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내 논 `자립형사립고교제'는 이미 95년 문민정부가 도입을 추진했다가 백지화됐고 지난해 교육발전 5개년 계획 시안에도 포함됐다가 평준화정책에 어긋난다는 여론 때문에 시행이 유보된 정책 안이다. 이것은 고교 평준화 제도를 부분적으로 해제한다는 의미로 장차 평준화 제도를 전면적으로 해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우려된다. 교육예산의 획기적 확충을 대선 공약으로 내 건 현 정부는, 물론 IMF사태 등 변수가 있었지만 교육예산을 오히려 삭감했다. 그리고 학교발전기금법을 만들어 자발적인 성금이라는 미명아래 정부예산으로 해야 할 일을 학부모에게 떠넘겼다. 이제는 교육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고 일선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며 나아가 새시대의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기른다는 명분으로 `자립형사립고교제'와 `외국인 학교의 내국인 입학허용'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명분이야 어떻든 문제는 이런 정책들은 모두 학부모들의 부담을 전제로 하고 있어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과학고와 외국어고의 사례에서 이미 유사한 정책의 실패를 목격했다는 사실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립형사립고가 다양한 교육수요를 수용하고 교실붕괴를 부분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행 고교평준화 제도는 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획기적으로 도입된 제도이며 당시 이 제도 도입의 원인을 제공했던 사교육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과외의 빗장이 풀렸으며 대학입시용으로 쓰기 위한 각종 경시대회 열풍이 학원가를 중심으로 조장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자립형사립고의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오히려 현행 공교육 체제를 새 시대에 부합하게 개선하는 일이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특기적성에 따라 대학에 가고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교육당국의 정책은 자기 개혁에 소홀하고 중등교육 정상화를 외면하는 대학 때문에 겉돌고 있으며 오히려 과거보다 더 힘든 입시준비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앞서 교육예산을 확보해 날로 피폐해 가는 공교육을 살리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청사진부터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오지록 서울 관악여정보산업고 교사·관악구교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