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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입학사정관을 위한 변명

"개구리는 냄비속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펄쩍 뛰어나옵니다. 하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자신이 삶아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죽어갑니다. 살려면 누군가가 건져주거나 스스로 깨닫고 뛰쳐나와야 합니다.“ 매킨지 글로벌 소장이 우리 경제를 '끓는 물 속의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에 비유한 말이다. IMF나 태안기름유출, 북핵위기 같은 BIG ISSUE에는 감탄하리만큼 빨리, 바로 해결하는 한국인들이지만 미국-유럽 선진국 시장에 종속되어 있는 제조 수출중심 한국경제 체질을 수출선 다변화와 서비스업 확대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듣고 최근 한 언론의 성급한 보도 때문에 비롯된 '입학사정관 폐지'논란이 떠올랐다.
"우리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대학입학과 향후 삶의 질이 비례한다는 그간의 경험이 우리 아이들을 끓는 물속의 개구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울을 쳐다 보면 교과서와 참고서가 공부의 전부이던 시대. 암기주입식 사지선다형 교육을 통해 성공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헌법을 지키듯, 외우고, 베끼고, 커닝을 해서라도 따라가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친구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네 아버지는 너 학교 보내고 가족 먹여살리려고 고생하는데 말대꾸하면 정강이 걷어 차이고, 뺨맞고, 심지어 의자로 두드려 맞기까지 하며 가르친대로 당연히 순종해며 복종해야 하던 시대, 교과서에 쓰인 것, 선생님 말씀과 다른 대답에는 회초리가 날아오던 시절. 선생님이나 공무원이나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집에서 쫓겨나던 시대를 살아온 중년의 낯선 남자가 서 있다. 그의 눈동자에는 어릴 때는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밤새워 코피쏟으며 공부하고, 커서는 가족을 위해 밤새워 야근해 온 삶이 맺혀 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개성이나 가치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며 무시당하고 개인의 삶이나 행복보다는 집단의 행복이 우선인 공리주의가 지배했으며, 선진국의 기술을 베끼고, 밤샘과 초과근무를 통해 부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공부와 시험만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통로이며 절대적 공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공의 경제공식도 바뀌었고, 삶의 가치와 목표도 변했다. 먹고 살만하자 자유를 찾는 혁명이 일어났듯이, 기업은 암기교육을 통해 길러낸 인재보다 뚜렷한 진로설정을 통해 다방면에서 노력해온 창의적 인재가 미래 한국을 세계와의 지적재산권이나 아이디어 전쟁을 끌어간다고 보고, 신입사원선발시 종이시험이 아니라 이력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면접방식으로 뽑는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므로, 기업의 방식대로 전형방식을 바꾸게 마련이다. 바로 서류와 면접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수시전형의 근간인 입학사정관 제도의 도입이다. ‘서울대는 공부도 잘하는 학생을 뽑는다‘며 신입생의 82.6%를 뽑는 발상의 변환이다. 책상에 앉아 하루 아침에 만든 아이디어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는 취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했다. 그런 문화권력은 어릴 때부터의 교육에서 나온다. 라흐마니노프와 고흐의 해바라기는 갑자기 들리고,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막걸리와 뽕짝을 좋아하는 것도 취향이 아니라 '계급'이다. 교육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계급을 만든다. 아는만큼 보이고 경험한만큼 성장한다. 하루 아침에 책상에 앉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평생동안 교육에 의해 쌓아오는 귀족의 품격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변했는가. 인재상이 바뀌었고, 변호사도 7급공무원이 되는 이 시대에 자신이 살던 때의 가치관에 여전히 지배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100년을 넘게 살아야 하고,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장받지도 못할 우리 아이들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도 이젠 자신의 꿈과 소질과 끼를 펼치며 날아가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21세기를 살아나갈 아이들을 70년대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이가 남에게 맞고 들어 오면 때리고 오라고 혼내고, 절대 지면 안된다고 가르쳐왔으니, 왕따현상도, 교내폭력도 당연하다. 욕설하며 담배피우는 아이들을 피해가야 하고, 밀리는 지하철에서 자리양보도 못받고 서가야 하는 현실은 누가 만든 어떤 교육때문인가 생각해 보자.

장관들도 헷갈리는 '창조경제'란 의미는 새벽에 학교에 와서, 이 학원 저학원에서, 혹은 학교 야자시간에 붙들려 자신이 살아가면서 몇번이나 써먹을지 모를 주기율표와 탄젠트 공식을 외우다가, 베끼다가 별 보며 집에 와야 하는, 그리고 12년동안 그렇게 살아온 모든 것을 단 하루의 시험으로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로또처럼 걸어야 하는 이 불편한 진실에서 벗어나 독서와, 신문과 여행과 실험과 캠프와 문화와 예술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 왜? 아닐 수도 있잖아? 이렇게 하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질문과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과거라는 지도를 그대로 따라가면 그 종점은 불보듯이 명확하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부당한 요구나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해 당당히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용기와, 자신의 꿈을 향해 폭풍우가 몰아쳐도 헤쳐 나가고, 사막에서도 오아시스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키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힘들게 찾은 귀한 물 한 방울이라도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인성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 세상에는 자신의 귀한 목숨을 헛되이 버리는 자살같은 것은 발붙일 수 없다.

