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르치는데 의견 차이로 다툼이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아이들을 더 잘 기르기 위한 사랑의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2년간 교사로 재직했던 한 부부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육 방법에 의견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학교 첫 성적표를 받아든 엄마는 위기의식을 느껴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고, 아이는 성적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가 공부보다는 적성을 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부부의 초심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가족 간에는 점점 대화가 없어졌고,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3년여 시간을 흘려보냈다. 부부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세 자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545일간 33개국을 여행하면서 페루에서 우리나라 30대 청년을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진작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방황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 것이 잊히질 않았다. 그는 특목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입사해서 실패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지만 청년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불행한 자신을 보고 점수와 학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걸 버리고 뒤늦게 자신을 찾기 위해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청년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의 몇 십 년 뒤 모습이 될 수도 있었겠죠. 다행히 아이들에게 세계 여행이란 도전은 많은 것을 바꿔주었어요. 척박한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보여도 부모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잘 헤쳐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죠. 심지어 우리보다 훨씬 나을 때도 많았고요.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마냥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거라고 괜한 염려를 했던 것 같아요.” 이같은 깨달음을 가진 세 남매는 세계 여행이라는 자녀 독립 프로젝트를 통해 비로소 부모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얻게 되었다.
이 부모는 22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과서 안에 모든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참 바보 같았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여행에는 텍스트를 뛰어넘어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바로 알게 되고, 관심 있는 것들을 더 깊이 찾아 배움의 싹이 틀 수 있다.
그중 여행을 하면서 세 남매가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영어 공부였다. 여행을 하다보면 언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인 영어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울 땐 쳐다보기도 싫었던 과목이 영어였는데 그때서야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중요한 과목이라고 하는지 알겠될 것이다. 이같은 깨달음 때문인지 필자의 딸은 고 1때 학교에서 보낸 유럽 영어연수를 20일 넘게 보낸 기억이 있다. 경비도 꽤 든다. 그렇지만 영어의 바다에 빠뜨림으로 영어의 필요성을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깨달음이 온 덕분에 세 남매는 부모님을 설득해 미국에서 약 6개월간 머물면서 현지의 어학 시설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또 둘째는 과테말라 등 주변 지역을 여행할 때 남미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남미는 척박한 환경의 후진국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자신의 이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이란 것 깨닫게 된 것이다. 현지는 곡물로 풍성하고 가는 곳마다 황금빛 대지로 물들어 있었다. 다음 시대가 곡물 전쟁의 시대가 될 거라고 하는데, 이 땅에서 관련된 일을 하면 비전이 있겠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고 나니 당장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멕시코 교민의 소개로 그의 공장에서 일도 배우고 현지인들과 교류를 하며 지내게 됐다. 이를 계기로 어렵지 않게 스페인어를 배우며 현지 생활 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집트 근처 홍해를 찾았을 때는 일주일 동안 이론·실전 수업과 시험을 거쳐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남미 파타고니아에서는 빙하 트레킹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세 남매에게 세계 여행은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접하면 호기심이 생기고 그곳에서 흥미를 얻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생겨났다.
아버지는 아이들 특유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10대 아이들의 유전자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거부감이 없고 그것에 깊이 개입해 도전하려고 하는 것을 직접 본 것이다. 어른들이 무섭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이들은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필자의 딸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어른들이 힘들다는 한 달 간의 유럽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더니 또 유럽을 가겠다고 작정하여 3학년을 마치고 유럽 유학을 스스로 결정하여 도전한 것이다. 이러한 진취력과 도전 정신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갖고 있는 기질이고, 이것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환경과 문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일관된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때부터 아이들도 점차 고유의 색을 내기 시작한다. 이 부부교사도 그제야 아이들이 말하는 태도, 이해하는 방식,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이 저마다 새로운 길을 찾는 방향이 보였고 각각 자녀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해 그에 맞는 교육을 적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차를 렌트해서 할리우드를 가려고 하는데 모두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그때 둘째가 지도만 보고 우리를 무사히 할리우드까지 안내한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이 아들이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둘째 아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누구든 5분 안에 친구로 만드는 친화력이 대단했다. 난처한 상황에 처해 다른 식구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어느새 현지인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책을 얻어내고 있었다. 대인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막내는 수 계산과 경제 관념이 확실하다. 처음 배낭여행을 갈 때도 물가 변동 폭이 불확실하니 미리 환전을 해 가야 한다고 말하였지만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그 결과 미국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3000여 만원을 손해 보고 환전을 해야 했다. 또 국경을 건너 다른 나라로 갈 때 각국의 물가 폭도 금세 파악해내 절약하고 지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여행을 통해 자녀들의 기질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이는 진로를 결정할 때도 반영되었다. 여행을 끝냈을 당시 16, 18, 19세의 나이였음에도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보류하고 실전에서 경험을 쌓는 쪽을 택했다. 이는 여행을 통해 본 유럽사회에 영향을 받기도 했고, 충분히 경험한 뒤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길 때 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한 아들들은 스스로 활동하여 대학생이 될 때는 스스로 번 돈으로 입학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 남매 모두 고졸 검정고시를 마치고 바로 취업지원서를 냈다. 막내는 18세가 되던 해 대학 진학이 아닌 회계사무실에 취직했다. 그의 생각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여행중에 맞닥뜨렸던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자기 힘으로 선택하고 헤쳐나가면서 아이들 스스로 설 수 있는 진정한 성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