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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선행학습금지법이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국회가 선행학습을 금지 법안인 ‘공교육 정상화 촉진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을 의결했다. 따라서 오는 9월부터 초ㆍ중ㆍ고교 및 대학에서 '선행학습'이 전면 금지되게 되었다. 우리나라 모든 학교에서 소위 선행학습이 전면 금지되게 되었다.
 
초ㆍ중ㆍ고교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범위를 뛰어넘어 진도를 나가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는 내용이다. 법이 발효되면 공교육기관에서 해당 학년의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가르치거나 시험에 출제할 수 없게 된다. 자사고나 특목고, 대학 등의 상급 학교 진학, 입학 선발 과정에서도 선행학습 내용을 요구하지 못한다. 특히 정규 교육과정은 물론 '방과 후 학교'과정에서도 실시할 수 없고, 학원, 개인교습소 등 사교육 기관에서도 수강생 모집을 위한 선행학습 광고 및 선전을 하지 못하게 됐다. 
 
국회에서 통과된 일명 선행학습금지법은 학교 등 공교육 기관과 학원 등 사교육 업체의 선행학습 조장 행위를 규제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교육부는 이 법안을 두고 공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이라고 자평하고 있으나 선진국에선 유례가 없는 법안이어서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정말로 공부할 자유, 학습할 권리도 국가에서 제한하는 것이 대명한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시대정신이냐는 논란도 매우 거센 지경이다.
 
물론 선행학습금지법에는 조항에 초ㆍ중ㆍ고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한 학기, 길게는 몇 년을 앞당겨 미리 공부하는 걸 봉쇄하려는 내용은 없다. 단지 사교육에서 공교육의 정규 과정 외의 과정 이수를 제약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다만, 이 선행학습금지법이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냐에 대한 논란과 회의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수준별 학습, 맞춤식 교육, 영재교육 등과의 상치와 마찰의 최소화도 큰 과제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의 문면만 보면 우수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 법 제정 취지대로 상급학교 진학과 입시에서 학교가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는 건 그 자체로 온당하지 않다. 학생은 제 학년과 제 수준에 맞게 배울 권리를 갖고 있다. 대학 역시 고교교육의 안정화라는 차원에서 논술 등의 문제를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하는 등 ‘비틀어 출제하기’의 관행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학도 교육부의 기대대로 공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정상적인 공교육의 교육과정 내에서 교수학습을 수행하고 모든 교육평가를 이 범위 내에서 시행해야 한다는 강제적 규정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학생들의 성취 수준에 대한 변별력 판정은 난제 중의 하나이다.
 
선행학습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규제의 실효성 확보에 있다. 수많은 공교육 기관이 출제하는 시험이 교육과정 범위 안에 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출제자와 출제 기관의 양심과 인식 전환이 문제이고 관건인데, 교육열이 매우 높고 상대평가적 서열평가가 대세이고, 합격과 불합격이 교육의 비뚤어진 목표로 전도되고 왜곡된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이 법안이 안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법안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많은 사람들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시·도교육청, 지역교육지원청 등 관리감독 행정 관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학교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행학습이라고 인식하는 표준적 개념이 교육당국은 물론 교원·학부모·학생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영재학교나 과학고 등 특목고를 비롯한 일부 학교에서는 왹구 고교에서 일반화된 대학과목 선이수제인 AP과정을 두고 있다. 그러한 고교에서는 AP과정이 일반 과정이지 선행학습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고교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학교마다 교육과정의 범위나 심도가 서로 다르다. 교육 수요자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무엇이 선행학습이고, 어느 범위까지 허용되는지 좀 더 상세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 법이 제정된 근본적 원인도 사교육 감축과 사교육비 경감에 있다. 이 법의 행간에 내포된 함의는 공교육의 내실이다. 선행학습 금지는 단기적 대안이고 근본적 해법은 공교육의 질 향상이다. 
 
정부와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공교육 기관의 선행학습이 아니라 사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선행학습을 주로 조장하는 건 사교육 업체인데도 법안은 학원의 선행학습 광고만을 규제하고 있다. 근본적인 척결 대책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정도의 피상적 규제로 사교육을 감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행학습을 막아 공교육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이 법의 명분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공교육은 잡고 학원은 풀어둔 이 법이 당초 기대한 성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선행학습의 개념 자체가 모호한데다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문제를 가릴 만한 기준도 분명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듯이 이 법이 ‘공교육 정상화와 활성화, 사교육 감축과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대 전제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반대로 ‘공교육 하향 평준화, 음성적 사교육 팽창’을 부추길 우려가 없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법이 우리 교육 현장의 여건을 무시한 채 시행되면 교육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반추하여 더 큰 학교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교육 당국에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벌써  법이 공포되기도 전에 사교육 단체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위헌 소지가 있다며 학원에 대한 선행학습 금지는 난망이다. 자사고와 특목고 등은 자율권이 일반고에 비해 훨씬 많아 규제를 빠져나가기가 용이하다. 지금도 자사고와 특목고 등에 비해 역차별이라는 일반고의 목소리도 마냔 외면할 수만은 없다 자사고와 특목고 대 일반고가 더욱 더 부익부빈익빈의 수렁으로 빠질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지적도 한 귀로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공교육 규제해 사교육 막겠다는 선행학습금지법이라는 혹평도 있다. 우리 현실과 괴리된 임기응변식 법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 법이 시행 과정에서 세밀하게 다듬어지지 않으면 공교육 정상화 촉진이라는 법 이름과 달리 공교육은 무시되고 사교육은 음성적으로 팽창될 우려가 있다. 이 법이 제정 목적에 맞게 실효성을 갖추려면 법의 시행 과정에서 시행령과 지침 등을 통해서 세밀하게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법의 실효성은 제도보다 이를 준수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재음미해야 할 ‘공교육 정상화 촉진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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