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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 대학체제부터 개혁하자

정부의 대학 정책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정부의 대학 정책에 관한 결정 권한 및 책임 소재의 범위를 새롭게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의 자율성확보에 보다 구체적인 혁신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대학 내부도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혁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권대봉 |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국가경쟁력은 기업경쟁력에 의해 결정되며, 기업경쟁력은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정부의 경쟁력과, 정부와 기업에 인력을 공급하는 학교의 경쟁력, 특히 대학경쟁력에 의해 결정된다.

Ⅰ. 정부의 대학 정책 개선

대학 정책은 거시적으로 보면 고등교육 인력을 양성하는 중심기관으로서 대학의 기능을 정립하는 국가 인적자원 정책의 일환이고, 교육의 연속성 측면에서 보면 초·중등교육정책과의 유기적 연계를 중심으로 하는 정규 학교교육 시스템의 일부이며, 미시적으로는 대학 자체의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실천 계획이다. ‘대학 정책’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탐색할 필요는 없지만 상기 전술한 바와 같이 대학 정책이 지니는 의미의 다중성으로 인해 혼동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선 논의의 초점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대학 정책의 결정 주체로서 정부와 대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를 한정하고자 한다.

지식기반사회의 도래로 국가의 경쟁력이 인적자원의 질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됨에 따라 교육의 중심축이 중등교육으로부터 고등교육으로 이전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개인을 포함하여 국가의 경쟁력 확보에 있어 대학은 필수 요소임과 동시에 강력한 수단으로 간주되면서 정부의 대학 정책 개입 수위에 대한 의견이 다양해지고 있다.

정부의 대학 정책이라는 주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대학 정책의 주요 결정 주체임을 의미하지만 과연 정부의 대학 정책에 관한 결정 권한 및 책임 소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우선 정부가 대학 정책에 개입하는 근거는 대학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들이 외부 효과를 지니는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의 주요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교육, 연구, 사회봉사 등의 영향력은 대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체들을 넘어서서 확산되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대학 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20세기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경제성장과 사회적 형평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가 대학을 직접 통제하거나 대학 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중앙집권적 의사결정체제의 비효율성이 대학 정책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국가 전체로부터 추출된 공통 요구를 모든 대학에 강조하다 보니 대학이 지역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지방대학 특성화사업과 교육인적자원부와 산업자원부가 공동으로 실시하고 있는 산학협력대학 육성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학의 본원적 기능인 교육, 연구, 사회봉사의 중요성은 현 정부의 대학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실현 - 전 국민의 인적자원 역량 강화’라는 교육인적자원 정책의 비전 하에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전략과제로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가 제시되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한 선결 과제로서 대학의 자율 역량 강화를 지적하면서 정부는 대학에 대한 기본 정책은 대학자율권 보장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여타 OECD 국가들에 비해 사립대학의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대학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들은 정부에 대하여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고, 대다수의 대학이 특성 없는 종합대학이며, 지역 산업의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정부의 대학정책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정부의 대학 정책에 관한 결정 권한 및 책임 소재의 범위를 새롭게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견지에서 다음과 같은 개선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공식적·비공식적 채널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다. 대학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집단은 정당과 기업은 물론 대학 내부의 구성원들을 망라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권당의 정책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정권의 변화와 대학 정책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집권당은 정책형성과 정책결정을 위한 정보를 충실히 축적하고 정부와 정책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권화정책으로 지방정부와 개별 고등교육기관으로의 가시적인 권한위임이 가속되어야 할 것이다. 즉,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나 대학에 교육의 질 관리를 위한 통제자 역할뿐만 아니라 조정자이자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앙정부, 지방정부, 대학 책임 소재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의 의사결정범위를 지방정부와 대학으로 분산시켜 중앙정부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법제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학에 대한 통제 및 지원 방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즉, 대학의 책무성 강화를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완비한 후에 대학으로의 권한위임을 촉진함과 동시에 정부의 정책이 대학 정책에 반영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관리에 의한 통제’로부터 벗어나 ‘실적에 의한 지원’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실적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평가 준거와 합리적인 측정 도구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II. 대학 경영의 자율성 확보

