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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총이 지난달 4월17일 대의원회 결의에 따라 벌인 이장관 퇴진 촉구 서명운동이 13일현재 23만1천8백45명 서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서명기간이 2주였지만 오고 가는 우편배달과 사고 등을 감안하면 불과 열흘사이에 전국 방방 곡곡 1만1천여 학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아직도 서명부가 올라 오고 있어 최종집계 결과는 24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엄청난 서명숫자에 대해 교육현장의 험악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고있었던 교육부관리, 언론조차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 이고 있다. 아뭏든 이번 서명운동으로 교육부장관에 대한 교육현장의 거부 정서가 명징하게 드러났다. 특히 이번 서명운동의 경우 방해압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무게를 한층 더한다. 우선 서명운동의 목 표가 장관퇴진을 촉구하는 것이어서 교원 개개인의 신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므로 일반 서명운동에 비해 부담스러운 측면이 다분했다. 그리고 서명운동을 진화할 목적으로 교육부는 장관신분 관련 사항인 점 등을 들어 '불법적 집단행위'라고 자의적인 유권해석을 전파했다. 중간에 시·도교육감들도 불법성과 비교육적임을 이유로 서명운동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고, 전교조지도부도 지침으로 서명불참을 유도하고 나섰다. 아울러 이번 서명운동이 반개혁 또는 기득권 지키기라는 일부 부정적 여론도 제기됐으나 교원들의 분노의지를 꺽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한나라당, 한국노총과 한교조는 교총의 서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서명운동 막바지인 4일 金大中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교원을 개혁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며 교육부 정책추진 방식의 문제점 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면서 격앙 일변도의 국면이 다소 완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11일 李海瓚장관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 국무회의에서 자율연수휴직제와 담임수당 인상 등 '교직발전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17일 교총과의 교섭에 나서는 등 뒤늦게 사태수습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교원들의 장관에 대한 불신여론은 요지부동이라 이같은 교육부의 변신노력이 얼마나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李장관이 소위 '당근정책'을 발표한 후에도 교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하다. 장관퇴진을 요구한게 돈 때문인 것으로 비추이는 것 자체도 못마땅하고 IMF이후 삭감된 체력단련비 등이 복원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원안식년제니 담임수당 인상을 얘기하는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콩으로 메주를 쑤어도 못믿겠다'는 정 서이다. 지난 20여일의 상황을 일지별로 정리해 본다. △4월16∼20일=16일 제243회 교총이사회는 교육부장관 퇴진 서명운동을 결의했다. 17일 제70회 임시대의원회는 교육부장관 퇴진 서명운동을 결의했다. 20일 교총은 각급학교 분회로 서명지를 발송했다. △4월23일=전교조는 지난달 23일 PC통신에 올린 '교총서명 대응지침'을 통해 "전교조 조합원들은 서명에 동참하지 말고 일반교사들의 불참을 설득하자"고 강조했다. △4월26∼28일=26일 朴承國의원(대구북갑)은 "한나라당은 조만간 이장관 해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咸鍾漢 국회교육위원장은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27일=시·도 교육감들은 서울시교육청에서 회의를 갖고 '교원들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서명운동 자제를 당부했다. 또한 이튿날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교에 공문을 보내 자제를 당부했다. △4월28일=교총은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서명자제 요청에 대한 본회 입장을 발표하고 시·도 교육감에 항의 공문을 보냈다. △4월30일=한국교총은 문화방송(MBC)에 항의공문을 보내 지난달 29일 저녁9시 뉴스에서 교총의 자발적 서명을 왜곡했다며 편파보도자세를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한국노총과 한교조(한국교원노동조합)는 '일방적 교육정책 추진 및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교단 황폐화 책임자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5월4일=金大中 대통령은 장관퇴진 서명운동 등과 관련 4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교육자의 사기앙양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날 金대통령은 교육자는 개혁대상이 아닌 주체라는 말과 함께 "현재 총리령으로 돼 있는 교원예우지침을 대통령령으로 격상시키는 등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5월11일=이해찬 교육부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자율연수휴직제· 담임수당 인상등 '교직발전 종합방안'을 보고.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李在五 교육위원회위원장 성명을 통해 교육부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내년부터 근무경력 15∼20년된 중견교사들중 본인이 희망할 경우, 1년간 본봉의 50%만 받고 연수휴직을 할 수 있는 '자율연수 휴직제'가 도입 실시된다. 또 현재 총리지침으로 되어있는 '교원예우 지침'을 대통령령으로 격상해 △각종 행사나 회의에서 교사 예우 △외부행사에 교사 동원 자제 △교권 침해 사례와 교원에 대한 민원, 진정 등의 조사처리에 신중을 기하는 내용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년부터 매년 초·중등교원을 각각 1천명씩 5년간 1만명 증원하고, 담임수당을 현재의 월 3만원에서 단계적으로 10만원으로 인상해 주기로 했다. 李海瓚교육부장관은 11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교원사기 앙양방 안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이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金大中대통령이 장관퇴진 서명운동 등 최근의 교직사회 불만여론을 감안, "획기적 교원사기 앙양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가 이날 보고한 방안에 따르면 수업외 업무와 관련, 관할 교육청을 거치지 않은 외부공문에 대해 답신의무를 면제하는 특별규정을 부령으로 제정하고, 학생의 전·편입학 업무를 교원이 아닌 행정직원이 맡기로 하는 등 교원 잡무를 경감해 주기로 했다. 또 교원 전문직단체의 활성화 방안으로 교원연수, 교과연구, 교육정책 개발 등에 교원단체가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행·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주요 정책 입안시 현장교원의 참신한 아이디어 공모를 위해 교육정책 공모제를 도입하며, 교육부 산하기관에 '교육활동 연구지원단'을 신설해 내년부터 매년 3백억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키로 했다. 이밖에 2∼3개 지역교육청 단위로 '교원자문변호인단'을 설치 운영하고 시·도교육청 평가를 격년제로 운영해 학교현장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기로 했다.
