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만에 전공과목인 동물자원과 교사로 부임했다. 학교 농장을 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별일 없이 한우사와 사슴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농장에는 담당기사들을 보조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봉사하는 ‘당번학생’들이 배치돼 있다.
당번을 하면서 힘든 일은 요리조리 빠지는 잔머리의 달인 종선이. 비축해놓은 생초를 매일 뒤집어야 하는데 종선이가 겉만 살짝살짝 뒤집는 바람에 절반이나 썩어서 애써 벤 풀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당번을 그만두게 했더니 이번엔 더 큰 말썽을 부렸다. 종선이가 같이 일하던 학생들을 협박해 당번 학생들이 일시에 그만두게 된 것이다. 수업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10분쯤 지나 어슬렁거리며 교실로 들어와 수업 중엔 잠만 자고, 자지 않으면 잡담에 온갖 산만한 행동을 했다.
종선이를 벤치로 불러 한 시간이 넘도록 타이르기를 세 차례나 시도했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징계조치를 취하자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고쳐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동물자원과 수업에 들어갔다.
“교직 삼십년이 다 되어가도 이렇게 무능하구나. 종선아, 이리 나와라.” 종선이를 교단 앞에 세우고 “종선아,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며 큰절을 했다. 종선이는 놀라서 내 팔을 잡으며 “선생님, 왜 그러세요”하며 말렸다. 나는 두팔을 크게 벌려 땅바닥에 두손을 포개고 엎드렸다. 일어나 보니 종선이도 나에게 맞절을 하고 있었다. 종선이는 무릎을 꿇은 채 내 손을 붙잡고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래. 고맙다, 종선아.” 울먹이는 종선이를 안고 나도, 반 아이들도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날 이후 종선이는 얼굴표정부터 확 달라졌다. 당번을 탈퇴했던 학생들도 모두 복귀했고 농장운영도 정상을 되찾았다. 1학년 때부터 당번 일을 하던 종선인지라 교과 수업에 적응이 꽤나 어려운 모양이었다. “종선아 너 다시 당번 하고 싶니?” 반사적으로 “네, 선생님!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하며 미소 짓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3학년이 된 지금, 경운기를 운전하다 말고 나만 나타나면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하는 종선이. 종선아, 난 널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