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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간다. 일 년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시원섭섭한 감정도 생기고, 겨울방학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힘듦을 잠깐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빠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이 2023년에 새로 만날 학생들을 위해 겨울방학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희망해본다. ● 소비자의 날(12월 3일)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 죽어라고 일한다.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잘 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소비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용돈을 받으면서 ‘아껴 써라’라는 잔소리는 듣지만, ‘현명하게 써라’라는 말을 듣는 일은 드물다. 현명한 소비생활, 즉 스마트 컨슈머가 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까지 소비자의 날이 없다가, 1979년 12월 3일 「소비자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매년 이날을 소비자의 날로 정해 행사를 개최했다.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한참 뒤인 1997년 5월 9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부터다. ● 무역의 날(12월 5일) 무역은 고조선시대부터 있었다.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서로 남는 것과 모자란 것을 교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made in KOREA’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낯설지 않다. 1964년 11월 30일,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날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수출액 6,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세계 6위의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다. ● 대설(12월 7일) 대설(大雪)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날이다. 하지만 재래 역법(曆法)의 발상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반드시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대설은 24절기 중에서는 해가 가장 일찍 지는 날이기도 하다. 동쪽에 위치한 강릉을 기준으로 오후 5시쯤 해가 지기 시작해 오후 5시 50분에 완전히 어두워져 밤이 된다. ● 동지(12월 22일) 동지(冬至)는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조금씩 길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동지를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날’이라고 여겼으며,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 몸을 움츠리고 있던 각종 푸성귀도 동지가 지나면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지를 ‘작은 설’로 여기고 설 다음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대접했다. 조상들은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했다. 귀신은 붉은 팥을 무서워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성탄절(12월 25일) 우리나라의 첫 크리스마스는 조선시대에 시작되었다. 1886년 12월 24일 이화학당 소녀들을 위해 크리스마스트리가 만들어졌다. 1887년 10월 한국의 첫 교회가 설립된 후, 그해 12월 25일 배재학당에는 산타클로스가 등장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배재학당 학생들에게 성탄절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양말에 선물을 담아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진짜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은 줄 알았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의 첫 번째 성탄절이었다. 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 아니든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떠나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축제가 된 지 오래다.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즐겁고 행복한 연말을 보내며 2023년 새해를 맞이하기를 희망한다. ●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원자력의 날)(12월 27일) 원자력은 원자핵의 반응을 이용하여 만드는 에너지로 제3의 불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불이 인류의 문명을 만들었고, 석유와 전기가 현대 문명을 만들었다면, 원자력은 막대한 양의 전기를 매우 높은 효율로 생산함으로써 현대 문명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의 날은 우리나라가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는데 성공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했던 순간, 자존심 상했던 순간, 두렵고 무서웠던 순간, 배신감에 분노가 치밀었던 순간…. 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마음에 깊이 상처를 입힌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는 기억 속에 각인되는 타투와 같다. 그 순간의 상황은 물론, 느껴졌던 공포·두려움·불안 등의 감정까지도 선명하고 강력하게 새겨져 쉽게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을 괴롭힌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 같지만,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후회·죄책감 등이 겹치면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기도 한다. 트라우마의 핵심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다. 마음에 남겨진 상처가 핵심이다. 따라서 사건이 크냐 작냐, 사건이 얼마나 심각했느냐 아니냐, 사건을 직접 겪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트라우마는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개인의 심리적 반응(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경험하더라도 개인의 성향·정서상태·주변환경 등에 따라 심한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비슷한 상황에서 가끔씩 기분 나쁜 기억으로 떠오르는 수준일 수도,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살펴본다. 트라우마의 핵심은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에만 생기는 걸까? 아니다. 트라우마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빅트라우마. 우리가 곧잘 오해하는, 평범한 일상의 경험 범주를 넘어서는 재난·전쟁·성폭행·학대 등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을 때 생기는 트라우마가 빅트라우마이다. 두 번째는 스몰트라우마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 예를 들어 버스를 타려고 달려가다가 많은 사람 앞에서 넘어졌던 일, 음악 수행평가를 보는 도중 친구들 앞에서 음이탈을 했던 일, 바다에서 친구들이 장난으로 물에 빠뜨렸는데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일, 헤어진 여자(남자)친구에게 술에 취해 전화(문자)를 했던 일, 자고 일어났더니 깜깜한 방에 혼자 남겨져 있던 일, 친한 친구가 말도 없이 전학을 가버린 일, 반려동물이 어느 날 사라진 일,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들렸던 발걸음 소리 등 일상생활 속 크고 작은 사건들은 모두 스몰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빅트라우마를 모두 경험하면서 살지는 않지만,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스몰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머리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은 트라우마를 잘 설명해준다. 솥뚜껑을 자라로 착각하고 본능적으로 화들짝 놀라는 불안·공포·위험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편도)과 놀란 뒤에 ‘자라가 아니고 솥뚜껑이구나 안심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판단하는 뇌의 영역(해마)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편도와 해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경험과 당시 감정을 각각 나눠 협업해 처리하고 저장한다. 하지만 너무나 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이 협업 시스템은 붕괴된다.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으로 편도는 평소보다 과하게 활성화되고, 해마는 억압되면서 기억저장시스템이 닫히고, 트라우마의 대부분은 편도에 저장된다. 편도는 위험을 알리는 역할이기 때문에 이후 살아가면서 이를 연상시킬 수 있는 조그마한 단서에도 당시의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거나, 저절로 스스로 치유되지 않는다. 따라서 편도가 솥뚜껑 말고도 더 많은 것에 위험신호를 오작동하기 전에, 편도가 기억하는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안심시켜주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따라서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병원이나 전문기관으로 반드시 연계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언제나 강조하지만, 연계는 책임회피가 아니라 적극적 도움임을 기억하자). ‘괜찮아, 걱정하지 마’ … 트라우마 진행을 멈추는 한 마디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모두가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다 바닥에 발이 닿아서 ‘아, 수심이 얕구나’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면, 물에 들어가는 것이 여전히 겁날 수는 있어도 트라우마까지 진행되지는 않는다. 즉 같은 일을 겪더라도 불안·공포 등을 크게 느낀 사람에게는 트라우마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겁났던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왕따 경험으로 학교·교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아이, 학대경험으로 특정 어른(부모 또래의 선생님)을 마주하기 힘들어하는 아이, 어두운 공간에 혼자 방치된 경험으로 저녁에 혼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아이, 부모님의 강압적 양육태도로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 등 다양한 경험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트라우마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슴이 아려오는 순간이 있다. 두려움을 느꼈던 바로 그때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제 안전해’라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위험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온몸으로 불안을 감당하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등의 안전 메시지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어준다. 가족의 지지, 친구들의 관심, 주변 어른들의 배려는 후유증이 남지 않거나, 경미하게 남거나, 남더라도 곧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아이가 트라우마의 영향에 함몰되느냐, 아니면 트라우마의 영향을 극복하고 성장하느냐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몰트라우마일수록 극복할 가능성이 크며, 트라우마가 생긴 즉시 대처할수록 효과가 크다. 만약 학교생활을 하는 중 우리 반 학생이 너무나 창피해서 자신감·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놓여 울먹이거나 당황해하고 있을 때, 이렇게 위로해주자. “친구들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해서 너무 창피하겠다. 당황스럽고. 하지만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누구나 다 실수는 하잖니.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선생님이랑 함께 해볼까?” “그런 상황에서 진짜 잘 버텼네. 울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을 텐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멋있다. 다시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래?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 아까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못 했을 거 아니야? 지금 연습해둬야 다음번엔 쫄지 않고 말 할 수 있지? 뭐라고 말해줄까?” “아냐,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 간 것이 잘못은 아니잖니? 너는 일상생활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고, 그냥 거기에서 사고가 났을 뿐이야. 사고는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 ‘왜 하필 거기에서’, ‘거기에 안 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 하지만 거기가 아닐 이유도 없단다.” “믿었던 친구가 그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짜 망치로 머리를 맞는 것같이 멍했겠다. 배신감도 들고, 친구를 믿은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신뢰’가 깨진 그 틈으로 ‘의심’이 파고들 텐데, 앞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심부터하고 못 믿을까 봐 걱정이네. 어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니?” “아빠에게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어쩌면 더 비정상적인 걸 수도 있지 않니? 특히 어렸을 때는 더 무섭잖아. 생각해보렴. 8살 때의 네가 할 수 있었던 것과 18살인 지금의 네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다르잖아. 그때는 너무 무서웠고, 그 무서운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으니까, 괜찮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럼 지금은 어때? 아직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니?”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느낌이 다른 이런 말들은 오히려 상처를 추가할 수 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얘들은 금방 잊어버려. 남의 일에 큰 관심 없다니까.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무섭고 힘들었겠네. 이해는 하는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 일인가? 너무 유난스럽고,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상황은 이해하겠는데, 언제까지 그럴 거야. 정신력이 약한 거 아냐. 이제 좀 극복해야 하지 않겠니?” 같은 말이라고, 같은 감정과 정서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이다. 그리고 안전의 메시지와 함께 다음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까지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늘 그 부분을 잊곤 한다. 물고기 잡는 방법은 낚싯대만 쥐여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렁이를 꿰는 것, 얼마나 팽팽해졌을 때 줄을 당겨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시켜야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따라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와 함께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행동하면 된단다’라고 분명히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심리·정서적 상처는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은 다양하고, 마음의 병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또한 모든 심리·정서적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깊고 심각하게 다쳤는지,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설령 말을 한다 하더라도, 100% 공감하기 어렵다. 그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하며, 지금까지 견뎌냄을 토닥여주고, 지금도 견뎌내고 있음을 알아차려 주고, 앞으로도 견뎌낼 수 있음을 믿어주며,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보듬어 줄 뿐이다. 특히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예민하고 걱정이 많아서 과민반응을 하는 아이들은 트라우마에 더 취약하다.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렇게 되면 어쩌지’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퍼져나간다. 하지만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것이 잘못은 아니다. 비난받을 만큼 나쁜 행동도 아니다. 게다가 주변에서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 뭔 걱정이 그렇게 많니?’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아이들은 힘든 상황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예민하다고 비난할까 봐 그것마저도 걱정한다.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 같지만, 더 선명하게 혹은 왜곡되게 기억되며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어설프게 맞서면 더 좌절할 수 있고, 그렇다고 계속 피하게만 할 수도 없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위대한 표현은 바로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자연스러운 감정이야”라는 따뜻한 위로일 것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 뭔 걱정이 그렇게 많니?’라는 말 대신 자신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찾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것이 정말 위험한 것인지,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슬프고 두려운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이다.
(이아연 지음, 북네스트 펴냄, 172쪽, 1만 2,800원) 어린이들이 국제적 안목을 기르도록 다른 나라와 국제관계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소개한다. ‘영국은 한 지붕 네 가족’, ‘인도에는 왜 신분제도가 있어요?’, ‘중동 사람들은 왜 우리나라 사극을 좋아해요?’, ‘환율이 뭐예요?’ 등 세계시민으로 커가는 데 필요한 24가지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풀어냈다.
(캐서린 뉴먼 글, 데비 퐁 그림, 김현희 번역, 그레이트북스 펴냄, 160쪽, 1만 4,000원) 코로나19로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대화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상황에 맞게 말과 행동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친구나 이웃 등 흔히 마주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친척과 어른 등 아직 겪지 않은 상황도 미리 대비하도록 돕는다.
(프랑수아 봉 지음, 김수진 번역, 오로르 칼리아스 그림, 풀빛 펴냄, 224쪽, 1만 4,500원) 세 차례의 빙하기와 온난기를 겪어낸 존재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이들을 현생 인류로 부르는 것은 생물학적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행동 측면에서 현대적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을 적응과 화합, 사회학적 접근으로 현생 인류의 특성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박숙현 외 3인 지음, 특별한서재 펴냄, 496쪽, 2만 3,000원) 역사는 단순한 암기과목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회·과학·경제·예술 등 여러 분야가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돼 있어 문해력이 중요하고, 창의적 융합교육에도 훌륭한 기반이 된다.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세계사교과서에서 엄선된 24개 주요 논제의 배경을 소개하고, 토론을 통해 예리한 통찰력을 기르도록 안내한다.
