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생태사진가 이 새를 보신 적이 있나요? 1996년 동북아 5개국에 일시에 이상한 벽보 하나가 배포됐다. 백로 비슷한 몸체에, 부리가 검은 숟가락처럼 생긴 새의 그림과 제목을 영어로 큼지막하게 'Have you ever seen this bird before?'라고 쓴 벽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참가한 5개국의 국어로 같은 내용의 문구를 함께 적어 놓았다. 문자는 달라도 내용은 '이 새를 보신 적이 있나요?'라는 의미다. 여기서 '이 새'는 저어새.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타이완, 일본, 베트남의 조류관련 단체들이 공동으로 저어새의 생존 숫자를 밝히려고 만든 일종의 '조류 센서스' 포스터인 셈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집계한 저어새 수는 613마리였다. 이것이 이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저어새의 전부다.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재관리청은 저어새를 천연기념물 제205호로, 그리고 환경부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조류보호회의(ICBP)가 적색목록에 등재, 국제보호조로 분류한, 한마디로 희귀종 가운데 희귀종인 새다. 주걱 모양의 긴 부리가 특징 저어새는 황새목 저어새과에 속하며 긴 검은 색 부리에 하얀 깃털과 주걱처럼 길쭉하게
2006-07-01 09:00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이민족에 의해 다시 혼란 속으로 통일 한(漢)제국 이래 삼국시대를 거쳐 다시 중국을 통일한 사마염(司馬炎)이 국호를 진(晋)이라 한 이유는, 물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중국사를 통해서 나온 국호 가운데 춘추시대 제후국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였던 '진(晋)'의 유사 국호라도 붙이는 것이 정통성 확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강남에서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었던 오(吳)나라도 통합함으로써(서기 280년)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지만 이번에는 진나라[西晋]도 이민족인 흉노에게 멸망당하여 중국은 기나긴 혼란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는데, 무제 사마염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일가친족들을 제후로 봉하여 영지로 보내 권력을 분산시켜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무제가 죽자 처음부터 진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를 '팔왕의 난'이라 하는데, 10년 사이에 실로 천문학적인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이 시대야말로 중국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으며,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장이었다. 북적(北狄)은 동이(東夷
2006-07-01 09:00
*임청각 전경* 최효찬 | 경향신문 기자 "내 자식을 왜놈 종이 되게 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다보면 사람의 욕심이 끝없음에 절망한다. 땅을 원하는 대로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하지만 욕심으로 인해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그렇다면 명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재산인가 자긍심인가. 과연 명가의 자존심은 수천억대의 재산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일까. 명가에서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다름 아닌 자긍심이다. 아마도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버리는 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억만금을 상속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고성 이씨 석주 이상룡(1858~1932) 가문은 서슬 퍼런 일제치하에서 일부 명문가 자녀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명가의 전통을 잇고자 할 때도 척박하고 살벌한 간도에서 민족의 고난을 함께 해왔다. 석주는 삭풍이 몰아치던 1911년 1월 5일, 52세에 전 가족을 데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공자, 맹자는 시렁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 망명의 변이었고, 나라를 찾기 전에는 돌
2006-07-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