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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본 교단 50년(53)엄마 ! 나 떠나기 싫어요 3

“강현식 ! 너 오랜만이다. 가자 오늘은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날이거든.”
민준식이가 현식의 어깨를 감싸 쥐면서 은근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현식은 답답한 마음을 떨 칠 깃이 없던 참이라서 얼마나 반가운 소리였는지 모릅니다. 현식은 준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준식이네로 들어섰습니다. 부엌에 들어가서 냉장고에서 과일과 맛있는 햄과 음료수 등을 잔뜩 꺼내다가 놓고 신나게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한참 컴퓨터에 매달려서 게임에 열중일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준식이 작은 엄마가 눈을 부릅뜨고 당장 몽둥이질이라도 할 기세로 소릴 버럭 지르십니다.
“아니? 준식이! 너 또 이 아일 불러 왔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도대체 이 동네 아이들 중에서 너희들처럼 놀고 있는 아이들이 어딨어? 응 ? 너 한번 살펴봤어? 이 동네 아이들이 11시전에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는 줄 아니? 모두들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밤늦은 줄 모르고 열심인데 너희들은 뭐 하는 거야? 엉, 너희들처럼 시골에서 와서 공부도 하지 않으려면 무엇 하러 왔어? 여긴 그렇게 놀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없어. 그 따위로 하려면 당장 돌아가! 집에 가서 놀던지 뛰던지 알아서 해.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졌어.”

한바탕 소릴 지르시던 준식이 작은어머니는 문을 “꽝” 닫고 가버리셨습니다. 현식이는 이렇게 무참하고 얼굴이 뜨겁도록 꾸중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분이 상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은 준식이네 방을 뛰쳐나와서 그냥 신발을 꿰자마자 불이나케 달려 나와 버렸습니다. 한 달음에 집까지 달려 와서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는 이모와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현식은 갑작스런 어머니의 방문에 어안이 벙벙하여서
“엄마, 언제 오셨어요? 온다는 말씀도 없이 왠 일이세요?”
하고 밖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쁜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현식아, 너 어디 갔다 이제야 오는 거야? 너를 만나고 가려고 여태 기다렸는데? 학교가 끝나고 벌써 네 시간이 지나지 않았니? 그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디 들어 보자.”
하시면서 현식이를 빤히 바라보십니다. 현식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결심을 한 듯이
“엄마, 난 여기에서 학교에 다니기가 싫어요. 도무지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아이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얼굴을 볼 수가 없고 그렇다고 내가 가야할 학원도 없고 만날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까 난 견딜 수가 없어요.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는지 어머니는 아세요? 난 여기서 할 일이 없어요. 날마다 학교에 갔다 와서 방안에 들어 박혀서 책만 읽으면 되겠지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감옥살이도 아니고? 더구나 아는 사람도 없어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어떻게 지내란 말이에요?”
하고 울먹일 듯 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어머니는 손수건을 얼굴로 가져가시면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리고선
“현식아, 넌 왜 이 애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냐? 네가 잘 되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을 그렇게도 모른단 말이냐? 너도 학원에를 다니도록 하자. 무슨 학원엘 가고 싶은 거니? 논 밭을 팔아서라도 학원에도 보내고 과외 공부도 시켜줄 테니깐 열려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다오.”
어머니는 현식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만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낸단 말이에요. 학원에 다닌 것도 한 달에 30,40만원씩이라는데, 거기다가 과외는 보통 50,60만원이라고 합디다. 두군데만 다녀도 다달이 100만원씩을 어떻게 해댈 수 있겠어요?”
현식이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벌써 다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학원을 보낼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사실 이곳으로 전학을 보내면서는 돈이 좀 들것이라는 것쯤은 생각을 하였지만, 이곳의 아이들이 학원비로 쓰는 것을 들으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큰 걱정에 싸여서 걱정을 하고 있는 사이 현식은 문을 박차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도무지 방법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아이들처럼 많은 돈을 들여서 과외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식이 발밤발밤 찾아간 곳은 역시 오락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준식이가 신나게 오락기를 붙들고 흔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현식이는 곁에서 지켜보다가 한 판을 끝낸 준식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너 언제 왔니? 참 나 지금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니까 너 여기서 자리를 잡고 좀 있어 줘. 자 얼른 다녀올게.”