(김종원 지음, 길벗 펴냄, 496쪽, 2만 2,000원) 우리나라의 건축·음악·종교·역사·철학·과학·경제 등 12개 인문학 분야를 월별로 나누어 소개한다. 하루 한두 페이지씩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으며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가도록 구성했다. 매일 한 가지 키워드를 정해 잘 알려진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QR 코드와 관련 이미지를 함께 수록해 더 자세한 정보도 탐색할 수 있게 했다.
(크리스토퍼 윌라드 지음, 김미정 번역, 불광출판사 펴냄, 344쪽, 2만 2,000원) 자녀교육에 있어 공부 이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단단한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마음챙김’ 방법을 전해준다. 긴 시간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통해 마음챙김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이 분야의 세계적 명사들이 개발한 70가지 연습법을 만나보자.
쑥과 마늘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인물들이 있다. 백일동안 햇빛을 멀리하고(忌諱) 오로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염원으로 동굴 속에서 근신하던 그들! 웅녀는 호녀보다 참을성이 많았거나 목표의식이 강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고대사회의 지배층이 하얀 피부를 귀히 여겨 피부를 희게 만드는 쑥과 마늘이 등장하였다는 대목은 뜻밖이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신라의 화랑은 화장을 하였다. 일본은 백제로부터 화장법을 배워갔다 하고, 1922년 출품한 박가분은 하루에 5만 갑이 팔렸단다. 쌀겨와 녹두를 이용한 각질제거제와 살구씨 가루에 달걀을 섞은 마스크팩 비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예나 지금이나 K-뷰티는 뭇 여성과 남성들의 맹렬한 관심 속에 성업 중이다. 아트산책의 보고, 도산대로 사거리 도산대로 사거리는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300m 내외에 아틀리에 에르메스, 호림아트센터 스페이스 C 화장박물관 등 굵직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작심하고 나서도 하루 안에 다 둘러보기가 벅찬 아트산책의 보고이다. 다만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기가 일론머스크 무일푼 되기보다 어려운 일이니, 대중교통 이용이 마음 편하다. 압구정역 3번 출구에서 출발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박물관이 스페이스 C이다. 스페이스 C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은 국내에서 유일한 화장전문 박물관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각종 도자기·장신구·복식·화장도구 등 5,300여 종의 기증품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1969년 유상옥 회장이 동아제약에 근무할 때였다. 가까이 알고 지내던 한 양복업자가 지나가는 말로 “당신은 너무 공학적이라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충고하였다. 흘려듣거나 다소 언짢게 들렸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뭔가에 집중하면 굴을 파는 것인데, 그 굴이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이 파놓은 굴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이후 점심시간이면 인사동 골목을 순회하게 되었다. 잦은 아이쇼핑은 지갑을 열게 하는 지름길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남들이 내다 버린 골동품들이 신문지에 둘둘 말린 채 유 회장의 집안 곳곳을 점령해가게 되었다. 아파트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평소 봐 두었던 소정 변관식의 수묵화를 사려고 연말 보너스를 몽땅 털어 넣었다. 이 바닥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양복·시계·구두 등에 전혀 관심이 없고 돈을 쓰지 않는 그가 이상하게 명품유물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지금도 인사동을 쏘다니며 비슷한 유물들을 사들여 집안 식구들의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뜨거운 욕망에서 실현으로 관심은 지식으로, 지식은 구매로 이어지던 어느 날, 외국의 세계 유명 화장품 회사 집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온통 화장품 관련 미술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자신도 놀랄 만큼 서서히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부러움 반, 질투 반. 그는 아름다움과 전통에 대한 ‘어떤 것’을 구현하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88년 영업사원 5명에서 출발한 KOREANA 화장품은 한국사회의 외모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1천억 대 대기업으로 폭발적 성장을 한다. 그의 탁월한 사업경영은 그 옛날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홀로 신문보급소를 경영하게 된 것이다. 애초 100여 곳으로 시작되었던 신문배달은 그의 꾸준한 영업력을 발판으로 500여 곳까지 확장되어 동생의 도움으로 고려대를 졸업한 후 동아제약에 입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늘 새벽잠을 자지 못했다. 독자에게 제시간에 뉴스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항상 앞섰다.” 그는 신문을 들고 달리고 또 달렸다. 습관이 되어버청년의시간은 그의 미래가 되어갔다.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나니 자금력이 생겼고, 이미 모아 놓은 유물과 작품들은 넘쳐났다. 2003년 박물관을 세워 유물들을 모두 입주시켰다. 고고한 역사 속에서 자연의 재료로 가꾸어 왔던 여인들의 일상이 이제 세계의 아름다움을 채워가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론 집 정리에 기여한 바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겠다. 살아있는 문화공간, 도심 속의 문화공간 스페이스 C는 ‘도심 속에 자연을 심어 놓다’라는 콘셉트로 7층 건물 전면을 통유리로 마감하고 건물 안에 나무를 심었다. ‘삶이란 풍경을 소비하는 것, 혹은 풍경과 관계 맺는 것.’ 건축가 정기용의 신념이다. 사계절 초록으로 성장하는 나무의 푸르름이 건물 밖에서도 보이게 설계되었다.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볼 때 위아래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동선이 그대로 보이는 계단설계도 독특하다. 주제는 ‘살아있는 문화공간, 살아 있는 집, 도심 속의 문화공간’이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등 생태건축가로 불리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건축을 담아내던 정기용의 건축관을 모두 담아내었다. 그와의 인연은 건축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하였다.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정기용은 자신의 설계대로 시공할 수 있어 “고마웠다”는 말을 박물관 측에 전했다. 지하 1층은 미술관, 5·6층이 화장박물관이다. 7층을 지나 옥상정원에 오르면 압구정 뷰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설전시관인 5층에 들어서면 한국 화장문화의 역사·연표·영상에서 시작하여 각종 세안제·화장분·연지 등 화장재료가 가득하다. 동경·빗·분항아리 등 화장용기·화장도구 등이 통일신라부터 근대까지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서 근현대까지 일상 속에서 사용되던 작은 화장용기, 사소한 그릇 하나도 시간의 더께가 쌓이고 쌓여 모두 작품이 되었다. 6층에서는 주로 기획전시가 이루어진다. ‘時時刻(시시각)갓전. 2020년 5월’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특수를 겨냥하여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사람의 발길을 이끌었다. 그 외 전시 투어 후 큐레이터에게 전시기획의 과정과 현장 이야기 듣기, 청소년 진로·직업탐색(메이크업 아티스트, 화장품연구원, 조향사 등) 체험과 어린이 대상의 ‘슈링클스로 백자청화 마그넷 만들기’ 등 각종 교육을 진행하여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유익하다. 나의 꽃은 가깝고도 낯설다 미술관은 스페이스 C 지하 1층과 2층에 위치한다. 박물관이 시간과 역사에 천착하였다면 이곳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현대미술의 적극적 수용과 화장, 신체 미디어, 여성의 정체성에 관심을 실어 퍼포먼스·음악연극·무용·문학을 아우르는 전시가 주로 행해진다. 그러나 주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다. 지하 2층에 내려서면 먼저 8m에 이르는 층고 덕분에 답답하지 않다. 대형작품 전시와 영상설치도 가능한 넓이이다. 기억에 남길 만한 전시가 많다. ‘댄싱 마마(Dancing Mama)’전에서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여성의 몸짓을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현대 무용가 안은미는 전국을 돌며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에게 즉석 춤을 제안하여 영상으로 작업하였다. 1년간의 전국 방랑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로 탄생하였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이자 시 제목인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전에서는 가깝게 존재하나, 너무 흔해서 놓치기 쉬운 꽃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펼쳤다. 소치 허련의 ‘묵란’, 고암 이응노의 ‘홍매화’에서 시작하여 이쾌대의 ‘춘경’을 거쳐 함현주·조이솝의 연작에 이르면서는 이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몰랐던 무딘 감각을 자책하게 되는 경험을 하였다. 이 전시는 스페이스 C 코리아나 미술관 지난 전시 영상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온라인 큐레이터 아바타 코코가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시선에서 찾아내는 현대인의 불안을 해석해주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자발적 ‘투르먼쇼’의 난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모 철학자는 ‘타인의 부름에 응답할 때 책임 있고 윤리적인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타인의 시선만을 갈구하는 최근의 동향이야말로 자발적 복종’으로 향하는 첫걸음임을 그녀가 들려준다. 아바타가, 허구가 실제를 품평하니 그 또한 현대성일 것이다. 스페이스 C 코리아나 미술관은 관람객들이 매번 다시 찾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강남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전시기획과정에서부터 현장 이야기를 듣는 ‘애프터 워크살롱, 큐레이터 토크’가 진행되는데 전시를 실행한 큐레이터에게 듣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생생하다. 미술관은 매주 토요일·일요일·월요일이 휴관이므로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문화체험과 삶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며 “많은 분이 物氣(물기)를 높이고 文氣(문기)도 함께 높이길 바란다.” 그가 자주 하던 말이다. 많은 사람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고 세계와 삶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상옥 회장의 소망이다. 최근 각 기업이 자신의 브랜드와 관련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개관하고 있어 시민들은 즐겁다. 이곳은 지나가다 잠시 둘러보기도 하고, 퇴근 후에는 작품교육도 받고, 아이들 손을 잡고 만들기를 할 수도 있는 진정한 도심 예술 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인해 높아진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기업으로 환원되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좋은 전시를 놓치지 않는 지름길이다. 모름지기 현대사회는 정보력!
