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깨나 읽은 사람치고 소설가 조정래를 모르는 이도 있을까? 이미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 조정래 대하소설을 다 읽어본 나로선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 독서는 정해진 순서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저자는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인간연습’에서 윤혁의 생각을 통해 “사회를 병들고 망치게 하는 가장 큰 두 집단이 정치권이고 경제권이”라 진단한 바 있다. 이미 ‘허수아비춤’에 대한 예고편을 내보냈던 셈이다. ‘허수아비춤’은 특히 경제 문제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경제’ 하면 금세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인 재벌의 그 살벌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일단은 조정래 소설의 지평확대라 할만하여 ‘왕팬’인 나로선 더없이 반갑다. 재벌은 일반대중에게 부러움과 질시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 존재다. 서민인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부럽고, 비자금·정리해고·불법상속 등 잊어버릴만하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에 질시하는 것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박재우·강기준·윤성훈이다. 그 대척점에 전인욱과 허민이 있다. 박재우 등은 재계서열 2위 일광그룹 남 회장의 친위조직 ‘문화개척센터’ 핵심 3인방이다. 출세욕으로 뚤뚤 뭉친 그들이 근무하는 일광그룹의 문화개척
2011-11-04 16:56김종길 시인의 견해를 적극 지지하며 아마 많은 독자가 이육사 시인의 ‘광야’를 읽었을 것이다.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국민 대다수가 배워 아주 친숙한 육사의 대표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혹시 그 시를 읽으면서 시의 첫 연에서 뭔가 꺼림직한 느낌을 받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는 분명히 첫 연을 읽으며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어색했던 느낌을 실로 오랜만에 김종길 시인(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의 평론집을 읽으며 비로소 그 까닭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이 시의 그 꺼림직한 부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 시를 읽는 독자와, 학교에서 그 시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참고가 될 것 같아서 김 시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그 분의 탁월한 해석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럼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시 전문을 옮겨보기로 한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날릴 때에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2011-11-01 17:58가을이 여물고 있다. 파란 하늘빛이 점점이 박혀 있는 섬 사이에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다. 남면 평산마을에서 시작되는 바래길! 남해사람에겐 흔히 갱번가는 길이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해변에서 해초와 고둥을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잰 걸음을 재촉하였던 아낙네들의 한이 서린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이 현대인들에겐 건강의 의미로 새로이 다가서고 있다. 비탈진 오르막을 오르며 산언덕을 본다. 계절의 결실만큼 들국화와 구절초 꽃이 가을날을 환히 밝힌다. 오밀조밀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는 가을 배추와 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누런 늙은 호박이 길 높이의 슬레이트 지붕에 가을 햇볕을 쬐며 튼실해지고 있다. 잎은 시든지 오래지만, 아직 줄기는 생명의 흐름이 억세게 묻어나고 있다. 경운기나 지게가 지나는 좁은 길! 길섶의 풀밭에는 인기척에 놀라 포르르 뛰는 메뚜기들의 날개 부딪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그리고 풀이 마르는 향과 진한 황토밭에 숨겨진 고구마 냄새가 가을날 향수를 몰고 온다. 바다를 배경으로 붉은 속살을 드러낸 황토밭 여기저기에 흩어진 고구마들이 햇볕에 마르면서 냄새를 피워올리고 있다. 그리고 저만치 밭의 중간에는 꽤 연세가 들어 보이는 노부부가 고구마 넝쿨
2011-10-31 14:25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가 100만부 판매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책은 출간 8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며 에세이 부문 최단기 100만 부 돌파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최근 5년간 100만 부 넘게 팔린 책으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정도가 유일하다. 따라서 비소설류인 이 책이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 부 고지를 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흔히 청춘은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젊음은 꿈을 가질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마냥 부러워한다. 젊었는데 무엇이 두려우냐고 치부한다. 하지만 그들의 실상은 정반대다. 오히려 젊었기 때문에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한다. 마냥 꿈에 부풀어 있는 듯하지만 정작 매일 밤 뜬 눈으로 밤을 밝히고 있다. 스펙을 쌓고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일이 잘 안 풀린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부족한 것인지, 그 아픔은 끝이 없다. 우리 사회는 청춘들이 힘들어하는데 등을 도닥거려 준 적이 없다. 공감하고 아파하는 기성세대도 없었다. 그들을 토닥이며 위로와 조언을 건네주고, 용기를 북돋아줄 멘토가 없다. 이 책이 많이 팔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1-10-29 10:39김종길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 오늘은 노시인의 시집을 읽어보기로 한다. 김종길 시인이다. 시인은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지낸 영문학자이며 시인이다. 2008년 시집이 출판되자마자 읽었던 시집인데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읽었다. 시인은 1926년생이니 올해나이 여든여섯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나이 83세이던 2008년 출간되었다. 우리 문단에도 이제 80대의 현역이 여러 분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고령에도 꾸준하게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원로시인들을 보면 후배시인들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격려를 받게 되고 또한 새삼 창작에 대한 자극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작품이 노년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는 젊음과 패기로써만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체험에서 우러나는 지혜가 녹아있어야 감동적인 시가 쓰여 진다고 생각한다. 이 시집의 발문에서 평론가 유종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체의 허장성세를 거부하고 교언영색을 멀리한 채 감정과 어사의 절제를 도모하여 정갈하면서 과부족이 없는 은은한 여운과 원숙한 고담의 경지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고전적 간결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경이
