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 혹시 무슨 일 있니?”
그랬다. 그날은 다른 종례시간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어색한 목소리로 별일없다고 말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어딘지 석연치 않았지만 서둘러 종례를 마쳤다. 교실을 나서려던 순간 몇몇 아이들이 길을 막아섰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수업 끝나자마자 진짜 무슨 일 있었어요. 석민이가 찬호한테 따귀 맞고 쓰러져서 막 밟혔어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고 있자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수학시간에 선생님께서 잠깐 쉴 시간 주셔서 자려고 하는데 석민이 떠드는 목소리가 거슬렸데요.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시끄럽게 했다고 선생님 나가시자마자….”
곪았던 것이 터졌다. 사실, 찬호가 반 친구들 따귀를 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학기에도 자기 기분 나쁠 때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트집을 잡아 따귀 때린다는 걸 쪽지 상담하다가 알게 됐다. 찬호는 “심하게 때리지도 않았고 애들이 기분 나빠 하지도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왜 지금 와서 왈가왈부 하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석민이가 찬호에게 맞았다고 하니 5월 중순, 그 장면이 섬광처럼 스치며 ‘그때 확실히 짚고 넘어갔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찬호는 중학교 입학식 날부터 큰 체격,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반 수업을 다녀오신 선생님들은 녀석의 불손한 태도에 대해 한마디씩 하시기 시작했다. 수업시작 종이 쳐도 꼭 몇 분씩 늦게 들어오고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자거나 수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기분이 나쁘면 눈에 보이는 아이들 아무나에게 손찌검을 했다. 찬호에게 맞아도 감히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늑대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심정으로 쉬는 시간마다 쓰레기 줍는 척, 주변 정리하는 척하며 교실에 상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녀석과 잘 지내보려고 나름 애도 많이 썼다. 잘못한 일에는 엄하게 혼을 냈지만 사소한 일이라도 잘 한 것이 있으면 이런저런 구실로 칭찬을 하며 간식을 챙겨주고 맛있는 반찬은 다른 아이들 몰래 따로 얹어 주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을 길들이려는 꼼수’를 다 안다는 듯 초지일관 순종과 반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를 안 해 온 학생들 몇몇을 방과 후에 남겨서 숙제를 시킬 때였다. 찬호도 그 중 하나였는데 중도포기하고 도망갈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끝까지 남아서 숙제를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정말 기특하고 예뻐서 녀석을 학교 앞 분식집으로 데려가 식사를 같이 했다.
녀석은 ‘엄마는 3교대 하시는 공단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시고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자주 드신다. 아빠와는 자기가 2살 때 이혼하셨다. 경제적으론 어렵지 않지만 집안이 복잡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급하게 앞에 놓인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대충 녀석의 상황을 알고 있던 터라 무심한 척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녀석이 했던 이야기들이 마음에 무겁게 남았다.
그날 이후 찬호는 뜬금없이 내 주변에 와서는 “어제 엄마가 술주정을 하셔서 화가 났다”는 둥, “엄마가 오랜만에 일찍 들어와서 과일을 깎아 주셨다”는 둥 자기 이야기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일방적이지만 녀석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게 되면서 우리 둘 사이엔 작은 의리 같은 것이 생겨난 듯 했다.
날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에서 반항기와 독기가 조금씩 빠지고 쪽지 상담에서 괴롭히는 친구로 찬호가 거론되는 것이 줄어든 것도 그즈음 이었던 것 같다. 주변 선생님도 녀석의 변화를 눈치 채고 칭찬을 해 주셨고 입학하고 쭉 살얼음판을 걷던 우리 반 아이들의 생활에도 ‘봄’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런데 그랬던 녀석이 생뚱맞게 석민이의 따귀를 때리고 밟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아직도 바들바들 떨며 훌쩍이고 있는 석민이를 진정시키고 귀가 중이던 찬호를 교실로 불러 왜 그랬는지 물었다.
녀석은 “피곤해서 자려고 했는데 애가 눈치 없이 조용히 하라고 해도 떠들잖아요”라고 아주 짜증스럽게 말했다.
“설령 그랬더라도 따귀 때리고 밟는 것은 옳은 행위였니? 석민이는 너보다 몸집도 작고 약하잖아”라며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과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더니 “하겠다”고 하길래 무서워서 찬호 얼굴을 보기 싫다는 석민이를 설득해서 함께 교실로 들어갔는데 찬호 태도가 가관이었다. 석민이를 노려보며 대뜸 “야, 그러니까 아까 조용히 하라고 할 때 조용히 했으면 안 맞았을 거 아냐”라는 말부터 하는 게 아닌가? “미안해. 내가 눈치 없이”라고 말하는 석민이를 보며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기가 막혔다.
