서가 필요한 관료들은 이들을 통해서 위조된 학위증서를 구입하고 이를 승진에 이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합법적으로 엉터리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위조된 학위증서 구입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식으로 대학에 등록하여 학생으로서의 정식 절차를 마친 후 부정한 방법으로 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학위를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학위증서를 위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많은 고위관료들은 입학시험부터 학교생활, 논문작성, 과제제출, 논문답변, 학위취득에 이르는 전 과정을 남들과는 다른 부정한 방법으로 마치게 된다. 즉, 이들은 입학시험 부정을 통해 학위과정에 입학한 후 본인은 전혀 수업에 참석하지 않은 채 대리출석, 대리시험, 논문대필 등을 통해 학위를 취득하는 것으로 이는 돈을 주고 학위 증서를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위증서 관련 부패 억제 제안서’ 큰 호응 과거에는 위조된 학위 증서를 구매하여 학력을 위조하는 일이 많았으나 이러한 가짜 증서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강화되자 이제는 두 번째 방법인 엉터리로 학위를 취득하는 방법을 통해 학력을 높이고 있다. 이는 이들 고위 관료들과 학교 간의 이익이 서로 통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대학 측으로서는 자신의 대학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관료들의 부정입학을 거절하기 어렵고, 이들이 자신들 학교의 학적을 보유하게 되면 그 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강화되는 등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학교 측으로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중국 관료들의 학력위조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정치협상회의(政協)’ 위원이자 칭화대학[淸華大學] 교수인 차이지밍[蔡繼明]이 5년 전 정부에 제안한 ‘당정간부의 학위증서 관련 부패억제’와 관련한 제안서가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사회적으로 관료들의 학력위조 문제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중국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관료들의 학력위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일본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지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일본 교육분야 뉴스의 단골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 내·외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한 이지메로 인한 피해 보도 말고도, 이제는 기존의 이지메 유형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이지메 출현까지 일본의 교육현장은 새로운 대책 마련으로 고심하고 있다. 2006년에만 5천건 적발 신종 이지메는 이른바 ‘네트(NET) 이지메’(인터넷·휴대전화를 통한 이지메)로 불린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07년 11월 15일에 발표한 이지메에 관한 2006년도 전국조사결과에서 전국 초·중학교, 고교의 이지메 인지 건수가 12만 5000건에 이르렀으며, 이 가운데서 전자 메일과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한 이지메가 5000건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번 문부과학성에 보고된 인터넷에 의한 이지메 가운데는 학생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 경우가 많다. 일본 센다이시내의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은 2006년 가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죽어라’, ‘이 세상에서 꺼져버려’ 등의 말을 보게 되었다. 경찰이 수사에 적극 나서 비방과 중상의 말을 기재한 학생 2명이 가정재판에 송치되었으나 피해 남학생은 등교 거부를 하게 되었고 결국 전학을 하고 말았다. 또한 아키다시내의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은 인터넷 포르노 소설 투고 사이트에서 주인공으로 둔갑되어 실명이 게시된 이후 일시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경찰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였으나 누가 기재하였는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조사 대상의 시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2007년 7월에 자살한 고베시의 고교 3학년 남학생은 동급생으로부터 휴대전화와 메일로 여러 차례 돈을 요구당한 것 외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나체 사진과 험담이 투고되었던 일이 뒤에 판명되었다. ‘전국웹상담협의회’(사무국 동경)의 야스가와 이사장은 “네트를 이용한 이지메는 최근 1년 사이에 아주 빠른 속도로 악질화 되었다”라고 말한다. 