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중·고교 선발고사와 입학전 시행하는 반 배치고사, 모의고사 등도 교육과정을 벗어나 출제하지 못하도록 법제화가 추진된다. 최근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촉진 특별법' 시행령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 프로젝트가 처음 구체화되는 것으로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각종 교육평가 출제를 아예 법령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특별법 시행령은 앞서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 평가 금지 등을 담은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데 이은 조치다. 이에 따라 앞으로 학교 내신을 위한 중간·기말고사를 비롯해 고교 입학전형 선발고사와 학급 배치고사, 시·도 또는 전국 단위 모의고사 등도 정규 교육과정을 벗어나 출제할 수 없게 된다. 또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전국단위 모집 일반고 등은 반드시 입학전형에 대한 선행학습 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 특별법시행령에 중간·기말평가 등의 지필평가, 수행평가에서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해 평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각종 수행평가 외에 학교 입학전형으로 치러지는 선발고사, 학급 배치 등을 위한 배치고사, 재학 중 시·도 단위,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모의고사 등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서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이 특별법의 시행령에 규정하기로 했다.
따라서 고교에서 예비 신입생인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 배치를 명목으로 고교 과정의 시험을 내는 것이 금지된다. 고교 1ㆍ2학년이 보는 전국연합학력고사 등 각종 모의고사에서도 선행학습 관련 심화 문제를 출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학교별 입학전형을 시행하는 학교는 선행학습 영향평가를 벌여 교육감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로 하고 영향평가 방법이나 절차 및 심사항목 등을 마련하고 있다.
이 규정의 적용을 받는 학교는 특목고, 자사고를 비롯해 전국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일반고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이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지속적으로 일선 학교들의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 평가를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주지하다시피 선행학습 금지, 교과서 내 평가 출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이며, 법제화에 대한 현 정부의 강한 추진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하여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지향점이다. 하지만 선행학습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없이 법제화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대한 심층적인 검토와 함께 국민적 논의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선행학습 금지와 교과서 내 평가 출제만 강행한다면, 학생들의 학력이 하향 평준화될 우려가 없지 않다. 이는 글로벌 세계화 시대, 지식정보화 시대의 국가 인적 자원의 핵심 역량 신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영재 교육, 창의성 교육 등과도 배치된다. 특히, 평가의 교과서 내 출제 금지보다는 교육과정 내 출제로 폭을 넓혀야 한다. 특히 다종(多種)의 검인정 교과서가 일반화되어 있는 중등학교의 교육평가는 교과서 중심보다는 교육과정 중심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선행학습 금지, 교과서 내 평가 출제 못지않게 수월성 교육도 중요하다. 특히 최근 영재교육, 창의성 교육의 신장 등은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공교육 정상화촉진특별법과 시행령은 수월성 교육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자칫 특목고의 존재 이유가 퇴색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목고에서 교과서 내 출제를 고집한다면 학력이 일반고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될 우려가 없지 않다.
특목고인 외국어고는 적어도 보통 수준이상의 외국어 수학능력을 요구한다. 과학고와 영재고는 이미 대학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런데 교과서 내 범위에서 출제를 강요한다면 제대로 된 영재를 선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고와 과학고 등은 글로벌 수준의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분명히 미래 교육은 교육의 평등성 못지 않게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도 함께 중시돼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사교육이 횡행하고 사교육비의 부담이 가중된 현실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은 교육정책의 제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는 이미 국민적 합의도 모아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두를 문제도 아니다. 학교현장은 선행학습 여부를 판단할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음성적 선행학습이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도 있다.
여기에 학교와 교사들의 준비, 교육과정과 교과서 문제 해결 등도 선행돼야 한다. 특히 학습 자료의 핵심으로서 교육과정의 최소한의 내용만 담고 있는 교과서의 혁신도 해결돼야 한다. 학교에서 예습이 사라지고, 각종 교육평가에서 심화학습을 위한 신문 사설, 고전(古典) 등 참고서적ㆍ자료 등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수월성 교육을 위한 응용문제 출제도 못한다면 교육평가의 변별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교육정책의 강력한 추진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우려가 생길 개연성을 감안해야 한다. 학원과 개인지도 등 사교육에서 이를 어겼을 경우의 제어 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국가백년지대계인 교육에서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선행학습 금지와 교과서 내 교육평가는 그 취지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 교육 현실과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입안, 실행해야 할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한결 같이 부르짖었던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기대한 것 만큼 이루어지 못한 우리 교육 현실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연계 개선,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의 균형 있는 조화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학생들의 학력이 하향 평준화될 우려도 감안해 장기적 안목에서 이에 대한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차근차근 시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