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을은 온통 ‘학교붕괴’ 담론으로 온 나라가 떠들석했다. 당시 학교의 무력감, 학교 공동체의 파괴, 의사소통의 불능, 전망의 상실이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비추어진 여러 가지 위기 증상들이 언론을 타고 국민 앞에 공개되었다. 이를 보고 국민들은 아연 실색하였다. 18개 교육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에서는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교사·학부모·학생 밤샘 토론’을 전개하였고 이 토론의 결과는 2000년 5월 ‘교육 살리기 선언’으로 이어졌다. ‘학교붕괴’ 해법의 하나로서 ‘아름다운 학교’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교육 살리기 선언’에서부터이다.
이 선언이 발표될 때만 해도 아름다운 학교의 의미는 그리 중대한 것으로 취급되지 못했다. 그러나 무너져버린 교실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부딪히면서 온 국민이 함께 문제를 공유하고 대안을 찾기를 원하면서 담론을 처음 제기했던 이들은 ‘아름다운 학교’야말로 학교붕괴의 핵심적 대안으로 믿었다. 학교붕괴 담론 제기자들을 중심으로 2000년 8월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준)’가 탄생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2년 2월24일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탄생하게 된다.
아름다운학교운동이 출범하면서 가장 많은 질문을 스스로 행하였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름다운 학교냐는 것이었다. 지금의 학교는 너무나 낡고 초라하고 삭막하다. 주민들과 분리하고 학생들을 가두는 담, 그 속의 사막같이 황량한 운동장, 군대 막사와 같은 교사(校舍), 부패와 날림으로 금이 간 교실 벽을 그대로 둘 수 없다. 이러한 학교에서 아름다운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이런 점에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에서는 우선 아름다운 교육적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옥·내외 환경을 중시하였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옥·내외 환경 부문에서 벤치마킹(benchmarking)할 학교들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이에 따라 높은 담을 허물어 운동장 주변을 동산으로 바꾸고 여기에 주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학교(서울고등학교), 군청이 중심이 되어 운동장을 사계절 잔디로 바꾼 학교(김해군청), 아예 운동장을 생태학적인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야생풀이 자라도록 내맡겨버린 학교(제천입석초등학교), 학교의 모든 틈들을 울창한 숲의 공간으로 채우는 학교들(학교숲가꾸기운동), 기업의 참여를 통해 우리꽃 동산을 만든 학교(LG복지재단), 닫힌 교실을 열린 공간으로 재구성한 학교(서울영훈초등학교), 시청의 지원으로 체육관을 열린 학습의 장으로 활용토록 다목적 체육관으로 재구성한 학교(부천시), 생태마을 속에서 어우러지는 학교(푸른꿈고등학교) 등 아직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부분들이 아름다운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밖에서 연못 등 소생태계(biotops) 조성, 생울타리, 학교 텃밭, 학교 담쟁이, 옥상 생태계, 농산물 화단, 인터넷 카페 교실, 목공실 설치 등의 컨셉들도 아름다운 학교의 사례로 널리 소개하였다. 그러나 생태학적이고 미학적인 외관들에 치중하다 보면, 마음이 예쁘지 않은 미인(美人)처럼 어줍잖아진다. 어느 돈 많은 사립재단이 돈으로 분칠하여 꽃과 나무를 교정에 심고 건물을 예쁘게 지을때 아름다운학교라고 칭한다면 어찌 학교붕괴의 대안으로 이를 내걸 수 있으랴.
[PAGE BREAK]아름다움은 감동이 전해져야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오히려 부천시내 분주한 시장 속에 있는 그저 그런 학교(부천신흥초등학교)를 ‘제1회 아름다운학교를 찾습니다’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한 교사가 교과연구비로 페인트를 사서 지저분한 학교 담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 사례를 아름다운학교의 전형으로 꼽은 것이다. 심사위원들에게 이 사례는 마치 연못 속의 연꽃처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움의 교육적 경험은 비단 옥·내외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관계로부터 온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체가 전하는 감동들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때,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같은 현상을 놓고도 달리 해석하고, 같은 말로 서로 달리 이해하는 세태들이 만연하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 안 인간 관계의 삭막함을 그대로 전승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위대한 평민을 만들자는 비전을 30년 이상 지탱해 온 학교(홍성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학부모를 자원봉사 요원으로 활용하여 인성교육의 요람으로 만든 학교(논산 대건중학교), 학교가 중심이 되어 마을의 축제를 만든 사례(고창여자고등학교), 학부모와 동창들이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를 재건한 사례(제주 납읍초등학교), 학교장과 교사가 똘똘 뭉쳐 교육개혁의 훌륭한 모델을 세운 학교(경기 남한산초등학교) 등도 아름다운 학교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중에서도 성남 남한산초등학교의 사례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개발로 인하여 주민들이 남한산을 떠나면서 학생수가 40여명으로 격감되고 어느덧 폐교가 논의되던 이 학교에서 2000년 7월 20∼21일 ‘남한산성 역사이야기 캠프’가 열리면서 남한산초 살리기가 시작된다. 학교 살리기가 꼭 필요한 마을주민대표, 남한산의 훌륭한 교육적 환경에 주목하면서 현 공교육에 대한 문제인식과 대안을 모색하던 성남지역 학부모, 이러한 취지의 활동에 공감하는 학교장 등이 남한산성 내 지역인사·교육계 및 기타 부문 인사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남한산초 존속을 위한 전학 추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확보하고, 여러 단체, 시민모임 또는 개별적인 참여희망자 등이 새로운 학교 만들기의 뜻에 동참하여, 또 자녀들의 전학에 동의하면서 총 학생 수 103명에 이르는 학교로 발전한다. 특히 정연탁 교장 선생님, 서길원·안순억·김영주·최지혜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학교 밑그림 그리기 기획이 시작되었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제2차 아름다운학교를 찾습니다’ 대상학교로 선정된다.
