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점괘 자기 것으로 믿게 하는 현상
점괘는 인출단서, 장기기억에 중요 역할
장기기억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바넘효과(barnum effect)라는 것입니다. 우선 제가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의 성격을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풍부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판단력,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타인과의 경쟁이나 다툼보다는 양보하는 미덕을 갖고 있으나 간혹 변덕스런 면이 조금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적은 선생님의 성격이 맞지 않습니까?
선생님들은 점을 보거나 혹은 잡지에 나오는 별자리 점괘를 볼 때 어떻게 자신의 성격이라든가 운세를 잘 맞추는지 감탄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점이라든가 성격묘사에서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점괘나 묘사를 자기 것인 양 믿는 현상이 바넘효과입니다.
바넘(P.T. Barnum)은 미국의 서커스를 ‘지상최대의 쇼’로 불리는 인기 있는 구경거리로 만든 미국의 흥행사입니다. 흥행사 일을 하면서 그는 나이 든 흑인 여인을 조지 워싱턴 장군의 160세 된 간호사라고 선전하면서 쇼에 출연시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 몸에 사람 머리 모양을 한 인어를 박물관에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만든 가짜 인어였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은 한순간 멍청이가 될 때가 있다”는 말을 했는데, 바넘효과는 바로 이러한 말을 한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즉 어떤 학생의 질문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다음 시간에 필요한 사진이나 그림을 가져와 보여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 후로 기억이 나지 않다가 일주일 후 다시 그 반의 학생을 보니 기억이 난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그 학생을 보는 것은 선생님이 기억하려 했던 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인출단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인출단서는 장기기억의 인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달력에 아무런 메모도 없이 동그라미만 쳐놓았다 하더라도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있는 것도 그 동그라미가 ‘술래의 눈에 보이는 머리카락’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서 그날이 어떤 날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또 집에서 공부하여 시험을 보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집과 교실의 분위기가 같지 않아 공부할 때 기억한 것을 제대로 뽑아 줄 만한 단서가 교실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실에서 공부하면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선수에게만 현지적응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점괘나 운세를 듣게 되면 우리는 장기기억에서 그와 일치하는 것을 찾아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런 경험과 일치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점쟁이의 말이 인출단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이러한 애매한 운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해당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점괘가 맞아 보이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처음 가본 장소이거나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한번 와본 적이 있는 장소라거나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는데(데자 뷔 deja vu), 이러한 것도 그 장소와 그 사람이 인출단서의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가 예전에 경험했던 그와 비슷한 상황이나 사람을 떠올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