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염려 마세요. 열심히 할게요. 나도 이제 어린 아이는 아니지 않아요. 이모네에서 못난이 노릇을 해서 어머니 입장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게요”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불안하고 자신감이 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우리 현식이는 믿어도 될 거야. 어디 가서라도 무엇인들 못하겠어?” 하고 말씀하시며 현식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꼭 쥐어 주었습니다. 현식이도 어머니의 손을 꼭 쥐어서 ‘염려 마세요’하고 응답을 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현식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음을 보내셨습니다. 40여분을 달려서 교대역에서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역삼역에서 내렸습니다. 역을 나가 잠시 걸어서 이모네가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이모네에서는 병준이와 함께 방을 쓰도록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침대를 2층 침대로 만들고, 책상을 나란히 놓아서 둘이서 함께 공부하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현식이는 책가방을 들어다 자기들의 방이 될 공부방으로 옮겨 두고 어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몇 가지 농산물을 내어놓았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 할 때 지켜야 할 일들을 이야기햇습니다.
“여기서는 놀러 나오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서 밖에 나가서 놀 수가 없단다. 그리고 놀이터에는 노는 아이들은 없어. 모두들 학원으로 가고 과외 공부하느라고 5학년만 되면 저녁 11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거든 그러니 언제 놀러 나갈 틈이 전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곳에 오면 그리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거야.”
이모의 말씀은 들은 현식이는 ‘이제 정말 죽었구나. 숨이 막혀서 어찌 살라고.....’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밤 11시까지 학원으로 과외 공부방으로 다니다가 밤늦게 돌아와서 잠이나 잘 시간이 있겠어?’ 혼자 생각을 해보지만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는 오후 4시가 돼서 집으로 가시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현식이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현식이의 손을 잡고서 “현식아, 병준이랑도 잘 지내고, 열심히 해야 돼. 알겠지?” 하고 다짐을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이모는 웃으시며 “어디 이국 땅에서 이별하는가 보다. 뭘 그렇게 못 잊어서 그 야단이야.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말야. 언니 걱정말고 가요. 내가 있는데 무엇이 그리 걱정이에요”하였지만, 어머니는 현식이가 떠나면서 보인 모습이 너무 마음에 걸려 걱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아파트 입 구까지 따라온 현식에게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아다보고 또 돌아다보시면서 어머니는 지하철 입구를 향해 떠나시고 현식이도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모가 해준 저녁상은 반찬이 너무 맛있고, 늘 집에서 먹던 것과는 많아 달라서 이것저것 많이 먹었습니다. “이모 반찬이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구나” 이모가 묻자 현식이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룩해진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맛이 있어서 배가 터질 것 같은데요”했더니, 이모가 깔깔거리면서 “얘, 그렇다고 배가 터지면 큰일이게? 그렇게 맛이 있었어?” 하면서 밥을 더 먹으라고 디밀었지만, 현식이는 손사례를 하면서 밥상에서 물러앉았습니다.
병준이는 밥그릇의 반도 못 비운 채 아직도 수저로 밥을 먹는 것인지 끄적거리고 있는 것인지 밥 먹는 모습이 영 시원찮습니다. 이걸 보고 속이 상하시는지 이모가 “병준아, 형 좀 봐. 벌써 한 그릇 뚝딱 해치웠지 않아. 너도 형처럼 잘 먹어야지. 뭐야 그게. 왜 그렇게 밥 먹는 게 시원찮니?” 하자, 병준은 형을 힐끔 돌아다보면서 “형은 5학년이잖아. 난 아직 형만큼 먹고 싶을 때가 아닌데 뭘?” 하고 투정을 한 뒤에도 한 동안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수저를 놓았습니다.
방으로 돌아온 병준은 학원 가방을 열고 학원 숙제를 하느라고 9시가 넘도록 붙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옆에 형이 있으니 물어 보지도 않고 마냥 자기 혼자서 낑낑거리면서 숙제를 마치고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맨 먼저 e-mail을 확인 해보고 나서 인터넷게임으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신나게 스타크레프트게임을 했습니다. 한 번 시작한 게임은 벌써 2 시간이 지나서 11시가 넘었습니다. 현식은 자기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았으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책을 읽지는 못한 채 책만 펴놓으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이모부가 퇴근을 하셔서 돌아 오셨습니다. 약간 술기운이 있는 듯 비틀거리듯이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 병준이는 얼른 게임을 끄고 숙제를 하는 사이트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모부는 먼저 아이들의 방으로 와서 문을 열자 현식이 얼른 일어서서 “이모부 이제 오셔요” 하고 인사를 하고 병준이도 따라 인사를 했습니다.
