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집현초등학교 급식소, 테이블마다 손질된 꽃잎이 접시에 담겨있고 여러 가지 곡물을 빻아 만든 반죽과 다식판이 가지런히 놓였다. 아이들은 손을 씻고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수건을 썼다. 선생님이 요리할 때 지켜야할 주의 사항을 일러주자 아이들이 진지해졌다. 다들 요리사가 될 준비 끝. 3월 24일, 즐거운 토요요리교실이 열리는 두 번째 날이다. “요리교실 정원은 40명인데 학생들이 80명이나 신청할 정도로 요리교실이 인기가 좋았어요. 진주시 모든 학교에 홍보가 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결국 신청 학생 전부 받을 수가 없었죠. 첫 날 수업은 시간을 한참 넘겨 끝날 정도로 다들 열심히 했어요.”
진주식생활연구회 살림을 맡고 있는 송귀숙(진주시 집현초 영양교사) 총무는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을 챙기며 첫 토요요리교실이 열리던 날 경험을 말했다. 주5일수업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연구회는 아이들을 위해 토요일마다 요리교실을 열기로 계획했다. 3월부터 11월까지 모두 25번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토요요리교실오늘 아이들이 만들 요리는 봄놀이에 어울리는 다식과 화전. 꽃잎을 따고 반죽을 동그랗게 뭉치는 아이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한쪽에선 다식판을 눌러 예쁜 무늬가 있는 다식을 만들어 낸다. 다식이 만들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예쁘다, 맛있겠다” 탄성을 지르기에 바쁘다. 별, 사각형, 도넛, 다양한 모양으로 화전을 부치던 승현이(동진초 5)는 오늘 만든 다식과 화전을 엄마가 꼭 맛볼 수 있도록 집에 가져갈 거라며 즐거워한다. 접시에 담기도 전에 입에 넣기 바쁜 아이들도 있다. 항상 누군가 만들어주는 음식만 먹다가 지금은 직접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지금은 아이들만 와서 수업을 듣지만 토요요리교실이 자리를 잡으면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계획이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열심히 사진에 담던 연구회 막내 강보미 교사(하동군 옥종중)는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칠 기회가 없었는데 토요요리교실을 통해 지식을 전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며 아이들이 열심히 따라주고 부모님들의 관심이 높아 요리교실을 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단다. 예상 외로 남자 아이들이 요리수업에 많이 참여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나 부모님의 의식이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실제로 남학생 비율이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첫 발걸음은 다문화가정을 위한 요리수업진주식생활연구회는 5년 전 한국요리에 익숙지 않은 다문화가정 주부들을 위한 요리수업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진주, 사천, 하동, 산청 등 서부 경남지역 20여 명의 영양교사들이 모여 한국 전통요리를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전수하고 과학적이고 건강 지향적인 영양관리, 효과적인 영양교육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회를 결성했다.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한 5명의 회원을 제외하면 당시 연구회 회원 대부분이 현재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입소문이 나 입회를 원하는 영양교사가 많아 회원 수가 계속 늘어가는 추세다.
연구회가 만들어지고 다문화요리교실을 시작하면서 활동 범위는 다문화요리교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점점 넓어졌다. 매년 어린이날 진주교육대학교에 부스를 마련해 균형 잡힌 식생활을 알려주는 영양교실을 열고, 진주시민건강축제에도 참여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음식문화기행, 위생관리 강연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운영비는 개개인이 조금씩 나눠 내기도 하지만 다문화교실 식재료비는 (사)진주문화연구소에서, 연구회의 공식적인 활동에 따른 운영비는 경남교육연구정보원에서 지원한다. 올해부터 시작한 토요요리교실 운영비는 진주교육지원청에서 지원하고 있다.
자료집을 펴내고 연수를 통해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식단 자료집은 회원이 아닌 영양교사들에게도 배부하고 인터넷 카페(cafe.daum.net/jinju-diet) 자료실에도 올려 다른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직무 연수나 수업 연구는 업무를 마친 후 남강초등학교 급식소에 모여서 진행하고 있다.