캠퍼밴, 태즈메이니아를 여행하는 가장 멋진 방법 여기는 태즈메이니아라는 곳이다. 지구 반대편 남반구, 한국에서 12시간은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호주 대륙 남쪽 끝에 자리한 섬이다. 이 섬은 섬이라고 하지만 남한의 3분의 2 크기다. 이 넓은 땅에 고작 50만 명 남짓한 인간들이 살아간다. 시드니를 거쳐 태즈메이니아의 주도 호바트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은 이미 태즈메이니아의 순도 높은 공기와 바람, 대기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있었다.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녹초가 됐던 몸은 거짓말처럼 깨어나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읽은 태즈메이니아 가이드북은 태즈메이니아를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가진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한 캠퍼밴에 트렁크를 던져 넣고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활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태즈메이니아의 바람이 한껏 쏟아져 들어왔다. 태즈메이니아는 호주에서도 손꼽히는 캠핑 여행지다.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에 위치한 캠핑장만 180여 개가 넘는다. 태즈메이니아 캠핑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한 2주일 정도의 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주요 여행지의 대부분을 돌아볼 수 있고, 2~3일 정도는 트레킹이나 아웃도어를 즐길 수 있다. 일정은 아름다운 항구도시 호바트를 중심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동부해안을 따라 올라가 론세스톤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짜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이 코스를 따라 캠퍼밴을 달리면 태즈메이니아의 위대한 자연과 세련된 도시, 한적한 전원마을, 와이너리 등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호바트에서 곧장 북서쪽으로 달렸다. 길은 드원트강을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졌다. 강 옆으로 드넓은 평원이 펼쳐졌고, 키 큰 미루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 미루나무 너머로는 초록의 부드러운 구릉이 펼쳐져 있었다. 양떼가 뛰어노는 전원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1시간여를 달렸을까. 캠퍼밴은 첫 목적지 마운틴 필드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마운틴 필드 국립공원은 1916년 태즈메이니아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산 정상부에는 고산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깊은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숨어 있다. 마운틴 필드가 보여주는 가장 멋진 비경은 러셀폭포다. 여행자 안내소에서 20분만 걸어가면 높이 40m의 장대한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녹색의 삼림 가운데로 하얀 커튼을 드리운 것처럼 2단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냥 신비롭다. 유칼립투스 거목들이 가득한 숲도 있다. 거목은 열 사람이 팔 벌려 안아도 다 안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거대한 나무 아래 서면 경이감마저 든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들리고, 짙은 이끼로 뒤덮인 뿌리는 원시의 생명력으로 꿈틀댄다. 나무 뒤에서 당장이라도 정령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공원 입구에서 차량을 이용해 16km 올라가면 돕슨호수를 만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왕복 4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트레일을 즐길 수 있는데 날씨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끝없이 이어지는 태즈메이니아의 비경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는 태즈메이니아를 여행하는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다. 캠퍼밴은 마운틴 필드 국립공원을 나와 동부 해안을 따라 북상, 프라이시넷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프라이시넷은 태즈메이니아 바다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태즈메이니아의 모든 해변을 통틀어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와인글라스 베이(Wineglass Bay)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와인글라스 베이를 즐기는 방법은 세 가지. 하나는 와인글라스 베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대부분의 여행자가 이 코스를 선택한다. 주차장에서 40분 정도 수고를 들이면 오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전망대를 지나 와인글라스 베이까지 가서 해변을 따라 거니는 것. 젊은 여행자들이나 백패커들이 이 방법을 즐긴다. 마지막은 에이모스 산 정상에서 와인글라스 베이를 바라보는 것. 에이모스 산의 높이는 해발 455m에 불과하지만 정상 부근이 아주 가파르다. 게다가 대부분의 코스가 바위 슬랩으로 형성되어 있어 트레킹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위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산행 경험이 풍부하다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는 와인글라스 베이의 조망은 탄성이 나올 만큼 압권이다. 와인글라스 베이라는 이름은 한때 고래 사냥이 한창일 무렵 이곳에서 사냥당한 고래의 피가 해변의 바닷물을 붉게 물들여 마치 잔에 담긴 붉은 와인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태즈메이니아는 1840년 고래잡이를 금지하고 항구를 폐쇄했다. 프라이시넷에서 이틀을 머문 후 머라이어 섬으로 향했다. 트리아부나라는 작은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40분쯤 가면 도착하는 섬이다. 여행자들이 이 섬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퍼실 클리프라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해벽의 빛깔이 신비로운 페인티드 클리프를 보기 위해서다. 퍼실 클리프는 거센 파도에 부서진 장대한 해벽이 장관이며 페인티드 클리프는 해 질 무렵에는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신비롭다. 머라이어 섬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비쉬노와 세인트헬렌스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 ‘베이 오브 파이어스’(Bay of Fires)라는 해변에 닿았다. 고운 백사장과 투명한 바다가 장장 29km에 걸쳐 펼쳐진 이 해변은 여행잡지 ‘콩데 나스트 트래블러’가 꼽은 세계 10대 해변 가운데 한 곳이다. 눈부시게 흰 해변과 붉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베이 오브 파이어스를 지나면 태즈메이니아 캠핑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태즈메이니아 북부의 론세스톤을 지나 두 시간을 달리면 태즈메이니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크레이들 마운틴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크레이들 국립공원에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오버랜드 트랙’(Overland Track)이 있기 때문. 세계 3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길이 65km의 이 트레킹 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매년 1만 명에 가까운 트레커들이 줄을 선다. 트랙을 완주하는 데는 보통 6일이 걸린다. 트레일 상에 위치한 산장(Hut)에 숙박하며 트레킹을 하는데 8개의 산장을 이용한 스케줄 짜기, 텐트·침낭 등의 숙영도구와 6일간의 식량 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낭만 가득한 항구도시 호바트와 론세스톤 태즈메이니아에는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 두 곳이 있다. 태즈메이니아 남부에 자리한 호바트와 북부에 자리한 론세스톤이다. 태즈메이니아 최대의 도시다. 태즈메이니아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호바트에 몰려 산다. 호바트 시내는 한나절이면 속속들이 돌아볼 수 있다. 번화가인 살라망카 마켓, 18세기 영국 조지아풍의 집들이 모여 있는 배터리 포인트, 수백 척의 요트와 피쉬 앤 칩스가 맛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프랭클린 워프, 웰링턴 전망대 등이 가볼 만하다. 웰링턴산에는 꼭 올라가 보시길. 호바트 최고의 전망대다. 호바트 시내에서 B64 도로를 따라 12km를 가면 웰링턴산 정상이다. 바다와 도심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가벼운 트레킹 코스도 준비되어 있다. 호바트가 태즈메이니아 남부를 대표한다면 론세스톤은 태즈메이니아 북부를 대표한다. 시내에는 19세기에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중세 영국풍의 거리를 거닐며 태즈메이니아의 한가로움과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타마르 밸리, 와인처럼 달콤한 시간을 감각하다 태즈메이니아 여행이 즐거운 또 다른 큰 이유는 최고의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태즈메이니아 북부, 론세스톤 주변을 흐르는 파이퍼스 강을 따라 소규모 부티크 와이너리들이 늘어서 있다. 이 구역을 타마르 와인 밸리라고 부르는데 캠퍼밴은 파이퍼스 강 유역 캠핑장에 나흘 정도 진을 친 채 매일매일 새로운 와이너리를 탐방했다. 낮에는 와이너리를 돌아다니며 리즐링·피노그리·피노누아·게브르츠트라미너 등 온갖 품종의 와인을 시음하고 저녁이면 캠핑장으로 돌아와 와이너리에서 사 온 와인을 마시며 망중한을 보냈다. 와인빛으로 물들든 타마르강의 노을과 노을이 물러간 뒤 밤하늘 가득 돋아나던 별들…. 생활에 지쳤거나, 일에 지쳤거나, 사람에 지쳤거나, 혹은 자기 자신에게 지쳤을 때. 세상과 불화할 때, 사랑하는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이, 낯선 이가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엉망진창인 우리 인생을 위로해준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떠나는 거다.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지만 떠나야 할 이유는 넘쳐난다. 여기는 태즈메이니아.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캠퍼밴은 서 있다.
환율이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1,450원에 육박하던 환율이 1주일 만에 1,350원이 됐다. 1년 내내 오르던 환율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변화에 맞게 투자한 사람들은 돈을 벌었다.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지 내릴지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음에 환율이 오르고 내리면 어떻게 해야 내 돈을 지킬 수 있는지 알아둬야 기회가 온다. 보통 환율이 하락하면 일반인들은 여행예약을 하기 시작한다. 해외여행이 재개됐어도 환율이 올라 해외여행의 매력이 사라졌었다면 이제 해외여행을 해볼 만하다. 항공예약이 늘어나고, 여행사 문의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환율이 계속 하락할수록 항공사와 여행사의 실적은 좋아지고 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증가한다. 환율관점에서 피터린치가 말하는 생활 속의 투자법을 찾아보자. 미국주식과 한국주식 어디가 유리할까? 교과서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유리하고, 우리나라는 수출기업들이 나라를 먹여 살리니 환율이 높으면 증시가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렸다. 역사적으로 코스피 고점 시기는 환율이 가장 낮은 시기였다. 환율이 낮으면 수출기업들은 불리한데 왜 증시는 고점일까? 환율이 떨어지면 한국주식이 오른다. 국민관점에서 국내주식은 원화로 움직이지만 코스피를 움직이는 외국인 입장에서 볼 때는 달러로 환전해서 한국주식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번에 환율이 100원 하락해서 외국인 입장에서는 주가가 그대로여도 1주일 만에 7%의 수익을 낸 셈이다. 그래서 환율이 하락할 때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달러를 들고 한국의 주식을 산다. 그러면 달러 유입이 많아지면서 환율은 더 내려가고, 외국인들은 앞다투어 한국주식을 산다. 우리가 말하는 한국증시 상승기는 환율하락을 동반했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외국인이 한국기업에 투자를 할 만큼 매력이 생겼기 때문에 달러를 들고 한국으로 오는 것이다. 코스피 시총 상위 기업들은 대부분 반도체·자동차·전자·조선·스마트폰 같은 경기민감주들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주문이 늘고 잘 팔리지만 불황에는 주문이 뚝 끊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럼 외국인들이 달러를 들고 한국으로 온다는 것은 경기가 호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들어오는 것이다. 반대로 환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경기불황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미국주식에 투자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딜레마가 생긴다. 경기호황이 오면 미국증시도 오른다. 하지만 환율이 떨어져서 주식으로 벌고 환율로 손해가 난다. 반대로 불황이 오면 주식으로 잃고 환율로 번다. 그래서 미국주식을 할 때는 주식을 사고파는 시기와 환전을 하는 시기가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환율까지 생각하면서 미리 투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한국주식은 환율 생각을 안 해도 되고 투자시기만 잘 맞추면 된다. 환율이 내려갈 때 투자를 하고 환율이 올라가는 시기에는 투자를 줄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환율까지 생각해보면 지금은 한국주식이 더 투자에 유리하다. 환율이 낮아지면 웃는 기업은 어디일까? 환율이 하락하면 먼저 수입물가가 하락한다. 우리나라는 먹거리·원자재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환율이 낮아질수록 기업들은 재료비가 줄어들어 부담이 줄지만 수출을 할 때는 불리해진다. 반면에 재료를 외국에서 수입하지만 국내에서 판매하는 기업은 환율의 수혜를 그대로 본다. 대표적으로 식품회사들이 환율하락 수혜기업이다.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식품가격을 크게 올렸는데 환율이 하락하면서 수입하는 밀·고기·과일 가격이 하락하면 마진이 점점 늘어난다. 그래서 실적이 좋아진다. 해외에 빚이 많은 기업도 수혜를 본다. 해외에 빚은 달러 빚이다. 환율이 하락하면 갚아야 할 빚도 줄어든다. 대표적으로 항공사들은 비행기를 리스로 가져오는데 달러로 리스료를 내야 한다. 환율이 내려가면 갚아야 하는 빚이 줄어들어 비용이 줄고, 유가도 수입품이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져 비용이 줄어든다. 환율이 낮아지니 해외여행 고객이 늘어나서 매출은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식품회사와 항공사가 환율하락 대표 수혜주로 손꼽힌다. 환율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실속 있는 여행소비를 할 수도 있지만 투자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가 있다. 단순히 수치를 보기보다는 왜 환율이 오르고 내리는지를 이해하면 더 훌륭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는 소설 토지를 주제로 한 박경리문학공원이 있다. 작가가 1980년 원주로 이사 와 1998년까지 살면서 토지 4~5부를 집필한 옛집 터에 조성한 공원이다. 이곳에는 평사리마당, 용두레벌 등 토지에서 지명을 따온 공간이 3곳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홍이동산이다. 소설 토지에서 홍이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용두레벌에서 홍이동산으로 가는 입구에는 자작나무도 한그루 심어놓았다. 홍이는 용이와 임이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예닐곱 살 때 서희 일행과 함께 용정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홍이는 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두메, 박정호 등과 친하게 지내는데, 애국심이 충만해 일본 학교 학생들 가방을 강물에 던지는 일화가 나오고 있다. 친구 강두메는 최치수를 살해한 귀녀가 처형당하기 직전 낳은 아들이다. 강두메가 어미가 없어서 슬픈 아이라면 홍이는 어미가 너무 많아 괴로운 아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제사를 지내니 강청댁도 엄연히 어미요, 임이네는 생모이고, 홍이에게 여한 없는 사랑을 주는 월선이도 어미이기 때문이다. 홍이는 탐욕스러운 생모 임이네를 혐오하면서 월선이를 ‘옴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어린 시절 아비의 무심함도 생모의 무관심도 월선의 사랑으로 다 녹여내며 밝게 자란다. 