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난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났다. 대구광역시교육청 교원자원봉사단에 가입하고 다소 여유롭던 올 6월. 낭랑한 음성의 웬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혹시 최용훈 선생님이십니까?" "예, 누구시지요?" "36년 전 칠성초등 3학년 7반 학생 정추미를 기억하십니까?" "뭐? 추미라고! 너, 아니 자네가…기억하고 말고, 지금어딘가?" "전 화남초등교 행정실에 근무하고 있어예,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무릎에 앉히고 차가운 손에 웃자란 손톱을 하나하나 깎아 주시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찾았어예, 쌤, 안녕하시지예? 뵙고 싶어예." "전화로 하기에는 할 말이 너무 많으니 메일주소 좀 가르쳐주게." 마치 꿈나라에 와있는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열쇠 고리에 늘 달고 다니던 손톱깎기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당장 달려가 만나보고 싶었지만 화남초등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도시가 커졌고 세월도 흐른 터였다. 여덟 살 어린이를 불혹의 장년으로, 스물 네 살 청년교사를 회갑의 초로로 만든 36년 세월…. 또 몇 밤을 지새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슨 낯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의 스승을 찾아뵈었는가? 무심코 행동한 내 일거수 일투족이 저들의 가슴속에서 저렇게 자라고 있었다니, 맙소사! 나 때문에 상처받고 어느 하늘 아래서 원망하는 제자는 없을까?' 등골에서 생 땀이 흐르는 것은 비록 열대야의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난 벽장구석에서 잠자던 36년 전 초임반의 빛 바랜 사진을 꺼내 연신 쓰다듬었다. `너희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나를 찾아주니 고맙기 그지없구나.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별로 떳떳한 스승이 못되어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다면 부디 용서하거라.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빌고 또 빈다.' 그 전화를 계기로 38년 동안 내가 그리워하던 고향 어르신 한 분을 찾았다. 하지만 작년에 91세로 별세하셨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먼 시골 등교 길에 꽁꽁 언 고사리 손을 꼭 잡고 녹여주시던 50년 전의 이난구 선생님, 도재곤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며 나를 기억이나 하실런지…. 전화를 해온 제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찾아뵈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여태까지의 잘못을 회개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에 만나자고 메일을 보냈다. 언제 이런 회한의 심정이 안정을 되찾고 보고싶은 이 제자를 만나게 될지 기약은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명예퇴임을 결정하게 한 것은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지난날을 반성하고 봉사하며 살아 갈 날들을 더 많이 주시려는 하늘의 뜻이었던가 보다. <최용훈 대구교원자원봉사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