2011-10-23 11:43호수는 그 속에 담긴 풍경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어머, 물 위에 비친 단풍 좀 봐." "와! 정말 멋지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감탄사부터 나온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멋진 풍경이 담긴 호수에 풍덩 담글 수 있는 여행지가 충북 단양이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청정지역 단양. 산수의 고장이라 가을철 여행지로 제격이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도담삼봉과 구담봉, 자연의 신비 고수동굴과 온달동굴, 맑은 물이 흐르는 선암계곡과 남천계곡, 황토육쪽마늘과 드라마세트장, 루어낚시와 패러·행글라이딩 등 한 번 다녀가면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들이 많다. 단양은 예나 지금이나 풍경이 아름답다. 정도전, 이황, 이지함, 김홍도, 정선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거나 화폭에 담았다. '울고 왔다 울면서 간다(올 때는 길이 험해서 울며 왔는데 나중에는 정이 깊어져 헤어질 때 울고 간다는 뜻)'는 말이 이곳의 후한 인심을 증명한다. 옛날 그대로인 인심,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교통편이 단양을 고급 여행지로 만들었다. 울고 왔다 울며 가는 산수와 인정의 고장 '단양' 물 위에 떠 있는 도담삼봉과 무지개 모양의 석문, 거북을 닮은 구담봉과 죽순처럼…
2011-10-19 11:28'냉정, 신선함, 신비로움, 미지의 행복'을 상징하는 파란색 블루(blue). 영덕의 동해 바닷가에 천천히 걷거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란색을 만끽할 수 있는 블루로드(Blue Road)가 있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 선정된 블루로드(http://blueroad.yd.go.kr)는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에서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50여km 거리의 명품 산책길이다. 바다와 길, 그리고 삶. 사색을 위한 푸른길 블루로드가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A, B, C 3개의 코스에 의미 있는 이름이 주어졌다. 강구항에서 풍력발전단지를 거쳐 해맞이공원까지 약 17.5㎞ 거리는 '해(垓)와 바람의 길', 해맞이공원에서 경정리 대게원조마을을 거쳐 축산항까지 약 15㎞ 거리는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 축산항에서 괴시리전통마을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약 17.5㎞ 거리는 '역사와 함께 사색하는 길'. 블루로드는 철저히 도보 여행자를 위한 길이다.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군인들만 출입하던 초소를 이은 길로 해맞이공원, 풍력발전단지, 대게원조마을, 축산항, 괴시리마을 등 풍광을 자랑하는 볼거리들이 해안
2011-10-18 22:42광교 저수지의 가을 풍경 이야기 오늘은 일요일. 어제 저녁부터 내린 가을비로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이제조금 더 지나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부지런히 단풍 구경을 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 광교(光敎)저수지를 찾았다. 수원 사람이라면 멀리 갈 필요 없이 광교저수지 수변 산책로를 걸으면 단풍 구경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아직 단풍이 절정은 아닌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그런지 단풍잎이 물들기도 전에 오그라 붙은 것도 보인다. 승용차를 저수지 윗쪽 고속도로 아래에 주차시켰다. 광교산 능선 아래 저수지를 둑쪽으로 내려오면서 둘러 보는 것이다. 등산객들을 살펴 본다. 단체 등산객도 보이고 가족, 부부, 친구, 나홀로 순이다. 단풍이 보이는 곳마다 걸음을 멈추고 셔텨를 눌러댄다. 제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붉은색의 당단풍이다. 그 다음이 분홍색 단풍. 생강나무의 노란색 단풍은 은은한 느낌을준다. 오른쪽 산 기슭을 보니 단풍이 지천으로 깔려 굴러다닌다. 저수지 물과 단풍이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곳곳이 단풍 터널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힘들면 쉬어 갈 수도 있다.몇 몇 분들은 삼림욕 벤치에 누워 낮잠을 즐긴다. 어느 노부
2011-10-17 10:33올해는 인도 시인 라빈드라낫드 타고르 탄생 150주년이다. 지난 5월 7일 그의 탄생일을 맞아 서울 대학로에서는 양국 고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흉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왜 외국 시인 흉상이 서울에서 제막되었는가. 그것은 일제 강점기 노벨상 수상작가인 타고르가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위로를 보인 두 편의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 두 편의 시를 함께 읽고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아 독자의 이해를 도울 필요가 있다. 필자는 ‘동방의 등불’이란 타고르 시는 잘 알고 있으나 한국에 대해 썼다는 ‘패자의 노래’는 읽은 적이 없다. 그 내용이 몹시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 그 작품이 쓰인 경위와 영어 원본을 찾을 수 있었다. 타고르는 인도 동북부 콜카타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인도는 물론 전 세계로부터 시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서, 같은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쓴 우리나라에 대한 두 편의 시가 있어 우리는 한결 친밀하게 느끼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 두 편의 시를 소개하고 몇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을 짚어보기로 하겠다. 시기상으로 먼저 발표한
2011-10-15 15:31다시 TV에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다시’라고 말한 것은 2009년 ‘선덕여왕’(MBC) · ‘천추태후’(KBS) · ‘자명고’(SBS) 등이 ‘범람’했지만, MBC ‘동이’를 끝으로 지난 해 하반기엔 ‘근초고왕’(KBS)만이 새롭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올해 하반기 들어선 ‘무사 백동수’ · ‘공주의 남자’ · ‘계백’ · ‘광개토태왕’ · ‘뿌리깊은 나무’ 등이 방송되었거나 되고 있는 중이다. 금요일만 빼곤 일주일 내내 사극과 만날 수 있게된 것이다. 시청자들로선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할 수 있지만, 방송사 간 사극의 시청률 경쟁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10% 전후의 그만그만한 시청률에서 보듯 ‘제 살 뜯어먹기’가 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정통 대하사극보다 소위 퓨전 등 야사극 따위가 재미를 무기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문제다. 물론 드라마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청소년들에게까지 노출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는 있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지나친 사실(史實) 왜곡으로 인한 혼란이 유해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6일 종영된 KBS ‘공주의 남자’ 24부작도 그런 사극 중 하나이
2011-10-11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