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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사랑’과 ‘실력’ 있어야 진짜 스승이다

사람은 하루하루 만남 속에 산다. 그리하여 명주실처럼 엮인 인연으로 존재한다. 그 숱한 만남에는 잊지 못할 만남도 있고 지우고 싶은 만남도 있다. 누구에겐들 없으랴만 살아오면서 뒤돌아보면 스승과의 아름다운 만남 그리고 친구나 제자와의 애틋한 만남 정도는 하나씩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잊을 수 없는 스승과의 만남이 있다. 당시 그 분은 중학교 국어를 가르쳤던 분인데 나에게 인간애의 따스함을 처음 느끼게 해 준 분이다. 아마 지금 내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랑 운운하는 것도 그 분을 조금 흉내 낸 것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궁핍한 70년대까지 올라간다. 눈깔사탕만 있어도 마냥 행복했던 시절, 머리는 기계로 빡빡 깎고 얼굴엔 버짐이 피던 그 시절. 선생님은 방과 후에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괘도를 만들고 계셨는데 나에게 작업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기억에도 생생한 규중칠우쟁론기! 나는 꼼꼼히 일곱 가지 그림을 괘도에 그리고 색칠했다. 선생님의 일을 돕는다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선택 받은 것만으로 기뻤다.

괘도 작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나에게 “시간이 늦었는데 자장면 먹지 않을래?”하며 자장면 두 그릇을 전화로 주문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한 텅 빈 교무실. 선생님하고 단 둘이 자장면을 먹는다는 것, 생각만 해도 어렵고 송구스러웠다. 그럼에도 자장면을 먹는다는 생각에 그저 신났다. 생각만 해도 침부터 고이는 갈색 추억.

난 사실 당시에 자장면을 자주 먹지 못했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시절. 그런데 그 꿈같은 음식을 선생님과 함께 먹는다는 게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아, 여태껏 나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저 체면 불구하고 허겁지겁 먹었다. 요즘 말로 하면 폭풍 흡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다 먹을 때가지 먹는 시늉만 하고 계시다가 “내가 별로 생각이 없어서 그런데, 이것 마저 먹을 수 있겠니?” 하시며 당신의 그릇을 내게 밀어줬다. 순진하게도 나는 선생님 몫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배고픈 시절,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고 감상에 젖어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먹은 것은 부모님의 눈물 같은 사랑이었고 그리움이었다. 아, 그 분은 그동안 도시락을 잘 싸오지 못한 나를 지켜보고 계셨고 괘도를 구실로 나에게 저녁을 먹였던 것이었음을! 세월이 지나 나는 그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멀리서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분이 대학원에서 만난 교수님이다. 그러니까 벌써 십년 전 박사과정을 수강할 때, 그분은 나에게 완전주의자가 무엇인가 가르쳐 줬다. 당시 지방에서 서울로 통학해야 했던 나는 차를 갈아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이 하필 그 교수님 첫 시간에 지각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

한남동에서 허겁지겁 대학 건물로 뛰어가는데, 그날따라 그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층계를 뛰어 복도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5분이 늦은 시각, 복도엔 적막만 감돌았다. 벌써 강의가 시작 됐나 의아해 조심히 뒷문을 열었다. 그런데 평소엔 작게 들리던 그 ‘삐거덕’ 소리가 그날따라 어찌 그리 크게 들리던지. 강의실의 눈동자가 다 내게로 쏠렸다. 그리고 좌불안석의 나에게 교수님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오늘 이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 어제 한 번 강의실까지 다녀갔습니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까지 10분 거리, 지하철에서 한남동까지 35분, 다시 이곳 강의실까지 걸어서 15분, 딱 1시간 걸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1시간 5분 전에 출발했고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나노의 시대입니다…….” 지금과 같은 첨단 시대에 시간의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설명한 뒤, 그 분은 “예(禮)와 악(樂)”에 대해 머리가 쭈뼛 서도록 기막힌 강의를 펼쳤다. 귀로 듣는 강의가 아니라 온몸의 세포질을 통해 울려오던 그 분 말씀! 완벽한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듣는 이의 완벽한 준비도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 경우였다.

사실 선생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한 마디로 ‘사랑’과 ‘실력’ 아닌가. 내 자식처럼 가슴으로 부딪는 사랑, 아픔을 보듬어주는 사랑 그게 필요한 것 아닌가. 나아가 구절양장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묵은 갈증을 해소해 주는 쾌도난마의 실력, 그런 것 아닌가.

서양란에 향기가 없듯, 요즈음 감동 없는 교육을 보면 아이들도 문제지만 선생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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