7월 전교조 출범과 관련, 전국의 사립중·고교 법인들측은 교원의 기간 계약제 도입을 골격으로 한 학교법인 정관변경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사립중·고 학교법인협의회(회장 洪性大)는 7일 이사회를 열고, 사립교 교원의 기간 계약제 임용을 위한 정관변경 작업을 각 법인별로 이달 10일까지 끝낸 뒤, 정관변경 승인신청서를 각 시·도교육청에 제출키로 했다. 사학법인협 이사회는 이날 "정부가 교원노조를 승인해주면서 상대적으로 법인측의 사용자 권리를 묵살, 사학 교육현장의 노사 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하고 "사학경영자들이 스스로 교원노조에 맞서는 사용자 권한을 쟁취하기 위해 교원의 기간 계약제 임용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사학법인협은 "교원에게 노조활동을 허용했으면 상대적으로 사학경영자들에게도 정리해고제, 고용계약제, 변형근로제 등의 권한을 부여해야 하나 정부가 이를 외면했다고 지적, 사학 스스로 사용자의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정관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사학법인협 이사회는 기간 계약제 임용도입을 골자로 한 정관 개정 승인신청서를 17일 각 시·도교육청에 일괄 제출키로 했다. 사학법인협이 마련한 정관 개정안에 따르면, 신규교원 임용시에는 당사자간 계약에 의해 4년 기간을 정해 임용하되 처음 계약 기간은 2년으로 하고 60세 이상 교원은 계약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교원 보수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별도의 규칙으로 정하고, 정년에 관한 규정은 폐지하며 20년 이상 근속교원이 퇴직할 경우 예산 범위안에서 명퇴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사학의 정관개정 사항은 교육감 승인사항이나 교원노조 운영과 관련한 첨예한 사안이라 사립교원 계약 기간제 임용제 도입은 불 투명한 실정이다.
일선 초·중등학교 정보화사업이 재정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4월 현재 지방비 확보가 목표액의 42%에 머물고 있어 정보화교 육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같다. 더우기 이번 교육부 직제개편시 현행 교육정보화국이 폐지될 전망이어서 정보화교육이 크게 후퇴될 전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 초·중등 교육정보화사업 예산은 국고 4백91억, 지방비 1천6백92억 등 2천1백85억원. 이중 4월 현재 확보된 예산은 지방비중 9백86억으로 42%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교단 선진화사업은 지난해 지방비로 6백85억원이 지원됐으나 올해는 아예 전액 삭감되었고, 교원용 PC구입비와 학생용 PC구입비 역시 각각 목표액의 28%와 33%선에 머물고 있다. 이밖에 교원 컴퓨터활용능력 활성화, 교육전산망 구축사업, 학교 종합정보관리시스템 보급 등의 사업도 지방비 확보비율이 절반수준에 머물고 있어 사업추진이 원활히 이뤄질지 미지수다. 교육부가 4월말 실시한 교육정보화 실태점검 결과, H/W나 S/W구입과 관련, 교육청이나 학교별로 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으나 교원위원 위촉이 미흡하고 PC를 이용한 멀티미디어 학습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이와같은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12일, 시·도교육청 교육정보화과장회의를 소집하고 올 상반기까지 조기 집행되도 록 소요예산을 확보해 줄 것을 시달했다. 또 정보화 실태점검 결과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학교별로 특성에 맞는 교육정보화 방안을 모색하고 지속적인 교육용 S/W개발·보급, 교원 정보화연수, 컴퓨터 동호회 지원 등을 추진하는 한편, 올 시·도 평가시 '정보화기기 활용도'를 새롭 게 평가항목에 삽입키로 했다.
한국교육신문이 창간 된지 어언 38년이 됐다. 1961년 새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창간된 이래 본지는 발전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오늘날 ABC공사(公査) 인증 25만여부를 자랑하는 가장 대표적인 교육전문지로 성장하였다. 특히 창간 38주년을 맞는 금년도에는 기존의 PC통신 하이텔과 에듀넷을 통한 정보제공 서비스 이외에 '인터넷한국교육신문'(http://kew.webclass.net)을 개설함으로써 '사이버교육언론'시대도 함께 이끌어 가고 있다. 본지는 교원독자들의 사랑과 채찍을 자양분으로 성장해왔다. 본지가 과거 사회·정치적 격동과 질곡을 겪으면서도 학부모는 물론 사회·정치적 분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공론의 대명사로 발돋움하게 된 것도 바로 40만 교육가족의 적극적인 참여와 뜨거운 격려와 따가운 질책이 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본지는 창간 38돌을 자축하기에 앞서 지금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위기에 처한 교육현실을 보고 참담한 심정으로 교육언론의 역할을 되새겨보면서 한편 책임이 막중함을 통감한다. 교원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비하하는 분위기에서 교육 개혁에 동참하기 위하여 교원들은 건전한 참여의지를 보여줬지만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분노한 교원들은 오늘의 교육을 '교육공황'으로 단정하고 '교육부장관 퇴진'을 외치고 있다. 존경과 사랑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던 '스승의 날'을 '휴업'하겠다는 교육현장의 자조적 분위기가 우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이 위기에 처할수록, 이 나라 교원의 권위와 명예가 도전을 받을수록 본지는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손상된 교원의 위상을 회복하고 교육발전을 저해하는 각종 걸림돌을 제거해 나가는데 앞장설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본지는 또 '모범적 교육국가의 완성'(Edutopia)이라는 창간정신 아래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여 건전한 교육여론을 조성하고 교육정론에 입각한 문제제기와 방향제시로 교권신장과 교육발전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독자 곁으로 한층 가까이 다가가 교육계의 요구와 기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진단·점검하고 사회에 알려 교육정책에 반영시키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한국교총이 열흘남짓한 기간동안 전개한 '교육공황 부른 이해찬 교육부장관 퇴진 촉구 서명운동'에 23만1천8백45명의 교원이 참여한 것으로 13일현재 집계됐다. 이는 전국 초·중등 교원 약 34만6천명의 약 67%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교총은 10일 대통령과 총리에게 서명운동 결과를 전하고 교직안정을 위해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이번 서명운동에서 철회 또는 시정을 요구한 졸속 정책과제들은 교육부와 교섭·협의를 통해 풀어나갈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이번 서명운동에 전체교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교원들이 참여한 것은 현 정부의 교육개혁 추진 방식과 교육부장관에 대한 교원들의 불신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이 이번 서명운동이 현직 장관의 신분관련 사안인데다 교육부가 불법적 집단행위로 몰았으며 시·도교육감들의 자제 요청과 설득 활동이 있었고, 일 부의 부정적 여론이 있었던 점 등 외부의 압력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더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그동안 과도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개혁정책과 현장실정을 무시한 일방적 정책추진으로 교권불신과 공동화의 위기상황을 불러온 교육부장관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교육의 수장으로서 교원들로부터 전면적으로 거부당하 고 있는 李장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론은 여론으로 망한다'는 새로운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교육부는 졸속 교육정책에 대한 한국교총의 전문적 판단과 의견을 무시하고 번번히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했고 법적 의무사항인 교섭마저 회피하며 강행해 왔다. 