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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활기찬 역동성과 고즈넉한 전통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나라, 베트남 

 

신혼여행으로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에 가는 것이 여행 버킷리스트였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19로 인해 제주도를 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슬란드나 제주도나 같은 섬이라는 위안으로 넘겨보려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현재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 처음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갔던 베트남 여행이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파워 J’ 성향인 둘이 6박 7일 동안 ‘다낭-호찌민-무이네-나트랑-다낭’을 거치는 그야말로 지리과 답사 같은 여행이었다! 그중에서도 무이네는 베트남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었다. 다시금 그 추억에 빠져보려 한다.
 

모래 언덕이 빚어낸 베트남 속 숨은 낙원, 무이네 
우리가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기대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공통으로 나올 수 있는 대답 중 하나는 이국적인 풍경일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최대한 탈출하고 싶은 바쁜 우리에게 낯선 경관은 해방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경관은 무엇일까?

 

바로 사막이라고 생각한다. 장엄한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경이로움에 취해 절로 숙연해지는 곳. 고요한 적막 속에서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막은 너무나 매력적인 공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깝게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중국 또는 몽골이겠지만, 사막과 비슷한 체험을 가성비 있게 할 수 있는 곳이 베트남에도 있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여행지, ‘무이네’이다. 

 

 

무이네는 베트남 남부 판티엣 부근의 해변마을로, 베트남의 하와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 있는 휴양지이다. 이곳은 바람이 강하여 거칠고 높은 파도로 유명해 아시아의 손꼽히는 서핑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강한 바람이 또 다른 선물을 무이네에게 주었으니,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안사구는 해안가에 쌓인 모래가 바람에 의해 날려 형성된 거대한 모래 언덕이다. 무이네는 해안에서 불어오는 탁월풍1이 연중 강하게 불어, 큰 규모의 해안사구가 바다와 어울려 매력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끔 매체에서 무이네를 사막으로 칭하는 경우도 있다. 무이네의 해안사구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마치 사막처럼 보여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무이네로 바로 갈 수 있는 직항편은 없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찌민과 나트랑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어느 도시에서 출발하든 자동차로 4시간 정도 소요되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나와 아내는 고민 끝에, 호찌민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고 효율적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찌민에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오후 7시에 예약한 슬리핑 버스에 탑승했다. 완전하게 편한 구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워서 이동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는데 어두컴컴할 줄만 알았던 베트남 농촌풍경에 이따금씩 불빛이 빛나는 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농작물이 있는 밭에 불을 켜놓은 것이었다. 대체 왜 밤에 불을 켜놓았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바로 ‘용과밭’이었다. 조명을 활용하면 용과가 비수기에도 열매를 맺어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밭에 조명을 환하게 켜놓는 것이라고 한다. 버스로 6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무이네에 도착해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 수 있었다. 

 

 

모래와 바다가 만나는 곳, 무이네의 해안사구 
무이네는 ‘화이트 샌드 듄’과 ‘레드 샌드 듄’을 함께 둘러보는 지프투어가 일반적이다. 무이네 시내와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에, 투어 신청을 통해 가이드가 운전하는 지프를 타고 반나절 투어를 하는 방식이 무이네 여행의 정석이다. 화이트 샌드 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예약한 지프투어의 시작은 새벽 4시 반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게 새벽 1시였으니, 그야말로 눈을 감았다 뜬 수준이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생각보다 승차감이 좋지 않은 지프 안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휘청거리기를 3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서도 멀리 희미하게 하얀 모래 언덕이 마치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 샌드 듄은 워낙 넓어 ATV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생각보다 정말 빠르게 모래 위를 질주하는데, 웬만한 놀이기구 못지않았다. 사구 정상에는 새벽녘이라 다소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떠오르는 태양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모여 있었다. 우리 또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각자 소원을 빌었고, 일출을 맞으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아래쪽 호수와 어우러진 화이트 샌드 듄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은 정말 사막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흰 모래의 끝에 자리한 호수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매혹적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당겼다. 해안사구의 모래는 바람에 날려 쌓인 것이기 때문에, 입자가 매우 곱고 작아 부드럽다. 마치 사막의 모래가 포근히 감싸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한참을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다 아쉬운 마음을 간신히 달래며 모래 언덕을 내려올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소인 레드 샌드 듄으로 이동하는 도중, 가이드가 추천하는 장소에 잠깐씩 세워 옛스런 지프와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길이 남을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장소였던 화이트 샌드 듄이 하얀색 모래로 이루어진 해안사구라면, 레드 샌드 듄은 특이하게 적색을 띠는 모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슷한 지역에 있는 사구임에도 이렇게 색깔이 다르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규모는 앞선 사구보다 작지만, 특유의 빨간색 모래가 일몰과 만날 때면 감탄을 자아낸다고 한다.