하고 준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현식이는 신이 나서 오락기의 키를 쥐고 흔들어 대면서 화면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준식이는 한 판이 거의 끝나 가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현식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신이 나서 오락에 정신을 팔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준식이가 자리를 떠난지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준식이는 돌아 왔습니다.

“야 ! 현식아 ! 우리 가자.”
언제 나타났는지 준식이가 현식이의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현식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딜 가자는 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준식이가 다시
“야 ! 어서 가! 나 먼저 나간다?”
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쯤이 되자 현식이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목을 나서서 걸으면서 준식이가
“야 ! 우리 오늘은 롯데월드로 가자. 거기 가서 신나게 놀이기구도 타고 무어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하자, 현식이는 준식이를 돌아다보면서
“난 돈이 없는데?”
하자, 준식이가 호주머니를 툭툭 두들기면서
“염려 말아라. 여기 두둑하게 있잖니.”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신바람이 나게 롯데월드에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모두 다 타볼 셈이었습니다. 종합 이용권을 두 장 산 준식이가 나란히 다니면서 이것저것 마음에 내키는 대로 타자고 하였습니다.
 
밤이 늦도록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으면서 놀다가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살금살금 들어온 현식이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현식이는 며칠 동안을 이렇게 신나게 준식이와 돌아다니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에도 두 아이들은 오락실에서 한바탕 놀이를 하다가 준식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 현식이는 준식이의 자리를 지키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 이 자식 ! 너 언제부터 이 짓을 해왔어? 요즘 날마다 이상하게 빈탕이더니 이런 못된 자식이 날마다 훔쳐갔구만 이거! 이리 와 ! 넌 경찰서에 넘겨서 혼이 좀 나야 해.”
하는 소리에 오락실 안은 갑자기 오락기의 소리가 멈추고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현식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주인의 무시무시한 팔뚝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것은 바로 자기 옆에서 신바람이 났던 준식이 이었습니다. 현식이는 놀라고 겁이 나서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일어서서 준식이만 바라보다가 문 쪽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순간
“야 ! 임마 ! 어딜 가려고 그래? 너도 날마다 함께 몰려다니지 않았어? 네 놈도 같은 패거리이지? 어디 좀 보자.”
아저씨는 현식이의 멱살을 그러잡고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마치 인형이라도 된 듯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현식은 목이 아파 오면서 숨이 막혀 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은 멱살을 잡은 손을 붙들고 힘껏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아저씨의 다른 손이 현식의 뺨을 갈겼습니다. 현식은 얼른 손으로 아저씨의 손을 붙들고 다시 힘껏 물고 온힘을 다해서 조였습니다. 입안에 흥건히 피가 고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너무 아팠던지 얼른 현식이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현식은 아저씨의 뱃구리를 힘껏 들이받아 버리고 냅다 뛰었습니다. 준식이가 뒤를 따르고 넘어졌던 아저씨가 일어나서 뒤를 쫓았지만, 두 아이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서는 어디로 갈지 망설이는 동안에 두 아이들은 벌써 골목을 돌아서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현식이 숨을 헐떡이며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 순간에 골목입구로 들어서던 자동차가 눈앞에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현식은 방향을 잡지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끼익. 꽈당.”
현식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악 ! 나 살려 !”
현식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현식아, 어서 일어나 저녁 먹자. 넌 웬 잠을 그렇게 자니?”
이모가 현식이를 내려다보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현식이는 아직 꿈이 깨지 않은 듯 자기 몸을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얘, 현식아, 너 무슨 일 있었니? 왜 그래?”
