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도에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1998년에 태어난 ‘IMF 둥이’들이다. 경제 한파 속에 출생한 IMF 둥이가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느끼는 것은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한 혼란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중앙정부나 시·도 교육청의 기준 및 지침에 의거해 운영되던 경직성을 탈피해 단위학교 차원에서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특히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교과군과 학년군, 집중이수제 등을 도입해 운영하는 것을 큰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교과(군)별 수업시수 증감을 허용해 교과 이수시기와 수업시수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단위 학교에 부여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와 더불어 학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 줌과 동시에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한 학습 강화 등도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특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된 학교현장은 어떤가? 학교현장에서 혼란이 있는 부분은 교과군에서 학기당 8개 교과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단위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 없고,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게 한 강제 규정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큰
2011-04-04 14:51본교는 매년 4월의 첫 주 24명의 교생 선생님들을 맞아 교생 실습을 시작한다. 올해도 교생 선생님들을 맞이했는데, 전원 여자 교생들이다. 필자는 이 점과 연관해 기회 있을 때마다 학교 당국에 건의하곤 했다. 남자들도 교생 실습 등록을 받자는 것이다. 학교의 대답은 간결하다. 안 될 일이야 전혀 없지만 관례상 여자 교생을 받아 온 데다, 관례를 바꾸려 해도 요즘 남자 교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참 무색해진다. 일이 이리 되면 논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 이런 교직의 강한 여초(女超) 현상이 일어났을까. 갈수록 여성들에게 교직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싶다. 직업에 있어서 성적 차별이 없고(사실상 심심찮게 남교사가 역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안정적 느낌을 주기 때문인가 한다. 근 4년여 간 본교도 남교사를 거의 선발하지 못했다. 남성의 경우 여성에 비해 응시율도 저조하며, 전형 과정의 비교 경쟁력 측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사범대학의 여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는 데다, 비사범대의 경우에도 남성들은 여성에 밀려 교직 이수 조건을 갖출 기회조차도 요원하단다. 게다가 군 입대니 제대 후 복학이니 하며 덤벙대다 보면, 집중력 측면에서 여성들의 상대
2011-04-04 14:49최근 좀 독특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한국 청소년들이 시민의식 관련 ‘지식’은 38개국 중 3위인데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 즉 더불어 살기 능력은 35위라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0 한국 청소년 핵심역량 진단조사’ 보고서가 그것이다. 더불어 살기와 관련된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는데 실행 능력은 최하위라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그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핵심 이유 중의 하나는 더불어 살기라는 것이 체험을 통해 몸으로 익히고, 그 역량을 기름으로써 몸에 배야 하는 능력이지 지식을 배운다고 해서 저절로 발휘되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더불어 사는 능력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학교나 학부모 모두 아이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과거 아이들에 비해 어울리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혹시 길러준다고 하면서 그러한 능력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
2011-04-04 14:40지난해에는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북한 도발로 우리 사회가 뒤흔들렸다. 2006년과 2009년의 연이은 북한 핵실험은 한국의 안보역량에 근본적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면서 북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66년간 계속되어온 개인 숭배적 전체주의를 봉건적 3대 세습체제로 완성 짓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에 있지 않았다. 우리 자신의 문제였다. 누가 보더라도 북한의 소행이 뻔한 것이고 모든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북한의 군사공격이었던 천안함 격침에 대해 국민 상당수가 그 사실을 부정했다. 작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120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36%의 우리 국민은 천안함 격침사건에 대한 정부 조사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한산 어뢰까지 발견되고 전 세계가 나서서 북한을 규탄했지만 정작 우리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상황에 있다. 지금도 지도층이고 엘리트라는 상당수가 북한이 한 짓이 아니라며 국제사회에 떠벌리고 다니고 한국정부의 자작극이거나 오폭이라 강변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대한민국에 대한 기본 인식의 부재와 왜곡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지난 66년간 만들어온 가혹한 문명 파괴적 체제에…