이모부는 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으응, 현식이가 왔다구? 그래 우리 병준이에게는 든든한 형이 생겨서 좋겠구나. 현식이 병준이 좀 가르쳐 주면서 함께 공부해라. 가끔 너무 게임만 하려고 하면 못하게 말리기도 하고. 알았지?” 하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현식이 믿음직 한데....” 하시고 방을 나서셨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11시 30분이 되자 이모가 물그릇을 가지고 들어오셔서 “너무 오래 하지말고 12시가 되기 전에 자야 한다”하고, 자리를 한 번 보살펴 주시고선 나가셨습니다.
현식이 먼저 자리에 들어서 푹신한 침대에 눕자 저절로 잠이 왔습니다. 집에서는 11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 드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벌써 잠이 와서 하품을 몇 번이나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자리에 눕기 바쁘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왔기 때문에 이틀이나 기다리는 동안에 현식이는 벌써 지쳐버렸습니다. 차라리 학교라도 가는 날이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데, 학교에 가지도 않고 병준이는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다니느라고 현식이와 학교에도 함께 가보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학교에 가보았지만, 교실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냥 운동장을 빙빙 돌다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이모가 함께 학교에 가서 전학 수속을 밟아 놓자고 하셨습니다.
현식이 이모를 따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전학을 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내일 개학하는 날 오라고 하시면서, 그냥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 현식은 병준이 컴퓨터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이 학교를 찾아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학교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이 그리 많은지 한 동안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 학년이 13개 반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학교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며, 자랑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현식은 자기가 다니던 장흥의 학교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담한 학교 모습과 정다운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지만, 이곳 학교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루하여 혼자 보낸 시간이 여간 고역스럽지 않았지만, 이모에게 걱정이 될까 봐서 아무소리 하지 않고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8월 27일 개학하는 날, 현식은 아침에 이모와 함께 다시 교무실에 가서 전학 절차를 밟아서 5학년 12반에 배치가 됐습니다. 한 교실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빼곡이 들어찬 교실에서 아는 아이는 하나도 없이 새로운 생활이 시작 된 것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새로 온 아이에게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저 또 하나가 더 늘었구나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현식은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 지 살피면서 하루를 조심스럽게 보냈습니다. 누구 하나 말을 붙이는 사람도 없고 옆에 앉은 짝도 별로 말이 없이 그냥 하루가 지났습니다. 물론 공부도 하지 않는 개학식 날이니까 아이들은 과제물을 내고 방학 동안의 이야기를 했지만 현식은 아직 이곳의 생활에 아는 것이 없어서 눈치만 살피고 앉아 있었습니다. 목요일에 개학을 했기 때문에 금새 토요일이 돌아 왔습니다. 그 동안 현식은 아직 친구도 없고 친구를 사귈만한 생각도 없이 보냈습니다. 토요일 오후 점심을 먹은 현식은 이모와 병준이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현식이네 집에서 토요일을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누가 등뒤에서 툭 치면서 “야 ! 강현식! 너 어디 가는 거니?” 하고 물었습니다. 현식이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같은 반의 친구인데 그 얘도 별로 말이 없이 앉아만 있던 아이였습니다. “으응, 넌 어디 가니?” 하자, 그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사실은 우리 집이 일산이거든. 그래서 토요일이면 집에 가는 거야. 너는 집이 어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식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난, 일영이야. 지금 이모와 함께 집에 가는 거야”하고 말을 하자, 그 아이는 반갑다는 듯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나도 지난 7월 달에 전학을 왔거든. 나 민준식이야. 너는 날 잘 모르겠지만, 새로 전학 온 너를 보고 반가웠어. 나도 며칠 안 다니고 방학을 했으니까 너하고 마찬가지야. 아직 아이들을 몰라. 우리 잘 지내자.” 하고 반가워하였습니다.
“응, 그래. 나도 아직 서먹하였거든 잘 됐다”하는 동안에 지하철이 다가왔습니다. 서둘러 차에 오른 두 아이는 금새 정다운 친구처럼 반가운 사이가 됐습니다. 3호선으로 갈아타고 구파발에 이르기까지 이모네 식구보다는 민준식이라는 친구와 이야기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전학을 와서 친구가 없던 현식이에게 같은 반의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생겼으니 이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 이야기며 아직 사귀지 못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준식이가 들여 주고 현식이는 물어 보는 식으로 이야기는 계속 됐습니다.