현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이튿날, 어머니는 불야불야 이모네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모와 의논을 거듭 한 끝에 현식이를 컴퓨터 학원부터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현식이는 학원이 끝나면 갈 곳이 없으므로 컴퓨터 학원에서 두 시간쯤을 보내면서 그 날 배운 것을 복습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보냈습니다. 학원 선생님도 그런 현식이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준식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준식이도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데 바로 같은 학원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달랐으므로 현식이도 같은 시간으로 옮겨 달라고 하여서 준식과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심심할 여유가 없습니다. 컴퓨터 학원에서 배운 것으로 둘이서 시합을 하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오락 게임도 하면서 하루 하루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몹시 더워서 학원에 가는데 땀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야 ! 이거 너무 더워서 어디 학원에 가겠니? 어디 시원한 곳이 없을까?”
하고 준식이가 말하자 현식이도 은근히 학원에 가기 싫었던 참이므로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글쎄? 어디 갈 만 한 곳이 있니?”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준식이도 이런 현식이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정말 따라 올 거니? 나 지금 롯데월드로 갈까 하고 있거든?”
하고 물었습니다. 두 말을 하면 잔소리입니다. 현식이라고 이 무더운 날에 컴퓨터 앞에 주저 앉아서 땀을 흘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두 아이는 물을 필요도 없이 나란히 손을 잡고 롯데월드를 향하여 발길을 옮겼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놀이 기구를 내린 두 아이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아이는 공부에 실증이 나면 이렇게 롯데 월드를 찾곤 하였습니다.
9월도 지나고 10월이 되어서 이제 학교에서 2학기 중간 고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시험이란 것이 없어서 시험 공부 같은 것은 해보지도 않았는데, 이제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공부를 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학급의 아이들을 보니 학원에서 예상문제집을 푼다 뭐 누가 시험문제 예상문제집을 만들었다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식과 준식이는 이 곳에 와서 처음 보는 시험이라서 더욱 긴장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 시험문제를 풀어본 다음에는 비교적 쉬웠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만큼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두 아이는 오랜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용돈으로 쓰던 몇 천 원과 비상금 만 원짜리 하나를 지닌 현식이 준식과 함께 찾은 곳은 역시 롯데월드였습니다. 비교적 가깝고 볼 것도 많고 여러 가지로 편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아이들이 즐겁게 놀며 다니다가 뜻밖의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기들이 타려는 회전찻잔 모양의 놀이기구에 오르자 거기에 지갑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준식이 현식이도 모르게 얼른 덥썩 그 위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뒤따르던 현식은 준식이 자리에서 안전띠를 매고선 지갑을 챙겨 넣는 것을 보았지만, 자기 것에서 무얼 찾고 넣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다음에 탈 것은 숲 속의 보트였습니다. 보트를 타고 숲 속 같은 곳을 지나다가 갑자기 폭포를 만나서 깊은 골짜기로 내리 떨어지다가 물줄기를 가르며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준식은 지갑 속에서 돈만 꺼내고 손에 쥐고 있던 지갑을 물 속을 가르는 순간에 얼른 물 속에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옆에 앉은 현식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며칠 동안은 준식이 현식에게 맛있는 것을 사준다, 무슨 구경을 가자 날마다 함께 어울려 다니느라고 또 학원을 빼먹고 있었습니다.

“현식아, 너 오늘 어디 갔다 왔니?”
이모가 엄숙한 얼굴을 하면서 물으셨습니다.
“...................”
현식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이모는 속이 상한다는 듯이
“날마다 너의 뒤를 따라 다닐 수도 없고 어쩌자는 것이냐? 사일째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전화가 왔더구나. 날마다 무엇을 하고 다닌 것이냐?”
현식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미 학원에서 정확하게 전화를 했는데 거짓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
현식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까, 이모가
“아무래도 너를 다시 보내야 겠다. 내 힘으로는 너를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아직 어린 동생 병준이 만도 못하니 널 어떻게 하니? 그러다가 병준이 마저도 그렇게 될까 겁이 난다.”
하시면서 속이 상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습니다.