이 결과 악화된 교원여론에 의해 장관이 집단적 감성에 의해 몰리는 상황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여론에 숨은 속 뜻을 정책에 반영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선호도를 곧바로 정책결정의 준거로 삼게되면 교육정책의 비전문화와 무책임성을 조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책입안자들은 여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또한 진실로 교원들을 개혁의 주체로서 정책결정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그 시점부터 참된 의미의 교육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30년 이상 근속한 교원을 포함한 직계가족(존·비속 및 그 배우자 포함) 7인 이상이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교원에게 '스승의 날' 한국 교총에서 수여하는 '교육가족상' 수상자로 올해는 강원 강릉 강동초등 학교 李京完교사(62) 가족이 선정됐다. 가족만 모여도 작은 학교 교무 실을 방불케하는 李교사 가족을 소개한다. 李교사는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良燮씨는 평창 대화고, 장녀 惠淑씨는 강릉 주문초등교, 삼남 宙燮씨는 서울 후암초등교에서 각각 교편을 잡고 있다. 또 큰 자부 金英熙씨는 평창 진부중, 사위 金龜南씨는 강릉 명륜고, 작은 자부 李恩淑씨는 청주 풍광초등교에 근무한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차남을 제외하고 李교사를 포함한 7명의 가족이 교육계 동지인 셈이다. 지난 57년 강릉사범을 졸업하고 인제 갑둔초등교에서 첫 교편을 잡은 李교사는 올해로 교직경력 42년을 맞는다. 자식농사 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지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내심 아픔도 많았다. 교사 봉급으로 자식 넷을 키우다 보니 용돈 한번 넉넉히 준 적 없고 학비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이 가정형편을 안 자식들이 교·사대로 진학하거나 스스로 벌어 가며 대학을 마쳤다. 공부 욕심은 유난해 장남은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삼남은 현재 교원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교직이 넉넉한 생활의 여유를 주는 직업도 아니고 예전처럼 사회적 대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보람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는 李교사는 "뒤를 이어준 자식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李교사는 또 "자식들에게 무엇이 되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그저 시골 교사로서 맡은 일에 충실하는 아버지 모 습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교직생활 절반 이상을 도서·벽지에 근무했으면서도 승진 기회를 번번히 마다한 李교사는 사재를 털어 학습자료를 제작하고 시골학교 환경개선 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그는 불우한 제자들의 학습준비물을 마련해 주는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오는 8월이면 천직으로 알고 살아 온 교직에서 정년을 맞는 李교사는 "명절이나 방학때 다같이 모일 기회가 되면 항상 이야기꽃의 결론은 교육문제"라며 "서로 갖고 있는 교수-학습 방법을 교환하고 토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른이 된후 돌아보면 학창시절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스승의 날'을 맞아 PC통신 하이텔과 천리안에는 학창시절 잊을 수 없는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꽃이 만발하고 있다. 지금은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 선생님을 찾는 사연이 있는가 하면, 철없던 자신을 이끌어주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도 올라있다. 사이버공간 사제의 정은 절절한데 실제 교단의 제자는 교사를 고발하고 폭행하는 등 갈수록 삭막해지기만 하니…. "나는 수업하기보다 땡땡이 치기 좋아했고 공부하기 보단 노래방가서 하루를 때우기가 일쑤였다. 수업시간엔 이상한 말로 수업을 차단 시키기도 했다. 조회시간이면 몰래 담넘어 분식집가서 노닥거리면서 말이다. 그러다 고2때 심혜숙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방과후 짙은 화장과 야한 옷을 입고 드나들어선 안되는 곳에 놀러 다녔다. 그러다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선생님은 내게 아무말도 없이 지나치셨다. 다음날 선생님은 "어제 너 나 봤니?" "아뇨" "그래 난 어제 너 봤는데" "..." "아마 니가 졸업후 그렇게 하고 다녔다면 난 너의 센스에 대해 칭찬했을 텐데. 지금 니 신분이 학생이니 널 칭찬할 수가 없구나. 너에게 칭찬을 못해주는 선생님이 미안하구나"란 말씀뿐이셨다. 그 말은 내게 정말로 어떠한 매보다도 아팠다……" 이용자 STREET7은 "그 사건 이후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게 됐다"며 "아직도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고 적었다. "선생님은 이야기 마술사였어요. 우리의 눈꺼풀이 무거워 질라치면 빙그레 웃으시며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주 재미있고 즐거웠어 요.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신걸까 신기했어요.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항상 이야기를 준비하셨대요" 이혜진씨는 수업시간 고비고비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중2 국어담당 여선생님에게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국어를 전공하고 있다는 그는 "선생님이 엄마였으면 좋겠다"라는 일기를 쓸 정도로 선생님 을 좋아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고1때 가출을 하는 등 '문제학생'이었다는 이해구씨는 '김용식'선생님을 이렇게 회고했다. "1학년 여름방학때 가출을 했다. 무작정 집을 나가 한달 정도 있다보니 학교가 그리웠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집안을 원망했다. 선생님은 사정을 알고 학교측에 선처를 호소했다. 선생님은 이 학생이 다시 이런 일을 저지르면 자신이 사표를 쓰고 책임지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정학당할 수 있었던 것이 근신으로 마무리됐다" 그후에도 학교에 적응을 잘 하게끔 선생님이 이끌어주었다는 그는 지금 성실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이랑씨는 "몸이 약한 나를 멋진 녀석이라며 칭찬해 주시고 스스로 자부심과 부족한 면을 수치심 없이 깨닫게 해 주셨던 선생님. 나의 가치와 능력을 처음 알아주신 선생님이야말로 스승이자 은인"이라며 "중1때 담임선생님이 요즘 부쩍 생각이 난다"고 했다.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사춘기시절을 회고하는 편지도 있었다. "선생님의 결혼식 장에서 축하드린다는 말 한마디 못해 죄송하다"는 김다희씨는 "선생님 정말 사랑해요"라며 행복을 기원했다. 또 김승현씨는 "선생님. 요즘 교직의 권위를 흔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개의치 마시고 소신껏 학생들을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과 선생님의 관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모두들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십시오. 이 시대를 살아가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라는 글을 띄웠다. 이밖에 '90년 전남 작은 섬 도촌에서 정치경제과목을 가르치셨던 이태영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문기보) '황지고교에서 지구과학을 담당했던 김춘기 선생님을 찾습니다. 0652-261-5777로 연락 주십시오'(김종래) '84년 서울 용산여중에서 수학을 가르치시던 최승호 선생님 뵙고 싶어요'(진유선)등 연락이 끊긴 선생님을 찾는 제자들도 있었다.