최근 1년간 빠른 속도로 확산 이 협의회에는 연일 아이들로부터 자신의 얼굴이 언제 촬영되었는지도 모르게 메일로 사진이 전송되기도 하고, 개인 소개용 홈페이지에 마음대로 사진이 올려져 원조교제를 하고 싶다고 기록되는 등의 내용의 상담이 밀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비방과 중상의 메일이 순차적으로 동급생들 사이에 전송되는 ‘연쇄 메일’이나 이름과 메일 주소를 속이고 메일을 보내는 ‘위장 메일’ 등 수단도 그야말로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와 보호자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 이름을 내건 게시판이 인터넷 상에 개설되어 학생들을 비방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사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일명 ‘학교 비공식 사이트’로 불리는데 개설자는 거의 해당 학교의 학생이라고 한다. 주로 정보 교환이나 교류를 위해 사용되지만 이 가운데는 익명으로 친구의 험담을 하거나 악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서버 관리자에게 삭제를 의뢰하지만 입력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등한시되어 삭제되지 않고 있는 게시판도 더러 있다는 것. 게시판을 학교가 관리할 수 없는 이상 학생들에게 개인을 비방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호소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 학교 측의 이야기이다. 학교는 모르는 ‘학교 비공식 사이트’ 개설도 며칠 전 TV 뉴스에서 본 내용이 기억난다. 역시 인터넷을 이용하여 범죄 행각을 벌인 경우인데, 한 젊은 남자가 인터넷에서 고교생을 비롯한 젊은 여성들의 신상 정보를 입수하여 무려 500여 통의 휴대 전화와 메일을 동시에 발송하였다. 그 가운데 사기 행각에 걸려 든 여성은 9명.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야쿠자(폭력조직)로부터 표적이 되고 있다’라는 메일을 받는다면 누가 쓸데없는 장난을 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하면 되는데, 그 가운데는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반응을 보이게 된 여성들은 그 남자의 계획대로 말려들고 마는 수순이다. ‘익명성’ 때문에 대응책 찾기 어려워 네트에 의한 이지메는 익명인 탓으로 학교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이다. 후쿠시마현 내의 공립 중학교 학생 지도교사는 메일이나 인터넷 게시판은 다른 친구들의 험담을 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되고 있으며, 그만 두게 하고 싶어도 누구를 지도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최근의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 비공식 사이트’를 감시해 학교에 통보하거나 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를 의뢰하기도 하는 IT업자도 등장했다. 2007년 7월부터 유료 서비스로서 시작되었는데 벌써 지역 교육위원회나 사립 고교 등으로부터 10건 정도의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건이든지 실제로 발생한 건수와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건수는 실제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본 군마대학의 정보미디어론 교수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5000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반쯤은 놀이처럼 비방과 중상의 말을 기재하고 있으며, 피해를 당하는 쪽의 상처를 이해시키는 교육을 교사나 보호자가 시급하게 행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더불어 강조한다. ‘네트에 의한 이지메’를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단순히 다른 세상 이야기로 덮어 버리기에는 그 양상이 위험 수위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연예인들과 관련하여 일부 네티즌들이 정도가 지나친 악플을 달아 결국 사이버수사대에 검거되는 이야기를 보기도 한다. 흔히 있는 악플의 경우라면 연예인이니 어느 정도 감수한다고 하겠지만 당사자의 명예에 치명적이거나 악의성이 농후할 때에는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야 단순한 생각으로 글을 올렸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입게 되는 사람에게는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상식 없는 무분별한 악플 기재 또한 익명을 내세워 네트를 이용한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부과학성의 이번 조사에서는 학교에서 파악한 이지메의 80%가 연도 내에 해결되었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조사를 통해 이지메에 대한 학교의 인식이 심화되어 대응이 진전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결국은 학교는 어떤 유형의 이지메이건 아동·학생으로부터 이지메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어내어 조속히 대처할 수 있는 체제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덕담(德談)의 계절이 되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덕담을 나눈다. 올 한 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덕담’에 담아서 서로 전하기 때문이다. 원래 덕담은 설날 세배 풍속으로, 세배 자리에서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새해의 기원(祈願)으로 주시던 좋은 말씀을 일컫는다. 