“이모, 죄송해요. 시험이 끝나고 좀 쉰다고 생각한 것이 날마다 노는데 정신을 팔았어요. 이번만 용서를 해주세요. 다음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할께요.”
하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너 지난번에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잖아. 어린 아이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니? 너의 엄마는 내가 너른 잘 보살피지 못했다고 원망을 할텐데 그땐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리고 네가 아직도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공부가 하기 싫다면 하등 여기서 이렇게 있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니겠니?”
이모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식이는 정말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11월이 되어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쯤 집에 있었으면 저녁이면 화로불에 밤도 구워 먹고, 할아버지 방에 군불을 넣으면서 장작 불 속에 넣은 밤이며, 고구마를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현식은 가끔 씩 집 생각이 나면 토요일까지 기다리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는 잠자리에 들어서 혼자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모네 식구들이 눈치 챌까봐서 감쪽같이 감추고 눈물을 흘린 자국이 나지 않게 조심을 하였습니다.
11월 16일 수요일, 언제나 수요일에는 오전 수업만을 하고 오후엔 수업이 없어서 일찍 학원을 다녀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오후 시간이 넉넉하여 놀 수 있는 날입니다. 그런 날인 수요일에 준식과 현식이는 1시 30분부터 컴퓨터 학원 공부를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놀 수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두 아이가 다시 롯데월드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롯데월드 놀이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백화점을 구경하기로 약속을 한 두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윗 층으로 올라가서 거기에서부터 차례로 구경을 하면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오기로 한 것입니다. 층층을 내려 올 때마다 한바퀴 빙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는 방법으로 내려 오다보니 벌써 한 시간이 훨씬 지나 두 시간에 가까이 지났습니다.

4층에서 구경을 하고 돌아 내려오려는데 준식이가 구경을 다니면서 물건을 사려고 물건위에 지갑을 두고 물건을 고르는 순간에 그걸 집어서 옷 속에 감추고선 총총히 걸을을 재촉하여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현식이는 뒤를 따르면서
“얘, 준식아, 우리 저기 오락기가 있는 전자제품 코너를 좀 더 보고 가자.”
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준식이는 들은 채도 않고 내려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습니다. 그 순간에 백화점의 경비 복장을 한 사람이 달려오면서 준식이와 현식이를 붙들고 잡아 끌었습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현식이가 아저씨를 올려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준식이는 아저씨의 손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이거 놔요. 이거 노란 말이에요.”
준식이가 소리를 쳤습니다. 어느새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아저씨는
“너희들 잠깐만 이리 와 봐. 잠깐이면 돼.”
하면서 두 아이를 끌고 객장의 뒤에 있는 조용한 경비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현식이는 발버둥을 치면서
“왜 그래요? 내가 무얼 발 못했나요? 구경만 하고 다녔는데요?”
하자, 아저씨는
“넌 가만히 있어. 까불지 말고. 이 자식이 지갑을 훔쳤단 말이야, 너도 한 패지?”
이 말에 어이가 없어진 현식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예? 한 패요? 뭘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덜덜 떨면서 중얼거리자
“너 이 아이하고 같이 온 거 맞지?”
하고 물었습니다. 현식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었습니다. 아저씨는
“그거 봐. 그러니까 넌 이놈과 한 패가 아니냐.”
하면서 준식이의 몸을 뒤졌습니다. 준식이의 품에서는 낯선 지갑이 튀어 나왔습니다.
“자, 이제는 아니라고 말을 하지는 않겠지?”
준식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두 아이를 조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준식이는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를 따라 왔을 뿐이에요. 보내 주세요.”
하고 말을 했지만, 아저씨는
“뭐라고? 이 아일 보내 달라고?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하면서 꼬치꼬치 묻고 대답하는 것을 모두 적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에 아이들이 있는 방에는 준식이의 작은 엄마와 현식이의 이모가 들이 닥쳤습니다. 현식이의 이모는
“ 현식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네가 정말 소매치기를 했단 말이냐?”