전북도교육청은 12일 인사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능력 있는 인사를 발탁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일선 학교장 공모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도교육청은 우선 8월말 정년 또는 명예퇴직으로 결원이 예상되는 전주·군산·익산지역 5∼6개 연구·시범학교의 학교장을 공개전형으로 선발할 방침이다. 선발은 교장자격증 소지자중 신청을 받아 본청 국·과장 등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학교경영 실적, 향후 운영계획 등을 분석해 적임자를 선발한다. 도교육청은 또 장학관과 장학사·연구사 등 전문직도 공개전형을 통해 선발할 방침이다. 특히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는 지원자의 보직경 력을 폐지하고 교육경력도 지금까지 15년 이상을 적용하던 것을 9년 으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이 제도는 7월초로 예정된 전문직 전형부터 적용된다.
서울시교육청은 관선이사와 교직원의 대립이 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학교법인 선덕학원 사태 해결을 위해 이번주내로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시교육청의 지도·감독 부적정 등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만큼 선덕학원 문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금주중으로 어떤 형태로든 해결 방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상임이사 퇴진이 학교 정상화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학교측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혀 상임이사의 교체는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서울시교위의 '선덕학원 지도감독에 관한 행정사무조사 소위원회'(위원장 閔庚賢)는 지난달 26일 시교위 임시회에 보고를 통해 "시교육청은 선덕학원에 대한 감사시 민원의 철회를 종용함으로써 보복감사라는 오해와 불신을 초래했으며 상임이사 수당 등이 과다 편성됐음에도 이에 대한 적절한 지도감독이 소홀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선덕학원 교직원 3백여명과 학부모 1천여명은 "올 1월13일자로 부임한 朴允培상임이사가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하고 부당하게 학사에 관여한다"며 朴이사의 교체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각계에 제출하는 등 현재까지도 관선이사진과 마찰을 빚고 있다.
'사랑의 매'와 '체벌'은 어떻게 구별될까.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宋基弘부장판사)는 11일 학생의 뺨을 때려 망막이 분리되는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서울 Y고 金모교사 (34)에게 상해죄를 적용, 벌금 3백만원을 선고하면서 허용 가능한 체벌의 범위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우선 체벌과 상해와의 연관성을 들었다. 체벌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다면 사랑의 매라고 볼 수 없다는 것. 둘째, 장소의 문제다. 여러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인 체벌을 가하는 것은 당사자의 인격을 침해하기 때문에 교육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교사의 심리상태. 흥분상태를 제어하지 못한 채 감정적인 체벌을 가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교사가 흥분하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학생의 뺨을 한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뺨을 때려 망막박리의 상해를 입혔다"며 "이같은 체벌이 피해자를 훈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이는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체벌"이라고 밝혔다. 한편 金교사는 지난해 5월 평소 무단결석이 잦던 피해학생이 "학교에 오기 싫어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답하자 뺨을 때려 망막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되자 교육상 필요한 체벌이었다며 항소했다.
개교 60주년을 맞은 춘천교대(총장 朴敏壽·사진)는 7일 교내 종합 학습관에서 金柱億동창회장, 金炳斗강원도교육감, 李起天강원도교위의장 등 각계 인사와 교직원·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朴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39년 춘천사범학교로 개교돼 12개 학과의 학부와 13개 전공과정의 대학원을 설치한 오늘의 춘천교대가 되기까지 세찬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면서 초등교사 양성에 매진해 왔다"며 "60년의 역사를 발판으로 청년 춘천교대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춘천교대는 기념식이 끝난 후 교내 예술관 입구에 동문 작곡가 金公善선생(춘천사범 4회)이 작곡한 '과수원 길'의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과수원 길 노래비'는 높이 2m 넓이 2.5m의 크기로 '과수원 길' 악보와 작곡가의 부조, 약력 등이 새겨져 있다. 학교측은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는 과수원 길이 춘천교대 동문에 의해 작곡됐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알려 자긍심을 갖게 하고 더욱 널리 불려지도록 하기 위해 동문과 음악계의 뜻 있는 분들이 노래비를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나는 교사 9년차다. 아침마다 나는 강을 건넌다. 발령 받고 지금까지 8년동안 통영에서 진주까지 하루 네 시간을 통근해 온 내게 강은 하나의 숙명이다. 실지로 내가 강을 보는 시간이란 진주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도동교까지의 5분 남짓한 거리지만 나는 통영에 닿을 때까지 강에 가슴을 담그고 흥건해진다. 봄철 까슬한 며칠을 제외하고 강은 안개를 뿜어낸다. 안개는 말하자면 강의 냄새나는 유혹이다. 나는 안개의 비릿한 내를 맡으면 비로소 강을 느낀다. 그 래서 강에 몸을 담그는 네 시간의 통근은 안개의 품처럼 몽롱한 편안함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하루 네 시간의 통근이 내겐 완벽한 자유였다. 더러운 시내버스 칸에 코를 박고도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시부모님 봉양에, 간단없이 찾아드는 시댁 손님들 치레에 지친 나는 시외버스 칸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웠다. 첫딸을 임신하고서도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는 단풍잎 한 잎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둘째 딸을 낳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 진주에서 통영까지의 네 시간 통근거리는 소롯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였다. 삶이란 얼마나 엄정한 것인가. 그건 만만하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숨겨진 법칙이다. 통근거리에 부담을 느끼면서 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 네 시간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책을 보면 속이 메슥거렸고, 가슴 저리게 좋아하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도노란 현기증을 일게 했다. 나는 어떻게든 통근시간을 참아내야 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의 교활한 속셈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겐 삶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강은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강을 벗어나서도 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는 매양 물컹한 심정이 되어 환 상이 갖는 편안함에 젖었다. 차에서 내리자 시작된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찬 기온이 스멀스멀 소매사이로 스며들었다. 동쪽으로 몸을 앉힌 교사라 그런지 교무실은 아직도 찬 기운이 마지막 저항군같이 낮게 포복하고 있었다. 산언저리의 바위틈에 진달래가 맨 살로 비에 젖었다. 봄은 분홍빛 그리움을 펼쳐 두고도 여전히 늦은 걸음이었다. 하염없이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200까지 혈압이 오르던 남편이 떠올랐다. IMF 된서리를 난장으로 맞고 있는 남편에게도 이 봄은 차가울 터였다. 태연하게 업무를 보고 있는 남선생님들을 쳐다보았다. 나태하고 일률적인 남선생들의 생활태도 때문에 교원과 결혼하지 않은 나의 선택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경제불황의 가파른 현실에도 속편한 그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나는 스스로의 이기심이 역겨워 진저리를 쳤다. 1교시를 마치고 오니 교무실이 부산했다. 