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실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 수능 모의평가를 놓고 학생·학부모·교사들의 술렁거림이 들려온다. 쉽게 출제되었기 때문이다. 가채점 결과 만점자가 1%를 넘어 영역에 따라서는 2~3%까지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교육 당국은 어떤 느낌일까.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수험생들의 시험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기 위해 2012학년도 수능을 만점자가 1% 이상 나올 수 있도록 쉽게 출제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따라서 그 약속이 시작된 것이니 오히려 안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반면 언론은 쉬운 수능에 대한 문제점에 집중했다. 가장 먼저 수험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학습 방법이 달라지고, 진학지도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또 쉬운 수능은 작은 실수가 수험생을 억울하게 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리고 수험생들이 실수 때문에 대학 진학이 의도한대로 안 되었다고 생각하면 재수생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시험에 대해 언론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이번 시험은 쉬운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항 출제 방식이 매우 위험하다. 문제의 유형이 교육방송 교재와 비슷한 것을 넘어 그대로 출제되었다.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걱정을 넘어 비아냥거림이 들린다. 어떤 학생은 “EBS와 동일하게 출제하다니 교수들이 출제한 문제라고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수험생은 “시험을 보다 EBS 수능특강 교재인 줄 알고 표지를 확인할 뻔했다”며 “차라리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말 대신 ‘EBS 암기 내신시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학부모는 “사교육을 줄이자는 의도가 EBS 교재를 외워 영역별 만점자를 수두룩하게 만드는 것이었느냐”며 흥분했다.
한 마디로 EBS와의 연계성이 아니라 일치된 문제가 많았다는 평이다. 이 정도면 학교 수업도 교과서는 접고 EBS 교재만 파고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학교는 이제 내신 평가방법도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교육방송 교재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현상이 속출한다는 것이다.
대입 수능에서 EBS 교재 연계 출제는 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간다. 아니 학교 현장은 이미 3월부터 EBS 교재 풀이 학습으로 전환했다. 앞으로 수능 시험 때까지 수업 시간에 EBS 교재 풀이를 한다. 학생들은 EBS 교재를 전량 구입하고, 인터넷으로 교육방송을 청취한다. 학교에 와서도 학생들은 전자 기기 등을 이용해 교육방송 시청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교육방송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이다. 그러나 교육방송은 사교육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사교육 성행이 과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외는 잘못된 사회적 시스템으로 성행하고 있다. 뿌리 깊은 학력 중심의 사회가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소위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야 출세하는 현실이 사교육의 주범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해결해야 사교육이 수그러든다. 지금 같은 학벌주의에 찌든 사회적 분위기로는 사교육을 잡을 수 없다.
결국 잘못된 진단으로 교육방송이 탄생했고, 국가의 힘을 업은 교육방송의 성공으로 공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수능 시험에 출제된다는 공공연한 힌트 노출로 정규 수업으로 충분한 학생들까지 수능 과외를 하는 형편에 놓였다.
사교육 해법은 공교육으로 풀어야 한다. 정부는 늘 교육 강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교육에 대한 시각은 오히려 공교육을 위축시킨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학생과 학부모 중심이어야 한다. 잦은 교육정책의 변화보다 학교 구성원의 화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과밀 학급 해결 등의 교육 환경 개선을 통해 공교육의 발전 동력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훌륭한 교육 정책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
최근 교육의 화두는 창의성이다. 교육방송에서 입시 준비를 친절하게 해주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교육 목적을 실현하기 어렵다. 학습자 중심의 학습 형태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제다. 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력·사고력을 증진시키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런 마당에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하는 교육방송에 집중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교육방송은 현재와 같은 기능을 포기하기 바란다. 교육방송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불행해지는 꼴이다. 평가원도 수능에서 70% 연계 출제를 할 테니 교육방송을 보라는 위협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제 교육방송은 우리 교육의 인성 교육과 창의성 교육 실천에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라도 교육방송은 국민의 평생 교육을 돕는 본래의 역할을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