대학의 공공성이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교육 수요의 급증, 요구의 다양화, 경쟁의 심화 등과 같은 환경의 변화는 대학 경영의 자율성 확보를 주요 과제로 대두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공립 중심의 대학교육 체제를 갖추고 있는 대부분의 OECD 회원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국가가 국·공립 중심의 대학교육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대학 경영에 있어서는 각 대학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에서 대학경영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한 결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OECD는 대학 경영의 자율성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건물 및 설비 소유의 자율성, 자금차입의 자율성, 예산사용의 자율성, 교육과정편성의 자율성, 교직원 고용 및 해고의 자율성, 급여수준 결정의 자율성, 학생규모 결정의 자율성, 수업료 수준 결정의 자율성 등 8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경향을 보면 예산사용과 교직원의 고용 및 해고, 교육과정 편성 부문에서 대학들이 자율성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반면 자금의 차입이나 수업료 수준의 결정에서는 상대적으로 국가가 많이 통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별로 보면 대학이 자율권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국가들 간에는 유럽 국가라는 점 이외에는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으나, 자율권에 대한 제한이 비교적 큰 국가들은 북유럽에 위치하면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강조하는 노르딕 국가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즉, 대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가들에서는 그 만큼 대학 경영에 대한 국가의 개입도가 커짐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은 일본, 터키와 더불어 가장 자율성이 낮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들 국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국·공립 대학을 정부의 한 부서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대학의 자산을 보유하고 교직원을 고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편 한국과 비슷한 대학의 경영구조를 갖추고 있던 일본이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경우 ‘국립대학법인법’이 2004년도부터 시행되었다. 국립대학이 법인격으로 된다는 것은 대학이 건물 등 재산을 보유하고 직원을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국립대 직원은 국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급여, 고용조건, 근무시간 등에 대해서도 대학이 의사결정권을 갖게 된다. 또한 대학 내 이사회를 설치하여 학교 운영을 위한 제반 의사결정은 물론 총장도 대학의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문부과학성 대신이 지명하는 형태로 변화된다. 이와 같이 국립대학 경영에 대한 자율권한을 대학으로 과감하게 이양할 것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시 ‘국립’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운영을 위한 재정 조달 및 최종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공립 대학을 중심으로 고등교육 체제가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물론 대학의 자율성이 매우 낮은 일본에서도 대학으로의 자율성 부여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즉, 교육의 질적 성장, 다양하고 다변하는 교육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 대학 운영의 효율성 제고, 학생 유치 및 자금 조달의 유연성 확보 등이 대학이 생존하기 위한 해결 과제이며, 이를 위하여 대학의 자율성 확보가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도 상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학의 자율성확보에 보다 구체적인 혁신 방안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III. 대학내 의사결정구조의 변혁

대학 내 의사결정구조는 곧 대학의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데 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의 지배구조가 상이(相異)하므로 논의의 초점을 국립대학의 지배구조에 맞추고자 한다.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립대학 지배구조의 대표적 문제로는 총·학장 직선제도로 인하여 발생하는 학내 구성원간의 대립구조와 교수보직제에 의한 책무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선 총장직선 제도는 과거 대학의 자율성 및 민주성 보장의 상징적 의미가 있으나, 그 시행과정에서 ①과열 선거운동에 따른 교육 연구 분위기 저해 및 잡음과 혼탁 ②교수, 연구의 대학 문화보다는 총학장 선출에 대한 관심이 주도되고 선거 직후 차기 사전선거운동이 시작되어 실제 선거기간의 장기화 ③과다한 선거비용의 지출, 교수들의 연구시간 침해 ④선거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및 향응제공 등 소모적 낭비 현상 발생 ⑤선거 결과에 따른 논공행상 등으로 인한 총장의 파행적 대학운영 및 책임행정체제의 구축 곤란 ⑥실현 불가능한 공약의 남발 및 학맥, 인맥, 지연에 따른 파벌 형성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대학에서 교수가 보직을 담당하게 되면 수반되는 책임의 양이 많아지므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져야 하지만, 국립대학의 경우 보직 수당 외에도 다양한 혜택이 부여되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보직 수행에 따라 경력이 개발되어 행정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직에 의한 혜택을 공유하기 위하여 ‘돌아가기’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주요 보직은 교수만이 담당하도록 정해져 있어서 직원의 승진에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직원 불만족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세계적 추세를 보면 OECD는 최근 대학의 지배구조가 대학 특유의 협의에 바탕을 둔 전통적 모형에서 벗어나 대학 구성원의 대다수에게 개방된 대규모의 광범위한 대의 체제를 탈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 내 총장을 비롯한 집행기구의 권한 강화와 대학의 지배기구 또는 감독기구에 외부 인사의 참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야기하는 가장 큰 동인(動因)으로서 국·공립 대학의 재정 지원의 효과적 운영에 대한 책무성이 사회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의 압력이 내학 내부 갈등을 확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전통적인 대학 문화를 고수하려는 아카데미즘과 성과 중심의 ‘경영 우선주의’ 사이의 조화가 변화 성공의 핵심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대학 총장의 리더십 및 역할에서의 변화도 촉진시켜 총장이 교수진을 대표하는 덕망 있는 인격자이거나 저명한 학자여야 한다는 인식으로부터 탈피하여 외부 사회와의 네트워크 형성 및 다양한 재원의 확보 능력을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총장선출 방식이 직선제에서 ‘지명초빙제’로 전환하고 있다.

세계의 대학들이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방향을 요약해 보면 운영에 대한 대학 교수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집행기구를 강화하는 한편 외부 인사의 영입을 증가시킴으로써 사회와 대학 간의 유기적 연계를 도모하고 있다. 한편 이를 추진하는 주체로서 총장 선출방식도 직선제에서 지명초빙제로 전환되고 있다. 즉,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과 자율성의 확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학에 대한 자율성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대학 운영에 대한 외부 인사의 역할을 증대시킴으로써 대학의 책무성을 감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총장과 학장, 그리고 교수 등 내부 이해 관계자들 간의 권력 갈등 관계에 머물러서는 이와 같이 대학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할 수 없다. 대학의 진정한 고객이 누구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을 대학 지배구조 개편의 시작점으로 하여 내부의 이해관계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혁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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