신임 여교사가 서너명의 학생들을 불러다 놓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열정이 귀여웠던지 남선생님들까지 가세하여 분위기는 제법 살벌하기까지 했다. 저런 때가 있었지. 아이들의 일탈이 못내 안타까워 목울대 를 돋우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시간이 지나면 이해와 너그러움으로 변명되는 적당한 무관심의 시기가 찾아 올 테지. 나는 신임 여교사에게 미소를 보내며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김선생” 뜬금없이 찾아드는 편두통을 가라앉힐 요량으로 이마를 지압하고 있는데 옆자리 박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박선생보다 분홍빛 장미가 먼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이럴 수가! 혜진이였다. 장미를 안고 선 혜진이, 어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있었지만 워낙 오랜만의 연락이어서 설마 했었는데 역시 혜진이 였다. “이런 걸 뭘.” 용돈을 거의 다 썼으리라는 안쓰러움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내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혜진이에게 나는 옛날의 우정을 느꼈다. 그렇다. 내가 혜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거였다. 나는 그 애와 깔깔거리며 거리를 싸대고 다녔으며, 서점에서 진지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책을 골랐다. 때로는 초밥집에서 콜라를 마시는 혜진이 앞에서 거리낌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시집을 갔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바람에 친구들은 일체 내게 연락을 끊었다. 시집살이 몇 년만에 가까운 친구가 남아 있지 않던 내게 또래보다 조숙한 혜진이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혜진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도산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충무중학교에서 5년 꼬바기 근무했지만 경력 점수 외에는 아무런 부가점이 없었던 나는 그 게으름으로 해서 원하는 진주지역으로 전보되지 못했다. 그래서 엉겁결에 선택한 학교가 도산중학교였다. 통영에서는 그나마 가장 진주에 근접한 학교라는 이유에서였다. 혜진이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히말리야시다가 너른 팔로 껴안은 도산중학교는 그림 같은 학교였다. 교사 16명의 워낙 작은 학교여서 업무가 많아 피곤했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총명했고, 시내에서 다소 벗어난 학교 여서인지 심성도 맑았다. 도산 중학교 근무를 명령받고 첫 인사를 갔을 때 운동장을 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청소시간을 무엇보다 싫어하던 통영시내 학생들에 질려 있던 내게 방학중인데도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 입고 운동장을 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진주로 발령 나지않은 서운함을 단번에 씻어 주었다. 그 아이가 혜진이였다. 혜진이가 다시 내 눈 안에 확 들어온 것은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위대한 사람의 기념비’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고 있었다. 시방도 혜진이의 비문을 정확하게 왼다. “1951년 4월 23일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일을 하진 않았으나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딸을 통근시켰으며 그 통근 길에서 교통사고로 먼 길을 떠난 김영석씨 여기 잠들다. 살아서는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으나 죽어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학처럼 자유로이 산천을 희롱하길 여기에 빗돌을 세운다.” 이마가 유난히 향그러운 아이는 심상찮은 목소리로 비문을 읽었다. 김영석씨는 혜진이의 아버지였다. 유명한 소프라너로 불같은 사랑의 전설을 남겼느니, 빈민 구제로 일생을 보낸 수녀니, 삶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사막에서 나서 사막에서 죽었으니 하며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눈으로 자신들의 비문을 읽었다. 유명하다는 말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기준은 각자 틀려서 자유롭게 사고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여 간간이 짝을 대상으로 장난을 거는 유치한 비문들도 웃으며 받아 주었다. 그 많은 비문들 사이에서 혜진이의 비문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 건 단순히 그 아이에게서 받은 신선한 첫인상 때문이었을까. 내가 실명이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우리 아버지예요.” 하고 혜진이는 야무지게 대꾸했다. 혜진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애의 습작노트에 빼곡이 적힌 낱말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이다운 분노와 홀몸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날카로운 창날을 겨누고 일렬정렬 해 있었다. 나는 그런 혜진이 를 위해 글은 사랑이어야 함을 힘주어 말했다. 혜진이와 본격적인 얘기를 나눈 것은 3월말이 되어서였다. 퇴근길에 교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혜진이와 맞닥뜨린 것이다. “엄마가 돼지를 길러요.” 학교에서 걸어 40분이나 되는 동네에 산다는 혜진이는 트럭을 몰고 사료를 구하러 시내에 간 엄마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고성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두 대나 보내면서 혜진이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학처럼 비상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혜진이는 조롱 속에 가둬 두 고 있구나.” 혜진이는 잠시 내 눈을 응시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그 애의 작은 머리를 안아 주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때가 있다. 뭔가 그럴듯한 얘기를 해주었다고 가슴이 뿌듯해졌는데 아이들의 말간 눈을 곧바로 대하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 아, 내가 입술을 놀리고 있구나.’하는 자책.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잃어보지 못한 내가 혜진이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혜진이는 순순히 내 품안에 안겼다. 나는 그런 혜진이의 너그러움이 고마워서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혜진이에게 본격적인 창작 실기를 지도할 계획을 세웠다. 제법 글재주가 있다는 지숙이와 경량이를 함께 불렀다. 길동무가 있는 것이 혜진이에게 도움이 될 듯해서다. 방과후에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도록 했다. 먼지 앉은 보급용 도서 몇권과 쓰레기로 처리할 작정으로 보내온 기증도서 수십 권, 해묵은 교과서 몇 권으로 채워져 아무런 소용이 없던 도서실은 이제 의젓해졌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실에서 보냈다. 나중에는 점심을 먹기도 했고, 아이들의 생일 잔치를 조촐하게 마련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가 귀가가 늦어져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일도 있었다. 혜진이는 확실히 글재주가 있었다. 적은 재주는 없느니만 못하다고 비탄해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도 글이 느는 게 느껴 지는지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 편지글이나 교환일기 따위를 쓰고 나서 나는 세 아이들에게 작정대로 소설을 쓰자고 제안했다. 소설은 수필과는 달리 일정한 형식이 있는 글이고 분량도 만만찮아서 중3학년이 쓰기로는 역부족일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욕심을 낼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대산문화재단에서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소설을 공모했다. 나는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에게 대산문화재단이 제공하는 우대 조건은 참으로 훌륭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리라고 믿었다. 소설 얘기를 꺼내자 예상대로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일주일의 여유를 주며 이야깃거리를 구상해 오도록 했다. 노상 자연의 커다란 품에 안겨 지내는 아이들의 생활이 소재 찾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되리라 격려했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도저히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호소하던 아이들은 일주일 후 제각기 한 꾸러미씩 이야기를 꾸며 왔다. 