이모는 준식이와 현식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 학교에 대한 현식이의 생각이나 준식이가 처한 위치 등을 알아보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는 아직 학교와 학급 아이들에 대해서 비교적 모르는 상태이고 시골에서 전학을 와서 우선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정도 밖에 특별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파발에서 준식과 헤어진 현식이 이모와 나란히 차를 내려서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면서야 비로소 말을 걸었습니다. “새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아직은 서먹했는데, 일단 한 사람은 알게 돼서 기분이 좋아요. 저 아이도 나처럼 친구가 없다니까 잘 지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거 잘 되었구나. 우선 한 사람이라도 친구가 생겨야 외롭지 않을 거니깐.” 이모는 병준이의 손을 잡고 버스 타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주말 오후라서 버스 타는 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현식이가 얼른 달려가서 줄을 섰습니다. 이모는 길가의 슈퍼에 들러서 과일을 사느라고 조금 시간이 걸렸고, 벌써 줄은 2-30명이나 길게 늘어서게 됐습니다
따가운 햇볕에 한 동안 줄을 서 있어서야 버스는 도착을 했고, 자리는커녕 이미 설자리도 없을 만큼 만원이 돼 있었습니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억지로 버스에 오른 현식이네는 땀 냄새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간신히 좌석의 손잡이 하나를 붙잡고 서서 더 이상 밀리지 않으려고 진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여기에서 타고나면 앞으로는 더 이상 타는 사람보다는 내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니까 어떻게든지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어컨이 돌아가긴 하지만 너무 사람이 많으니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지 정다운 학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운동장에는 현식이네 반의 친구들이 축구를 하느라고 땀을 흘리고 땅바닥에 뒹굴어서 흙먼지가 범벅이 돼 가지고 열심히 볼을 쫓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이라면 이런 모습을 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갈 현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이모가 오시고 계시더라도 아이들을 불러 손을 흔들어 주거나 아니면 당장 달려가서 한데 어울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현식이는 이 학교의 학생이 아니고, 더구나 이 학교의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 채 만 채 하면서 도리어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외면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이곳을 떠났어도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지만 그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무어라고 할까 어쩐지 낯부끄러울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현식이가 학교 운동장을 외면하듯 지나치는 모습을 본 이모는 마음 속으로 ‘현식이가 얼마나 이곳을 떠나기 싫어했는지 알만 하구나’하고,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어린 내가 이곳을 떠나 있는 것이 몹시 싫은 모양인데 정말 그렇게 싫으면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할지 걱정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현식이에게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 염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 담장을 끼고 돌아서 일영역을 지나자 현식이네 집이 바라 보였습니다. 한 기슭을 타고 앉아 들판을 바라보는 현식이네는 집은 비록 현대식 멋진 집이 아닐지라도, 그 위치며 주위의 경치나 주변에 나무들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어느 별장집에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시골 정취가 넘쳐흐르는 집입니다. 집 가까이 이르자 현식이가 뛰어가서 “어머니 ! 저 왔어요 ”하고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뒤란에서 소를 돌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우리 현식이가 왔구나!"하시면서 나오시고, 방에서는 할머니께서 문을 활짝 열면서 “아이고, 우리 새끼 왔구나” 하시면서 반가워 하셨습니다.
이모가 사립을 들어서실 때쯤에야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오시면서 “어서 오너라. 너도 왔구나. 아이고, 우리 병준이도 왔네?”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씻었습니다. 수돗물보다야 엄청 시원한 지하수를 끼얹어서 씻고 나니 더위는 저절로 달아나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시간은 아직 멀었고, 우선 집에서 기른 수박과 참외로 간식을 하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에 현식이는 병준이를 데리고 집 둘레에서 여러 가지 풀, 나무 과일들에 대해서 이름을 가르쳐 주고 함께 만지기도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서울에선 병준이가 가르쳐 주고 시골에 오면 현식이가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산기슭을 뛰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보니 벌써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현식에게 서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또 물으면서, 저녁식사 시간이 한 시간으로 길어 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이틀 동안을 지낸 서울에 대해서 물으니 현식이로서는 할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식이게게 묻는 말을 이모와 병준이가 더 많이 대답을 했습니다.