그러고 보면 세뱃돈이라는 것도 세배 덕담이 변해서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선의(善意)의 기원이 담긴 말들을 그냥 ‘덕담’의 범주에 넣는다. 심지어는 ‘악담(惡談)’의 반대 개념 정도로도 쓰이는 말이 되기도 했다. 얼핏 들으면 악담인데 듣고 보면 덕담의 효과를 내는 말 중에 “그 놈, 제 애비보다 낫다”라는 것이 있다. 겉으로 들으면 ‘나 못 났다’는 지적인데, 돌려서 생각하면 ‘내 자식 잘 났다’는 칭찬으로 들리기 때문이란다. 부모 된 자의 자식 사랑 본능을 잘 반영하는 경우라 하겠다. 또 어떤 사람은 덕담 내용이 확고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덕담의 시제를 미래형으로 하지 않고 과거형으로 말하기도 한다. “너 공부 열심히 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말하는 이의 확신감이 느껴져 좋고, 상대로 하여금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 구나’하는 느낌을 가지게 해 주어서 좋다. 덕담의 가장 큰 적(敵)은 상투성이다. ‘에이, 누구나 흔히 하는 소리잖아!’ 이런 느낌을 주는 덕담이 바로 상투적 덕담이다. 정성이 담기지 않으니 ‘덕의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한다. 덕이 없는 덕담은 덕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쪽의 무관심만 상대에게 확인시켜 준 격이어서, 안 하니만 못한 경우도 있다. 1980년대 초반쯤이었던가. 한국교육개발원에 근무하던 필자는 충주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식에 내빈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잘 아시다시피 방송통신고등학교는 어려운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일반 고등학교에 부설한 학교이다. 일요일에 출석하여 수업 받고, 매일 교육방송으로 강의를 청취하며,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당시 한국교육개발원은 전국의 방송통신고등학교 업무를 관장하고 있었는데, 그런 연유로 한국교육개발원을 대표하여 그 졸업식에 간 셈이었다. 졸업생은 40명 정도 되었다. 졸업장 수여 순서가 되자, 교장 선생님이 단상 앞으로 나오셨다. 그분은 뒷날 충북도교육감을 하시고, 국립교육평가원 원장을 지내셨던 유성종 선생님이다. 교장선생님은 졸업생을 하나하나 단상으로 오르게 했다. 흔히들 졸업식이라면 졸업생 대표 1명을 단상으로 불러, 졸업생 대표 아무개 외 몇 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한다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에 비하면, 자못 진지했다. 아무튼 그렇게 불러 낸 졸업생 하나하나에게 유성종 교장은 졸업장을 건네면서, 무어라고 개별 안부 묻듯이 말씀을 건네준다. 졸업생마다 각기 다른 말씀을 주는데, 단상 뒷자리에 앉아서 들어보니 재미있다. 아니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그게 어렴풋 감동으로 느껴진다. “지난 가을 송아지 낳은 것은 잘 자라느냐, 돈 되게 잘 키워라.” “부모님 병환 돌보면서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지. 자네 효성이 자식들 복으로 갈 거다.” “시댁 어른들이 좋아하겠다. 공부 한을 풀었으니 남편 사업도 이제 잘 풀릴 거여.” “자네 이 공부, 중간에 그만둔다 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졸업하니 참 장하네. 장해!” “지난여름 태풍 때 자네 농장 비닐하우스 망가진 것, 복구 좀 했는가. 기죽지 말게.” 덕기(德氣)가 넘치는 덕담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씀을 받는, 어른 졸업생들도 더러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필자는 그날 교장 선생님이 보여 준 살아 있는 덕담의 장면들을 잊지 못한다. ‘나도 언젠가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로 돌아가면 저런 선생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른 학생’들에게 교장은 진정한 ‘덕담’을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덕담의 장면을 지켜보는 나에게도 그것은 얼마나 덕스러운 감화가 되었는지! 도대체 교장선생님은 이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일상적 삶과 형편들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을 수 있었을까. 그게 어디 표피적 말기술 따위로 감당이나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상대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아무도 모르게 안으로 분비되는 과정 없이는, 덕담은 출현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덕담을 하는 사람은 덕담인 줄 모르고 덕담을 한다. 이런 경지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를 ‘덕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덕담이 점차 사라져 간다. 덕담을 너무 의식하면 오히려 덕담에서 멀어진다. 덕담의 자격을 가지려면 상대에게 어떤 감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힘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상대를 간곡하게 배려하는 덕(德)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형식이 반듯해야 한다. 