역시 혜진이는 아버지 얘기를 쓰고 싶어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표현하고 나면 정복되지 않는 대상이란 없는 법이니까. 아이들과 소설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 아이들 모두 성적이 수위인데다 계속 문학이론을 공부해 왔으니 이론적인 무장은 그런대로 탄탄하리라고 믿었는데 막상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되자 머리 속의 이론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경량이가 2인칭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바람에 우리 모두는 웃을 수도 없는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문학적 지식만을 무작정 주입 시킨 나의 문학수업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였다. 원고지 60장이 목표였는데, 아예 첫 문장부터 내가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단락을 써 오면 내가 서너 단락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글을 전개시켰다. 그러다가 글이 중반에 이르게 되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글을 쓰는 부분이 점점 늘어났다. 때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글을 이끌어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이끌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뜻하지 않는 멋진 표현이 떠올라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눈이 시렸다. 그렇게 60여장의 원고가 완성되었고, 햇살 고운 오월 말 학교 앞 우체국에 원고를 부쳤다. 아이들은 스스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지만 나는 이 일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랬다. 아마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내 꿈에 대한 보상심리나 대리만족의 열망이 컸으리라. 그랬다. 아깝게 경량이는 탈락했지만 혜진이와 진숙이는 예선에 통과하여 겨울방학 문학캠프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캠프에서 또 한 번 백일장을 치르고 나면 고등학교 3년간을 무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당선 소식을 듣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진숙이 엄마가 해 온 떡을 우리들의 도서실에서 먹으며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혜진이 엄마는 고구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고구마 한 가마니를 트럭으로 실어 왔다. 나는 혜진이 엄마가 싣고 온 고구마를 받아 들며, 어둠 속에서 장미가 말라 가는 냄새를 맡으며 사흘이고 나흘이고 배를 깔고 누워서 눈물을 흘리던 나의 음습한 습작기와 이별했다. 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얼음조각보다 차갑고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던 그 서름 푸른 꿈을 곱게 접었다. 문학캠프에서 고등학교 학자금을 타는데는 실패했지만 혜진이와 진숙이는 50만원이란 적지 않은 상금을 타 왔고, 무엇보다 책으로만 보던 젊은 소설가들과 똑같이 작가에의 꿈을 키우는 전국의 어린 문재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귀한 추억을 담아 왔 다. 개학을 하고서도 아이들은 문학캠프에서의 추억을 자랑하느 라 달떠 있었다. 나는 혜진이를 데리고 갈비집으로 갔다. 뒷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혜진이는 한결 어른스러워 보이고 이마는 더욱 향그러웠다.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통영 시내에 있는 이모집에 얹혀 지내는 혜진이는 원래도 야윈 체질이지만 그새 많이 말라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아파 계속 물만 마셨다. “니가 잘 살아 주면 돼. 훗날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찾아 와도 된다. 너희가 잘 자라 주면 나는 행복해.” 그건 에누리없이 진심이었다. “한동안 힘들었어요. 갑작스레 돼지값이 내리는 바람에 엄마도 휘청거렸었구요. 생활이 엉망이니 괜히 운명이란 단어만 떠오르 고, 글 쓸 마음도 없어지고, 그래서 더욱 살기 싫어지고……” 혜진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언젠가 혜진이 엄마가 전화를 했었다. 보모일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여선생이 있으면 소개 해 달라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여기저기 알아 봤으나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연 짜증이 나고 이런 부담을 주는 혜진이 엄마가 뻔뻔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아, 나는 얼마나 이해타산 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가. 스스로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 사랑의 뿌리는 관심이나 희생의 수액과 닿아 있지 않았다. 지극히 공식적이고 메마른 산출의 논리가 어찌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며 사랑을 매음한다. 그런 나의 사랑이란 얼마나 교활한 수작이냐. 하루 네 시간의 통근을 단순히 밥벌이로 치부하고 나면 스스로 비참해질 것이다. 생존의 등딱지를 지고 기어가는 짱구벌레는 되고 싶지 않다는 교활한 자기 만족, 그것이 내가 말하는 사랑이냐. “그랬었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글도 생활도 자신이 없어지니 자연 선생님께 연락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루도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래 그렇단다. 열정 만한 재능은 없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숱한 문제들은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길이 보인단다. 글을 쓰는 일은 그 문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지. 이런 얘기는 니 문제에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태평스런 설교라고는 생각하지마. 어차피 고통은 자기 혼자만의 몫이어야 하니까. 삶이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지. 얼마나 숱한 고통을 주어야 순해질까 싶어. 그러나 내 경우 글을 쓰면 생활도 열심히 하게 되더라. 밥맛도 좋아지고. 창작은 배신의 기억만을 남긴 첫 사랑 같은 거야. 절대 딱지가 앉지 않는, 언제나 생살이 찢기는 상처, 그러나 수백 되의 피를 쏟아도 오히려 생활의 밀알이 되지. 삶이 엄정하다면 그걸 극복하는 길 또한 지독한 도전이어야 되지 않겠니?” “분풀이한답시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습작 노트를 다 태웠었어요. 습작노트를 태우는데 웬일인지 눈물이 났어요. 뭐 위대한 작가의 습작이라고, 우습죠? 그러나 이젠 달라졌어요. 글을 쓰기로 했어요. 그래 그런지 모의고사 성적도 한층 나아졌어요. 3학년 학기초에 자살 소동을 벌인 애가 있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미현이라구. 근데 미현이도 작가가 꿈이라지 뭐예요. 지도 죽기 전에 습작노트를 찢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우린 둘 다 교지 편집반에 들었는데, 교지 담당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선생님이에요.” 혜진이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혜진이에게 익은 고깃점을 올려 주며 동지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여고시절이란 그건 것이다. 사람살이에 별이 될 수 있는 시기, 나도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옥상에 올라가 친구와 별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남선생님이 유부남이란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 사랑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지사연하기도 했었다. 동성 친구에 대한 깊은 사랑을 키울 수 있는 때도 그때다. 남자애들은 죄다 몸껍데기만 가진 유치한 족속들이라고 폄하하고, 스스로의 순결함에 취해 함빡 웃는 것만으로 입안 가득 별을 깨물 수 있는 시기, 그래서 먼 훗날 흩어져 세상의 한가운데로 걸어 갈 때 깃발이 되는 추억을 쌓는 시간. 우리 혜진이도 꼭같은 길을 걷고 있구나. 그래서 니 주위가 이렇게 밝은 거구나. “친구랑 이번에 소월문학상에 응모해 보기로 했어요.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보다 확실히 하는 의미에서 뭔가 현실적인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워낙 시간이 부족해서 이 번엔 시를 한 번 써 봤어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것만은 의미로울거예요. 