이튿날은 이모와 병준이를 데리고 장흥 유원지에 가서 풀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냈습니다. 마친 이 풀장은 현식이와 같은 반 친구인 정준이네 집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정준이와 몇 몇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점심때쯤이 돼서 풀장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서 푸짐하게 백숙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맛있게 백숙을 먹고 나서 서둘러 준비를 하고서 출발을 하였습니다. 이제 정말 서울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준식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서며 “현식아, 잘 다녀왔니? 재미있게 놀았어?” 하고 물었습니다. 현식이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으응, 어제는 장흥 유원지에 가서 풀장에서 신나게 헤엄을 쳤지. 사실 난 아직 수영을 제대로 할 줄 모르거든 그러니깐 난 헤엄을 친 거지 뭐” 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준식이는 그런 현식이가 부럽다는 듯이 “재미있었겠다. 난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에서 그냥 혼자 놀다가 돌아 왔어. 사실은 전학을 오고 나니까 친구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동네에 나가고 싶지도 않은 거야. 나도 서먹서먹하고 말야.”
“응 사실 나는 며칠이 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친구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왠지 그기에 낄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그냥 못 본 채 하고 지나 버렸어.”
현식이의 말을 듣고 준식이는 그럴 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렇지? 나도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다니까” 이렇게 두 사람은 똑 같은 감정으로 어제 일요일을 보내고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금새 가장 친한 친구가 돼 버렸습니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친해지는 것은 시간이나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단짝이 되어서 화장실까지도 함께 따라 다니는 바늘과 실처럼 돼 버렸습니다. 현식이는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모를 만큼 정신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준식과 함께 나뭇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시간에도 가끔씩 서로 눈을 맞추면서 보낸 하루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그냥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준식과 현식이는 나란히 학교를 나섰습니다. 서울 시내의 학교들은 대부분이 한 동네를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 단지 중의 한 단지를 기준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림픽타운아파트 단지 내에 학교가 하나, 은마 아파트에 학교가 하나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단지의 아이들이 끼어들 수도 없고 멀리 다른 곳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몇 단지의 몇 동 몇 호 인지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단 둘이서만 만나서 놀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날마다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찾아다니느라고 도저히 얼굴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밥 11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과 놀고 싶다고 해서 졸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몹시 난처하고 갈 곳이 없던 준식이가 현식이를 만났으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래서 현식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현식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준 것이었습니다. 무어라고 해도 시골에서 온 현식에게 이곳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오락실이니, PC 방이니 하는 곳에 가보면 쉽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준식이가 현식이를 데리고 다니는 곳은 바로 이런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오락실에서 나오니까 벌써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현식이는 속으로 “아차 ! 이모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지하철을 탈 때 만난 친구라면 이모도 알고 있으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모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현식아 ! 너 지금까지 어딨다가 이제 오니? 도대체 넌 이모 애를 태워 죽일 작정이니 첫날부터 이게 무슨 짓이냐? 아직 길도 잘 모르는 네가 제 시간에 안 와서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아니?”
이모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현식이는 부끄럽고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병준이가 벌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식이가 병준이를 바라보자 이모는 벌써 ‘병준이가 학원에 안 가고 웬일이에요?’ 하고 묻고 있는 현식이의 마음을 읽고 대답을 하십니다.
“네가 안 와서 학원에 전화를 해서 여태 너를 찾게 한 거야.” 이 말을 들은 현식이는 미안하고 부끄러워 점점 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날 만났던 친구 준식이 하고 같이 있었어요. 아직 친구도 없는데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그만 너무 늦었어요.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하고 사죄를 하자 이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니 그럼 전화라도 해주었어야 하지 않니? 너 때문에 얼마나 야단이 난 줄 아니?” 하면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셨습니다.
현식이가 이모를 붙잡아 일으켜 드리면서 “이렇게 걱정하실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친구랑 놀다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하고 말씀드리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책가방을 내던지듯 하고선 시원하게 샤워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니 기분도 좋아지고 새로운 각오도 생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방으로 돌아오자 병준이도 금새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현식이는 병준이를 붙들고 “병준아, 미안하다. 그렇게 걱정하실 줄은 모르고 친구하고 놀다가 그만......, 너까지 공부를 못하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다.”