이를테면 일종의 예(禮)가 실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함과 진정성이 녹아 있는 말이라면, 감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덕담은 유창한 말기술로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예(禮)와 덕(德)이 극단적으로 훼손되어 민망하기 그지없는 덕담 상황을 경조사(慶弔事) 장면에서 더러 본다. 상가(喪家)에 문상을 온 사람들이 무심코 접수시킨 부조금 봉투의 겉면이 간혹 ‘축의(祝儀)’라고 씌어진 것들이 있단다. 유족에게 멱살잡이 당하기 딱 좋다. 반대의 경우도 민망의 극치를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결혼 축의금을 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무심코 ‘부의(賻儀)’라 쓰인 조문용 봉투로 부조금을 내어 놓는 경우, 받는 쪽에서는 순간적으로 기가 막힌다. 고맙기는커녕 상대의 극단적 무신경에 내 존재 자체가 무시당한 듯한 서운함을 느낀다. 설사 그 봉투에 부조금을 두툼하게 넣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 것 주고 뺨 맞는다는 속담이 여실하게 들어맞는 상황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당사자는 ‘단순한 실수’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본의는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발적 사고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영어식 표현으로 이런 걸 ‘해프닝(happening)’이라고 한다. ‘해프닝’에 지나지 않으므로 별일 아니라 변명하고 사태를 수습하려 애를 쓸 것이다. ‘해프닝’이란 의도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우발적으로 일어난, 한갓 우스개와도 같은 실수란 뜻이 들어 있는 말이다. 물론 남의 흉사/경사를 일부러 조롱하듯 하려는 것이라고까지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축하하고 위로하는 일이란 그 본질이 덕스러움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경조사에 부조금 봉투 내는 일도 일종의 덕담 나누기이다. 경조사에서의 인사가 그냥 봉투 하나 내미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실한 감정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에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부조금 겉봉투에 못쓰는 글씨로라도 직접 축하와 위로의 글자들을 써 넣고, 깔끔한 속종이 한 장 마련하여, 상대를 향한 내 진정한 마음을 두어 줄 글귀에나마 정성들여 쓰고, 그걸로 다시 부조금 정성스레 싸서 내어놓는 과정을 가질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도 덕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리 인쇄해 놓은 표준형 부조금 봉투에 알돈 불쑥 집어넣고서는, 밀린 곗돈 내듯 내고서는, 서둘러 끼니 한 그릇 때우고 오는 과정 속에는 아무리 보아도 덕(德)이 없다. 축하든 위로든, 내 마음의 언어를 내 스스로 지어내는 정도의 수고가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덕담이 된다. 그런 사람이 덕 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은 천국도 담고 지옥도 담는다고 했던가. 인간은 신처럼 고상한 경지에 있을 수도 있고, 동시에 짐승의 수준으로 비루해질 수도 있다. 인간의 말이 꼭 그러하다. 덕담은 천국의 언어이고, 악담은 지옥의 언어이다. 말은 덕과 나란히 같이 가기도 하지만, 말이 덕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덕담이 존중되는 사회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인격으로 맺어지는 사회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인격 아닌 것’들로 매개될 때, 덕담은 사라진다. 인격(人格)이 물격(物格)처럼 다루어지는 사회에서는 덕담이 사라진다. 이보다 더 고약한 것은 덕담에서 덕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돈으로 맺어진다든지, 부당한 권력으로 맺어진다든지 하면, 덕담에서 덕이 빠져 나간다. 이때 남는 것은 ‘가짜 덕담’이다. 겉만 덕담의 형식을 취하고 안으로는 속 좁은 이익이나 챙기는 것이다. 이런 세태에서는 가짜 덕담이 판을 친다. 덕담이랍시고 하는 것이 닭살 돋는 아부로 변질된다. 속임수를 가리기 위해 짐짓 덕담인 척 위장을 한다. 이런 것들이 무슨 괜찮은 처세술인 양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그러고 보면 세배 자리에 오로지 ‘덕담’만이 오가던 시절이 더 온전한 인격의 시대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덕담만이 있던 자리에, 덕담 대신 세뱃돈이 끼어들면서, 덕담은 뒷전이고, 세뱃돈에만 눈과 귀가 밝아지는 모양새가 되지는 않았는지. 설날 아침 세배 자리 풍경도 변해만 간다. 세배 자리 집안 어른들의 덕담을 마음에 두고 헤아려 보는 대신에, 집안 형제들끼리 서로 경쟁하듯 세뱃돈 헤아리는 데에 여념 없는 아이들을 보며, 이래저래 변질되어 남루해진 덕담의 운명을 아쉬워한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한다. 학력저하의 원인은 무엇일까? 상당한 이유는 학생들이 공부를 왜 하여야 하는 것을 모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최근 우리나라의 공부는 어떠한가? 아이들이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이유도 모른 채 집중하고 있다. 일단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 무엇인가 된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들은 아이들을 잡아서 공부하여라고 강요하지만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왜 공부를 하여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본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일단 좋아하고 봐야 능률이 쑥쑥 오른다. 