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기 조기 사교육이 학습 선점 효과보다 정서발달과 사회성, 자기조절 능력을 저해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부모 불안과 입시경쟁이 조기 사교육을 부추기는 만큼 놀이 중심 교육 강화와 부모교육, 발달단계별 공공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성옥 한국영유아아동정신건강학회 부회장(대전대 상담학과 특임교수)은 육아정책연구소 ‘육아정책포럼’ 여름호에 실린 ‘정서발달 패러다임에서 본 영유아 조기 사교육의 한계와 정책적 과제’에서 국내 조기 사교육 실태와 관련 연구를 검토하고 정부·교육기관·부모 차원의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전국 영유아 교육기관 원장·교사 177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7.1%가 영유아 학습 사교육시장을 ‘과열 상태’로 인식했다. 과열 원인으로는 양육자의 경쟁심과 불안심리가 54.1%로 가장 높았고 입시 위주의 교육구조 22.2%,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 부족 11.6%, 사교육 광고 7.3% 순이었다.
학습 사교육을 받는 영유아를 직접 지도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65.2%는 해당 아동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적응 문제와 또래 관계 어려움을 보였다고 답했다. 영어학원 적응에 어려움을 보인 영유아의 경우 81.9%가 어린이집·유치원에서도 부정적인 적응 행동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조기 사교육의 저연령화와 비용 증가도 지적됐다. 자료는 만 5세 아동 10명 중 8명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영유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33만원을 넘는다고 제시했다. 영어 사교육비는 월평균 약 41만원,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약 155만원에 달했으며 과거 5~7세에 집중됐던 조기교육은 최근 2세 이하까지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은 영유아기에는 인지적 성취보다 놀이와 자율성, 정서 조절을 통해 학습 기반을 형성하는 ‘적기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3~7세는 정서가 분화되고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는 시기로 이때 형성된 정서 조절 능력과 애착 관계가 이후 사회성과 성격 발달의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과도한 사교육과 정서·행동 문제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연구도 제시됐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24년 연구에서는 영유아기 사교육을 주당 5시간 이상 받은 유아의 불안과 위축, 주의산만, 공격성 등 문제행동 지수가 평균보다 높았고 사교육 횟수와 빈도가 증가할수록 스트레스와 문제행동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조기 인지교육의 효과를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료에 소개된 독일 사례에서는 조기 인지교육을 받은 아동이 초등 저학년까지는 높은 성취를 보였지만 4학년 이후 놀이 중심 교육을 받은 아동에게 추월됐으며 정서적 위축과 친구 관계의 어려움, 낮은 자존감 등도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조기 사교육이 줄지 않는 배경에는 부모의 불안과 경쟁적 교육구조가 있다고 봤다. 실제 조사에서도 과열 원인으로 ‘양육자의 경쟁심과 불안심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 만큼 부모 개인에게 사교육 선택의 책임을 돌리기보다 불안을 낮출 수 있는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국가 수준의 ‘영유아 발달단계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생애 초기 부모교육을 체계화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가 아동의 정서·신체 발달 상태를 점검하고 상담하는 공공 컨설팅 체계를 구축해 상업적 정보에 대한 부모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도 제시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선행학습 수요를 줄이는 대책도 주문했다. 초등 1~2학년에서 한글과 수 개념의 선행학습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기초 문해·수리 책임교육을 강화하고 영유아기의 학습 이력이 초등학교 생활이나 평가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평가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기관에는 아동의 사회성과 정서적 안정, 창의적 문제해결 과정을 부모와 공유하는 성장 포트폴리오와 부모 참여형 놀이 워크숍 등을 제안했다. 부모에게도 사교육 일정에 아이를 맞추기보다 관심과 발달 속도를 살피고 스스로 놀고 선택할 시간을 보장할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