그런데 우리 작문선생님께서 미혜 글을 보고 너무 난해해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손을 볼 수가 없다고 고백했대요. 그래서 저는 내놓지도 못했어요. 불현듯 찾아와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선생님 도와주세요.” 그렇지. 글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기와 세계와의 맞대면, 그러나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힘든 일을 세상에 대해 면역이 약한 너희 혼자서 하려면 얼마나 막막할 겐가. 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지망했던 단짝 미경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당당히 등단했을 때 했다. 이래서 지방대다 싶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않았고 아무런 열의도 보이지 않는 교수들. 혜진이는 외롭다는 말을 거듭하며 습작시 세 편을 내놓았다. 안도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연어’와 ‘어느 난장이의 가방’ ‘염원’ 세 편이었다. 혜진이의 정신적 성장을 첫 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새 많이 컸구나. 힘자랄 때까지 혼자 하지 말아라. 금새 지 친다. 세상에 대한 불건강한 혐오감만 키우게 될 수도 있어. 내 힘이 부치면 주위에 문재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마.” 나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상추쌈을 싸는 혜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나는 미혜를 생각해서 시를 너무 난해하게 쓰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장 구체적인 세계의 형상화, 그것이 시아니던가. 지나친 감정 노출이나 곡예는 환상이나 허상이다. 그건 글을 비틀거리게 하고, 읽는 사람마저 휘청거리게 한다. 혜진이를 위해 노트를 한 권 사기로 했다. 노트를 고르며 어쩌면 나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에 손가락이 떨렸다. 현실의 한 높이 도움닫기, 나의 네 시간 통근의 노역마저 새로운 의미로 바꿔 줄 일, 어쩌면 그건 끝없는 배신에도 굴하 지 않는 습작열 일 지도 모르겠다. 혜진이가 삐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혜진이가 그 나이 때의 치기 만만함마저 갖추고 있는 건 정말 다행이다. 나는 아버지를 해방시키던 어른스러움과 삐삐 여기저기 스티커를 부친 단순한 쾌활함까지 고루 갖춘 혜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음주 퇴고한 원고를 가지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는 혜진이의 삐삐번호를 소중하게 접었다.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수업연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위원장 김덕중·아주대 총장)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국가발전 전략과 교육개혁' 토론회에서 김성재 새교위 상임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교육연한 축소방안을 제시했다. 김위원은 "아동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평생학습체제가 갖춰지면서 선진국은 이미 수업연한을 줄이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빨리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육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르면 현재 대부분 어린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초등 1학년 교육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해 초등교 입학연령을 5세로 낮추고 초등 1학년에서는 '유치원+초등 1년' 과정을 복합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유·초·중학과정을 합쳐 9학년제 의무·무상교육을 확대하고 특히 고교3년 과정 중 마지막 1년은 대학 기초과정인 교양학문을 중심 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사과정은 3년, 석사과정은 2년, 박사과정은 2∼3년으로 연한을 축소하되 수업 및 연구시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하고 졸업장, 학위와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나 학습을 받도록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위원은 "선진국은 대학을 졸업해도 19∼20세에 사회에 진출하지만 우리는 25∼29세에 사회인이 되는 후진적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취학연령을 낮추고 수업연한을 줄여 16세만 되면 고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위원은 이같은 방안을 제8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오는 2005년부터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1878년 평남 강서군 초리면에서 태어나 16세때 청일전쟁을 겪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을 키워 나갔다. 상경 후 밀러학당(구세학당) 보통부에 입학, 영어와 서양의 선진 과학문명을 접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담해 서당 선배 필대은과 독립협회 관서지회 설립에 참여해 자신의 정치 및 사회사상을 키워나갔다. 이때 평양지회 결성식이 열린 평양 쾌재정(快哉亭)에서 정부와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 명성을 얻었다. 1898년 이상재, 윤치호, 이승만 등과 서울 종로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해 새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민중의 자각을 외쳤으며 1899년 고향으로 돌아온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웠다. '점진공부와 수양을 계속해 민족의 힘을 기른다'는 교육목표를 설정한 점진학교는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초등과정 사립학교이며 남녀공학 학교였다. 1900년에는 미국에서 재미동포들의 생활혁명 운동에 전력했다. 도산은 교포들에게 진실과 협동 정신, 준법정신을 특히 강조했으며 대한 인공립협회(公立協會)를 만들고 공립신보(共立新報)를 창간해 동포의 조직과 지도에 힘썼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늑결(勒結)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하기 위해 이듬해 귀국했다. 1907년 윤치호·이 갑·양기탁 등 애국 지사들과 정치적 비밀 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또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평양과 대구에 출판기관인 태극서관(太極書館)을 건립했으며 도자기 회사를 세우는 등 산업의 진흥에도 힘썼다. 1909년 8월에는 김좌진, 최남선 등과 함께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 민족계몽운동 및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도산은 1909년 10월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거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일제에 체포됐으며 1911년 미국망명에 오른다. 19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한 도산은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창간했으며 1913년에는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했다. 흥사단은 민족대업의 기초작업을 위한 기관으로서 독립운동을 위한 실력을 양성하려는 조직이요, 운동이요, 또 그의 사상의 결정체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 직후 상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직을 맡아 독립운동 방략 작성, 연통제 수립 등을 실행했다. 1928년 상해에서 이동녕, 이시영,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고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제창했다.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폭탄사건으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4년을 복역한 후 대보산 송태산장(大寶山 松苔山莊)에 은거하면서 '동우회(同友會)'의 민족운동을 배후에서 조정했다.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다시 일본경찰에 붙잡혀 수감중, 같은 해 12월 병보석 출감됐으나 이듬해 3월 지병인 간경화로 경성대학병원에서 만60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부모들의 순간적인 방심에도 어린 아이들은 안전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지난 1년동안 접수된 전국 어린아이(만5세 까지) 사고자 1천1백93명에 대한 사례를 분석한 '영·유아의 가정내 안전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고당시 보호자가 주변에 있었던 경우가 79%나 됐다. 