홍이에게 아버지를 대신한 인물이 주갑이 아저씨다. 홍이가 방황하지만 나쁜 길로 빠져들지 않은 힘도 월선과 주갑에게서 받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홍이의 첫사랑은 진주 이웃집에 사는 염장이였다. 장이를 좋아한 것은 ‘옴마’ 월선이를 닮았기 때문이다. 홍이가 장이를 처음 보았을 때 ‘옴마 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는다. 홍이는 장이와 멀리 도망칠 생각도 하지만 아버지 용이가 죽었을 때 ‘상주 없는 관’이 나갈까 걱정 때문에 망설인다. 그 사이 장이도 일본으로 시집가기로 정해졌다. 아버지 용이가 첫사랑 월선이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했듯 아들 홍이도 첫사랑과 맺어지지 못하고 서로 그리워하는 것이 흥미롭다. 홍이는 아버지 용이가 죽자 가족을 데리고 간도로 옮겨가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을 돕는다. 또 뜬금없이 나타난 일본 밀정 출신 김두수와 부품 거래까지 트는 등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나가다 마지막으로는 만주 신경(新京)에서 영화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작가 박경리의 부친이 화물차 운전을 했다고 한다. 통영에서 진주를 오가며 통영의 생선과 진주의 과일을 날랐다는 것이다. 토지에서 작가 본인을 홍이의 큰딸 상의에 대입시켰는데, 아버지도 홍이에 대입시킨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럼 홍이를 상징하는 꽃 또는 나무는 무엇일까. 소설에서 홍이를 직접 꽃이나 나무에 비유한 대목은 찾지 못했다. 작가는 토지 4부 연재를 마치고 5부 연재를 앞둔 1989년에야 중국 여행을 갔다. 그때까지 한 번도 용정 등 중국 현장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간도를 묘사할 때 꽃이나 나무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다음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달포 전에 홍이는 용정촌(龍井村)을 다녀왔다. 송장환의 형, 영환의 부고를 받고 갔던 것이다. 장례에 참석하기에 앞서 홍이가 찾은 곳은 월선의 묘소였다. 공 노인 부부의 묘도 그 부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산재해 있는 산속의 무덤 세 곳을 차례차례 돌며 술을 부어 놓고 절을 한 뒤 홍이는 월선의 무덤가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일어섰다. 달리 할 말도 없거니와 감회도 없었다. 할 말이나 감회가 없었다기보다 죽음과 이별의 냉혹함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해야 옳을지 모른다. 토지 17권, 17쪽 홍이는 토지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간도 용정이 고향인 인물이다. 자작나무는 간도에 흔한 나무여서 자작나무가 홍이 나무라 해도 큰 하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이가 ‘늘씬하게 잘생긴 인물에 땟물이 쑥 빠진 듯 깨끗한 인상’인 것도 자작나무를 연상시키고 있다. 껍질이 탈 때 나는 ‘자작자작’ 소리 자작나무는 북방계 나무다. 북한에서도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 등 위쪽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등 남한에 자라는 자작나무는 모두 심은 것이다. 물론 중국·일본·러시아·유럽에서도 자란다. 그래서 닥터 지바고 등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는 어김없이 자작나무 숲이 나오는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불이 잘 붙고 오래 가서 불을 밝히는 재료로도 사용했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붙은 것이다. 결혼하는 것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때 화(華)가 바로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수피)은 흰색이고 종이같이 옆으로 벗겨진다. 무엇보다 수피가 피부처럼 매끈하면 자작나무라고 볼 수 있다. 자작나무엔 가지 흔적인 ‘지흔(枝痕)’이 군데군데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가 불필요하면 스스로 가지를 떨어뜨리고 남은 흔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눈썹 모양이라고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산에 자작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 숲에는 수피가 흰색 계통이어서 자작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이 몇 개 있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가 대표적이다. 이들 세 나무는 흰색 계통의 수피와 잎 모양이 비슷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는 둘 다 비교적 높은 산지에 자란다. 그러니까 높은 산에서 만나는 자작나무 비슷한 자생나무는 사스래나무 아니면 거제수나무인 것이다. 사스래나무는 껍질은 흰색이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깝고 화상으로 피부가 벗겨지듯 얇게 벗겨져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사스래나무 이름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반면 거제수나무는 수피가 약간 붉고 두꺼운 종이처럼 벗겨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냥 수피를 보고 적갈색을 띠고 있으면 거제수나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거제수나무라는 이름은 거제도와는 무관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물을 가졌다는 뜻의 ‘거재수(去災水)’가 변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잎까지 있으면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자작나무 잎은 거의 삼각형이고 측맥이 6~8쌍으로 가장 적다. 사스래나무 잎은 삼각형 모양이지만 계란형이고 측맥이 7~11쌍, 거제수나무 잎은 타원형에 가까운데 측맥이 9~16쌍이다.
장학사 시절 교육계 밖의 50대가 넘은 분들로부터 레퍼토리처럼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장학사 온다고 하면 복도를 양초로 광내고, 교실 대청소하고 학교가 떠들썩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과거 교육청의 위상과 장학의 모습을 알려주는 웃픈 단상이다. 장학의 개념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엄밀하게 정의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두 가지의 중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장학은 어떤 관점에서 보든, 궁극적으로는 교육활동의 핵심인 수업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 그 대상은 교사이다. 즉 장학은 ‘교수행위의 개선을 위해 교사에게 제공되는 장학담당자의 모든 노력’이다. 장학담당자는 장학행정이나 장학기능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전문적 지도·조언의 기능을 수행한다. 수업전문성과 장학의 역할 과거에는 장학이 수업전문성에 초점을 두었으나, 시대변화에 따라 교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이 확대되면서 광의로는 전문성 개발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장학의 범위 및 대상에 대한 견해 역시 다양하나 분명한 것은 교육청은 학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특정지역에서 학교가 모두 소멸한다면 그 지역의 교육청은 존재할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논리로 학교는 학생이 있어 존재한다. 학생수가 급감하여 많은 학교가 폐교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교는 교육과정이 핵심이고, 교사는 교육과정 운영과 수업이 본연의 업무이므로 교육청의 장학담당자가 교사의 교육과정과 수업전문성 향상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교육학자들의 정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교사 역시 본연의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수업의 전문성, 그에 더해 학생상담 및 생활지도 전문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할까? 2010년 지역교육청의 명칭이 교육청에서 교육지원청으로 변경되면서 대부분의 교육청이 관리·감독의 성격이 강했던 종전의 종합장학 및 담임장학을 폐지하고 컨설팅장학으로 전환하였다. 경기도교육청은 2016년에 자율장학계획을 수립하여, 학교는 전문적학습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자율장학을 실시하고, 교육지원청은 학교의 자율장학을 지원하도록 담임장학의 개념을 재설정하여 추진해왔다. 최근 경기도교육연구원의 ‘교육지원청의 담임장학 현황 및 과제’ 현안연구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및 면담조사 결과에 의하면 교원의 경우 담임장학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61.9%가 필요하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응답하였다. 또한 담임장학을 요청한 경험에 대해서도 76%는 없다고 응답하였다. 담임장학의 만족도는 47.9%만이 만족한다고 응답하였다. 자율성 없는 자율장학의 한계 학교와 교사는 왜 장학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그 원인과 해결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교육지원청과 학교의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10년 교육청에서 교육지원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교육부→ 도교육청→ 교육지원청→ 학교로 이어지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말단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교육지원청이 학교를 지원하려면 학교→ 교육지원청→ 도교육청→ 교육부 등 정반대의 구조가 되어야 한다. 중앙에서 학교로 교육과정·예산·인사·감사 등 많은 영역에서 권한이 대폭 위임되어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질 때 학교구성원들은 시대변화에 따라 학생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교육과정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숙의하는 역동이 발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자연스럽게 교육지원청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이때 교육지원청은 학교별로 요구하는 사항을 파악하여 지원하면 될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장학의 본래 기능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도교육청에서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을 지금처럼 촘촘히 학교로 내려 보내면 교육지원청과 학교는 그 지침을 따르는 일과 그 지침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민원을 응대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민원을 받지 않기 위해 학교는 더 촘촘한 지침을 요청하고 그 지침이 다시 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자율성이 없는 자율장학은 원천적으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둘째, 현행 교육청의 조직구조, 장학사의 업무분장 및 일하는 방식으로는 학교를 장학하기 어렵다. 현재 교육지원청 장학사는 학교장학을 업무의 우선순위로 두기가 어렵다. 도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정책을 교육지원청은 실행하는 구조이다 보니 교육지원청 장학사들의 시선은 학교보다는 도교육청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도교육청에서 오는 공문은 구조적으로 행정력을 담보하고 있으므로 이행하지 않으면 책임을 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교장학은 하면 좋지만, 안 한다고 크게 문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담당 장학교와 관련한 직접적인 업무는 장학의 측면보다는 민원 대응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지원청 조직을 학교의 조직구조에 조응하는 학교지원 중심조직으로 개편하여야 한다. 학교의 요구는 교육청의 여러 부서가 얽힌 복합적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장학사의 업무분장은 단위사업별로 분절적이다보니 담당장학사 한 명이 학교의 요구를 지원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지원청 업무를 크게 두 조직, 국가위임사무를 필수적으로 담당하는 조직과 학교지원센터로서 장학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정책을 학교로 내려 보내는 터미널구조가 아니라 두 조직이 플랫폼으로서 학교맞춤형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장학조직은 학교맞춤형 지원과 더불어 시대의 가치를 반영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학교가 그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장학조직은 담당장학사가 주축이 되어 그 지역과 담당교의 이해가 깊은 교원 및 다양한 전문가집단으로 팀을 구성하여 학교와 소통하면서 학교의 요구를 파악하여 개별학교의 맥락에 부합하는 장학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별로 지구장학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 조직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학교와 학교,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함으로써 학교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의 자원이 학교로 연결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현행 교육전문직원 인사제도는 교육청에 장학의 역량이 축적되기가 매우 어렵다. 장학사는 초임 발령 시 근무지역을 본인이 선택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장학사는 전보년수가 최소 2년은 지나야 거주지 근처로 옮기게 된다. 동일 교육청에서도 민원이 잦거나 힘든 기피업무를 맡게 되면 후임 장학사에게 업무를 물려주고 새로운 업무로 이동하기 때문에 직무전문성이 축적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러한 이유로 교원은장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성과는 별개로 담당장학사는 학교가 그간 운영해온 교육과정의 방향, 학생과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정도가 부족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학교는 담당장학사에게 학교의 교육과정 역사와 맥락을 설명해가면서까지 장학을 받고자 하는 여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외부장학을 통해 새롭게 제안되는 변화에 대한 요구에도 피로감을 가진다. 더 심각한 것은 장학사를 외부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생활지도 등 학교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교육전문직원 선발 시 지역선발전형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 지역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해당지역의 교육지원청에서 장기간 근무하면서 담당교와 친밀하고 전문성있는 소통이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청 내부적으로도 장학사가 직무전문성을 축적하여 학교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최소 직무담당주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장학이 일회성이고 행사성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소통가능한 구조로 시스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학교 자율장학의 질을 관리하고, 학교 간 자율장학역량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학교는 자기장학·전문적학습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동료장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원의 전문성 개발을 위한 자율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나 자기장학과 동료장학의 형식과 내용은 학교마다 천양지차이다. 조직개편으로 전문성 있는 팀단위의 장학조직이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장학조직은 학교가 자율장학계획을 수립하는 초기단계부터 함께 협의하여 다양한 전문가집단과 연결해주고, 운영 후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장학조직이 학교별 자율역량을 진단하여 역량 수준에 따라 구성원과의 소통을 통해 필요한 외부자원을 연결해주는 총체적인 시스템이 요구된다. 