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텃세 부린다’ 표현
질서, 프라이버시 보호가 목적
시험 때가 되면 도서관은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으려는 학생들로 북적댑니다. 줄 선 학생은 30명이고 도서관 좌석이 100개라 하여 느긋하게 생각하고 늦게 들어갔다가는 자리를 못 잡고 맙니다. 이미 들어온 다른 학생들이 빈자리에도 책을 펴놓았거나 가방을 놓거나 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실에서 각 학생들의 자리가 지정좌석이 아니고 누구든 자기 마음대로 선택해서 앉을 수 있는 경우일지라도 학생들은 늘 자기가 앉던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교실 내에서 자리를 옮겨야 한다면 자기가 늘 앉던 자리에서 멀리 갈수록 학생들은 뭔가 어색한 느낌을 갖습니다.
이것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영역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장소에 표시를 하거나 전화 부스의 문을 닫음으로써 자신의 영역이라고 선언합니다. 울타리나 담장, 문 등은 영역의 범위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영역에서 만나면 자기가 주도적으로 행동하지만(소위 '텃세 부린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말입니다) 자신의 영역이 아닌 그 사람의 영역에서는 아무래도 그 사람의 말에 이끌려가게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축구와 야구 같은 스포츠에 있어서도 홈경기를 하면 이길 확률이 더 높습니다. 실제로 NBA의 시카고 불스는 1996년 홈경기에서 41연승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영역은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통제되는 범위입니다. 이러한 영역에는 가정이나 개인 사무실처럼 한 개인이나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일차적인 영역, 회의실이나 서클룸처럼 관련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이차적인 영역, 그리고 공원의 벤치와 대기실 좌석처럼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영역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맹견주의’ 혹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내겁니다. 공공영역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영역확보를 위해 다른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합니다. 또 영역에서의 소유감은 그 자리에 있은 시간과 비례합니다. “당신은 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공원 벤치에 앉은 지 1분도 채 안 되는 사람은 벌떡 일어나지만, 앉은 지 10분 된 사람은 저항을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개인공간이 신체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면, 영역은 신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자리를 비웠다 하더라도 교장실에 들어간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이 있을 때처럼 행동하게 마련입니다. 영화관이나 열차의 좌석이 비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앉기가 망설여집니다. 하급자의 자리일지라도 상급자는 함부로 앉을 수가 없습니다. 해군 함장의 의자는 대통령이 와도 못 앉는다고 합니다. 자리를 비워 신체적으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영역에 대한 주인의 지배는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을 받으면 마음속에 저항이 생깁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늘 애용하던 교실 좌석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비켜 달라고 요구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다른 좌석에 앉게 되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역행동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질서 있게 사회 작용을 하고 프라이버시를 지켜나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