2011-04-04 14:38아침 일찍 나서는 길에 마주한 하늘은 온통 붉은 잔치 놀음이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든 해는 빨갛다 못 해 짙은 자주 빛이다. 그 아래 하얀 물살을 가르고 달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길게 굽어 있는 해안 길을 걷는 게 요즘 필자의 새로운 일과 시작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뜻밖의 임지(臨地)는 설렘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새로운 환경의 적응력에 대한 긴장의 연속이다. 이래저래 어지러이 떠오르는 상념을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 속에 묻어두고, 송림(松林)이 잘 정돈되어 있는 도립대학 통학로로 접어들면 햇빛이 흐르는 솔잎 사이로 새어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이 출근길의 무게를 덜어준다. 교원인사의 한 종류인 전보는 희망지역을 제1, 제2, 기타 순으로 선택해야 한다. 보통 제1은 생활근거지에 신청 하나, 자리가 없으면 제2, 기타로 임지가 정해지는데, 이미 전 순위에 밀리면 후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가는 놈 붙잡지 않고 오는 이 살갑지 않은 것이 인사전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다 우연히도 옆 학교로 오게 된 동료교사가 있어 인사차 갔더니 객지에서 고향 친구 만나듯 반긴다. 거쳐는 정했으되 뒤늦은 나이에 조석을 에우는 일이 만만치 않
2011-03-31 11:50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를 흔히 포스트모던 사회라고도 한다. 그 이전의 사회를 근대사회라고 하며, 그 이전의 사회를 전근대 사회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사회는 전근대사회와 근대사회를 거쳐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행된 것이다. 그러면 서로 다른 이러한 사회의 특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전근대사회는 한마디로 마술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사회이다. 즉, 전근대사회의 사람들은 세계가 정령(精靈)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옛날 사람들은 숲에는 숲의 신이, 별이 빛나는 하늘에는 신 혹은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런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악령’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마술적인 관념이 일상생활의 모든 곳에 내재되어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던 사회가 전근대사회이다. 반면에 근대사회는 한마디로 이성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사회이다. 모더니즘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근대 합리주의가 가장 먼저 해체해 버린 것이 이러한 마술적 세계관이었다. 모더니즘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성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명함으로써 ‘탈(脫)마술화’를 추진하였다. 따라서 숲이나 하늘 그리고 인간 등은 더 이상 신비적인
2011-03-28 11:35
승동표 선생님은 필자가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미술에 무던히도 소질이 없는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고마운 분이다. “나는 너희들을 모두 미술가로 키우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선생님은 미술에 소질 있는 학생은 그 소질을 더욱 키우고, 애를 써도 소질이 없는 학생은 이 시간에 성실성을 기르면 된다고 가르치셨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그림 실력이 모자란 학생을 꾸짖지 않으셨고 그 대신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나 뒤처리를 잘 못하는 학생, 불성실한 학생,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따끔한 벌을 내리시곤 했다. 선생님의 벌(罰)은 마치 벌(蜂)에 쏘이는 것처럼 따끔하기로 유명해 학생들 사이에서는 호박벌 선생님이라고 통했다. 나는 호박벌에 쏘인 것 같은 따끔한 벌을 한 번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내 부족한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남궁이가 그린 그림은 미워. 그러나 아주 열심히 했어. 좋아!”라고 칭찬을 해 주시곤 했다. 선생님은 미술만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성, 열성, 근면, 착실한 인성을 미술시간에 겸해 가르치신 수준 높은 인성 교육자이셨던 것이다. 그림에는 워
2011-03-24 10:16언젠가 소로우의 ‘월든’을 읽던 필자는 자연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가까운 시골에 작은 텃밭을 구입한 적이 있다. 퇴직을 하면 시골에 들어가 밭을 일구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틈틈이 옥수수, 감자, 아욱, 완두콩, 무 등을 심고 향기로운 땀을 흘렸다. 그 결과 내 식탁은 사계절 푸르른 행복이 넘쳤다. 식목일 때쯤인가. 나는 또 나무시장에 가서 감나무, 밤나무, 복숭아, 호두, 홍매화 등을 몇 그루씩을 사서 심었다. 다행히 나무들은 고맙게도 해마다 키를 올렸다. 바라만 봐도 주렁주렁 달릴 열매에 나는 ‘타샤의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초식동물의 여유로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 나간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누군가가 나무의 우듬지를 싹둑싹둑 잘라놓았던 것이다. 후투티의 머리깃처럼 멋지게 자라던 나무가 졸지에 볼썽사나운 꼴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밭 아래쪽에서 일하던 촌부에게 누가 내 나무들을 저 모양으로 만들었는가 물어보았다. 뜻밖에 그는 자신이 그랬노라 했다. 그러니까 그가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그냥 심어놓기만 하고 내버려 두면 나무가 엉망이 된다는 얘기였다. 자고로 나무란 가지가 웃자랄 때 쳐주기를 잘해
2011-03-23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