“괜찮아. 날마다 하는 공부 그 핑계에 하루 쉬어서 좋지 뭐?” 하고 의외로 순순하게 쉰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현식이는 병준이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너도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다니고 있구나? 그렇지?” 병준이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면서 현식이를 바라봅니다.
“그래, 넌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하니까 싫더라도 참고 이겨내야지.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오락을 하는 것은 안 돼. 이제 그것 그만해야 돼?”
“형, 난 하루 종일 공부, 공부에만 매달려 산단 말이야. 숨이 막혀 그래서 저녁 늦게라도 오락을 하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는 거야. 그것도 못하게 하면 숨이 막혀......”
병준이는 울상이 되어서 현식이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어머니가 다른 방에서 주무시니까 늦게 오락을 하더라도 괜찮았지만, 이제 같은 방에서 자는 형이 말린 다면 꼼짝없이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병준의 마음을 모를 현식이가 아닙니다. 병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병준아 ! 염려 말아라. 그러나 밤 12시가 넘도록 오락을 하면 잠이 모자라서 안 되는 거야. 적어도 7시간은 자야 하는데 넌 잠을 잘 시간이 없지 않아? 그래서 걱정을 하는 거야.”
“응, 알아. 그렇지만 오락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것을 몰라. 그래서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나 봐.”
“그게 아니야. 사실은 그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는 운동장 같은 곳에 가서 힘껏 뛰고 달리고 해서 운동을 해버리면 가장 좋은데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걱정이구나” 현식이 말하자 병준은 눈을 반짝이면서 “형, 그런 우리 아침에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 볼까? 형하고 같이 나간다면 어머니도 좋아 할 거야”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현식이도 그거 좋을 듯 한 생각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그거 좋겠다. 우리 말씀 드려 가지고 내일부터 아침 일찍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뛰기로 할까?”
“좋아. 나 혼자는 안 내보내 주셨거든. 이제는 괜찮을 거야.” 두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에 매달립니다.
이튿날 아침 운동을 마치고 학교에 가서 공부시간에도 아침에 뛰던 생각에 운동장이 늘 내다보이고 달리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식이가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붙이자 현식이는 “어제 미안했어.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혼나지 않았니?” 하고 물었더니 준식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늦었다고 우리 작은 엄마에게 혼났어. 그래서 네 이야기를 했지.
이제 와서 이곳에 친구도 없고 해서 같이 놀다가 늦었노라고 했더니, 이젠 너하고 놀지 말레더라. 그게 말이 되니?단 한 번 처음으로 만나 놀다가 그런 일인데?” 하고 말했지만, 현식이도 사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턴 같이 어울리더라도 시간이 늦지 않게 헤어지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모와의 약속도 있으니 오늘 또 늦게 들어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가 끝나지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장안에 들어 박혀서 책을 읽다가 컴퓨터에서 오락도 좀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나도 가지 않아서 한 나절이 지나기를 기다리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뒹굴다 책을 읽다 그러다가 다시 컴퓨터에 앉았다를 되풀이 하다가 간신히 저녁 시간이 됐습니다.
병준이는 잠시 들러서 저녁을 먹고서는 다시 학원으로 달려가고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많은 돈을 들여서 학원에를 다니는 데 학교만 끝나면 집안에 들어 박혀서 지내기가 보통 힘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곳에 자기가 살던 고장도 아니고 전학을 와서 이곳이 낯설고 힘드는데 갈 곳도 없으니 이만저만 힘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은 현식이도 준식이도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는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식이가 준식이를 따라 준식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준식이네 집에 들어서려다가 준식이 작은 엄마를 만났습니다.
“넌 누구냐? 너 혹시 현식이가 아니냐? 그렇지? 너 때문에 전 번에 그렇게 늦게까지 놀았다는 그 아이지? 너희들 어쩌려고 또 만나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니? 너는 어머니도 안 계시니? 이 동네에서 학생들이 남의 집에 놀러 다니는 아이가 어디 있는가 한 번 돌아다 봐라. 아마도 너희들밖엔 없을 거다.”
“부슨 말인지 모르겠니? 너 어서 가란 말이야. 우리 준식이도 공부해야 하고, 넌 공부 안 하니? 학원도 다니는 곳이 없고?”
잇달아 내뱉는 작은 엄마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식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 때 현식이가 무어라고 소릴 지르면서 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으면서 따라 나오고 있었습니다.