학생들이 고1때 수학참고서 끼고 살아봐야 수리 모의고사 60점 못 넘더니 고2때 재미 붙이고 나니까 수학 참고서 안 풀어도 80대 90대 나온다는 사례도 있다. 공자가 쓴 논어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학생들은 공부가 즐겁지 아니하고 이에 따라 자녀 공부 때문에 집안이 즐겁지 아니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나라 아이들은 날마다 잿빛얼굴을 하고 학교를 가거나 밤마다 돈 뿌리며 학원가를 전전한다. 웃음 잃은 아이들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무서움에 전염되어 마구 달리고 있고 그들과 나란히 질주하고 있는 부모님들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러나 학력은 부모나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다. 부모의 욕심, 대리만족심리에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이유로 실제도 학생들이 과거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중고교에 특강을 가면 강사입장에서 사정을 하여 관심을 유도할 정도로 공부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실제로 고교생들이 적당히 하면 어떤 등급은 나오겠지 하면서 공부에 과거 학생들만큼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고교 교장선생님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또 어려운 수학과 과학 공부를 안하려하고 있다. 특히 여학생들 중심으로.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힘들게 공부하면 나중에 도움을 받으리라 본다. 공부는 왜 하여야 하는가?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하여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공부를 함으로써 학생들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도 공부의 효과이다.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왜 공부를 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학교에서 영어단어 1개와 수학공식을 배워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을 세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선 학교의 관리자와 교사들은 학생들의 꿈을 갖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다양한 교육내용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더욱 많이 만들자. 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생각하게 하자. 한 조사에 의하면 10명중 4명(37.9%)이 아직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갖지 않고 있다. 이렇게 꿈이 없으면 공부를 하여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무작정 공부하게 된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알게 하자. 같은 조사에서 학생 중 10명중 4명은(39.5%)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학생에 대하여도 적절한 지도가 따라야 하겠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 조사에서는 30.5%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응답하였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45년 동안 직업 활동을 하여야 하는 시대가 된다. 또 이 사이에 평균 8차례 가량 직업이동을 하여야 할 상황에 놓이고 그중 전혀 새로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 3번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새로운 것을 공부하여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하여야 한다. 그 기초가 초중고교에서 공부하는 배우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하여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여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이나 중국, 인도의 학생들은 공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데 우리 나라 학생들은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가적 경쟁력이 떨어져 우리 나라의 미래도 걱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립대학연맹”(도쿄)이 실시한 한 대학생 실태 조사에서 대학 시절에 장래를 위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갖추고자 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 전입시대로 인해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취직할 수 없다라고 하는 위기감이 있다.”라고 전문가는 배경을 분석한다. 종전의 대학생활에서 중요시 하던 "취미, 놀기”보다는 “지식, 기술”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같은 조사는 4년마다 실시하여, 이번이 12회째이다. 