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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시 쓰기' 교육하는 김명순 교장

“교장선생님의 문예창작반 수업 재미있어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7월 7일 대전 신계중 영어전용교실 English Village에서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리듬’을 설명하기 위해 가곡을 부르며 문예창작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학교의 김명순 교장(58). 그는 지난 6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20여 명의 학생에게 ‘창작의 즐거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이날은 ‘형상화를 통한 창조적 표현력 기르기’를 주제로 한 수업이었다.
“관찰에는 색, 형, 질, 선, 감, 미, 취가 있다고 지난 시간에 설명했죠? 이것을 수용하고 형상화, 즉 표현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味)는 맛으로 표현될 수 있죠. 여러분 오늘 학교 급식에 계란말이가 있었죠? 그 계란말이는 왜 맛있었을까요?”
“입맛에 맞아서요.”, “다른 때와 다르게 요리해서요.”
“그럼 어떻게 다르게 요리했나 생각해볼까?”
“참치를 넣은 계란말이여서 맛있었어요.”
“지금 여러분은 이미 미(味)에 대해서 표현했어요. 미는 맛 말고도 요리하기, 미식가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죠. 어떤 것이든 좋아요. 관찰하고 그것을 수용한 다음 그런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 형상화입니다.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창조로 이어지죠.”
김 교장은 학생들에게 수첩 한 권씩을 나누어줬다. 직접 쓴 ‘생명 사랑 한 줄 시’라는 글귀가 담긴 수첩은 작은 크로키 북으로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전날 화방에서 구입했다.
“‘생명 사랑 한 줄 시’는 ‘생명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한 줄 시’라는 말의 줄임인데 수업을 통해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컴퓨터, 핸드폰이 보편화된 요즘, 아이들이 직접 쓴 한 줄 시가 담긴 작은 시집을 갖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수첩을 마련했어요. 생각이 갇히는 것이 싫어 줄 없는 수첩을 구하다 보니 화방까지 가게 됐네요.(웃음)”
교장선생님이 직접 하는 수업은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소설가가 꿈이라는 이 학교 김은비(14 · 2학년) 양은 “교장선생님이 문예창작반 수업을 맡으셔서 파격적이라는 생각에 수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따로 배우지 않고 되는 대로 글을 썼는데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글을 써야 할지 정리해주셔서 글쓰기가 신나요”라고 했다. 김영준(13 · 1학년) 군도 “시가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교장선생님의 행동이나 표정이 재밌고 수업 방식이 색달라서 재미있게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 잠깐의 시간 동안 벌써 수첩에 시를 쓴 학생들도 있었다.
‘비 내린 자리 남은 것은 물 비친 자욱 / 찬바람 물내음 남겨놓고 먹구름 어데 갔나 어리둥절’(김은비 ·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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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시 쓰기는 학교의 문화 운동”

올해 3월 김 교장이 학교에 부임하면서 신계중은 확 달라졌다. 그가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일본 하이쿠시(俳句 ·  5 · 7 · 5의 3句 17字로 된 일본의 짧은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영감을 받아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한 줄 시 쓰기’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의준 교무부장(51)은 “기술 교과를 맡고 있는데 시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게다가 시를 직접 쓰라고 하시니 부담스럽고 어려웠죠. 하지만 4개월이 흐른 지금은 저도, 학생들도 한 줄 시를 씁니다. 그 벽을 교장선생님이 깨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우선 학교홈페이지에 ‘한 줄 시’ 코너를 마련했다. 글이 올라오면 일일이 답글을 달아 더 좋은 표현으로 바로잡아 주고 답시를 남기기도 했다. 매일 새벽 산책길에 생각을 정리해 시를 쓰는 그는 며칠에 한 번씩 쓴 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모든 교사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하지만 이런 정성에도 ‘시’를 무조건 어렵게만 생각하는 학생, 교사들의 생각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문예창작반 강의를 자청한 것도 김 교장의 이런 고민이 녹아 있었다.
“한 줄 시 쓰기는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짤막한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쓸 수 있고 어렵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생각한 그대로가 아니라 표어, 격언 등의 관념적 언어 표현을 만드는 데만 익숙해져 아름다움, 감동 등을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서투르죠. 형식에 구애 없이 누구나 느끼는 대로 글을 쓰게 하고 싶었어요. 이것은 아이들에게 심미안을 길러주고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죠. 또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시 쓰기를 겁내던 학교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특히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열린 ‘한 줄 시쓰기 대회’는 교사와 학생 모두가 시에 마음을 열게 됐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숨은 사랑에 감동받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쓴 한 줄 시를 인정받음으로써 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시집 하나 없는 시인”

명아(明我)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는 김 교장이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문학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해 40년간 시를 써 온 것.
“저는 아직 시집이 하나도 없어요. 언제까지가 습작기이고, 언제까지가 창작기인지 아직 모르겠고 그저 시를 쓰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시는 아름답게 세상을 보게 하고, 저의 이상을 보게 해줍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온 시의 힘이에요. 아이들도 똑같은 힘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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