“현식아, 미안해! 우리 작은 엄마가 너무 했어. 내가 잘 못했으면 나를 나무라야지 왜 너에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난 기분이 나빠서 견딜 수가 없어”하고 현식이를 따라 나올 생각을 한 것 같았습니다.
현식이는 “준식아 ! 넌 나랑 같이 나가면 안 돼! 그러면 너는 영영 나하고 같이 만날 수 없게 되는 거야. 이제 나는 이 집에 다시는 올 수가 없게 되는 거야. 얼른 들어가. 가서 죄송하다고 빌어. 내가 잘 못한 거니까. 얼른....”
현식은 준식을 밀어 버리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느새 문은 닫히고 있었습니다. 준식이 재빨리 스위치를 눌렀으나, 문은 이미 다 닫힌 상태가 됐습니다. 현식은 그대로 나서서 집으로 돌아와서 오후 내내 준식이를 생각하면서 자기는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이모님이라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거야. 다행히 그 집으로 갔으니까 그렇지. 만약 내가 데리고 왔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 졌을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아마 우리 이모는 더 했을는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니 준식이에게 미안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난 현식이는 이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생각을 접어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모두들 학원으로 달려가고 없는데 현식이는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아직 어느 학원에도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현식이는 갖은 궁리를 다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어머니와 이모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어디 학원엘 보내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학원엘 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것도 없는 처지입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 와서 공부를 하다가 너무 심심해서 밖엘 나가 봐도 어느 한 곳에도 자기와 어울려 놀만한 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놀이터에도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유치원이나 놀이방의 아이들이 잠시 나와서 놀다가 가는 정도일 뿐 아이들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어린이 놀이터가 이곳입니다. 그래서 현식이는 혼자서 그네에 앉아서 한 동안 그네에 맡긴 채 흔들리다가 더 이상 혼자 놀기가 싫어져서 다시 골목길을 나섰습니다.
어디든지 아이들이 노는 곳이 있겠지 싶어서 찾아보았지만 어느 곳이라고 아이들이 노는 곳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 다니던 현식이 찾은 곳은 지난번에 준식이와 함께 갔었던 오락실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 든 몇 천원을 가지고 신나게 오락기의 레버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니 어느새 돈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시간은 벌써 어둠이 내린 시각이었습니다.
현식이는 ‘아차, 또 늦었구나. 이거 큰일이 났는데......’ 하고 생각을 하며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땅거미가 내릴 시각이었지만 서울의 거리는 벌써 가로들불이 환히 비추고 있어서 대낮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이모는 기다리고 있다가 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강현식 !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엊그제 다신 그런 짓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하시면서 현식이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어 대었습니다. 현식이는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두 팔이 달랑거리며 흔들리도록 이모에게 몸을 맡긴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아, 도대체 무엇이 그리 불만이니? 너 이모에게 뭐 할 말이 있을 거 아니냐? 왜 이렇게 집안에 붙어 있지 못하고 밖에만 나가서 돌아다니는지. 그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냔 말이야.” 하고 물으셨습니다. “..........................”
현식은 고개만 숙이고 아무 대답도 라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가 이모가 어깨를 놓아주면서 “아니 이제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렇게 속을 썩히니? 이러다간 이모가 못 견디겠다. 중학교에 입학하도록까지 어떻게 견디겠어 이렇게 해 가지고 말야.”
속이 상해서 못 견디겠다고 속이 상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습니다. 현식이는 “이모, 난 지금 여기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엇을 모르겠다는 거니? 무얼 알고 싶은데?”
“다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 않아요?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놀 수 있는 곳도 없고. 또 무얼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시는 것도 아니고, 날 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나 혼자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지금 헤매고 있는 거예요. 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게 해주지도 않는지 나야말로 알 수가 없어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현식이가 말을 하자, 이모는 가만히 현식이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 넌 아직 학원도 등록을 안 했고, 친구도 없고, 여긴 친구가 있다고 친구네 집에 가서 놀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네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그래 어머니하고 의논을 해서 결정을 해보자”하고 말씀을 하시면서 현식에게 더 이상 꾸지람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식은 씻지도 않은 채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혼자 생각에 잠겨 봅니다.
‘이제 학원에를 다녀야 할텐데, 과연 무슨 학원에를 보내 달라고 할까? 컴퓨터 학원? 태권도 학원? 음악학원은 취미가 없어서 안 될 것 같은데 무어 할만한 것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