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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동수와의 인연



동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68년 3월, 내가 세 번째 전근지에서 6학년을 맡았을 때다. 당시는 중학교 입시가 있었던 때라 학교와 학생들은 모두
중학 진학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이 벌어졌다. 동수가 팔이 부러지고 혜숙이가 공납금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동수가 공납금을 훔쳐 빵을 사들고
운동장 나무에 올라가 장난을 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부랴부랴 집에 연락하고 병원에 입원시킨 후 아이들에게 동수의 얘기를 들었다.
행동이 거칠고 힘없는 친구를 때리며 친구나 하급생의 돈을 빼앗거나 훔치는 아이, 선생님께 욕하고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며 숙제는 아예 하지
않는 아이, 그래서 아이들 모두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아이로 못이 박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학교에는 꼭 가야겠다는 아이였다.
그 날 저녁, 동수의 부모님을 찾아 뵀다. 늘 취객들이 웅성거리는 조그만 주막집에 늙으신 부모와 누나가 힘겹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형은
집을 나간지 오래였다.
"사람구실 좀 하게 해 주세요"라며 애원하는 어머니와 "될 대로 될 테죠"라는 아버님의 한탄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야단 대신 깁스를 한 동수의 아픈 팔을 쓸어주고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면서 난 동수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 같으면 히죽거렸을
동수는 얼굴을 떨구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호되게 야단을 맞을 거란 예상이 빗나가면서 긴장감이 풀린 탓이었다.
며칠 후 퇴근 무렵, 동수가 교실로 들어왔다.
"웬일이니" 할 말이 있는 듯 보이는 동수에게 "무슨 좋은 일 있니? 선생님이 알면 안 될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수는 빙그레 웃다가 호주머니 속에 꼭 쥐었던 손을 살며시 펼쳐 보였다. "삶은 달걀이에요. 어머니가 먹으라고 한 건데 선생님 드세요"
"그래, 그럼 반씩 나눠 먹을까? 정말 맛있구나"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뭔데?" "저…매일 오후에 선생님하고 단 둘이 얘기해도 좋아요?" "그럼, 선생님도 같은 생각이란다"
그렇게 우린 가까워졌다. 동수는 처음부터 다시 학과공부를 시작했고 생활교육에도 잘 따라주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은 온전히 둘이 함께 지냈다.
동수의 변화에 모두가 놀랐다. "선생님, 동수가 구구단을 외워요" "책도 읽는데요" "이제는 싸우지도 않아요"
늘 꼴찌만 하던 동수는 9월말 학습평가에서 중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중학교에도 물론 당당히 합격을 했다.
그 후 동수는 조그만 회사에 사원으로 취직해 지금은 그 회사의 중견인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고향을 찾아 옛 스승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정말 작을 일이 계기가 돼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모든 교사가 교직을, 그리고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지 모른다. <장락순 前 충남 갈산초등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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