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6 (토)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내 아이와 똑같은 마음으로!

최고의 스승, 최고의 사랑

‘엄마 선생님’ 이선녀 홍천 반곡초등학교 교사



스포츠로 치자면 ‘국가대표’요, 예술계의 어휘를 빌리면 ‘거장’에 비견될 것이다. 대한민국 스승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스승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홍천으로 떠났다. 팔봉산의 가파른 산세를 휘휘 돌아 잗다란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반곡초등학교. 모두 합해 20명 학생들이 오순도순한 작은 분교에 대한민국 최고의 스승, ‘2013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한 이선녀 교사가 있었다.

 진심이 최고의 교육이다
“처음에는 도전할 엄두도 못 냈어요. 추천서, 자기 소개서 등 14쪽에 달하는 구비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그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동료 교사,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실사도 2번이나 진행하더라고요. 포기하고 있었는데 저를 추천해 주신 신남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신뢰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어요. 단지 학생들이 좋아서 신바람나게 가르친 것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제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나의 교직생활 10년을 되돌아보는 계기로써도 뜻 깊었습니다.”

교단에서만 25년, 현재 몸담은 홍천 반곡초등학교가 이선녀 교사에게는 여덟 번째 학교다. 그의 생애에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대한민국 스승상’은 우리 시대의 참다운 스승상을 정립하고 스승 존경 풍토를 확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교육부의 ‘으뜸 교사상’과 한국교직원공제회의 ‘한국교육대상’을 통합해 제정한 최고 권위의 교육상이다.
수상하기까지의 과정이 녹록했을 리 없다. 이 교사는 강원도에서도 이름난 선생님들과 경합해 대표로 출전했고, 전국에서 단 3명에게만 주어지는 스승상의 주인공이 되어 상금과 ‘옥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기실 이 교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놀라울 것도 없는 일. 이 교사는 홍천과 춘천을 아우르는 유명한 별명 대장이다. 계절 따라 ‘붕어빵 굽는 선생님’이었다가 ‘어묵 선생님’, ‘떡볶이 선생님’인 시절까지 있었으니.

교사와 엄마는 다르지 않다
“반곡초등학교에 부임해오기 이전 대룡분교에 몸담았던 시절의 이야기에요. 전교 학생 수가 8명뿐인 시골 학교여서 아이들의 간식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지원하는 먹을거리도 인스턴트 간식과 탄산음료가 대부분이었고요. 제가 그 아이들의 엄마라면 아이가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떡볶이를 만들고, 어묵탕을 끓여 학교에 가져가 아이들과 함께 먹었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는데, 그 모습에 흥이 붙었죠. 겨울이 되고 간식을 고민하던 중에 미니 붕어빵 기계를 판매하는 것을 알고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기계를 구입해 또 붕어빵을 신나게 구웠어요. 아이들과 붕어빵을 먹으며 그 겨울을 달콤하게 보냈죠.”
돌이켜 보니 교사로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대룡분교는 하루에 4번만 버스가 운행했다. 차로 다니면 5분이면 닿을 거리를 학생들은 작은 걸음으로 1시간씩 걸어 등교를 했다.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에 지쳤다. 지켜보는 이 교사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스러운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 그는 대룡분교에 재직하던 3년 동안 자신의 차로 아이들의 등하교를 도왔다. 길에서 학부모라도 만날라치면 그날은 차안에서 즉석 상담이 이뤄지기도 했다. 교사로서의 고민도 깊어져, 도시학교 못지않은 다양한 특기 교육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팔방으로 분투해 국악, 소금 등 9개의 교육강좌를 기부받기도 했다. 그러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부임한 첫해에는 제가 무얼 해도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없었어요. 2년째에 접어들자 학교에 아이들 간식으로 떡을 해오시는 분이 생겼고 김치전을 부쳐 오시고 나물을 뜯어다 주시기도 하셨어요. 선생님들이 잠시 머물다 떠날 거라 여기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던 부모님들이 한 분 두 분 학교 문턱을 넘으며 변화하는 모습이 정말 기적처럼 반갑고 감동적이었어요.”
학생들에 대한 이 교사의 유난한 애정은 대룡분교 이전에 몸담은 협신초등학교 재직 시절에도 유명했다. 스스로 오카리나 합주단을 조직해 아이들에게 악기의 즐거움을 체득하게 했고, 무대에 서는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논술강좌를 개설해도 시골학교 여건상 외부강사들이 오려고 하지 않자,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 아이들을 직접 지도한 경험이 숱하다. 자기주도적학습지도사, 통합논술지도사, 보육교사, 전문상담교사 등 수많은 자격증은 이 교사의 교육 열정을 대변하는 훈장이나 진배없다.