학교 실정에 맞는 장학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장학제도가 학교의 외면을 받지 않고 그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장학에 대한 학교의 필요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교육청이 충실히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변화는 교육행정기구의 전면적인 개편과 더불어 정책수립 및 실행의 방향이 거꾸로 역전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미래교육을 위해 장학사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학교조직을 학습해야 장학의 의미가 되살아날 수 있다. 교육청의 장학활동이 학교교육력 향상과 학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면 교사는 장학사를 찾고 교육청에 자연스레 장학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교육청이 실행하고 싶은 정책을 학교에 내려주는 것은 학교가 바라는 장학이 아니다. 교육의 최종 종착점은 학교이므로 학교가 교육의 본질을 수행하도록 동행하고 학교구성원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수반될 때 진정한 장학이 된다. 슈마허는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적정기술의 또 다른 이름인 ‘중간기술’을 언급하였다. 적정기술은 현지 사용자의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제품과 기술을 총칭하는 개념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도입된 기술이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활용할 수도, 재정적으로 지속시킬 수도 없는 기술이라면 실효성은 반감된다. 또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빈곤이 증대되고 불평등이 심화되어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역효과만 초래하는 셈이다. 그래서 다른 접근이 필요했고 ‘중간기술’ 및 ‘적정기술’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현지사정과 사용자의 입장에서 활용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교육에 인용해보면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교육청이 좋은 정책이라고 학교에 보낸다고 해도 학교의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으면 이는 학교를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그 대가는 학생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 장학에 있어서 적정기술은 어떠해야 할까?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 올바른 교육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은 기술은 위험하며, 학교가 장학을 통해 자율적인 학교문화가 안착되고, 학생중심의 교육과정이 선순환하는 기술이어야만 이를 ‘중간장학’ 또는 ‘적정장학’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학생의 바람직한 변화와 성장이라면, 학교와 교육행정기관, 교원과 장학사가 경계 없이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과정에 장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수업하려고 학교에 온다. 그리고 중요한 건 수업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그 사람의 수업이다. ‘수업은 늘 실패한다. 고로 늘 수업을 고민한다’는 말은 신규교사뿐만 아니라 고경력교사도 공감한다. 수업달인·수업고민·수업관심·수업기술·수업성장·수업개선·수업변화·수업디자인·수업철학·수업비평·수업모델·수업모형·수업수다·수업나눔·수업성찰 등은 모두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게다가 ‘수업은 기예이다’, ‘수업은 과학이다’, ‘수업은 예술이다’라는 말로 수업을 정의하기도 한다. 이렇듯 교사의 최우선은 수업을 잘하는 교사이고, 장학은 교육의 질적 향상과 교사의 가르치는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즉 장학은 교사가 수업의 효과를 높이도록 자극하고, 바람직한 수업개선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기능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불어 수석교사제도 역시 현장에서 수업전문성을 가진 교사가 ‘우대’ 받는 교직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도 수업하려 학교에 온다 교사는 누구나 수업 속에서 행복하고 싶다. 교사들 대부분은 첫 수업의 감격과 폭망한 수업, 성공한 수업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수업이 재미있을까? 질문도 스스로에게 해보고, 수업기술이 좋다고 소문 난 선생님의 연수장을 기웃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교사들 스스로 수업에 대한 부족함과 문제해결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수업 잘하는 교사가 되고자하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전문적 성장을 도와주고 촉진시키는 지원활동인 장학활동은 수업장학으로써 본래의 목적을 적절하게 충족시켜 왔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장학이라는 일종의 검열이 교사로 하여금 일상적인 수업을 은폐하고 대신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로 포장되도록 한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이뤄지는 장학이 교사가 원하는 수업의 성장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상처만 주는 일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업장학의 목적이 교사의 수업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상은 획일화된 기준으로 작성된 수업관찰기록지의 기록(수치)을 가지고 협의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 50분 중 교사 발언이 차지하는 비율이 75%로 전형적인 강의식 수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향후 학생중심의 수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학생 발언비율(21%)을 높이는 방향을 모색하였으면 합니다.” 또 “강의의 내용 중 44%를 질문에 할애하고 있음은 끝없이 학생들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다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답변이 단순반응이 많아(95%), 질문 시 보다 학생들의 폭넓은 답변이 나올 수 있도록 발문의 구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등의 지적을 한다. 이외에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지시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학생들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칭찬하면서 학생들의 생각을 수용하는 비지시 비율(6%)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분석자료를 제시한다. 이러한 장학위원들의 수업처방은 오히려 교사의 수업의욕을 떨어뜨리고 수업자와 장학위원과의 수직적 관계를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수업변화의 확실한 출발 일본 코칭계의 대부 에노모토 히데타케는 ‘모든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해답은 모두 그 사람 내부에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로 코칭 철학을 강조했다. 강려자용(剛戾自用)이 아닌 문이지지(聞而知之)이라는 말처럼 귀로 듣고, 입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는 코칭,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예술, 교사 스스로가 수업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두는 장학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장학활동은 코칭 전문가의 안내로 수업을 개선하는 기존의 수업장학과 다른 수업개선을 위한 수업코칭이 있다. 수업코칭은 교사 스스로가 어떤 수업을 원하는지, 어떤 방법을 시도해 보았는지,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 것인지, 무엇부터 실행하면 좋은 것인지, 실행하는 데는 어떤 장애가 있을 것인지 등의 질문과 함께 그렇게 하면 선생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스스로 평가하게 하여 수업능력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외에 수업컨설팅·수업멘토링·수업친구·수업성찰·학습공동체에서의 수업수다 등에서도 수업능력을 성숙시키는 방법이 있다. 수직적인 관점에서의 장학과는 달리 서로 비슷한(수평적) 입장에서 수업문제 및 도전하고픈 수업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즉 교사 내면을 중심으로 끄집어내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수업자가 요청한 사항만 보고 교사의 마음을 위로하고 특히 격려하는 해결책과 강요가 아닌 수업자의 단점을 강점으로 커버하는 성찰분석을 활용하는 새롭고 다양한 수업개선의 방법이야말로 더 나은 수업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수업의 개선은 무엇보다 ‘교사의 생명은 수업에 있다’라는 인식과 함께 자발성이 중요하다. 교사의 수업기술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교육활동의 주역인 교사가 자신의 수업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교실의 문을 열고 자문받는 일을 기꺼이 하는 것은 수업변화의 확실한 출발이다.
2010년 9월 1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존 관리·감독 위주의 지역교육청을 현장 지원 기관으로 역할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교육지원청으로 개편을 단행했다. 개편 내용 중 하나가 학교별로 장학사를 지정하여 학교운영 전반을 점검·감독해 오던 행정적 성격의 담임장학을 폐지하고, 교사와 학교가 요청하는 경우 전문가를 연결해 주는 컨설팅장학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후 시·도교육청별로 담임장학이 폐지되고 컨설팅장학이 진행되다가 최근에는 지원장학·동행장학 등 다양한 명칭으로 장학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사와 장학사의 동상이몽 과거에는 장학의 목적을 학교에 대한 지도·감독에 초점을 두고 관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업개선, 교사전문성 신장, 학교교육 개선 등에 초점을 두고 단위학교 교내 자율장학과 교육지원청의 지원활동을 기반으로 장학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교육지원청은 학교와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교내 자율장학을 지원하는 장학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지원청의 담임장학활동에 대한 현황 파악을 위해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경기도 교육지원청 소속 교육전문직원 및 교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교육전문직원은 131명, 교원 2,764명(초 1,427명, 중 814명, 고 5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장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교원의 응답이 61.9%로 나타났다. 학교가 요청하는 장학의 주된 안건이 교육과정 운영, 수업 및 학생생활지도 등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시설 정비 및 확충, 예산 등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학교 요구사항에 대한 해결 정도가 낮아 담임장학이 학교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담당장학사가 자주 교체되는 교육지원청의 경우, 장학이 학교에 대한 이해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교원들은 장학이 교육지원청 또는 관리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장학활동의 일정을 학교와 조율하기는 하지만 이미 정해진 기간 내에서 날짜를 선택하고, 학교 방문 간담회 방식으로 이루어져 학교의 의견수렴을 토대로 장학활동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지 않았다. 장학의 주제 선정, 참여 구성원 결정 등 장학 관련 의사결정 과정 역시 주로 관리자(교감·교장) 중심으로 이루어져 관리자를 제외한 일반교사들의 장학 불필요 응답이 과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학에 대한 교원의 만족도 역시 일반교사가 34.8%, 보직교사가 42.7%, 관리자가 65.1%로 나타나 관리자 집단에서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장학사들은 장학활동이 일반행정직과 구분되는 장학사 본연의 업무로 인식하고 있었다. 장학을 수행함으로써 학교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를 지역교육을 위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보았다. 일부 장학사는 장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수업컨설팅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답변하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장학활동 중에 수업참관 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A 교육지원청 소속 장학사는 학교에 장학을 나갔다가 “장학사가 왜 수업을 보러 왔나요?”라며 학교로부터 민원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교원에게 장학사와의 협력적 관계를 묻는 문항에 77.8%가 긍정적으로 응답했고, 과거에 비해 장학사와 비교적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응답이 있었지만, 여전히 장학사는 부담스러운 존재, 장학은 외부인에 의한 관리·감독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장학이 학교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반응 장학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장학활동 수행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장학에 깊이 있게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규모가 큰 교육지원청은 초등 장학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교가 20교 정도에 달한다. 특히 초등 장학사는 중등에 비해 평균 1.5배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현상은 학교현황 파악에 대한 전문성으로 이어져 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장학사의 학교현황에 대한 파악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국민 신문고를 비롯한 민원업무 등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해 장학을 우선순위에 놓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최근 장학의 주 내용이 학교의 민원해결 비중이 큰 만큼 장학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학교의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학이 학교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장학에 대한 학교현장의 만족도가 낮은 것과 같은 맥락이며 장학이 학교의 민원이나 일반적인 학교운영에 치우친 경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담임장학이 폐지되던 10여년 전, 학교현장이 부담스러워하는 장학을 학교가 요구하는 장학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장학의 명칭도 바뀌고, 형태도 바뀌었지만 장학은 여전히 학교현장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장학을 수행하는 장학사를 부담스러운 외부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혹시라도 학교의 내부 문제를 교육지원청에 전달하게 되어 불편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고 염려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지원청 장학의 목적은 학교 자율장학을 지원하여 단위학교 구성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현장도, 교육지원청도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학교 안에서는 전문적학습공동체 등을 통한 자율적 역량 강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장학이 교육지원청, 관리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단위학교를 지원하는 장학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장학시기나 운영방법 등 다양한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교내 자율장학과 교육지원청 장학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교육전문직원의 업무 재구조화나 경감 및 학교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을 수준의 교육전문직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도 아울러 필요하다.
