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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傲氣)의 독서

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125회

01
일곱 시간에 걸쳐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일곱 시간’이나 공연을 하다니,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 관심을 두고 특별히 예술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그렇게 긴 연극이 있단 말이야? 어떤 건지 한번 봐야겠다’ 하는 정도의 호사가적 관심에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곱 시간’에만 집중하는 관심은 대중적인 관심(popular issue)에 머문다. 나도 저 공연을 보고, 누구에겐가 ‘일곱 시간 공연을 보았노라’고 말하고 싶은, 일종의 ‘지적인 허영심’ 같은 것에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이 공연을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무대에 올리는 작품을 확인하는 순간, ‘아! 인내심이 필요하겠구나. 짜릿한 재미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지. 지루해서 졸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작품은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젊은이들에게 관람을 권유해 봤다. 재미없으면 책임지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진한 관심을 갖고 응하는 사람은 그 분야 전공자 외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일곱 시간짜리 연극 관람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우리라. 난해한 내용에 일곱 시간이나 인질처럼 붙잡혀 있어야 한다. 비싼 관람료를 내고서 말이다.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도 흥미를 못 느낄 수 있다. 아, 그 원작이란 것이 얼마나 길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난해했던가. 그래서 끝내 다 읽지 못했던 책이 아니었던가. 선뜻 관람 동기를 가지는 사람들도, 이 작품에 대한 어떤 지적 결핍감을 채워보자는 욕구가 작용했을 수 있다. 그것도 불편함을 수반하는 관람이 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만만치 않은 고전이다. 고전에 대한 저 유명한 고전적 정의, ‘자신은 읽지 않으면서 후배나 제자들에게는 읽으라고 강조하는 책’이라는 말을 절절히 공감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첫 번째는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이수 차원에서 반강제적으로 읽었다. 이 독서는 실패였다. 길고 지루하고 난해한 책이었다. 이 실패는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기숙사에 러시아 문학에 해박한 수학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내 기를 죽였다. 명색이 문학 전공자인 나는 열패감을 면할 수 없었다. 스스로 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깟 소설책 한 권을 제대로 못 읽어내고서 포기한단 말인가. 이 책은 나의 이후 독서를 가로막고 서 있는 장벽 같았다.

그 선배가 졸업한 뒤, 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결연한 오기로 재대결한다. ‘오기(傲氣)의 독서’란 이때 내가 만든 말이다. 책이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 이것이 문제다. 끝까지 무조건 읽자. 모르는 것도 안다고 최면을 걸면서 읽자. 모르면 찾아보면서 읽자. 그러니 속도에 연연하지 말자. 읽는다는 사실 자체에 자존감을 가지자. 여기서 무너지면 다른 독서로도 전진할 수 없다. 내 지식의 교두보를 이 책으로 확보하자. 두 번째 독서는 힘들었지만 성공했다. 세 번째 독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다시 읽었다. 세 번째 독서는 두 번째 독서의 성공을 다시 확인시킨다. 일곱 시간짜리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고 나왔다. 나에게는 대만족이었다. 작품을 해석하는 통로 하나를 새로 발견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 또한 젊은 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오기의 독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02
오기(傲氣)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니 두 가지의 뜻풀이가 있다. 하나는 ‘힘이 달리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설명돼 있고, 다른 하나는 ‘잘난 체하며 상대를 업신여기는 기세’라고 되어 있다. 두 가지 풀이 모두 그리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오기의 독서’를 좋은 의미로 제안하려 한다. ‘오기의 독서’가 좋은 의미가 되려면 물론 ‘오기’도 긍정의 지향을 띄어야 한다.

말이란 원래의 정해진 뜻이 사전에 있기는 하지만, 그 뜻 안에 절대적으로 가둬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사,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실에서 만들어진 말 중에는 정해진 사전의 뜻을 살짝 넘어서는 것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변화가 요란한 인간 감정을 구체적인 생활 맥락에서 담아낼 때는 그 말이 꼭 국어사전에 규정한 뜻으로만 쓰이라는 법은 없다. 오기가 항상 부정적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 마땅히 오기를 부려봄 직한 구체적 삶의 상황이 왜 없겠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이르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으려는데 책이 너무 딱딱하고 두껍고 난해해서, 그래서 힘이 달려서, 몇 번이고 중간에 포기한 책이 있다면, 다소 우격다짐의 방식이 되더라도, 기어이 그 책을 독파하라는 것이다. ‘책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정(오기)’으로 그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걸 ‘오기의 독서’라고 이름을 붙여본 것이다. 좀 어렵고 지루해서 약간 기가 눌려 있는 책이 있다고 하자. 더구나 잘난 척하는 친구들은 그 책을 모두 읽었는데, 나만 읽지 못해서 살짝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다고 하자. 일단 그 책을 업신여기는 마음 자세로 책 읽기를 공략해 보자. 잘난 체하는 친구들을 내 마음 안에서 다소 오만하게 무시해 가며, 기필코 그 책을 정복하려 해 보자. 그걸 ‘오기의 독서’라고 명명하고 싶은 것이다.

오기의 독서에는 얼마간의 지적 허영심이 개입해도 무방하다. 아니 그런 정신이 좀 권장될 필요도 있다. ‘지적 허영심’을 굳이 나쁘다고만 할 일은 아니다. 지식이나 예술에 어떤 동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초기의 기제로서 ‘지적 허영심’은 그 나름의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오기라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발동되는 하나의 코드일 수 있다. 그리고 자존심의 상당 부분은 자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심리 기제이고, 그 안에 약간의 허영심 같은 것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 없이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자아의 발달 경지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입지에서 보면 ‘오기’는 성취동기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오기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한순간에 걷어내어 버리게 한다. 그 순간이 바로 자아를 새롭게 설정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오기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오기는 충동과는 구별돼야 한다. 충동으로 작동하는 오기는 무모함으로 추락한다. 독서에 ‘오기’를 적용하면 그 ‘오기’는 일정한 지속을 거느린다. 그래서 ‘오기’와 결합할 수 있는 말로 최적의 말이 바로 ‘독서’이다. 오기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 그것은 이미 ‘강력한 계획(plan)’이 되는 것이다. 오기를 일정하게 유지해 밀고 나가면 그것은 이미 ‘유효한 전략(strategy)’이 되는 것이다.

03
자신의 정신적 생애를 독서로 실천해 나가려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늘 반성적으로 돌아본다면 그는 실력자다. 독서를 통해 부단한 자기 도야를 한다면 그는 성숙한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소망만으로 그런 경지를 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이런 독서는 반드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해야 한다. 내면으로부터의 정신적 오기가 강하게 추동해 올리는 그런 독서여야 한다. 이것이 ‘오기의 독서’다. 나를 열패감에 빠지게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나를 좌절하게 하고, 나의 지적 정체(正體)에 대해서 회의할 때, 나의 독서 도전을 열어주는 교두보(橋頭堡)와도 같은 독서가 있어야 한다. 진격의 독서를 위해서 교두보 독서는 절대적이다.

모든 독서가 ‘오기의 독서’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생애에서 한 번의 ‘오기의 독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내 생애 독서의 첫 지평을 열어주는 독서가 되기 때문이다. 단 한 권 ‘오기의 독서’는 그와 대등한 백 권의 책을 스스로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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