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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그 아이의 꽃다발


연말이면 학교마다 작품 전시회, 학예회로 분주하다. 운동회가 끝나면 으레 있는 큰 행사를 치르다보면 2학기가 금세 간다.
작품 전시회에 빠질 수 없는 건 교사들의 작품이나 애틋한 소장품이다. 아이들도, 학부모도 선생님들의 작품에 더 호기심을 갖고 보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언제 그런 훌륭한 작품을 준비했는지….
무엇을 낼까. 별 신통한 물건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거실 한 구석에 걸려 있는 빛 바랜 꽃다발이 눈에 띄었다. 아! 저 꽃다발.
벌써 3년이 훨씬 지난 얘기다.
이창석. 3월 출석부에 이름만 있고 아이는 없었다. 사유인즉 가출. 방 한 칸에 딸린 부엌, 계모, 이복형제, 아버지는 행방불명.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저는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동생과 함께…"
글자도 다 틀린 구걸 종이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세상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니는 아이. 지하철역에서 어느 파출소에서, 기차역에서…. 데리고 오면
사흘을 못 넘기고 또 어디론가 사라진 아이. 결국 아이는 졸업을 보류한 상태이고 새 학기가 되어 이제 더 이상 담임으로서 할 일도 없었다.
늦은 가을. 단풍이 물들어 아이들은 산으로 들고 현장학습을 떠날 무렵, 1학년인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선생님, 어떤 아저씨가 찾아왔어요"라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누굴까. 학부모인가. 교실에 들어선 순간 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년 전 떠난 아이. 너무나 커 버린 몸. 고행한 성인처럼 아이는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간직한 선한 눈매는 아직도 초등학생이었다.
"선생님,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없나요"
더 이상의 결석은 없었고 맨 뒷자리에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무사히 졸업을 하고 동창회의 도움으로 진학을 했다. 난 그 아이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준 것도 없고 같이 놀아주지도 못했다. 겨우 한 것이라곤 몇 번의 기도뿐.
그 이듬해, 스승의 날. 중학생이 되어 꽃다발을 가득 안고 찾아왔을 때.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 무엇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 아이의 미소와 눈빛은 진흙 속의 연꽃처럼 거룩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 바랜 그
꽃다발. 많은 작품 속에서 내겐 가장 화려한 소장품이었다. <최경숙 부산 모산초등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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