장학의 위기 장학이 외롭다. 언제부터인가 학교평가·수업평가·교원능력평가가 위세를 떨치더니 ‘장학’이란 용어가 안 보이기 시작하고, 멘토링과 컨설팅과 코칭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기 시작했다(천세영, 2018). 물론 학교현장에서 장학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을 받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요즘처럼 그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든 경우도 드물다. 장학(supervision)은 어원적으로 super와 vision의 합성어로 ‘우수한 사람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감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inspection(사찰 혹은 점검)은 in과 spect의 합성어로 ‘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장학은 어원상 교육활동을 감시·감독하는 형태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inspection에 가까운 시학(視學)·교학(敎學)·독학(督學) 등을 사용하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배움을 장려한다는 의미의 ‘장학(獎學)’을 사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가 사용한 장학은 주로 지도·조언의 의미였다. 다만 무엇을 지도·조언해 줄 것인가 하는 내용만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었을 뿐이다(이상갑, 2001: 9). 민주화와 자율화의 시대적 발전에 따라 오늘날 장학 개념은 크게 변모되었으며,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이윤식, 1999). 이렇다 보니 장학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명확한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주삼환, 20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학의 개념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요소를 찾아보자면 ‘교육활동의 개선’과 ‘지도·조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메타버스 등 교육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고, 장학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해방 이후 우리 교육사에서 장학정책이 걸어온 길을 반성적으로 검토해보고, 장학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방 이후 장학정책의 변천 행정기관의 장학활동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일제는 조선총독부와 내무부 아래 교육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학무국을 두어 동화정책과 우민화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학무국(과)에 시학관(視學官)을 두고 교육 전반을 감독하였다. 이후 해방이 되어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장학(獎學) 개념이 도입되고, 과거의 감독·통제에서 지도·조언으로 바뀌는 등 민주적인 장학행정이 시작되었다. 미군정은 학무국을 문교부로 개편하고 1946년 1월에 개편된 문교부 조직의 4실 7과 중·초등교육과와 중등교육과에 장학사를 1명씩 배치함으로써 일제의 시학(視學)이란 명칭을 대신하여 장학(獎學)이란 새로운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강영삼, 1997: 4). 이 시기 장학정책의 기본방향은 일본 식민지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미국 민주주의 교육의 이념 보급과 민주주의 교육체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는 6.25 전쟁으로 인해 국방교육의 필요성과 전후 복구를 위한 생산교육·과학기술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여 장학정책은 전후 흐트러진 사회분위기 일신을 위한 도의교육·반공교육·과학기술교육 등에 역점을 두었다. 전후 복구사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장학방침의 전국 시달과 지도·조언 위주의 민주장학 개념 도입, 그리고 교육자치제 실시 등을 통해 체계적이고 민주적인 장학에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1960년대는 자력에 의한 경제건설·자주국방·자주외교를 통하여 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의욕이 강한 시대였다. 이렇게 경제 위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교육을 통해 확산을 꾀하다 보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교육의 본질이 침해되는 일이 많았다. 1968년 12월 5일에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었고, 그 이념은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장학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문교부 직제에 장학실이 신설되어 그 어느 시기보다 강력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장학정책이 실행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1970년대 장학의 핵심과제는 국민교육헌장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한국적인 교육이념을 어떻게 이른 시일 내에 일선 학교현장까지 침투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또 1972년에 단행된 10월 유신으로 일선 학교에까지 유신교육체제 확립을 시도했고, 전국적으로 번져갔던 새마을운동에 발맞춰 새마을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학정책은 결국 교육이 정권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생산에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과 함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시기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이때는 ‘잘살아 보자’란 구호 아래 국가정책의 중점을 교육에 두고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 결과 교육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되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시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이상갑, 2001: 75). 1980년대 초에 출범한 제5공화국은 교육혁신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후, 강력한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다분히 인위적이고 정치논리에 따른 급속한 개혁이어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만 1982년부터 시작된 장학방침의 폐지는 지방화 시대에 부응하고 다가올 교육자치 시대를 대비하는 조치로 평가될 수 있다. 교육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장학지도 방식도 종전의 지시·지도에서 상담·협의하는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등 장학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문교부가 교육부로 개칭되고 장학실 폐지에 이어 장학 요원의 대폭 감축으로 장학정책은 혼돈과 취약상태를 보여 침체기에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의 많은 분량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 지방화·자율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95년부터는 학교단위 책임운영제와 같은 학교장 자율권 확대 방침에 맞추어, 장학협의 또는 협의중심 장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1995년 5월 31일 정부는 ‘세계화·정보화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서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고, 도덕성·사회성·정서 등 인성 및 창의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교육체제를 갖춤으로써 모든 학습자의 잠재능력이 최대한 계발되도록 하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장학도 이러한 교육개혁과 궤를 같이하면서 추진되었다. 또 1998년 3월 1일 발효된 「초·중등교육법」(제7조)에 ‘장학지도’ 항목을 설정하여,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학교에 대하여 교육과정운영 및 교수·학습방법 등에 대한 장학지도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초·중등교육법」 시행 후, 교육당국은 적발이나 문책위주의 장학활동을 지양하고, 협의나 대안 제시 등의 방향으로 장학방법을 개선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볼 때, 1990년대는 종래 행정적인 장학에서 학교현장 중심의 자율성을 지향하는 장학으로 전환을 이루는 시기라 하겠다(이윤식, 1999, 2001). 2000년대 이후에는 장학이 학교현장을 더욱 중시하는 흐름으로 전개됐다. 장학이 교육행정기관 중심에서 학교중심의 장학으로, 주어지는 장학에서 함께하는 장학으로의 전환이 추구됐다. 종래의 교육청 주도의 종합장학이 사라지고, 학교현장의 조건과 요구를 반영하여 자율장학·요청장학·맞춤장학·컨설팅장학 등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교육부는 ‘선진형 지역교육청 기능 및 조직개편’을 발표하였다. 교육청의 기능면에서는 관리·감독·규제업무 축소·이관, 지역청·본청 간 기능의 합리적 재배분, 학교·교육수요자 지원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 조직면에서는 지역교육청을 ‘교육지원청’으로 변경하고, 그동안 시행되던 점검 위주의 장학을 축소하여, 지원 중심의 컨설팅장학을 도입하였다. 그동안 시·도교육청이 담당하던 일반고 대상 장학을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였다. 2012년에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에게 주어졌던 장학지도 권한을 교육감에게 이양했다. 또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제8조 장학지도)을 ‘교육감은 법 제7조에 따라 장학지도를 하는 경우 매 학년도 장학지도의 대상·절차·항목·방법 및 결과처리 등에 관한 세부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장학지도 대상 학교에 미리 통보하여야 한다’로 규정했다. 학교중심의 장학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법적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내일의 장학을 향하여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학정책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변화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장학의 초점(목적)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장학의 초점이 ‘학교조직 유지’에 맞추어져 있었다. 효과적인 학교조직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 과거에는 장학의 평가적 기능이 중시됐다. 그러나 지금의 장학은 교육활동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교실현장에서 교사들의 수업향상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촉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민주적 장학을 지향하고 있다(이윤식·유양승, 2016). 교사의 전문성 향상과 능력개발을 강조하고, 일반장학에서 수업장학으로(거시에서 미시로의 접근)의 변화(주삼환 등, 2022: 479-480)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장학의 주체, 주관 기관이 변하고 있다. 교육부의 장학담당 조직의 변천으로 장학의 주관 기관이 교육부·교육청 중심의 행정적 장학에서 단위학교 중심의 장학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전 교육청 주도의 종합장학·담임장학을 폐지하고, 학교현장 중심의 지원장학이 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학교주도의 컨설팅장학 등장, 각 개인별 수업컨설팅 실시 등 교육행정기관 중심의 일방적인 장학이 아닌 학교중심·교사중심의 장학이 확대되고 있다. 셋째, 장학의 관점이 ‘역할(role)로서의 장학’에서 ‘과정(process)으로서의 장학’으로 변하고 있다. 역할로서의 장학은 장학을 누가 하는가?에 초점이 있으며, 장학을 제공하는 사람과 장학을 받는 사람의 상하관계가 전제된다. 이러한 장학에서 교사는 장학의 객체로서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에 있게 된다. 반면 교사의 입장에서 보는 장학은 ‘주어지는 장학’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정(process)으로서의 장학은 장학을 어떻게 하는가?에 초점이 있으며, 장학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협동관계가 전제된다. 이는 교사를 장학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만든다. 교사 입장에서 보면 장학은 ‘함께하는 장학’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이윤식, 2001; 이윤식·유양승, 2016). 이러한 세 가지 특징으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장학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그 지향점을 장학의 목적·내용·방법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첫째, 장학의 목적을 교사의 발전에 두어야 한다. 학교나 교사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교사의 발전정도에 따라 다른 장학방법을 적용하고, 발전수준을 높여 나가도록 하여 교사의 발전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발전적 장학(developmental supervision)을 추구해야 한다.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발휘하게 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자는 ‘인간자원 장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교사를 부려 먹자는 과거의 접근(인간관계 장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주삼환 등, 2022: 480). 둘째, 장학의 주요 내용을 수업장학에 두어야 한다. 장학의 본질에 대해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지만, 학교가 왜 존재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장학의 본질이 수업개선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장학은 교사로 하여금 잘 가르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학교와 교사가 존재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이 없다면 장학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다(주삼환 등, 2022: 476). 장학론의 발달사는 결국 교사의 수업개선을 위한 제도의 전개 과정일 것이다(천세영, 2019) 셋째, 장학의 초점이 교사의 수업전문성 신장에 있다면, 그 방법으로는 장학의 개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학생에게 개별학습, 개별화수업이 바람직하다면, 교사의 실질적 수업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개별화 장학(individualized supervision)이 필요하다. 이는 교사를 집단으로 묶어두지 않으려는 민주장학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주삼환 등, 2022: 481). 현실적으로 모든 교사를 위한 완전한 개별화 장학이 어렵기에, 몇 가지 장학의 대안 중에서 각 교사에게 맞는 장학을 선택하게 하는 선택적 장학도 이런 방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마음이 무겁다. 내국세의 20.79%가 주어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부금)을 지켜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정부가 대학 재정지원을 목적으로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 신설을 추진하면서 재원의 일부를 초·중등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부금에서 떼어내겠다고 나선 탓이다. ‘동생 돈 빼앗아 형님 준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밀어붙일 태세다. 김 교육감은 지난 9월 대구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지방교육재정 교육감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우리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육감협의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어려운 상황이어서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최근 교부금 개편 논의를 보면서 유·초·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17개 시·도교육감들은 심각한 우려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꿈과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감사원까지 나서 교부금 집행 내역을 감사하는 등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공세가 만만하지 않은데.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하는 마음이다. 감사원 감사는 의도가 보인다. 국정감사 수준 이상의 자료요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청 직원들에게 당당하게 대응하라고 했다.” 초·중등분야에 투입되는 교부금을 줄이자는 주장은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거론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응이 늦은 것 아닌가. “교부금 축소 주장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된 것은 지난 7월 7일 기획재정부의 ‘국가재정 전략회의’부터다. 그 이후 교육부조차도 반대 입장을 내지 못하면서 지난 9월 유·초·중등예산을 예산을 대학으로 일부 전용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이 발의된 이후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특위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지방선거로 교육감들이 7월 1일자부터 업무를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부처에서는 학생수가 줄었으니 교부금도 줄이자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유·초·중등교육의 재정이 ‘이미 충분하다’라는 오해에서 출발한 것이다. ‘돈이 남아돈다’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프레임으로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사실 이번 사태는 재정 당국의 세수 추계 오류로 인해 일시적으로 재정이 증가한 데서 촉발됐다. 게다가 소위 ‘남는 돈’이라는 것도 세수 감소시기에 대비하는 ‘재정안정화기금’으로 적립된다. 일부는 예산 불용액을 문제 삼지만, 이 또한 바로 다음 해(익년도) 재원으로 활용되는 것이어서 ‘남는 돈’이란 지적은 착시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교육당국의 현금살포 등 퍼주기 논란이 교부금 축소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란 지적을 한다. “‘퍼주기 논란’과 관련해 학생 1인당 1스마트패드 지급 등을 언급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퍼주기가 아니라 미래교육을 대비하는 교육청의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현 정부의 핵심 교육과제가 디지털 인재육성을 통한 미래교육 실현이다. 