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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문학상의 허와 실

지난 12월 13일 제 25회 인천문학상을 받았다. 1998년 내 다섯 번째 시집을 심사위원회에 응모했다가 고배를 마신 후 두 번을 더 실패를 한 후 획득한 3전4기의 쾌거(?)였다. 인천문학상은 대외적으로 권위를 알아주는 큰 상은 아니다. 하지만 인천문인협회 170여 명의 회원들이 출간한 책 중에서 1명을 선정하여 상패와 소정의 상금과 함께 주는 상이라 나를 비롯하여 책을 출판한 회원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수상하는 꿈을 가져보기도 했을 것이다.

책을 출간하지 않은 회원들도 11월이 되어 문학상 응모 작품집을 제출하라는 공고가 나가면 그 해의 수상자가 누가 될지 몹시 궁금해지는 것이다. 소설가가 될까 시인이 될까, 아니면 수필가? 아동문학가? 점쳐보며 지난해는 시인이 탔으니 이번엔 소설가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혼자 이리저리 상상의 날개를 펴며 수상자를 점쳐보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상이 인천 유일의 문학상이기 때문이다.

인천시 문화상과 각 구청에서 시행하는 구민문화상이 있으나 관에서 수여하는 각종 상엔 상금이 없다. 예전엔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없어졌다. 그리고 예총에서 시상하는 예술상, 공로상이 있지만 상금이 없는 명목상의 상이거나 상금이 아주 적어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적은대로 짭짜름한 상금까지 챙길 수 있는 유일한 문학상이 인천문학상이니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옛날에는 문학상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요 근래 들어서 나도 각종 문학상, 지원금, 우수문학도서 선정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한 시인의 프로필에서 여러 가지 문학상 수상 내역을 보게 되면 인상이 찌푸려지곤 했다. 왠지 상을 바라고 저 작품을 썼을 것 같고 끼리끼리 돌려먹기 식으로 수상자가 결정될 것 같은 부정적인 인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 근래는 그런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문학을 비롯한 각 예술계에서도 날이 다르게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예술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을 받는다든지 문예기금을 듬뿍 받는다든지, 우수문학도서에 선정이라도 되면 그것이 곧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고 자신의 위상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니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나도 그렇게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문인의 경우 그가 어느 매체를 통하여 등단했느냐 하는 것도 그가 문인으로 성장 발달해 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했느냐가 곧 그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할 것이니 전문 문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내가 문학을 한 것은 정말 순수한 문학의 본질에 근거하고 있다. 자아를 확인한다든지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여 카타르시스 효과를 얻는 등 오로지 내 영혼을 살찌우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차원에서 이제까지 문학을 해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문학상도, 지원금도, 우수문학도서 선정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학 활동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작품이나 작품집이 문학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딜레마이기는 하다. 선정되지 않아도 정말 좋은 작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가 모든 작품을 직접 읽어보고 작품의 우열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전적으로 믿고 그 작품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문학 판이 아무리 끼리끼리 나눠 먹기 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내가 가장 야심만만하게 내놓은 작품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학상과, 지원금과 우수문학도서라는 문학 3중주가 문학계에서 아무리 불협화음처럼 들릴지라도 내 작품을 정성껏 만들어 내놓으면 그곳 시장에서도 통하리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시 몇 편 소개 하는 것으로 독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눈빛
-노 시인의 시를 읽고

젖먹이
어린것을 바라보던
병색이 짙은 엄마의 눈빛

어미 없는
어린것을 기르던
꽃샘추위 속 햇볕 같던 할머니의 눈빛

이제 다시 시인의 눈빛
그 엄마의 눈빛과
할머니의 눈빛을 닮은,

시인은 그 눈빛으로
축대 밑 어린 싹을 바라보며
생명의 고귀를 일평생 시에 담고 있다
<졸시 ‘눈빛’ 전문>

시간에 대하여

다만 꽃이 피었다가 사람들을 울려놓고 지는 것이다.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고 도굴꾼이 왕릉을 도굴하듯 술꾼들이 개구리를 잡아다가 술안주로 먹는 것이다. 시간이 나를 데리고 꽃잎을 띄우고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있는 시간을 가로질러 세상이 봄이 되었다가 가을이 되었다가 다시 봄이 되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은 참새고 나팔꽃이고 초승달이다.

가만히 있는 너를 시간이 한 발짝씩 죽음을 향하여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건 새가 울건 시간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다만 네가 시간 속을 헤엄쳐 그윽한 내일을 향하여 가고 있다. 시간이 기차처럼 너를 태워 데리고 갈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물갈퀴처럼 지느러미처럼 헤엄쳐 비단잉어처럼 꿀벌처럼 물총새처럼 시간의 집터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네 손발이 삿대가 되고 네 머리와 가슴이 돛대가 되어 푸른 하늘 은하수를 노 저어 가야 한다. 우주 속을 유영하는 행성처럼 너는 시간 속을 한 마리 황조롱이처럼 날아올라야 한다. 어제부터 터지기 시작한 산수유도 개나리도 저희들 날개로 훨훨 날아 저희들 집을 짓기 위해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시간이 너를 구름열차에 태우고 고대광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시간 속을 뚜벅뚜벅 가로질러 꽃도 되고 나비도 되는 것이다. <졸시 ‘시간에 대하여’ 전문>

해바라기

저 멀리 꽃 같은 시절에
호롱불 앞에서 썼다가는 지우고 다시 썼다가는 지우던
그 첫사랑 애틋한 마음과 같이
네게로 네게로만 달려가
황홀히 꽃 한 송이 피워내고야 말 이 애달고도 간절한 비원은
나를 위해 예비한 조물주의 귀한 선물이거니
아! 다정한 동무여
끝내 염원은 염천 하늘에 뜨겁게 달아 피다가
어느 가을날 서느러니 부는 바람에
빈 들녘 홀로 서서 삭풍에 흔들리며 우는 날 온다손 치더라도
오늘은 내 목숨 뙤약볕 열기 속 뜨겁기만 하나니
내 마음 이제 나도 어쩌지 못하니라
저 빛나는 태양 아래 만물 너울너울 생명의 찬가 다투어 부르듯이
다만 너를 향해 커다란 꽃등인양 나의 마음 받쳐 들고
긴 여름 뜨거운 들녘 온종일 나는 이렇듯 정념에 불타 있노라
<졸시 ‘해바라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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