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13일 북경에서 열린 한·중·일 평화교재실천교류회는 실제로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중·일 3국이 함께 한다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같음’과 ‘다름’이라는 현실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항상 교재 속에서만 존재하였던 중국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름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로서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토론장소는 마치 3국의 역사 교사 대표들이 모여서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투쟁의 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동안 일본 측과는 몇 번의 만남과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의식의 차이를 확연하게 실감했다.
비교적 진보적 집단이라는 일본 교직원 조합 16명 참가자들의 입장에서 특히 두드러진 부분의 ‘평화교육’과 ‘원폭’에 대한 집요함이었다. 평화교육을 전제로 한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 또 다른 원폭 사용을 염려하는 주장이 있었다. 사실 침략을 경험한 이들이 경계하는 ‘애국주의’와 민족의 생존을 전제로 하였던 이들이 주장하는 ‘민족주의’와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21세기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세 나라의 관점은 분명히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느낌이었다.
일본의 주장에서는 여전히 ‘과연 과거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 있었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곤 한다. ‘평화’가 과연 일본인들의 평화를 전제로 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의 평화와 공존을 우선적으로 배려한 인식인지에 대한 흔들림이다. ‘함께 하는 평화’라고 믿기에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일방적인 ‘원폭’에 대한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하였던 일본 측과도 ‘다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중국에 대한 솔직한 느낌은 여전한 ‘국가중심의 사고’였다. 한국과 일본이 사전에 발제문을 교환한 것에 비해, 출발하기 전까지도 중국측에서는 완성된 원고를 받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참가 명단마저도 출발 전에 통보받았다는 사실에서 ‘통제된 사회’라는 것을 실감했다.
중국 교사들의 발표는 철저히 준비된 내용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질문을 거의 무시하는 듯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경우가 많았다. 반일교육이 아닌 미래를 지향하는 ‘항일교육’이라는 것, 평화를 위한 새로운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 등 중국의 발표는 시종일관 일치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정작 중요한 구체적인 사례를 질문하였을 때도 두루뭉술하게 직답을 피하고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한국에 대한 발언 중에서는 특히 직접적인 ‘동북공정’이라는 단어는 피하고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현실 인식과 보다 넓은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 측 역시 이 부분에 대한 한국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그러나 질문과 전혀 무관한 내용의 일방적 발표는 앞으로 많은 과제를 생각하게 했다. 사전에 원고를 검토할 수 없었던 이유를 질문하였음에도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식사를 하면서 나누었던 개인적인 시간에도 토론 시간에 제기되었던 발언과 비슷한 이야기 외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회의 특성상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극복해야할 과제를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항일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과연 그럴까’하는 생각이 곳곳에서 배어나왔다. 이런 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교육 현장의 실천 역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결국 이번 만남은 한·중·일 삼국의 현장 교사의 만남이라는 성과에 만족해야했다. 여전히 ‘다름’과 ‘같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뢰와 사람을 중심으로 서로 실천해야 한다는 앞으로의 과제를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을 정리하면서 함께 나누었던 한마디가 가벼운 미소를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