교실에서 미래교육을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1학생 1스마트패드 지급을 추진하는 것이다. DJ 정부가 추진했던 교육정보화사업이 토대가 돼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AI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주호 장관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초·중등 재정은 대학에 비해 잉여가 많다고 말했다. “밖에서 보면 그런 말 할 수 있다. 지난 10월 교육부 발표자료를 보면 국내 총생산 대비 초·중등교육의 공교육비 비율은 3.7%로 OECD 평균 3.4%보다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민간재원인 학부모 부담금이 OECD 평균보다 더 투입된 요인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체험학습비·앨범비 등 학부모 부담 경비를 없애 제대로 된 의무교육을 실현하고, 유치원과 고등학교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재정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대학들이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지도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교육청이 교부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감사를 할 거면 대학들의 재정운용에 대해서도 감사를 해야 하는 게 맞다. 또 지난 14년간 대학등록금을 동결하면서 대학 재정을 악화시킨 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대학 재정지원을 위한 별도의 재원을 발굴하지 않은 채 이제 와서 교부금을 떼어가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교부금이 줄어들면 우리교육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예산이 줄어들면 노후건물 개축,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미래교육을 추진하기 위한 교육환경 개선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한국교육시설안전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교건물 중 40년 이상 된 건물은 총 7,707개 동이다. 비율은 19.3%에 달하고,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된 학교가 전국적으로 6,636개교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얼마 전 충북 괴산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한반도가 이젠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하지만 내진설계가 안된 교실들이 지금도 많다. 만에 하나 학교가 무너져 아이들이 다치면 어떡할 텐가. 그때도 교부금 줄이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직접 학교현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제대로 안 보니까 실정을 모른다.” 정부의 압박이 심할 경우 고등교육특별회계에 3조 6천억 원 정도는 교부금에서 떼어줄 수 있나. “그건 안 된다. 유·초·중등예산을 대학으로 전용하겠다는 논리는 어찌 보면 단순한 경제논리다. 부족한 대학예산을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이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많아 보이는 유·초·중등예산은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 필시 줄어들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으로는 미래교육을 준비할 수는 없다.” 최근 들어 교육분야에 경제논리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교육정책이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는데. “교육분야에서 경제논리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부분이 농어촌 작은학교에 대한 폐교 추진이다. 하지만 교육논리로 접근하면 전혀 다른 문제다. 농어촌 작은학교는 지방소멸을 막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불어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육부문에 경제논리를 함부로 대입하면 안 된다.” 교부금을 지키기 위한 전 국민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교육을 나무의 생장으로 비유한다면 유·초·중등교육은 나무의 싹·뿌리·줄기로, 대학교육인 고등교육은 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한다고 해서 뿌리로 가야 할 영양분을 바로 꽃으로 보낼 수는 없다. 일시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더라도 뿌리가 약해진 나무는 결국 위태롭게 될 것이다. 지금은 뿌리와 줄기의 자양분을 빼앗아 올 때가 아니다. 대학교육에 필요한 재원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 교육예산을 쪼개어 나누는 근시안적인 대처가 아닌 백년지대계를 바라보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에 또 하나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우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사고들은 희생자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았던 이들에게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있다. 이러한 참사의 발생으로 국가 조직과 제도가 변화하고, 사회적 인식 전환 등이 이루어지며, 해당 부분에 대한 안전은 강조된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사고의 교훈을 되새기고 이를 전달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중밀집지역에서 발생한 사고 대규모 군중이 집중된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는 이태원 참사 이전에도 국내외에서 여러 번 발생했다. 국내의 경우 1959년 부산공설운동장 시민위안잔치 때 3만 관중이 좁은 출구로 밀리며 67명이 압사한 사고부터, 2005년 10월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 콘서트에 5천여 명이 일시에 몰리며 11명이 숨지는 사고 등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외국에서 최근 발생한 사고로는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미나(mina)에서 열린 하즈 순례기간 중 발생한 압사사고가 있다. AP통신에 의하면 2,41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21년 11월 5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NRG 파크에서 발생한 아스트로 월드 페스티벌 압사사고에서는 10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0·29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인 2022년 10월 1일 인도네시아 칸주루한 스타디움에서 축구경기 후 관중 난동 및 진압 과정에서 132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압사사고의 원인과 대책 다수의 군중이 모이는 경우 발생하는 압사사고는 군중압착(crowd crush)이라고 하며, 군중이 몰리는 상황은 인간몰림( human stampedes)·군중몰림(crowd surge) 등으로 불린다. 좁은 공간 또는 폐쇄된 출구에 사람이 급격히 몰리면서 사람들이 수평밀기와 함께 수직으로 쌓여지는 현상도 발생한다. 군중압착사고를 보면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직으로 쌓여져있는 피해자들을 힘으로 빼내려 하지만 가해지고 있는 힘으로 인해 포기하게 된다. 또 서 있는 상태나 다른 사람들에게 깔려있는 상황에서 가슴과 복부 등 신체가 압착되면 폐 기능이 떨어지고 혈액순환이 되지 못하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데 이를 압착성 질식사(compression asphyxia)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보면 질식이외에 장기파열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압사사고의 발생 위험이 감지된다면 즉각적으로 추가적인 인원의 진입차단, 기존 인원의 타지역 이동 및 배출 등을 수행하여 밀도를 감소시켜야 한다. 또한 비상대응 요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통제는 훈련된 책임 있는 실무자 또는 군중관리 전문가(crowd manager)등의 판단에 의해 실시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군중의 이동에 대한 군중역학(crowd dynamics)과 군중 시뮬레이션(crowd modeling or crowd simulation) 등의 수단을 통하여 상황을 검토해보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군중밀집지역 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은 이태원 참사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여러 압사사고 대처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다중밀집지역 사고 예방을 위한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교육내용이 필요하다면 호주에서 제공하고 있는 호주재난복구핸드북(AUSTRALIAN DISASTER RESILIENCE HANDBOOK COLLECTION) 중 안전하고 위생적인 군중 밀집장소(Safe and Healthy Crowded Places)와 미국연방재난관리청(FMEA)에서 제공하고 있는 특별 이벤트 비상계획(Special Events Contingency Planning) 등을 참고하면 된다. 먼저 호주재난복구핸드북은 2018년도에 발간 된 것으로 행사에서 붐비는 장소와 대규모 모임에서의 안전과 위생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행사 주최 조직, 장소 관리 주체, 지방정부, 기업, 그리고 안전·응급서비스 분야에서 대규모 군중밀집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전문가·현장관리자·경찰·소방관이 사용하도록 작성되었다. 이 핸드북은 관리계획의 수립, 커뮤니케이션, 안전조치사항, 군중관리, 군중질서유지를 위한 수단, 응급의료에 대한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연방재난관리청의 매뉴얼은 2005년에 발간된 것으로 행사의 계획, 행사 운영 시 고려사항, 사고의 지휘와 통제, 행사 이후 조치사항 등을 다루고 있다. 두 문서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를 수행해야 할 관계자들이 알아야 할 전반적인 관점에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분량이 많고 전체적인 지침이기 때문에 단시간 동안 수행되는 안전교육에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만약 교육준비에 긴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고, 교육대상에게 생존에 필요한 지식들만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국내 언론에서 많이 인용된 미국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의 ‘군중압착상황에서의 생존방법과 치명적인 이유(How to survive a crowd crush and why they can become deadly)’라는 기사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타라 파커 포프(Tara Parker Pope) 기자에 의해 작성된 이 기사는 영국서포크대학교의 키스 스틸(G. Keith Still) 교수,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의 마틴 에이머스(Martyn Amos) 교수, 로스엔젤리스 군중안전컨설팅서비스의 군중안전전문가 폴 웨이트하이머(Paul Wertheimer) 등 이 분야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어서 참고할 만하다. 또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제시된 여행자 안전부분의 ‘대규모 집회로의 여행(Travel to Mass Gatherings)’ 내용을 참고할 수 있겠다. 이 두 문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정리하고, 필자의 의견을 추가하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할 수 있다. 1.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장소에 가게 된다면, 다음 사항을 준비해본다. •참여하고자 하는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 또는 관할 행정기관의 안전관리에 대한 준비상황과 제시하고 있는 안전사항을 확인한다. •행사지역(실내행사·야외행사 또는 경기장처럼 복합적인 형태)의 지형적 특성을 미리 점검하여 대피경로를 파악하고, 막다른 골목(dead-end)·병목구간(bottle neck)·경사구간·장애물 구간 등을 미리 인지한다. 군중이 몰리기 전 조금 일찍 도착하여 미리 검토해보는 것도 좋다. •현장에서 비상시 응급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둔다. •군중 속에서 가족 및 동반자와 헤어질 경우에 대비, 만날 장소를 미리 지정한다. •소지품은 쉽게 몸에서 이탈하여 떨어뜨리거나 분실하지 않도록 몸에 밀착되는 가방 등에 보관한다. •신발은 쉽게 벗겨지지 않고, 부상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2. 대규모 군중밀집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경우, 다음과 같은 상황이라면 신속하게 그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 •군중 흐름 속에서 이동하다 느려지기 시작하면 위험신호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면 통제불능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 •군중밀도가 1㎡당 5명을 초과하면 상황이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3. 군중 속에 있게 된다면 다음에 주의해야 한다. •대규모 군중이 모이면 군중의 앞쪽이나 중간보다는 뒤쪽이나 주변에 있는 것이 좋다. •군중의 흐름이 생긴다면 이에 맞서기보다 군중과 함께 움직이며 따라가야 한다. •아동은 군중 속에 데려가지 말아야 한다. 만약 동반하고 있다면, 어깨에 메거나 안고 다리로 허리를 감싸도록 해야 하며, 손을 잡거나 팔로 끌지 말아야 한다. •물건이 떨어진 경우 이를 주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굽히면 일어나기 어렵게 된다. •다른 사람이 넘어지면 최대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서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4. 군중압착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면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소리 지르는 것으로 에너지와 산소를 낭비하지 말고, 최대한 머리를 높여 공기흡입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일어선 자세에서 팔이 옆구리에 고정되지 않도록 하여 가슴을 보호하고 호흡하기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권투선수와 같은 자세도 좋다. 한쪽 손으로 반대쪽 팔뚝을 잡는다. 그러면 일정한 보호막이 만들어진다. •넘어지거나 군중압착으로 깔리게 되면 눕거나 엎드리는 것보다 왼쪽으로, 머리를 보호하는 태아자세(fetal position)를 취하는 것이 가장 생존확률이 높은 자세이다. 군중압착에서의 생존자세로 추천된 태아자세는 2003년 2월 20일 발생한 로드아일랜드 스테이션나이트클럽 화재(100명 사망, 230명 부상)에서의 생존자 마이크 바르가스(Mike Vargas)가 2003년 2월 25일 미국 NBC에서 방영된 인터뷰에서 군중압착 상태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있다가 화재와 압력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증언한 자세이다. 위의 내용에 더하여 사고 발생 시 압착사고 희생자들을 회생시키기 위한 CPR이나 자동심장충격기 사용 등과 같은 심폐소생교육도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적 측면에서 다중밀집지역 안전을 위한 장기적 조치는 군중관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지만, 교육현장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전교육방안은 위에서 서술한 군중압착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을 잘 전달하는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는 늘 대비의 사각지대에서 예상치 못한 시점에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안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현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안전의식을 형성시키고 유지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재난발생 시 대응방안을 알려주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IB 학교 열풍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지난 6월 1일 대한민국 전역에서 치러져 17명의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이번 지방선거의 특징 중 하나는 다수의 교육감 후보들이 IB 학교 도입을 공약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미 IB 교육과정을 도입·운영하고 있던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미래학교 및 IB 학교의 우수 교육프로그램을 지역 내 초·중·고에 공유·확산하여 질 높은 공교육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충남형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을 도입, 수업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취지이다. IB 교육과정을 이미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대구시와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하면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한 곳은 충남교육청일 것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경기도형 IB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앞세워 초선에 당선되었다. 경기도는 160여만 명의 학생과 4,700여 개의 학교가 있다. 앞으로 경기도교육청의 IB 교육 추진은 우리나라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IB 교육과정 도입으로 미래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3선에 성공했다. 창의력과 비판적사고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미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IB 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IB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초·중·고등학교 평가에 IB 도입을 포함한 평가혁신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IB를 학교현장에 도입하는 것을 검토했다.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뒤에는 “2023부터 초·중 20교를 IB 예비학교로 지정해 시범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라며 IB 도입을 본격화했다. 반면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IB에 공감하지만, 보완이 우선’이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선거과정에서 그는 “IB 교육과정의 졸속 추진으로 학교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며, “치밀한 준비를 한 뒤 추진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이번 선거에서 IB 교육과 관련된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 후보였던 최정수 후보는 수시전형과 유학에도 유리하다고 홍보하며 ‘IB 교육프로그램 도입’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서거석 전북도교육감은 제8회 지방선거에서 IB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4년 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초·중등 교육과정에 논·서술형 평가인 IB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앞으로 전북도교육청이 IB와 관련, 어떤 정책을 펼지 주목된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은 IB 교육 도입과 관련된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IB 교육에 학부모의 마음은 흔들릴까? IB가 뭐길래, 교육감후보들은 선거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유권자 마음을 사려고 할까? IB는 국제적 시각을 가진 세계시민양성을 목적으로 개발된 국제 교육과정이다. 