하더니 그 자리에 풀썩 거꾸러져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현식이는 무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난 아니에요. 난 그냥 같이 왔다가 저 아이가 한 짓도 모르고 붙들린 것뿐이에요.’
하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분명 하게 약속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해놓고
‘한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둑질을 했다고 전화를 받은 이모가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을 하니 무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이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만 흘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모는 경비아저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저 아이가 정말 남의 것을 훔친 게 사실입니까?”
“저 아이가 훔친 것은 아니고 이 아이가 훔쳤는데, 함께 다닌 것을 보니까 한 패거리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곁에 아는 아이가 있어야 진짜 자세한 신상을 알 수 있지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며 주소, 전화번호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거든요. 저 아이 강현식이는 직접 훔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만, 저런 아이와 다니면서 배울까 걱정이 됩니다. 앞으로는 같이 다니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만약에 저 아이가 아니라 현식이가 훔치는 버릇이 있더라도 혼자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같이 다니지 못하게 하면 버릇을 고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는 말을 듣고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서
“아니 그럼 분명히 훔친 것을 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아일 붙잡아 두고 전화를 해서 놀라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만약에 이 아이가 훔친 사실이 없으면 당신은 명예훼손으로 고발 할 테예요.”

이모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들자 경비아저씨는 이모에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아이가 훔쳤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같이 다니면서 훔친 것이니까 한 패거리가 아닌가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고, 또 곁에서 망을 봤다면 공범이 되는 것이니까 조사를 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집에다가 전화를 하면서 지갑을 훔쳤다고 한 거예요? 이 아이가 훔친 게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전화를 한 거냐구요?”
이모가 더욱 기세를 올리자 경비 아저씨는 이모를 달래려고 애를 썼습니다. 현식이는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물론 자기가 훔친 사실이 없다고는 하지만, 정말 함께 도둑질을 한 것이 되어서 경찰서로 끌려간다면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좀 더 잘 가르쳐 보겠다고 여기까지 보냈는데, 난 뭐야. 여기 와서 도둑질을 해서 잡혀가는 신세가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모의 항의를 받아들여서 이모가 보증을 서고 현식이는 당장에 집으로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준식이의 작은 엄마가 경비아저씨에게
“그런 이 아이가 남의 지갑을 훔친 게 사실이란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감시 카메라에 잡혀서 뒤쫓아가서 이 아이의 옷 속에 감추고 있는 이 지갑을 찾아내었으니까요.”
경비아저씨의 말을 듣는 동안에 지갑을 잃어버렸던 아주머니가 들어 와서는
“아니? 이렇게 조그만 아이가 내 지갑을 훔쳤단 말이에요? 그게 정말 입니까?”
하고 묻더니 아저씨가 그렇다고 말씀하시자
“아니? 너 몇 살이냐? 아니 지금 초등학교 몇 학년이냐? 어느 학교에 다니는 거야?”
하고 따발총처럼 이것저것을 한꺼번에 물어 대었습니다. 대충을 알려 주시는 경비아저씨의 말씀을 듣고서는
“잘 타일러 보내 주세요. 없어진 것은 없으니까.”
하고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준식이는 훔친 게 사실이므로 쉽게 풀어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현식이는 그런 준식이를 뒤돌아보며
“준식아, 미안해 나만 나가게 되어서. 그렇지만 난 네가 정말 그걸 훔쳤다고 생각지 않을 거야. 난 내 친구가 그런 짓을 한 것을 몰랐고, 또 네가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준식아, 이제 나오면 다시는 그런 짓 하지말고 착하게 살아. 난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 갈 거야.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안될 것 같아. 잘 가.”
현식이는 다시 전학을 가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여기에서 있다가는 다시 저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어. 난 여기서 너무 외롭고 친구들도 없으니까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잘해주면 당연히 가까이 할 수밖에 없으니까. 난 떠나야 해.’
하고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마 이런 말을 이모에게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준식이에게 한 말을 들은 이모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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