지난 1월 아름다운 학교 기행연수에 참여한 40여명의 교사들은 남한산초등학교의 혁신과정 브리핑을 듣고 나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 교사는 이 자리에서 “학교가 지체된 이유를 교육부 탓, 학부모 탓, 학생 탓으로만 몰았던 내가 오늘 아름다운 남한산초등학교의 공동체와 외관을 보고 크게 반성하고 간다. 이제 내가 속한 학교에 돌아가서 내가 먼저 변화하고 그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주위를 설득하면서 개혁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고 다짐하였다.
아름다운 외관과 공동체의 구축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학교가 어떠한 철학으로 무장하여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아름다운학교운동은 외관과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수-학습, 조직 운동 전반에 영향을 주는 대안적 철학을 정비하는 데 오히려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은 지금의 학교가 어떤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길래 이토록 심각한 붕괴 현상을 맞고 있는지를 반성하다 보면 새로운 철학 정립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PAGE BREAK]
획일화된 학교 상 제시 안해
우리의 학교 100년사는 개화기, 일제강점기, 압축적 근대화기의 역사이다. 한 마디로 위로부터 아래로, 정부가 공인한 지식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심어주기 위한 기제로서 만들어지고 보급되었다. 아이들은 백지상태(tabla lassa)로 간주되거나 미개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교사들은 가장 빨리 국가 지식을 아이들에게 집어넣어 주는 것이 애국적인 일로 사회화되었다. 학교는 동사무소와 같은 행정 조직이었으며, 교실 조직은 군대의 소대 조직을 가장 잘 닮아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근대화 마인드는 일부 수정되었다. 보다 민주적이고 근사한 근대화로의 일대 전환 움직임이 교육운동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교육 민주화는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런 대로 교사·학생·학부모의 참여는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 압축적 근대화 마인드에서 느슨한 근대화 마인드(mind)로 일대 전환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인권 의식을 불어넣어 주고,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 사회의 기본적 지식을 탐구 형식으로 밀어 넣는 식의 느슨한 근대화 마인드로 문화 지체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 맞는 보다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 합당한 학교는 과연 어떤 철학으로 무장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바로 인간을 바라보는 생각의 대전환을 추구한다. 우리 아이들 내면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본성이 존재하며 그것은 소우주처럼 완벽한 것이고 지켜져야 하고 북돋워야 하는 것이다. 굳이 공자의 인(仁), 맹자의 사단칠정(四端七情), 석가의 자비(慈悲), 예수의 사랑을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지 않아도 학교가 제공해 주는 성찰의 기회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이것이 아름다운 학교의 기본 요건이 충족되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에서는 이러한 철학이 대안적 학교 이념으로 부각되기를 희망한다. 아름다운 학교에서는 심미적인 측면에서의 아름다움, 생태적인 측면에서의 아름다움을 넘어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아름다운 감동을 추구한다. 단지 특정 종파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세속화된 의미에서 영성교육(Spiritual education)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유혹이나 광고, 강압, 불평등, 불안전으로부터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타인을 존엄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 집단에서 주도적(proactive) 삶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학교가 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러한 철학에 의거하여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미 왕따 현상의 극복,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 해결을 위해 소시오 드라마 기법을 활용한 ‘아름다운 교실 만들기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보급 중이며 (사)교육전략21과는 ‘New 3R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 중이며, (사)한국교육연구소와 함께 우리교육 새롭게 보기 프로그램 및 교사 리더십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다. 그리고 (사)희망교육연대와는 도심 내 아름다운학교 모델학교를 건립할 것을 추진 중이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결코 획일화된 학교 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학교에는 주민이 있고 주민들이 합의하여 고유한 냄새를 풍기기를 바랄 뿐이다. 학교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든, 일개 교사가 리더십을 발휘하든, 학부모나 지역 주민이 나서든 누구든지 자기혁신을 토대로 주위를 설득해 나가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단지 일부 교육운동가처럼 대안학교를 이상적인 상으로 제시하지도 않으며, 탈학교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관료주의 체제로부터 학교혁신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제61조의 ‘자율학교’가 보다 확대되기를 바란다.
[PAGE BREAK]
‘자율학교’ 더 많이 확대돼야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아름다운 학교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집단 따돌림으로 서로 갈등하고, 교사와 학생이 교실 내에서 갈등하고, 교사끼리 단체를 만들어 서로 갈등하고,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갈등하고, 학교장과 교사가 갈등하고, 정부 내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을 놓고 갈등하는 상황에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어떻게 하면 갈등을 잠재우고 평화스럽게 제3의 안을 세울 것인가에 고심을 한다.
지금 평준화 문제로 교육부와 재정경제부가 다투고 KDI와 전교조가 다투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언론을 중심으로 온 나라가 편가르기를 한다. 모든 단체가 평준화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세울 때,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그저 평준화를 지지하는 입장도 존중하고 그것을 깨기를 바라는 입장도 존중하면서 제3의 안으로 모두가 의기 투합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는 이제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되는 단체이다. 정회원이 250여명에 이르고 온라인 회원이 1000명에 이르지만 아직 조직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 다만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지금 교육계에는 새로운 흐름이 이미 생기고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인간관계와 학교 외관을 통해 아름다움의 교육적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 제공하자는 제언, 이제 심미적이고 생태적이며 종교적인 차원에서 온전하게 아름다운 인간상을 교육적 인간상으로 부각하자는 제언, 나부터 변화하여 교실을 혁신하고 학교를 개혁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제언들이 이미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의 이름 자체에 이미지로서 내재되어 있는 이상, 참으로 소중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관심 있는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그러한 제언이 보다 널리 실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