“석민아, 찬호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상황을 더 두고 볼 수 없어서 찬호 녀석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말이 나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황스럽게도 찬호의 일상이 영화필름처럼 내 눈앞에서 스쳐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방치하다시피 하신 엄마. 이따금 담임인 내가 전화를 걸어 ‘아이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물으면 당황해 하시며 늘 “바빠서 잘 모르겠다”는 말씀만 하신 엄마. 보호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도리어 술에 취해 계신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으니 어른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을까?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외로움을 안고 고단한 일상을 버티고 있는 찬호의 안쓰러운 모습이 눈앞에서 빠르게 스쳐갔다. 사회와 가정의 문제가 더 큰데 드러나는 것은 아이뿐이라서 안타깝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석민아, 찬호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찬호가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래. 선생님을 봐서라도 찬호 용서해 주라.” 나는 통곡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억울하게 맞은 건 석민인데 엉뚱하게도 때린 찬호가 너무너무 불쌍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는 나를 힐끔 보던 찬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 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엉엉”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의 입에선 끝없이 “아이 씨, 나 이제부터 진짜 주먹 안 써”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한참 만에 울음을 그친 찬호는 “석민아, 미안해. 나 이제부터 주먹질 안할게. 선생님 죄송해요. 저 진짜 손 함부로 안 쓸게요”라는 말을 했다. 찬호의 눈물에 석민이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을 다독인 후 집으로 돌려보냈고 바로 어머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석민이 어머니는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동안 찬호의 만행에 대해 들어왔다며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찬호 어머니께도 전화를 드렸다. 아들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걱정했는데 의외로 너무 미안해하시며 내일 당장 학교에 오셔서 석민이 어머니를 만나고 사과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음날 푸석한 얼굴로 나타나신 석민이 어머니 앞에 찬호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셨다. 자식교육을 제대로 못 시켜서 너무 미안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셨다. 이야기 끝에 찬호 아버지랑은 이혼을 하셨고 그 아버지가 최근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계시는데 의식이 없으며 주중에 찬호가 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게 되면서 심난했는지 부쩍 짜증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이가 보였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처음엔 절대 용서 못한다는 태도로 계시던 석민이 어머니도 진심으로 사과하시는 찬호 어머니의 태도에 마음이 누그러지셨고 찬호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 교실에서 찬호를 불러왔다. 찬호를 바라보시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석민이 어머니께서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모질게 할 수 없겠다. 내 아들이 귀한만큼 찬호도 귀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용서를 하겠으니 앞으로 친구들과 잘 지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하셨다. 기특하게도 찬호는 석민이 어머님 눈물을 닦아 드리며 “정말 죄송하고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절대 손을 함부로 쓰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다. 찬호 어머니께서도 눈물을 흘리시며 석민이 어머님 말씀대로 가정에서 책임감 있게 아들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부모님들이 다녀가신 날부터 학년부장 선생님은 매일 점심시간 마다 찬호를 따로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아이를 다독여 주셨고 상담선생님은 매주 한시간씩 오로지 찬호를 위해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셨다. 나는 찬호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주고 매일 확인을 했다. 또한 모든 선생님들이 ‘우리가 함께 돌봐야 할 우리의 제자’라는 마음으로 찬호를 이해하고 그 전보다 따뜻하게 대해주시며 지도해 주셨다.
교실에는 진정한 봄이 찾아왔다. 찬호의 얼굴에서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또래 중1 아이의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찬호가 건강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학년에도 선생님이 담임이셨으면 하는 바람이 드네요. 성적에도 조금 더 신경 쓰면서 가정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도록 타이르는 중입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찬호엄마 올림.”
2학기 기말고사 성적표를 나누어준 다음날 찬호어머니께서 성적표에 편지를 적어 보내 주셨다. 교무실 한쪽에서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1년간의 맘고생이 어머니 짧은 편지 한통에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찬호와 보낸 1년은 정말 전쟁 같았지만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담임교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절절히 느끼며, 성숙한 교사가 되도록 훈련시켜주는 교직 인생의 진정한 스승은 때론 ‘감당 안 되는 사고뭉치, 틀려먹은 놈, 구제불능’의 모습으로 내 옆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해 본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함께 길을 걸어가며 조급함을 버리고 기꺼이 인내와 수고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살고 싶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