사고장소도 보통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방(침실)이나 거실에서 61%나 발생해 부모들의 주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관련 보호자의 안전의식·행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1주일 동안 10분 이상 집에 어린아이만 두고 한 번 이상 개인 일을 본 경우가 54%나 됐다. 또 어린아이를 목욕시키는 중에 자리를 비운 경우가 47%나 되는 등 보호자의 방심이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주요인으로 나타났다. 어린아이의 가정내 사고유형은 작은 물건이나 장난감, 놀이기구 등 생활용품으로 인한 것이 전체의 72%를 차지했고 계단이나 현관문, 욕실·화장실, 베란다, 창문 등 주택시설물에 의한 사고율도 28%나 됐다. 이러한 사고로 타박상, 골절상 등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1주 이상 치료를 받은 경우가 21%에 달했고 사망자도 1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망자 11명 가운데 만 2세까지의 어린아이가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불이나 침구류에 의한 질식사가 3명, 장난감 블록이나 구슬 등 작은 물건을 삼킨 경우가 2명, 침대와 벽사이에 끼어 질식사한 경우가 1명이었다. 또 옥상에서 추락 1명, 욕조에서 익사 1명, 식품에 의한 사망 1명 등 조금만 주의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 들이었다. 나머지 2명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성별 사고발생 빈도는 남아 사고율이 여아의 1.8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보원 소비자안전국 송병준 팀장은 "조사대상 주택의 45%가 사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보호자들의 세심한 주의와 함께 영유아의 안전을 고려한 표준 주택설계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BS 교육방송은 교육주간(10일∼16일)을 맞아 3부 연속기획 특집을 마련, 방송한다. 교육현장의 중심 또는 외곽에서 불고있는 새로운 바람의 현장을 취재한 TV 3부 연속기획 '21세기, 아름다운 교육공동체를 위하여'와 FM '교육발전 5개년 시안을 말한다'가 그 것. '21섹기…'는 제1부 달라지는 아이들-10대 문화 보고서, 학교밖 아이들-홈스쿨링, 제3부 변화하는 학교-새교육 공동체 등으로 구성됐다. 청소년의 변화와 학교현장에서 이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 모색, 우리나라 '홈스쿨링'의 현황과 교육현장의 문제점, 21세기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미리 점검해 보는 이 프로그램은 12일부터 14일까지 밤 10 시40분에 방송된다. EBS-FM도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교육발전 5개년 시안'을 10일부터 15일까지 오전 9시에 집중분석한다. 1부 교원정책(10,11일)은 '교권추락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의 시대·우수교사 확보가 시급하다' 는 주제로, 2부 새학교 문화창조는 가능한가(12,13일)는 '인간존중 교육풍토 조성,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공교육의 질 향상이 새학교 문화를 만든다'를 주제로, 3부 학교운영을 위한 학부모 참여(14,15일)는 '학부모의 교육행정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학부모단체와 교육혁신 운동'을 주제로 진행된다.
20년 이상 된 교사들이 교직을 그만 두려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모습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분들에게 있어 굳이 두둑한 퇴직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사이기에 곡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이가 지긋이 든 선생님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장은 학교를 관리하는 자로서 교장실이 있어 위엄을 갖추고 자신을 과시하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차라도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교감은 선생님들을 통솔하는 자로서 교무실을 장악하고 지시하는 권위와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원로교사들은 과다한 수업으로 하여 교무실 책상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위아래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며칠전 교감선생님 앞 탁자 위에 수박을 썰어놓고 젊은 교사 몇분이 담소하며 이른 수박을 들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수박을 핥고 있던 젊은 교사들 중 누구 한사람 나이 든 교사들에게 수박 한 조각 드시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17년간 교직에 머물며 흰머리가 조금씩 빛을 발하려 하고 있는 교사로서 그런 매정한 모습을 보고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듯 초라해 지겠지 하는 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교무실은 젊은 교사들의 천국이다. 휴게실에서 해야할 잡담도 교무실에서 두서없이 해대고 큰 소리로 떠들며 웃고 있는 모습에서 나이 든 교사들은 이제 나무랄 기력도 없이 서서히 주눅이 들어 뒷전으로 밀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 때문에 20여년을 하루같이 헌신해온 교사들이 이제 앞다투어 교직을 떠나려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행여 퇴직금 때문이라고 떠나가는 분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오래 묵은 포도주를 소중히 여기듯 떠날 분들이 떠나고 난 뒤 마지막까지 남아서 교단을 지키는 원로교사들이 당당하게 교직에 머물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와 위로가 신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논란과 관심을 모았던 교원대 교장연수에서 평가결과에 따라 탈락해 재연수받게된 연수자가 한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는 지난달말 교원대 교원연수원이 제출한 99년 1기 교장 자격연수자 평가결과를 심사한 결과 4백72명 전원이 연수과정을 이수해 교장자격을 취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6주간의 연수과정에서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자퇴한 8명에 대해서는 본인이 희망할 경우 재연수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교육부 관계자는 밝혔다. 그동안 3단계 연수방식과(시·도연수, 산업체 위탁연수, 교원대연수) 하위평가 10% 해당자에 대한 재연수 제도가 도입된 후 연수자들은 '평가결과에 따른 재연수' 문제에 크게 관심을 보여왔다. 교원대는 4월 30일 끝난 1기연수에 이어 12월24일까지 아홉차례에 걸쳐 4천5백52명을 대상으로 교장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다.
기획예산위가 주도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안이 조정과정에서 심한 몸살을 앓고있다. 특히 대학 구조조정안중 교원 양성체제 개편안에 대해 해당 대학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학구조조정안중 교원양성체제 개편안에 따르면 전국의 11개 국립교대중 공주교대와 제주교대, 진주교대 등 3개대학은 인근 국립사재와 통합하되 이중 공주·제주교대는 가까운 시일내에, 진주교대는 장기적으로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 또 교원대는 학부를 없애는 대신 대학원과 교원 연수체계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사대의 경우, 중등교사 과잉 양성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수요가 적은 과목부터 정원을 축소하거나 학과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이밖에 국립 전문대를 대부분 민간에 불하하고 국립 산업대 역시 3개만 남기고 민영화하며 방송대를 책임운영기관화할 방침이다. 기획예산위는 각 대학별로 자체 구조조정 계획서를 6월말까지 제출받아 경영진단 평가에 반영한 뒤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시행할 계획이다. 기획예산위는 이에앞서 이달 중순경 대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해당 대학들의 반발과 동요가 심각한 실정이다. 공주교대의 경우, 학생들은 교·사대 통합방안에 반발, 3일부터 무기한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대학의 구조조정이란 미명하게 중등교사 양성체계인 사범대 난립문제를 교·사대 통폐합으로 만회하려는 것은 초등교육의 전문성이나 특수성을 무시한 발상"이라며 이를 즉각 철회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