1945년 UN이 창설되고 외교관 또는 주재원 자녀들을 위한 UN 국제학교가 문을 연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여러 나라를 이동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여러 나라에서 통용되는 공동교육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국제학교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IB 교육체제를 개발한다. 처음엔 국제학교 중심으로 운영됐다. 이후 IB는 현재 전 세계 161개국 5,595교(2022. 8월 기준)에서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IB는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IB와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추구하는 철학 및 방향이 대동소이하다. 제7차 교육과정부터 비롯된 국제적 시각의 교육과정 반영과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도모한 핵심역량 및 연계·융합설계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우리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바와 방향이 같다고 할 수 있다. IB는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중시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시,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으로, 지식의 통합과 연계를 통한 실제 활용에 중점을 둔다. 이처럼 IB와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모두 ‘역량중심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교육과정 설계 및 평가측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IB 교사들은 IB로부터 재해석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준을 제시받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침과 매뉴얼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IBDP에서는 지식론(TOK: Theory of Knowledge), 연구논문(EE: Extended essay), 창의성·활동·봉사(CAS, Creativity·Action·Service)가 핵심영역이다. 지식론은 여러 문화의 다양한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적 숙고를 학습하기 위한 과정으로 반드시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이후 IBO가 제시하는 10개의 주제 중에서 골라 1,200~1,600자의 논술문을 작성하고, 주제발표문을 작성해서 10분간 발표하고, 자기평가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연구논문은 50개의 다양한 어문강좌를 통해 22개 주제 중에서 골라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도서관에서 찾거나, 해당 주제 담당교사의 도움을 받아 40시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자기 힘으로 4,000자 이하의 개인 장편을 작성해야 한다. 이는 연구주제·연구방법, 논리 전개, 분석 수준 등을 통해 평가한다. 아울러 학교 공부 이외에 전인 양성을 목적으로 예술·스포츠·봉사활동을 시행한다. 담당교사가 도움을 주며 2년간 매주 3~4시간씩 최소 150시간의 활동을 해야 한다.반면 우리나라 교사는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한 핵심역량과 성취기준을 기반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한다. 성취기준과 핵심질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사용할 수 있으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자율권을 갖고 있다. 교육감들은 국제교육과정 승인 권한이 있는가? 국가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 국제교육과정을 학교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국제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학교에서 과목개설 승인을 요구할 경우 교육감은 과목승인 권한이 있는가?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있다’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IB 도입의 법적근거가 명시되어 있다. 2015 교육과정 총론에 따르면 ‘학교는 필요에 따라 이 교육과정에 제시되어 있는 과목 외에 새로운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이 경우 시·도교육청이 정하는 지침에 따라 사전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학교는 필요에 필요에 따라 대학과목 선이수제의 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교육과정이나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이 경우 시·도교육청이 정하는 지침에 따른다고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미국의 AP와 같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교육과정이나 과목을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개설할 수 있으며, IBDP의 교육과정을 선택과정으로 개설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IBDP를 운영하는 고등학교들은 소속 교육청에 DP과목에 대하여 과목개설을 신청하고 과목승인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교육감들은 교육과정 운영에 관심이 높다. 교육자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교육과정 운영권이기 때문이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관장사무) 6항에 의하면 ‘교육감은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의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IB 교육과정은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검증된 국제 교육과정이다. 미래교육을 이끌어야 하는 교육감으로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일 것이다. ‘수업혁신과 공정한 평가제도’를 통한 대입체제 개선 “올해 상반기 IBO-제주-대구교육청 삼자 간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한국어 DP 도입의 제1순위는 교원양성이다. 채점관이 1,000명 이상 양성되면, 대입 개편도 가능하다. IB 도입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능에 집중된 대학입시 체계 개선이다. 교육감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핵심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수업과 평가혁신을 모색해 왔다. IB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생각을 꺼내는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입제도에 논·서술형 평가도입은 시대적 과제이다. 그러나 공정성·객관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IB에서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선거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유권자의 지지가 후보자의 당선 여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당연히 후보자는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공약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선거직으로서의 교육감은 늘 더 ‘새로운 교육혁신 어젠다’에 목마르다. 2009년 경기도 김상곤교육감이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등장한 혁신학교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까지 ‘교육혁신의 어젠다’였다. 10년이 지났다. 더 이상 선거공약으로서 신선함이 없는 것이다. 그 자리를 IB가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꺼내는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체제의 공정성은 우리나라에 IB를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IB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자기주도적인 학습 등 수업혁신에 효과적이며 평가의 공정성을 장점으로 수능시험 개편의 대안’이라는 긍정적 입장과 ‘IB 교사부족과 교사들의 업무부담, 현실적으로 소수 엘리트에게만 적용 가능한 교육’이라는 부정적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혼란의 피해는 학생들의 몫이다. 앞으로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IB 도입에 대한 학생·학부모·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아무리 IB가 ‘공교육의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하거나 교육주체의 여론 수렴과정을 축소하고, 탑다운(top down)식 정책 집행방식을 취한다면 학교현장에서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35년에 발표된 심훈(沈熏, 1901~1936)의 장편소설 상록수에는 ‘학교’가 등장합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온전한 학교는 아닙니다. 여주인공인 전문학교 학생 채영신이 기독교 여성 연합회의 파견으로 청석골이라는 빈촌에서 문맹퇴치 활동을 하기 위해 운영하는 한글 강습소입니다. 학교 공간이 따로 없어 마을 교회에서 밤낮으로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하고 있는데, 뜨거운 배움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분명 학교의 범주에 듭니다. 소설 속 채영신은 당시의 실재 인물 최용신을 모델로 했다고 하니 상록수 이야기는 허구로만 만든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채영신의 학교는 일제 당국에 밉보이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일제는 교회 건물이 낡았다는 구실로 학생 인원을 제한합니다.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이 이제는 학당에 들어올 수 없게 되자, 교회 학당 담벼락 뒤에서 얼굴만 마당을 향한 채 한글 문장을 울부짖듯 외치는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는 아이들 다 들여서 가르치려면, 비록 초가집 흙벽돌로 짓더라도 어딘가 학교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채영신의 학교가 필요로 하는 가장 절박한 조건입니다. 다행히 그녀의 학교는 마을 주민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한글 강습뿐 아니라, 청년들에게 시대를 일깨웁니다. 여성들을 계몽하여 생활 개선에 나서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채영신 학교를 간절히 바랍니다. 채영신의 학교가 가진 ‘학교의 조건’을 생각해 봅니다. 학교의 학교다움을 지탱하는 학교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현실 학교의 악조건도 물론 학교의 조건에 속합니다. 오늘 우리의 학교는 그녀의 학교가 갖지 못한 조건들을 갖추었는가요? 혹 그녀의 학교가 잘 갖춘 것 중에, 지금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보이지 않게 결핍감을 느끼는 것은 없는지요? 나의 어머니(이숙영, 1930~2019)가 남겨 놓으신 산문 기록을 들추어 보니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이 학교가 현실로 지녀 가진 학교의 조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아픔과 연민이 가득 느껴지는 식민지 학교의 학생을 ‘학교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응시해 봅니다. 1939년, 나는 서울의 교동소학교 3학년이 되었다. 교실은 3층 중간이다. 월요 조회 때는 손톱과 손수건 검사를 담임선생이 일일이 한다. 지나사변(중일전쟁) 중이라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남산 꼭대기에 신궁참배도 가고, 봄소풍도 갔다. 학교생활이 변한 것은 없지만, 수업이 끝나고 오후 늦게 10여 명 정도 남아서 전선의 일본 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3학년이 되니까 조선어는 2학년까지만 배우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어를 배운다. 공부시간이나 노는 시간에도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국어(일본어) 상용’을 강요하면서, 일본어를 잘하면 사구라꽃이 그려진 배지와 상장도 준다. 일본 천황 생일(天長節, 덴초세쓰)에는 일황기를 본뜬 빨갛고 하얀 둥근 찹쌀떡을 두 개 준다. 3학년 2학기가 되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어리지만 수군거린다. 일본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요구한단다. 이윽고 어느 날 아침 첫 시간에 담임선생이 말한다. 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요 내선일체(內鮮一体)니까, 모두 성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어 달 후 우리는 차례대로 나가서 칠판에다 창씨개명한 자기 이름을 썼다. 김본영은 ‘金本英子(가네모도 에이코)’로 쓰고, 최숙현이는 ‘(山本順, 야마모토 준)’으로 썼다. 나는 이름을 갈지 않았다. 교무실로 불려가서 아버지를 모셔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숙영, 경성에서 학교 다니기, 미발간 내 땅의 내 학교인데, 남의 나라, 남의 학교가 되어 있다면, 이런 조건 아래 놓인 학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 외양을 갖추고 서 있는 학교라고 다 학교가 아님을 느낍니다. 전쟁과 궁핍이 ‘현실 학교의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더듬어 봅니다. 1956년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는 6.25 전쟁의 상흔이 가득했습니다. 흙벽돌 채로 노출된 교실 내벽들, 나무 서까래 위를 군용 텐트 천으로 덮은 교실 지붕, 그 틈새로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 비가 오면 수업을 못 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이때 당면한 ‘학교의 조건’은 학교의 건물을 제대로 세우고, 교구와 교과서를 마련해 주는 데에 있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유실한 폭발물 사고로 아이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이런 사고들을 포함하여 전후의 헐벗음과 굶주림과 전염병은 그 시절 ‘학교의 조건’에 관여했습니다. 그게 만연할수록 학교는 가르치는 일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학교는 유엔이 보내준 분유나 의류 등 구호제품을 배급하고, 전염병 방역을 했습니다. 학교의 지역·사회적 조건이 생겨납니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가 태어나면서 학교는 한 학급당 8~90명의 밀집공간이 되었습니다. 수업도 교육공학적 진화를 모색하게 되고, 학교는 산업화 시스템에 생산 인력을 공급하는 조건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잘하든 못하든 공부를 하고 싶은 동기는 강했습니다. 공부가 이 곤궁과 결핍의 탈출구임을 교육이 암시하면서 학교의 조건도 그런 방향으로 잡혔습니다. 그런 중에도 학교는 학교였습니다.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 상급학교로 진학합니다. 연중 기념행사들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지역사회와 학교가 어우러집니다. 학예회를 하고, 운동회를 하고,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예방주사를 맞고, 기생충 검사를 하고, 학교 청소를 했습니다. 실습지를 가꾸고, 교과서를 물려받았습니다. 학교는 훈화에서 애교심·애국심을 강조하고, 이런 프로세스에서 학부모의 위상도 생겨났습니다. 학교가 ‘문화의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음도 자각합니다. 학교다움을 나타내는 ‘학교의 조건’은 더 구체적이고 더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나라 밖 지구촌 각지에 있는 학교인데도 분명 우리의 학교입니다. 현재 약 1,500개 학교에 15만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14,000여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학생들은 한국어를 잘 모르는,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재외동포 한국인 2세·3세들입니다. 물론 우리와 핏줄을 함께 나눈 지구촌 한인들입니다. 이름하여 ‘한글학교’, 아이들은 월화수목금 주 5일을 그곳 거주국의 일반 학교에 다니다가, 남들 다 노는 토요일에 특별히 이 한글학교에 옵니다. 누군들 주말 휴일에 학교에 오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한글학교는 일단 오기만 하면, 지낼 만합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외모도 피부도 다른 아이들과 생활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비슷하게 생기고, 한국말을 조금씩 하는 아이들끼리 지냅니다. 선생님도 한국인입니다. 무언가 묘한 친밀감이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대개는 다른 건물을 빌려 씁니다. 그래서 겪는 설움도 큽니다. 재정이 열악하지만, 어떻게든 학교를 눈물겹게 살려 갑니다.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합니다. 방학에는 특별 캠프를 합니다. 물론 현실의 불리한 조건들로 문을 닫는 학교들도 꾸준히 생깁니다. 전교생 30명 미만의 학교도 수없이 많습니다. 학교 수효만큼이나 ‘학교의 조건’도 다릅니다. 미국 보스턴 한글학교의 남일 교장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입니다. 그는 글로벌 지구촌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뿌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진정한 힘은 자신이 지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나옴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글학교의 존재론적 조건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니다. 나는 자녀를 기르면서 나와 아이들의 뿌리 뽑힘의 삶을 막막하게 발견하는 데서 우리말을 새롭게 각성하였다. 우리말에 대한 각성은 한국에서는 잊고 살아도 되었는데, 여기 이민의 나라에서는 그 말을 잊으면 존재의 불안이 다가온다. 아,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나의 2세들은 자라면 나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갈 것이다. 이 낯선 대륙의 끝과 끝으로 흘러가서, 이 소외로 가득한 이국의 대도시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남일, 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 중에서 오늘날 지구촌 한글학교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지구촌 한글학교가 모국의 교육과 왕성한 상호성을 갖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한글학교는 동포 차세대를 더욱 단단하고 유능한 세계인으로 길러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인재들이 어찌 동포 사회의 인재만으로 그치겠습니까? 위대한 한국의 인재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한글학교의 조건은 ‘지금 여기’ 우리 교육의 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 교육의 미래 조건임도 자명합니다.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