청출어람이란 단지 외워야 하는 사자성어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함께 협동하고, 희생하고, 생각의 결과이다. 그 과정에서 혹 실패하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나오고, ‘혼창통’이 생기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리더가 탄생한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예술을 잘하는 아이가,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가, 무엇을 뚝딱뚝딱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가, 수다 잘 떠는 아이가, 사진 잘 찍는 아이가 성공하는 사회. 어릴 때부터 그 아이가 가진 소질과 끼를 발견하고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 그동안 살아 오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실패와 좌절과 성공. 눈물과 함박웃음과 사랑이 가득찬 이야기꺼리가 풍부한 아이가 앞으로 대한민국이 살아나갈 미래이며 창조경제의 문을 열어나갈 열쇠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길이 열렸다. 바로 단 하루로 미래를 결정짓는 암기식 주입교육인 수능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2번의 시험을 치르자고 했었다.) 3년간의 꾸준한 노력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냄비가 서서히 달구어지고 있는데도 자신이 샤브샤브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오히려 눈을 감고 반신욕을 즐기고 있는 입 큰 개구리가 된 것은 아닌가.
일부 언론은 말한다. ‘① 입학사정관 제도는 사교육을 유발하며, ②자기소개서 대필문제가 심각하고 ③추천서, 학교생활기록부 조작이 가능하며, ④전형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혼란을 조장하고, ⑤공부는 못하면서 부모의 재력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현대판 음서제도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식이다.

과연 그런가? 하나씩 생각해보자.

① 입학사정관 제도는 사교육을 유발한다?
4월 8일 건국대는 이 대학 입학사정관전형 합격생의 96.4%가 사교육 경험이 없었지만 수능 점수 위주의 정시모집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의 사교육 경험은 89.8%로 나타나 서로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당연한 일이다. 집 앞에만 나가보아도 바로 알 수 있는 일인데 주객이 전도된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참고로 영어수학 등 수능내신관련 사교육시장의 규모는 교과부, 통계청 조사로 연간 19조원이나 실제로는 33조원 규모, 영유아 시장만 2조7천억원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② 자기소개서를 대필한다?
자기소개서 대필 사례가 보도되었다. 사실 자신이 써서 제출하는 방식이니 대필의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함정이 있다. 그래봤자 합격하기가 어렵다는 것. 1차 서류합격 후 집중적인 자기소개서에 대한 압박 확인면접을 한다. 활동과 독서이력, 그리고 동기와 과정에서 느낀 이야기들을 교수와 입사관들이 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추천서와 활동실적증빙으로 2중, 3중으로 검토한다. 쓰여진 이야기와 면접 내용이 다르면 걸러지게 된다. 교과부의 표절검색시스템은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적발될 시 큰 불이익을 받는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자기소개서로만 학생을 뽑지 않는다. 학생부 교과성적, 자율활동,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진로계발활동, 독서활동, 인성, 열정, 스토리, 추천서, 증빙서류 등 2중, 3중의 장치를 통해 학생을 검증한다. 그 과정에서 실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기와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다면도로 평가한다. 준비를 하다보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실감나게 되어 있다.

③ 추천서의 공정성 여부와 학교생활기록부
2012학년도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한 학생이 고교시절 성폭행 사건에 연루되었는데도, 교사가 추천서에서 이 사실을 누락한 것이 밝혀져 합격이 취소되는 사례가 있어서 그 공정성 여부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입학사정관 제도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수능과 논술로 전형한 학생이었다면 그 사실이 알려졌다고 해도 합격이 취소되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원의 부당사례발표 이후 학교생활기록부는 오히려 지나치다할만큼 임의 수정이 어려워졌다. 이를 위반하는 교사가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제도는 개선된다. 12시 이후 범죄가 일어난다고 해서 과거의 통금제도를 부활시켜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의 생활을 막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분으로 전체를 호도하거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자.

④ 전형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혼란을 조장한다?
최근 발표된 각 대학의 2014학년도 입시전형안은 그동안의 혼란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일반전형이란 이름은 대부분 ‘논술전형’으로 바뀌었고, 학생부 중심전형, 서류중심전형 등으로 각 전형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여러갈래로 나뉘어져 있던 각 전형도 4가지 이내로 정리되고 있다.
서울시립대를 예로 들자면 학생부에 기재된 자료만 평가에 반영하며, UOS포텐셜, 학교생활우수자 전형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통합했다. 오히려 전형이 대학별로 다양하다는 것을 잘 활용하면 자신의 약점과 장점을 살려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정보 부족'이다. 대학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대학은 정말 자세하게 입시요강과 설명회, 동영상 자료 등을 준비해 놓고 있다. 정작 기본은 지망하는 대학의 입시요강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는 노력이다. 대학은 학생의 그런 노력과 열정까지도 높이 평가한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보지만 잘 안 보인다. 자신이 가기 원하는 대학에 한 번이라도 가보고, 그 대학과 학과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미래 자신의 계획은 무엇인지 일찌감치부터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⑤공부는 못하면서 부모의 재력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현대판 음서제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입학사정관 제도로 부당하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일까? 뚜렷한 진로목표를 가진 입학사정관전형 합격생들은 대학 입학 뒤에도 다른 학생과 비교해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여 주고 있다. 한양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0∼2012학년도 3년간 입학사정관전형으로 한양대에 합격한 학생의 학점평균은 3.43(4.5만점)로 정시모집 일반전형 합격생보다 0.16 높다. 또한 각 학과의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입학사정관전형으로 합격한 학생이며,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는 비율도 입학사정관전형 합격생이 정시모집 합격생의 절반 수준이다.

교육 제도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회귀본능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꿈과 소질을 키워주는 교육.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활동을 찾아 신나게 공부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진정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길러주고, 호기심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로 지식경제기반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리더를 만들어 내는 교육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제도를 포기하면 안된다. 교육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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