연구회 활동은 크게 회원 간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자료 제작(영양교육 운영자료, 식생활체험활동 자료 및 프로그램 제작, 질환별 영양교육자료 제작)과 대민봉사활동(어린이날 영양체험행사, 진주시민건강축제 영양상담)으로 나뉘는데 회원들은 조를 나눠 각자 담당 분야를 정하고 월 1회 이상 발제 토론하는 방식으로 연수를 진행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방학 때도 많은 시간을 영양교육자료 개발에 보낸다고. 연구회는 지금까지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전통요리 실습 자료집>, <학교급식에서의 학동기 임상 영양 관리 방안>, <토요요리교실 자료집>, <선진지 견학보고서> 등의 자료집을 묶어 냈다.
요리와 문화를 함께 배우는 다문화요리교실
10시부터 시작된 토요요리교실 두 시간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가자 교사들은 뒷정리에 바빠졌다. 설거지는 기본이고 남은 식재료를 포장하고 프라이팬과 식기를 챙긴다. 오전에는 토요요리교실, 오후에는 다문화요리교실이 연이어 열리는 가장 바쁜 날이어서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동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3시, 집현초등학교에서 차로 20여 분 걸리는 봉곡초등학교. 다문화요리교실을 시작할 시간이다. 다른 교실에서 한국어 수업을 끝낸 주부들이 요리 수업을 받으러 왔다. 다들 오늘 배울 요리에 대한 기대 가득한 표정이다. 중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국적도 다양하다. 하지만 요리할 때만큼은 국경이 없이 허물없는 친구가 된다. 한 조가 된 아야리 씨(중국)와 메바토 질리나 씨(필리핀)는 요리를 하면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활기가 느껴진다. 연신 휴대폰을 꺼내 요리 과정을 사진에 담고 메시지를 보낸다. 요리가 끝난 후엔 기념사진 촬영까지. 아직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맛있어요. 고마워요”라며 인사를 한다.
“요리교실에서 배운 음식을 해드리고 시부모님께 칭찬 받았다고 하면 큰 보람을 느껴요. 요리를 배우면 한국 문화에도 더 빨리 적응합니다. 김장, 효도밥상, 명절 음식 같은 전통요리를 시기에 맞게 가르치고 있어요. 요리를 잘하게 되면 한국 생활에 자신감을 얻게 되죠.”
연구회 창단 멤버로 활동한 최명선 회장(진주시 봉곡초 영양교사)은 다문화요리교실에 대해 설명하며 꾸준하게 나왔던 주부들 중에는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딴 사람도 있다며 뿌듯해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데 요리수업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이것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서로 같이 만들고 함께 나누는 훈훈한 정이었어요.’ 중국에서 시집 온 임향금 씨가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다문화가정 한국어교실 소식지에 남긴 글이다.
연구회 회원들은 “요리수업을 하면서 오히려 주부들에게 배우는 점도 많다”고 말한다. 함께 요리를 하다보면 그 나라 음식 만드는 법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다문화요리교실을 열었을 땐 조리를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또 주말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해 미안할 때도 많지만 고향을 떠나 한국까지 시집 온 주부들이 요리 수업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고.
“다문화요리교실이 계속해서 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과 함께 요리교실에 참여해서 꼼꼼하게 레시피를 쓰던 주부를 보며 참 행복했어요. 힘들더라도 연구회가 다문화요리교실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진주식생활연구회 추천 봄 요리 쌀가루 단호박 찜 케이크 만들기 “단호박이 달기 때문에 설탕을 많이 넣을 필요가 없어 아이들 간식으로 최고입니다. 찜 케이크라 오븐이 없어도 충분히 만들 수 있죠.”
■준비물 _ 단호박 150g, 고구마 150g, 견과류(호박씨+아몬드+건포도) 150g, 쌀가루 75g, 우리밀가루 300g, 계란 150g, 소금 5g, 설탕 250g, 물 130g, 우유 130g, 베이킹파우더15g
■만드는 방법
➊ 볼에 우리밀가루, 쌀가루, 베이킹파우더를 2~3번 체질한다.(체는 너무 촘촘하지 않은 것으로 준비)
➋ 계란, 설탕, 소금을 넣고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거품기를 이용해 설탕이 녹을 때까지 저어준다.
➌ 2번에 준비한 단호박, 고구마, 호박씨, 아몬드 슬라이스, 건포도를 넣어준다.
➍ 준비된 1번과 우유를 넣고 살짝 저어 마무리한다.
➎ 준비한 틀에 반죽을 반 정도 채워 김이 오른 찜통에 15분간 넣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