가르치는 본분에 이토록 무구(無垢)한 교사가 있고, 그 한 명의 교사가 바꾸어 놓은 변화의 힘은 이렇게나 위대하다. 하여 궁금해진다. 이 교사를 이토록 끊임없이 더 좋은 선생님으로 노력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중독이 됐어요. 제가 무언가를 해줄 때마다 기뻐하고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무한한 보람을 느껴요. 이제는 마치 일 중독처럼 제가 즐기게 된 거죠. 떡볶이도 그렇고 붕어빵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비실비실 웃음이 나요. 주변에서는 큰 학교로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저는 작은 학교에서 제 몸을 움직여 아이들을 성장하게 하고 학부모의 변화까지 눈으로 보고 체감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해요. 이것이 교사로서 저의 사명이 아닐까요?”

아이의 얼굴은 교사의 거울
이 교사에게 ‘좋은 교사’란 ‘아이들을 웃게 만들면서 존경받는 교사’다. 실제로 스승상 심사 과정에서 두 번의 실사가 이루어졌을 때 심사관이 마을 아이에게 “이선녀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대뜸 “간식이요!”라고 답한 아이가 상당수. 더불어 “우리 선생님은 무섭지만 참 좋아요”라며 모두가 무한 애정을 표현했다는 후문이다.
“연륜이 주는 특혜가 아닐까요? 교사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을 보는 마음이 넓어지고 아이를 보는 눈이 점점 더 긍정적이 된다는 점이에요. 결혼 전에는 저도 완벽주의 선생님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아이가 운동장에서 아무리 웃긴 행동을 해도 부모 눈에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 거고, 서툰 그림도 부모의 눈에는 그만한 걸작이 없죠. 실제로 아이를 키워 보고서야 ‘숙제를 했는데 안 가져왔다’라는 아이의 말이 변명이 아니라 진심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어요. 아이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게 됐어요.”

이 교사는 ‘교사는 아이들의 거울이다’라고 믿는다. 교사가 아이를 긍정의 눈으로 봐주면 아이도 긍정으로 바뀐다는 것. 역으로 1년을 함께 보낸 아이들의 마지막 얼굴은 담임선생님, 즉 바로 자신의 얼굴이라고 여긴다.
“만약 당신이 찍은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 대상에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한 이는 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다.
이 교사는 “아무리 장난꾸러기라도 여럿 중 하나로 보지 않고 하나하나 개별로 보면 아이는 다 예쁘다”는 신념으로 아이에 관한 편견을 솎아 낸다. “일직선에서 출발시키지 않고 둥근 원에서 출발시키면 각자 1등이 된다”는 그는 “각자의 방향으로 뛰게 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자기 길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교사에게 교육은 그래서 기다림이다. 우리는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스승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가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알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봐주며 끝없이 기다려주는 교사라는 사실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위안이다. 


Epilogue 알려지지 않은 수상 뒷이야기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건만 스승상 수상은 고맙게도 나눌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선녀 교사는 스승상 상금 전액을 퇴직할 때까지 자신의 모교인 강릉 명주초등학교에 매년 일정 금액씩 기부하기로 했다.
“교직에 있다 보면 도움을 주고 싶은데 장학금 조건이 맞지 않아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조건 없이, 담임교사가 재량껏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로 기부하고 싶어요. 아이들 덕분에 받은 큰 상이니,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