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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권력 앞에 고개 숙인 수능

올해로 24번째를 맞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모태는 1969학년도부터 1981학년도까지 실시해 왔던 대학입학예비고사이다. 예비고사제도는 5공화국 정권 초기인 1982학년도부터 대학입학학력고사로 명칭이 바뀌어 1993학년도까지 시행되다가 1994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전환되어 지금까지 대학입학전형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땜질 처방’으로 끝난 2016학년도 수능 개선안
대학수학능력시험(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 이하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능은 출제 오류가 사회적 문제가 되거나 각종 논란에 종종 휩싸였다. 소위 ‘불수능(어려운 수능)’, ‘물수능(쉬운 수능)’ 등 난이도가 등락을 거듭하고, 출제 문항에 대한 이의신청이 몰리면서 수능의 위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능에 대한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민의 불신이 커지자 지난 2014년 교육부가 수능 개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상 초유의 2년 연속 출제 오류와 한꺼번에 두 개의 문항에서 출제를 잘못하는 사태까지 겹치자 수능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데 무게감이 실렸다. 그해 12월 24일, 교육부 장관이 정부중앙청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선위원 및 자문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곧이어 7인의 개선위원과 21인의 자문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위원회는 2015년 3월 ‘2016학년도 수능 개선안’이 나오기 전까지 수차례 분과협의와 연석회의는 물론 두 차례의 공청회를 개최, 국민의 의견을 수렴했다.


당시 위원회가 발표한 수능 개선 방안은 ▲문항 출제 및 검토 과정 개선 ▲영어영역의 EBS 연계 방식 개선 ▲기출문제 및 응시집단 특성 분석을 통한 난이도의 안정적 유지 ▲이의심사 절차 개선 등으로 요약된다. 수능 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수준이 아닌 출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출제 오류의 핵심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인적구성 변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문항점검위원회’를 신설해 검토 과정을 늘리고 정교화한 점은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졌지만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는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기 위한 난이도 안정화 방안은 빠졌다. 결국 ‘땜질 처방’이라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 수능 자격고사 전환 가시화
올해도 약 60여만 명의 수험생이 수능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날아가는 비행기도 세울 만큼 국가적 대사(大事)로 자리잡은 수능이 위상에 걸맞은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없을까?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수능 체제를 보완하여 향후 수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 더 이상 출제 오류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사전 준비 단계에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능분석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수능과 모의평가 결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출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출제 능력 향상을 위해 출제 관련 사전 워크숍을 내실화하고, 출제진의 교사 비중을 늘리고, 검토위원에 교수를 보강해야 한다. 출제와 검증을 분리하고, 과목(영역) 간 교차 검토를 내실화하며, 문항 오류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직업탐구영역 등 출제 과목을 축소하여 출제 부담 및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고, 수능 문제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오류가 없으나, 순수 학문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오류라고 지적되는 사례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 전환을 계기로 점진적으로 전 영역(과목)으로 확대하고, 어느 지역, 어떤 고등학교 학생이라도 정상적으로 교과를 이수했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자격고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고교등급화 금지 등 사전에 차단해야 할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보완해 줄 대안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는 수능과 EBS 교재와의 연계문제다. EBS 수능강의는 사교육비 절감과 지역교육의 편차를 줄이고 누구나 공평하게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능의 70%가 EBS 교재에서 출제되고 있어 ‘필수강좌’가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당시 수능제도개선위원회 회의에서도 EBS 수능 연계는 중요한 의제였다. 현장 교사 출신 위원들은 EBS 교재가 교과서를 대신하였고,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 대신 EBS 인터넷강의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들은 학생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범주에서 개선안 마련을 요구했다.


반면 EBS 교재를 활용하면 학습내용과 범위가 명확해져 수도권이나 대도시보다 사교육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수능에 대비할 수 있어 교육격차 해소에 크게 기여한다는 반론도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영어의 경우, EBS 지문을 그대로 출제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다양한 지문을 결합해 문항을 구성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가 EBS 연계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면 너무 변별력 없게 출제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EBS 지문과 다른 지문을 결합한 지문’ 또는 ‘EBS와 유사한 내용의 지문’을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출제자에게 큰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수능 난이도의 안정화이다. 인위적으로 문항의 난이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출제 시 요구되는 조건은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했으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로 적당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과목별로 유불리가 생기지 않도록 적정 난이도를 유지하면 된다. 일정 난이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성취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 가능한 이야기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해마다 다르다. 따라서 시험 난이도를 일정하게 한다 해도 그들이 느끼는 체감 난이도는 매년 다를 수밖에 없다. 즉, 교육과정과 입시정책의 안정화 이전에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수능의 권위 추락은 사교육비 절감을 목적으로 한 쉬운 수능 기조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최근 출제 문항에 대한 시비가 늘어난 것도 이러한 쉬운 수능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쉬운 출제가 사교육 경감 및 학생 학습부담 경감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앞으로 그 성과에 대한 정확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존의 수능 문제 난이도를 문항별로 파악하여 출제진에게 제공함으로써 문제의 난이도를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출제하도록 해야 한다. 쉬운 수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고 출제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출제 검토과정이 완벽하다면 수능 이의신청 제도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의신청 제도는 2004학년도 수능 이후 생긴 것으로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제도 운용상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업무에서 이의신청 처리만 분리하여 교육부에서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이의신청 및 처리는 출제기관이 아닌 별도 조직에서 과목별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하고 중요 문제 사안에 대해 해당 문항의 출제자, 기획위원을 위원회에 출석시켜 같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현장의 의견을 고려한 수능 출제 시스템 마련을 위해서는 운영과 지도·감독 권한을 국무조정실에서 교육부로 이양해야 한다. 권한 이양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지만 수능을 교육부가 손을 댈 수 없는 ‘무소불위’의 존재로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완벽할 리 없다. 다만 완벽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할 따름이다. 교육부가 아무리 훌륭한 수능 제도를 내놓는다 해도 현실과 괴리된 제도는 환영받을 수 없다. 수능 출제에 따른 인적 구성 및 우수 인력 확보와 미진한 부분을 좀 더 보완해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혁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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