작년 9월~10월에 가맹된 사립대 123개교의 학생 약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여, 122개교 6639명의로부터 회답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좋았던 점을 묻는 질문에서는 두 번째로 회답이 많았던 “지식이나 기술을 갖추게 되었다.”(58.7%)가 전회 조사보다 4.8포인트 증가했다. 이에 비해서 3위의 “취미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39.6%)가 5.6포인트, 4위의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21.7%)는 2~4포인트 각각 전회 조사 수준을를 밑돌았다. 대학 진학 목적에서도 “전문적인 지식, 기술을 갖추고 싶다.”가 전회를 웃돈 것에 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 “자유로운 생활과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각각 밑돌았다. 1개월간의 지출 내용을 보더라도 자격 취득을 위한 학원이나 전문학교 등에 내는 “더블 스쿨비용이대”가 18,100엔으로 3500엔 증가했다. 학습 자료대도 1300엔 증가한 7400엔으로, 배움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엿보이는 결과였다. 조사를 담당한 나카가와 교수(리쓰메칸대 사회학)는 “대학에 들어가기 쉽게 됨으로써 ‘대졸’이라는 졸업장의 가치는 저하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시대가 되어, 대학시절을 유예기간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줄어들었다.”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해야하는 대학도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실천적인 매력이 있는 수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문부과학성에 의하면, 교원연수 등을 행하는 대학은 해마다 늘어나 2005년에는 전 사립대의 8할이 실시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강의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를 보면 “교수진”, “교육 과정의구성”, “수업 내용”, “세미나 등의 소인수 교육”, “시설,설비”의 모든 항목에서, “대단히 만족한다” “만족한다”를 합한 비율은 각각 전회를 4.2포인트에서 6.7포인트 웃돌았다. 이같은 결과는 대학측의 노력이 어느 정도 인정된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오비린대학교 대학원(고등교육론) 시오키교수는 “대학 전입시대가 가까워지면서 결과적으로는 대학이 교육에 열심하게 되고, 학생도 공부하는 대학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된 면이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천시가 2기 신 활력지역으로 선정됨에 따라 새 교육공동체 시민모임(회장: 류윤현)가 주최한 대학진학설명회가 12월27일 제천 동명초 강당에서 교육관계자, 진학담당교사, 학부모, 시민 등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제천시 김기숙 평생교육팀장이 신 활력지역으로 선정된 경과와 시너지 효과를 참석자에게 보고하고 새 교육공동체 시민모임 류윤현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김영호 제천교육장과 엄태영 제천시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한방특화 등 제천의 브랜드를 앞세워 2기 신 활력지역으로 선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여 박수를 받았다. 제천출신인 충청북도교육위원회 성영용 의장의 축사가 이어지는 동안 시장과 교육장에게 감사의 박수도 터져 나왔다. 시민단체에서 마련한 꽃다발까지 주어져 한층 고무된 분위기였다. “신 활력지역 선정에 따른 교육공동체의 역할” 이라는 주제로 제천여고 신강수 교장의 특강이 이어졌다. 1기로 6개 시군이 신 활력지역으로 선정되어 점촌고등학교의 대학진학 우수사례를 소개하면서 제천지역도 2기로 신 활력지역에 선정되었지만 우리지역 고교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특례입학 등 제천교육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2기로 신 활력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제천, 안동, 공주, 정읍, 삼척, 영천, 태백, 남원, 김제, 나주, 상주, 문경 등 12개 지역으로 시지역의 고 3학생은 약 24,000명이고 농어촌 지역은 약 52,000여명 이라고 한다. 2기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로 지자체에 매년 20억 ~30억씩 최대 90억까지 지원이 되며 199개 4년제 대학 중 160개 대학에서 농어촌 혜택을 85개 대학이 신 활력 지역에도 혜택을 부여한다고 한다. 신 활력지역선정으로 학생에게 주는 효과, 지역에 주는 효과를 설명하면서 지역의 교육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여 학부모와 참석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인천동명초등학교(교장 이명숙) 12.28일 학교 인근인 송림1동, 송림2동, 금창동에 거주하는 불우이웃 60명에게 쌀 20Kg 1포씩을 전달 지역사회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전교어린이회(회장 김훈기)가 주관 실시하는 이웃사랑실천 행사로 지난 12.3-4일까지 2일간 전교직원 및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 총 2,952,380원의 성금을 모았다고 한다. 한편 동명초등학교의 이웃사랑 실천운동은 매년 어버이날과 연말연시를 맞아 실시하는연례행사로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