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논란과 갈등의 중심에 있던 국정 역사 교과서의 미래가 드디어 결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핵심은 '1년 유예'와 '국·검정 혼용'이다. 미지근한 결정이라는 비난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 차원에서는 장고 끝의 난산이긴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따른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현재의 어수선한 시국 정세 속에서 단일 '국정교과서 추진 강행'으로 밀어붙이기와 현 정부 내에서 '폐기'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이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 교육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를 전면 적용하기로 대국민 약속을 한 기한은 2017학년도 3월부터 전면 적용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이후 국정화 동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당장 내년 3월 국정교과서의 전면 적용은 물리적으로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다. 대국민 약속을 했지만, 교육부로서는 숙고와 숙고를 거듭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빠진 것은 명약관화하다.
교육부는 시민단체, 국회, 교육청, 교육감, 교직원, 학부모 등 전 국민들의 의견과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한 것이다. 교육부가 애초 국정화 강행 입장에서 절충안으로 선회한 것은 국가 정책이라는 게 행정적 절차에 따라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여타 많은 부수적 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교육부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살릴 수 있는 '1년 유예'와 '국·검정 혼용'라는 교묘한 '출구전략'을 내놨지만 자칫 학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 이번 교육의 조치로 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사와 학생들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내년 3월 국정 역사교과서를 희망하는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 교과서를 주 교재로 사용하도록 하고, 2018학년도 3월부터 국·검정 교과서 중 원하는 교과서를 골라 쓸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방안이 학교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내년에 수능을 치르는 현재 고2학생들의 직접적인 피해가 우려된다. 국·검정 혼용에 따라 두 교과서를 모두 공부해야 하는 등 학생들의 시험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느 한쪽 교과서 내용에 편중된 문제가 나올 경우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학교 교육이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도 우리 교육은 교과서대로 이뤄지는 관행이 있어서 한국사 과목에서 무더기 복수 정답이 나올 우려도 없지 않다.
벌써 이번 조치에 대해서 진보 관련 학자, 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명쾌하게 '철회'를 선언하지 않은 교육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오히려 국민의 성난 민심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뜨거운 불깡통’을 돌리다가 임시로 상대방에게 맡긴 격이 된 것이다.
정치권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번 발표 당일 일부 시민단체들이 세종 정부청사 교육부 앞에서 대대적으로 시위를 한 바 있다. 특히 야권은 '1년 유예'는 사실상 강행을 위한 꼼수라고 강력 비판했다. 아울러 교육부가 1년 유예안을 선택해 공을 학교로 떠넘겼다는 비판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또 국·검정 혼용을 위해 검정교과서를 1년만에 다시 집필하라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교육부가 검정 교과서의 졸속 집필을 방관하고자 한다는 비난이다.
물론 국정 역사교과서는 표면적으로 1년 유예로 결정됐지만 후일도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내년 1년동안 연구학교에서만 시범 운영한다고 하지만 학계와 교육계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우려가 높아 연구학교를 희망하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교육계에서는 연구학교를 시행할 학교가 얼마나 될지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연구학교 시행 여부는 각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교장 등 교원, 학부모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된다. 다만 현재 여론은 연구학교 지정을 논의하는 주체인 각 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운영위원, 교원들과 학부모 등 대부분이 현재 국정교과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다.
당장 연구학교로 지정될 경우 일반 학교와는 다른 교육방식으로 역사 수업이 진행될 수 있어 특히 대입을 준비하는 고교를 중심으로 부담이 크다. 또한 국검정 혼용이 시행되는 2018년학년도는 사실상 차기 정부 체제여서 교육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국정 교과서 정책과 내용의 부담을 차기 정부에 떠넘긴 꼴이 되는 것이다. 국검정이 시작되는 2018학년도는 실질적으로 다음 정부의 교육정책을 따르게 돼 정책 변화도 불가피하다. 차시 신 정부에서 교육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교과서 사용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다시 한 번 국정 교과서 문제가 요동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부는 수능 시험에는 지장에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연구학교와 일반 학교가 다른 역사교과서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연구학교는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조건과 방법을 달리하여 그 결과를 비교하는 것인데, 출발부터 다른 교과서로 배운다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연구학교 지정이 시행되면, 현재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3개 시·도교육청 내 학교나 일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만 제한적으로 지정되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교육계 전망이다.
교육부가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23일까지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대한 웹 공개 의견을 수렴한 결과에서는 국정교과서 내용 오류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다. 내년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해도 수정된 내용으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현장 검토본에서 논란이 된 박정희 대통령과 새망을 운동의 공과, 1948년 대학민국 수립과 정부수립 논란, 친일파 미화 문제 등이 좀 더 가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사실 역사 교과서는 국정이냐, 검정이냐는 발행체제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실(史實)에 기초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는 더 이상 정치권이 정치적으로 아전인수식으로 악용하거나, 이념화해서는 안 된다.
이번 교육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의 '1년 유예'와 '국·검정 혼용'이 고육지책이지만, 첨예한 갈등을 잠시 접고 차분히 재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는 2018학년도에 다른 교과와 함께 역사교과서에도 새 교육과정을 적용하게 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 전면 적용 시기를 1년 미룬 만큼, 새 학기 검정 역사교과서 선택과 수업에 어려움이 없도록 조속한 고시 수정 등을 통해 학교 현장을 지원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번 발표에서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지정·운영하고 국·검정 혼용 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차기 정부에 정책과 부담을 넘긴 것이다. 이번 교육부의 발표가 정책 결정의 정도(正道)는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론이 분열된 어수선한 시국에서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살리고 우리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반듯한 역사를 가르치고 오롯이 역사 인식이 함양된 ‘속이 꽉 찬 꿈동이’를 기르는데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치인들과 정치권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교육의 논리와 문제를 정치이념의 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분명히 국정 역사교과서 '1년 유예', 고육지책 그 뒤에는 한국사의 정체성을 살린 토대 위에서 국민 모두가 함께 열어가는 희망찬 대한민국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