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비판적인 균형감각과 사고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인문학은 바로 이런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통찰력과 상상력, 창의력 등의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기초학문이다. 그러나 그 교육효과는 실용학문에 비해 단기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인문학이 위기에 빠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최근 이런 인문학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창의·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도 인문학 교육의 그것과 통한다. 2012년 인문학 교육의 현주소와 정부의 인문학 정책을 알아본다.
인문학 필요성은 공감하나 여건은 ‘부족’ 우리나라 학생들은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또 인문학 소양을 쌓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한국교총이 교육과학기술부 지원을 받아 진행한 ‘인문학 교육 실태 분석 및 진흥 방안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 대부분이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현재, 전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약 1000명을 각각 표집,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의 요약문을 보면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중등교육에 있어서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입시 부담이 인문학 교육의 장애요소로 작용한다고 응답했다. 대학생 역시 인문학 위기를 실감하면서도 인문학이 제시하는 가치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선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인문학 교육 여건의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고등학생의 경우 인문학 교육을 위한 시설이나 수업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답했고, 대학생은 인문학 수업 안내가 부족하고 전담교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인문학 교육 여건에 대해선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한 셈이다. 또 대학생들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낮은 이유로 초·중·고에서의 인문학 교육 부실과 연계성 부족을 지적했다. 연구서는 “이 같은 결과는 보다 전문적인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형성하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 이전 교육기관에서 겪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초·중·고에서 인문학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교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이런 이유가 총체적인 인문학 위기를 야기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인문학 교육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스스로 독서하는 것에는 인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0~11월 전국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초·중·고생 65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독서인구비율이 지난해 75.1%로, 2009년 94.3%에 비해 감소 추세를 보였다. 반면 청소년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0년 5.8%에서 2011년 36.2%로 급증했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날수록 청소년 독서율은 정비례해 하락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독서를 전혀 하지 않는 청소년도 24.9%나 돼 우리나라 청소년 4명 중 1명은 아예 독서와 담을 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학 대중화, 정부가 나섰다 정부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나선 것은 2007년. 학문의 기본 토대임에도 불구하고 실용학문에 밀려 대학에서도, 취업시장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인문학 부활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는 인문학대중화사업을 통해 지식기반사회의 정신적 인프라이자 국가 정체성의 토대가 되는 인문학에 향후 10년 동안 40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양한 인문강좌와 행사를 지원해 국민 생활 속에서 인문학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학계와 시민사회의 소통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올해 역시 인문학대중화사업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교과부의 ‘2012 인문학대중화사업’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인문학대중화사업에 총 29억4000여 만 원을 지원한다. 여기에는 ‘무료 시민인문강좌’와 ‘인문주간’ 등을 통해 초·중·고·대학생은 물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대중화 방안을 담았다. 사업내용을 보면 우선 ‘무료 시민인문강좌’를 전국 60여 개 기관에서 운영한다. 청소년, 일반인은 물론 노숙인, 새터민, 다문화가정, 군장병 등 인문학 접근이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올해는 주5일수업제 전면 도입과 학교폭력 문제에 따른 청소년 인성교육 강화에 대한 여론이 높은 만큼 초·중·고생 대상 인문강좌를 확대해 운영할 방침이다. 이정희 한국연구재단 연구원은 “올해는 대학뿐 아니라 박물관이나 도서관 등 대학 밖 연구·사회·문화기관이나 단체도 강좌에 참여 신청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지자체와의 연계를 강화해 지역 내 시민들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시민인문강좌는 7~8월 참여 신청 기관의 평가 및 선정을 거쳐 오는 9월 1일부터 강좌를 시작할 계획이다. 다음은 ‘인문주간(Humanities Week)’을 통한 대중화사업이다. 2007년부터 매년 약 1주일 간 공연, 전시, 각종 문화체험프로그램 등을 통해 일상에서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온 행사다. 올해는 7회를 맞아, 오는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진행한다. ‘열림과 소통’이란 기본정신 아래 진행하는 이번 인문주간은 제2회 ‘세계 인문학 포럼’ 주제와 같은 ‘치유의 인문학’을 주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인문주간과 석학인문강좌 ‘세계 인문학 포럼’은 지난해부터 인문주간에 함께 진행하고 있는 학술적 차원의 행사. 식민지의 고통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성장을 이뤄낸 국가로서, 이 시대 인문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고취하기 위한 행사다. 인문과학자, 사상가,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여 다각적인 인문학적 고찰을 도모한다. 이처럼 세계 인문학 포럼은 ‘학술적 차원’에서, 인문주간은 시민과 함께하는 ‘대중적 차원’에서 인문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또 같은 기간에 인문사회 연구진흥성과전시회, 국민 참여 이벤트, 다양한 볼거리도 함께 마련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한 번의 인문학 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한편 인문학대중화사업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석학인문강좌’도 올해 5년째를 맞았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매주 토요일 무료로 진행하는 이 강좌는 국내 최고 인문학자의 연속 공개강좌로 매 강의마다 300여 명 이상이 수강을 신청하는 등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오는 12월 29일까지 매주 토요일 3시부터 매 2시간가량 진행하며, 현장에서 강의를 듣지 못한 사람을 위해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www.krm.or.kr)에 온라인 동영상을 탑재해 놓았다. 석학인문강좌는 그동안의 호응에 힘입어 오는 9월부터 ‘석학인문강좌 지방시리즈’를 실시, 서울 외 지역에서도 석학의 유수한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시범 추진할 예정이다.
인문소양 키우는 경기도 ‘창의지성교육’ 엿보기 비판적 사고·감성·상상력 키운다 “초·중등학교에서 창의지성교육의 토대가 없다면 대학교육의 인문교양교육 역시 그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 경기도가 주창하는 창의지성교육은 지성교육을 통해 창의성을 신장시키자는 경기혁신교육의 핵심 개념이다. 이를 위해 정규 교육과정에 인류가 축적한 지적 전통과 문화, 경험과 체험, 사회적 실천 등의 교육 내용을 확장·보완하고 초·중등 교육 내용을 재구성한 교육과정을 채택했다. 지식과 기능, 태도가 일체화된 통찰력, 상상력, 문제해결력, 리더십 등 창의지성 역량 계발에 중점을 둔 교육과정이다. 운영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초·중·고 학교급을 연계해 ‘창의지성 교육과정’으로, 고등학교 2~3학년은 ‘창의형 진로·진학과정’으로 운영한다. 창의지성 역량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사고력과 판단력은 단 시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의지성 교육과정’은 각 2년씩 단계적으로 운영한다. 각 단계마다 얻게 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창의지성 역량과 이에 기초한 고등 사고능력 계발을 보다 심화·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창의지성교육 기초교양 프로그램 발표회’를 갖고 철학,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대한 초·중학교용 ‘기초교양 프로그램 4종’과 초·중·고등학교용 ‘의사소통능력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기초교양 프로그램은 깊은 독서와 사색, 토론, 적용 및 체험, 글쓰기 등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상상력, 감성을 신장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소통능력 프로그램은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수용능력과 창조적 커뮤니케이터 역량을 길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춰 미디어 특성과 새 커뮤니케이션 매체 활용능력, 의사소통능력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초·중학교의 경우 이번 해에 시범적용·보완 후 내년부터 적용하고, 고등학교는 연내 개발해 내년 시범적용 후 2014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김기철 학교혁신과 과장은 “창의지성교육은 지식기반사회뿐 아니라 이후 시대에 필요한 창의성과 상상력, 감성 등을 길러주는 교육”이라며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창의지성 역량을 길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