 

특히 푸른 바다와 맞닿은 모래가 정말 이색적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들어선 붉은 모래 언덕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레드 샌드 듄에서는 모래 위에서 타는 썰매인 샌드보드 또한 즐길 수 있다. 현지에 사는 아이들이 장판을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그보다 더 빠르게 동심의 세계로 어느덧 빠져든다.

 

 

현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피싱 빌리지와 신비로운 요정의 샘 
무이네 지프투어에는 현지 어촌마을에 들르는 일정도 포함된다. 피싱 빌리지라 불리는 이곳은 특이하게 원통의 대야처럼 생긴 배들이 바다 위에 무수히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둥근 바구니 모양의 베트남 전통 배로 ‘투옌퉁’ 또는 ‘까이퉁’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길고 가늘게 자른 대나무를 엮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그 위에 기름을 발라 만드는 배이지만, 지금은 편의상 플라스틱으로 만든 투옌퉁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전진도 힘들 것 같은, 배라기 보다는 놀이기구일 것만 같은 배가 무수히 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에는 항구가 건설되지 않은 곳이 많다고 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베트남 어촌마을에서는 큰 배의 접안이 불가능하여, 큰 배에서 잡은 물고기를 육지로 옮기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생선 운반선인 투옌퉁을 쉽게 볼 수 있다. 


수없이 많은 투옌퉁이 별처럼 바다에 박혀 있는 피싱 빌리지의 해안가에는 투옌퉁으로 운반한 해산물들을 거래하는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거래된 해산물들이 주변 식당으로 운반되며, 무이네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보케 거리의 맛집들 또한 이곳에서 해산물을 공급받는다고 한다. 피싱 빌리지를 둘러보면서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여러 갑각류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지프투어를 하면서 해산물을 살 수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요정의 샘이었다. 무려 ‘그랜드캐니언’이라니! 지리교사가 혹할 수밖에 없는 명칭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향했다. 요정의 샘은 365일 내내 마르지 않는 얕은 개울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곳으로, 물 깊이가 발목을 살짝 넘을 정도로만 흘러 부담 없이 자연을 느끼며 개울을 거슬러 걸을 수 있다. 겉보기에는 진흙탕 느낌이지만, 매우 부드러운 흙이 발을 촉촉하게 감싸줘 힐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요정의 샘은 얕은 개울이 주변 석회암을 침식해 만들어진 작은 협곡으로, 붉은 모래 언덕과 석회암 절벽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붉은 모래 언덕은 석회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테라로사2 토양일 터였다. 아하! 비슷한 지역인데 화이트 샌드 듄의 모래는 하얀색이고 레드 샌드 듄의 모래는 붉은색이었던 이유가 바로 기반암에 있었다. 레드 샌드 듄은 석회암 풍화토인 붉은 색의 테라로사 토양이 풍화되어3 모래로 쌓인 곳이고, 화이트 샌드 듄은 회백색의 석회암 자체가 풍화되어 하얀색으로 쌓였음을 추론할 수 있었다. 


반나절 동안의 몰입된 무이네 여행이 우당탕 끝난 뒤,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랍스타를 한 마리씩 뜯어먹고 우리는 또다시 슬리핑 버스를 타고 나트랑으로 떠났다. 온 김에 최대한 볼 수 있는 것을 다 보고 가고 싶다는 공통된 여행 취향이 낳은 괴물 같은 일정이었다.

 

이를 통해 베트남의 많은 지역을 방문했지만, 여전히 아내와 나에게 있어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은 무이네이다. 바다와 모래 언덕이 빚어낸 비현실적인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손잡고 있는 이 여자와 결혼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화이트 샌드 듄에서 떠오른 태양이 이루어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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